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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프리드먼 지오폴리티컬퓨처스 회장 :

지정학적 전환점, 한국의 과제는

정리=장재웅 | 432호 (2026년 1월 Issue 1)
中 이후 수출엔진, 브라질 등 남미 될 듯
한국, 美-中 시장 의존 줄여 다변화 절실
Article at a Glance

지금 세계는 새로운 지정학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80년간 이어져 온 ‘1945 체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또 한 번의 재조정을 앞두고 있다.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지정학적 붕괴와 더불어 러우 전쟁의 실패는 사실상 냉전 체제의 종결을 알렸다. 이에 세계는 유일한 글로벌 파워인 미국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제 미국의 초점은 유일한 라이벌 중국을 향하고 있으며 양국은 군사적으로 대립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복잡한 관계에 놓여 있다. 관세전쟁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고,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한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두 나라는 미국 입장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특히 한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과도 연결되며 무역 파트너를 넘어 미국의 전략적 필수 동반자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지 프리드먼 지오폴리티컬퓨처스 회장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의 미국 이민 1세대 지식인으로 코넬대 정치학 박사 후 20여 년간 정치학·국가안보 전략을 연구·강의했다. 1996년 지정학 분석 싱크탱크 스트랫포(Stratfor)를 창립하고 2015년 지오폴리티컬퓨처스(Geopolitical Futures)를 통해 중장기 지정학 리스크와 세계 질서 변동을 전망해온 세계적 전략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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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프리드먼 지오폴리티컬퓨처스 회장이 동아비즈니스포럼2025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극도로 불안정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기의 한복판에서 오랜 세월 고난을 겪어왔지만 그때마다 이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해 왔다. 1945년 이후 지난 80년 동안 세계는 지정학적으로 비교적 일정한 질서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타난 두 가지 거대한 변화 덕분이었다. 하나는 유럽 제국들의 붕괴와 쇠락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의 등장이다.

당시 국제사회의 지정학적 선택지는 단순했다. 친미(親美)냐, 친소(親蘇)냐, 아니면 중립이냐였다. 어느 편에 설지는 각 지역의 권력 구도에 따라 결정됐고 때로는 역사적 우연과 운도 크게 작용했다. 한반도는 그 대표적 사례다. 한쪽은 미국과, 다른 한쪽은 소련과 손을 잡았다. 냉전 시기 우리는 자신이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는지, 적과 아군이 누구인지 비교적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확고하고 합리적이며 예측 가능했던 지정학적 체제는 붕괴했다. 이는 1945년 유럽 제국들이 몰락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균형을 이루던 한 축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은 소련의 몰락이었다. 소련의 붕괴는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는 1991년, 소련이라는 체제 자체가 해체된 사건이다. 두 번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실패하며 군사·전략적 한계를 드러낸 최근의 사태다.

과거 다수의 전문가는 러시아가 마음만 먹으면 서유럽을 한 달, 길어야 1년 안에 유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하나조차 3년 반이 넘도록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써 미·소 간 힘의 균형이라는 냉전의 잔상은 사실상 소멸했고 세계 질서를 떠받치던 이분법적 사고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바로 이 점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아주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 변화는 국가와 산업,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세계의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듯 냉전의 종식과 그 이후의 혼란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질서를 다시 쓰고 있다.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의 변화

현재 우리는 지정학적 체제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미국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위험을 감수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중국산 수입품에 깊이 의존해 왔다. 여기에는 미국의 생산 능력 유지에 필수적인 부품들까지 포함된다. 미·중 간의 경제적 얽힘은 이제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깊어졌다. 중국의 폭발적 성장은 미국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과 미국의 자본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초 이는 중국을 소련(러시아)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미국의 전략적 포석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신과 군사적으로 적대하는 국가와 경제적으로는 한 몸처럼 얽혀버리는 거대한 모순에 빠지게 됐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떠올려 보자.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소련의 지원을 받은 아랍 국가들이 석유를 무기화하자 미국 경제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오늘날 미국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는 당시의 석유 의존도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군사적 적국에 경제적 생명줄을 맡기는 구조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거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만 하는 이유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미국은 압도적인 국력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에 대한 개입(Exposure)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불균형한 경제 시스템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이는 결코 매끄러운 과정이 아니며 도널드 트럼프라는 특정 인물의 성향 때문만도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됐든 ‘냉전은 끝났다.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국익에 필요할 때만 선별적으로 개입하자’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필연이다.

미국의 지정학적 초점은 이제 서반구로 돌아왔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위협이 되지 않고 대양 건너의 적들은 미 해군을 뚫고 침공할 수 없다. 따라서 1945년식의 지상군 개입 필요성은 사라졌다. 대신 미국은 바다와 우주에서 절대적 지배권을 확보하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다. 육군보다는 해군과 우주군이 핵심 전력이 된 것이다. 특히 우주는 현대전의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위성은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하며 드론과 결합하면 대규모 병력의 이동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타격한다. 우크라이나가 거대한 러시아군을 막아낼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성으로 보고 드론으로 때리는 시대에 적에게 노출된 대규모 군대는 이제 움직이는 표적일 뿐이다.

바다와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것이 새로운 군사 원칙이다. 이 영역에서 미국에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정교한 위성과 위성 요격 시스템(ASAT)을 갖추고 있으며 양국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조용한 전쟁’이 이미 진행 중이다. 아직 서로의 위성을 파괴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목을 겨누며 자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저궤도(LEO)는 가장 긴박한 지정학적 공간이 됐다. 그러나 저궤도는 군사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공격받을 때 분산하거나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달은 다르다. 달에서는 지형을 이용한 은폐와 엄폐가 가능하다. 내가 최근 집필한 책의 제목이 『달의 지정학(The Geopolitics of the Moon)』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항해시대에 바다가 지정학의 무대였듯 이제는 달과 우주가 새로운 전쟁의 기반이 됐다. 우리는 이처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 패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진화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국가별 지정학적 과제: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중국의 지정학적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는 수출 주도 경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의 1인당 GDP로는 자국 생산품을 내부에서 모두 소화할 수 없다. 중국은 내수가 아닌 수출을 위해 산업 구조를 설계해 왔고 따라서 수출 능력은 국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그들이 가장 탐내는 수출 시장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다. 바로 여기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된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의 가격을 높이려 하지만 중국은 그 비용을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러한 미·중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 관계에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두 번째 과제는 경제의 다변화다. 중국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지만 첨단 기술만으로 경제 전체를 지탱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제조품, 석유, 식량 등 다양한 상품의 교역이 필요하다. 수출 품목뿐 아니라 수입원 역시 다변화해야 한다. 현재 중국의 대외 의존도는 특정 국가들(특히 미국)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 이는 중국이 의도한 비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 형성된 구조적 결과다. 중국도 이를 인지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더 큰 난관은 정치적 문제다. 지난 80년간 중국은 미국과의 대립, 러시아와의 미묘한 긴장 속에서 성장해 왔다. 지금의 관건은 중국이 악화된 대미 관계를 얼마나 더 감내할 수 있느냐다. 최근 중국 내부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군 고위 지휘관들이 줄줄이 해임되거나 투옥되고 있다는 뉴스는 권력 핵심부에서 치열한 정치적 암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내부 시스템에 상당한 균열이 발생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중국은 현재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하나는 내수 시장 확대다. 낮은 1인당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험난한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주요 수출 대상국이 갑자기 문을 닫아버릴 경우 이를 흡수할 내부 시장이 없다면 체제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군사적 안보 유지다. 일본 침략의 트라우마를 가진 중국은 미국의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미국이 우리를 침공하려 하는가?”

물론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자멸에 가까운 어리석은 짓이지만 지정학의 제1원칙은 “최악의 상황은 반드시 일어나며 실제로는 상상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강력한 해군력을 증강하며 방어 태세에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이 아직 대만을 침공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능력이 없어서다. 상륙정이 대만 해안에 도달하는 데는 15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미국의 정찰위성은 이들을 손바닥 보듯 감시할 것이고 제1 도련선의 미사일 세례가 쏟아질 것이다. 중국 지도부도 이 군사적·기술적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다.

이것이 지정학의 냉혹한 현실이다. 국가는 ‘원하는 것(Needs)’과 ‘할 수 있는 능력(Capability)’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이 균형을 잃으면 국가는 파국을 맞는다. 중국은 매우 신중하게 행동하며 한계선까지 밀어붙이되 결코 그 선을 넘지는 않는다. 오판의 대가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지도자 개인의 성격(Personality)을 초월한다. 도널드 트럼프를 보라. 누군가에게는 미치광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 어떤 대통령이라도 트럼프와 유사한 길을 갔을 것이다. 동반구 전쟁 개입을 줄이고 낡은 브레턴우즈 체제를 손보는 것은 미국의 구조적 필연이었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는 그가 정치인처럼 말하지 않고 가장 ‘미국적인 본능’에 따라 직설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미국의 지정학적 전환은 지도자와 상관없이 진행됐을 역사적 흐름이다.

러시아 또한 고유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국경, 즉 완충 지대 확보다.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350마일(약 560㎞) 떨어져 있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이 평원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진격했다. 러시아의 악몽은 나토(NATO)군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해 모스크바의 턱밑을 겨누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욕심이 아니라 붕괴된 소련 서부의 완충 지대(발트 3국 등)를 복원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의 동쪽, 중앙아시아 5개국은 최근 트럼프와 만나 우호적인 회담을 가졌다. 남쪽의 아제르바이잔 역시 미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포위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직접 총을 쏘지 않고도 러시아의 목을 조이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미국의 의도는 공포 그 자체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지정학적 위협에 직면한 러시아는 군사적 해결책에 매달리고 있지만 서부 전선은 교착 상태고 동부와 남부 국경마저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가 세계에 팔 수 있는 건 석유뿐인데 그마저도 대체 가능한 자원이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강대국 목록에서 러시아는 지워야 한다. 남은 것은 압도적인 지역 강국인 중국, 그리고 유일한 슈퍼 파워 미국뿐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판 위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과제는 무엇인가?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존재로 인해 유사시 미국의 개입은 확실하지만 ‘미국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미국이 어느 선까지 움직여주길 바라는가?’는 여전히 불확실한 변수다. 미국은 한국을 돕겠지만 전쟁이 한국 경제에 미칠 파국적 영향까지 막아줄 수는 없다. 한국은 번영하는 경제를 전쟁의 화마로부터 지켜야 한다. 한국은 안보의 최종 보증인인 미국과 강력한 군사적·경제적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이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지 모르는 지금, 한미 동맹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은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을 넘어 독자적인 지역적 경제·안보 체제의 주축으로 성장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의 강대국이었고 8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군사 대국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경계해야 할 거대한 이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미래는 글로벌 차원이 아닌 ‘지역적 안보 협력 체제’다. 이미 ASEAN 국가들이 있지만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는 것이다. 일본, 필리핀, 한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협력하는 체제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가능하다면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적·군사적으로 상당한 방어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수출 강국 한국, 미국 의지하지 않는 수출 루트 다변화 필요

단기적인 전망을 내놓자면 미국과 중국은 머지않아 경제적 및 군사적 합의에 도달할 것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중국은 미국 시장 상실을 감당할 체력이 없지만 미국은 중국과의 단절을 상대적으로 훨씬 잘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미국과의 군사적 적대 관계를 청산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이것이 현재 한국이 목격하고 있는 두 가지 외교 트랙의 배경이다. 하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트럼프와의 관세 및 경제 협상이고, 다른 하나는 물밑에서 진행되는 양국 군 간의 소통 채널 구축이다. 훈련 일정을 공유하고 핫라인을 여는 등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경제 문제 해결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군 고위 장성들이 대거 해임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순한 숙청이 아니라 과거 세대의 낡은 군사사상이 폐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평생을 ‘미국과의 전쟁’ 준비에만 몰두해 온 인물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하에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위협하지 않고 새로운 균형을 모색할 신진 세력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태세 전환은 한중 관계의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며 미국 역시 이를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반면 북한의 미래는 심각한 물음표로 남아 있다. 현재 러시아가 북한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고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나름의 전투력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봐야 한다. 북한의 유일한 동맹인 러시아는 경제 강국도 아니며 이번 전쟁에서 드러났듯 군사 강국도 아니다. 약체화된 러시아 하나에만 의존하는 북한의 생존 전략은 남한의 미래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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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확고하다. 한국은 중국의 변심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카드이자 중국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반도체 공급처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결정적인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가 결코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산주의 형제국 시절에도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를 ‘반동분자’라 비난했고 우수리강 국경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최근 중국이 19세기에 상실한 러시아 동부 지역을 자국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배포한 의도는 명확하다. 자국민들에게 미래의 영토 회복 가능성을 암시하는 동시에 쇠락하는 러시아를 향해 “캄차카와 극동은 다시 우리의 영향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런 살얼음판 같은 정세 속에서 한국은 극도로 신중하고 기민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발전이다. 이를 위해 미국과는 굳건한 군사·경제 동맹을 유지하고 중국과도 훌륭한 관계를 맺는 고난도의 이중 전략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한국의 경쟁력이 곧 한국의 약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세계 곳곳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뛰어난 글로벌 경제력을 갖췄다. 그러나 한국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미국이라는 단일 경제권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태생적으로 수출 중심 경제일 수밖에 없다. 내수시장의 규모만으로는 지금의 경제 수준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 단 하나의 시장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이 한국에 악의를 품고 있어서가 아니다. 신중함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 한국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고 리스크를 최대한 넓게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 과제는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는 것이다. 성급하게 반응하지 말고 북한이 벌이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끈기 있게 버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첩성(Agility)’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AI와 첨단 기술에 대한 일종의 맹신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특정 산업 하나에만 몰입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그 미래는 불확실하며 심지어 그 기술을 찬양하는 전문가들에게조차 불투명한 영역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에 산업 구조를 분산시키는 것이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 신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는 냉전 시절 미·소 군사 대립의 산물이었지만 특정 산업 의존이 초래한 결과를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1950년대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 경제의 거대한 짐이 될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런 면에서 한국은 매우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 북한과의 충돌을 피하며 거리를 두고 있고 동시에 경제 교류 대상을 다변화하려 노력 중이다. 이는 단순히 수출국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시장의 성격과 판매하는 제품의 포트폴리오까지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이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고 변화에 빠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낡은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공격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매우 닮았다.

지금 세계는 단순한 전쟁 위기가 아니라 각국이 미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 근본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는 유럽도, 남미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흥미로운 역사적 패턴이 있다. 바로 ‘수출 강국 40년 주기설’이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경제에는 항상 압도적인 수출 주도 국가가 존재해 왔다. 첫 주자는 미국이었다. 1890년부터 1930년까지, 미국은 19세기의 중국과 같았다. 40년 동안 미국은 전 세계로 물건을 팔아 치우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구매력을 상실하자 미국은 결국 대공황이라는 늪에 빠졌다. 다음은 일본이었다. 1950년,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일본이 다시 강대국이 될 거라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미국에서 ‘Made in Japan’은 조악한 물건을 뜻하는 농담거리였다. 하지만 일본은 결국 미국을 위협하는 수출 괴물로 성장했다. 일본의 수출 전성기는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정확히 40년간 지속됐다.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다.

이제 중국을 보자. 중국의 부상은 1980년에 시작됐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 주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중국의 수출 엔진은 지정학적 한계에 봉착했다. 미국이 유럽에 더 이상 팔 수 없게 됐을 때, 일본이 미국 시장에서 견제를 받았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물론 중국은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일본도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경제 대국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왜 하필 40년인지는 알 수 없어도 이 주기가 세 번이나 반복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명확하다. “누가 ‘넥스트 차이나’가 될 것인가?” 중국은 일본의 뒤를 이었고, 일본은 미국의 뒤를 이었다. 다음은 누구일까? 이것은 예측이라기보다 나의 직관에 따른 추측이다. 1890년에 미국이 산업 강국이 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 못했다. 1950년에 일본의 부활을 점치는 건 상상 속의 일이었고, 1980년에 중국이 G2가 될 것이란 말은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즉 차기 수출 패권국의 전제 조건은 ‘그 나라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터무니없어(Ridiculous)’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터무니없어 보이는 곳을 골랐다. 바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남미 지역이다.

이유는 첫째, 아무도 남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둘째,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남미로 자본을 옮기고 있다. 우리가 앞서 미국, 일본, 중국의 초기 단계에서 목격했던 바로 그 현상이다. 트럼프가 뚜렷한 이유 없이 남미에 관심을 쏟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매우 흥미로운 신호다.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가 안정되고 성장하려면 둔화된 중국의 바통을 이어받을 새로운 엔진이 필요하다. 중국은 거대하지만 역동성은 떨어진 상태로 남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한국의 위치는 어디일까? 한국은 ‘넥스트 차이나’가 되기엔 물리적으로 너무 작다. 북한과 통일돼 극적인 합의를 이룬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러시아 극동 지역도 후보가 될 수 있었겠지만 러시아라는 틀에 너무 깊이 묶여 있어 부적합하다. 세계 지정학의 역사는 늘 ‘예상 밖의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면서 흘러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남미가 다음 40년을 이끌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본다.


“어리석게 생각하라(Stay foolish)”

지정학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습관은 지도자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에 집착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리더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이해했기에 그 자리에 올랐다. 독재자든 민주적 지도자든, 그들은 무엇이 가능한지, 당장 눈앞에 닥친 가장 치명적인 위험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정학을 이해하려면 대통령이나 총리의 화려한 정책 발표문은 잊어버려라. 대신 그 국가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능력’ ‘아직 갖지 못한 결핍’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인물을 지우고 제약 조건을 바라볼 때 비로소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때로는 ‘어리석게’ 생각하는 것이 정답일 때가 있다. 복잡한 이론이나 세련된 분석을 걷어내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갑자기 숨겨진 패턴이 떠오른다. 앞서 언급한 세계 경제의 ‘40년 주기’가 그렇다. 왜 하필 40년인지는 나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그 주기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행동을 분석할 때 지도자 개인의 성격에 매몰되지 말라. 성공한 지도자들은 국가가 처한 상황의 포로일 뿐이다. 상황을 보면 행동이 예측 가능하다. 이것이 내가 평생 고수해 온 분석 방식이다.

나는 2009년에 폴란드, 일본, 터키가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가 남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믿었을 뿐이다. 똑똑한 사람은 질문하기도 전에 답을 내리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는 후자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한다. 좀 더 투박하고, 좀 더 ‘어리석게’ 생각하라. 과거 내 예측들이 당시엔 터무니없어 보였지만 결국 현실이 되지 않았나.

제발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춰라. 그 사람의 기행이나 성격에서 눈을 떼고 구조를 바라볼 때 비로소 그가 ‘왜’ 그러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의 본능을 봐야 한다. 세계는 지금 ‘재정착(Re-anchoring)’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냉전시대의 양자택일은 끝났다. 한국의 생존 전략은 명확하다. 미국과는 굳건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미국은 유일한 글로벌 슈퍼 파워이자 한국을 공격할 동기가 없는 가장 안전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과는 긴밀한 경제 협력을 유지해야 한다. 전쟁의 유혹은 철저히 억제해야 한다.

유럽이 그랬듯 한국도 반드시 ‘지역 블록(Regional Block)’을 형성해야 한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라도 뭉쳐야 한다. NATO의 미래는 불투명해도 EU가 유럽의 현실을 지탱하듯 지역이 통합될수록 힘은 강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이웃 국가를 신뢰해야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나는 방향과 해결책을 던질 뿐 구체적인 실행 방법까지 알려줄 수는 없다. 그것은 이제 여러분의 몫이다.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취재와 작성에는 동아 콘텐츠 크리에이터 과정 우수 수료생 장한결(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졸업) 씨와 정재은(동아대 반도체학과 재학) 씨가 참여했습니다.



DBR mini box I : 문정빈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와의 대담

“中 과잉 투자로 대가 치를 것… 韓, 향후 10년 민첩한 혁신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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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빈 교수(이하 문)  1980년대 미국의 대일 무역 제재가 역설적으로 일본 제조업을 강화했듯 현재 미국의 대중 제재도 중국의 제조 역량을 가속화하는 듯하다.

 조지 프리드먼(이하 프리드먼)  일본의 사례를 피상적으로 봐선 안 된다. 일본은 80년대에 정점을 찍었지만 곧바로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 과잉 투자와 과잉 생산이 금융 시스템 붕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이 이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IT 등 기존 성공 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 ‘현재의 유망 산업이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투자는 도박이다. 일본이 그랬듯 중국도 미래 변화를 간과한 과잉 투자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문  경영학 교수 배리 네일버프는 ‘코피티션(Co-opetition, 협력적 경쟁)’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전 세계 글로벌 가치망이 깊게 얽혀 있어 미·중 간 긴장은 과거의 순수한 패권 경쟁보다는 이러한 협력적 경쟁 양상에 가깝게 보인다. 미·중 갈등이 단순한 패권 다툼을 넘어 ‘협력적 경쟁(Co-opetition)’ 양상을 띤다는 시각이 있는데?

 프리드먼  정확한 지적이다. 강대국 경쟁은 두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첫째는 ‘군사적 방어’ 차원인데 전면전 가능성은 오히려 줄고 있다. 둘째는 ‘경제적 협력’ 차원이다. 겉으로는 갈등해도 물밑에선 시장 파괴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관계를 조율한다. 중국은 바보가 아니다. 경제 합리화와 다변화를 위해 움직일 것이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중국 다음은 누구인가”이다. 영국, 미국, 일본, 중국으로 이어진 생산력의 계보를 10∼20년 후 누가 잇느냐가 미래 경쟁의 핵심이다.

 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한국은 미·중 사이에 끼어 있다. 리더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프리드먼  고래가 싸운다고 새우가 반드시 죽진 않는다. 한국은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미·중 경쟁이 재균형(Re-balancing)을 찾으면 한국은 오히려 유리해진다. 이제는 미국과 안보를 같이하면서도 중국과 경제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배신’이 아닌 시대가 됐다. 한국의 무기는 ‘혁신’과 ‘민첩성’이다. 중국이 경제 구조조정으로 고통받을 향후 10년 동안 한국은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미·중 양국 모두와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 둘째,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중국 시장에만 의존하지 말고 철저히 다변화하라.

 문  한국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했음에도 최근 무역 협상 성과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프리드먼  큰 그림을 봐야 한다. 트럼프 관세 정책의 목표는 무역 수지 개선이 아니라 글로벌 시스템에 충격을 가해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데 있었다. 관세는 ‘기존 규범은 끝났다’는 정치적 신호였다. 한국의 협상 결과는 예상 범위 내에 있다. 미국의 주 타깃은 중국이고 일본엔 대만 방위 책임을 요구했다. 냉정히 말해 미국이 한국에 추가로 바라는 건 크지 않다. 한국은 자신의 경제적 가치와 중국 오판 시의 리스크를 냉철히 계산해 대응하면 된다.

 문  한국의 통일 가능성과 동아시아 지정학적 변화는?

 프리드먼  통일은 진작됐어야 했다. 과거와 달리 중국은 예측 불가능한 북한을 골칫거리로 여기고 러시아는 전쟁으로 코가 석 자라 북한을 계속 먹여 살릴 수 없다. 외부 후원자가 사라진 핵 보유 정권은 벼랑 끝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이것이 최대 위험 요소다. 북한 체제는 자생력이 없기에 결국 통일은 일어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매우 혼란스럽고 위험할 수 있으므로 한국은 북한 붕괴 시나리오에 대비해 극도로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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