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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 사례로 본 버티컬 몰의 생존 전략

회사명에서 ‘마켓’을 떼고 브랜드화
뷰티 카테고리 확장 승부수 통할까

오린아 | 381호 (2023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외형 성장에 열을 올리던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멈추고 내실 다지기로 선회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장은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롱테일 부문 강자들 위주로 재편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틈새에서 전문화를 통해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한 기업들의 선전은 고관여 식품, 패션, 여가 활동 등 브랜딩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버티컬이 롱테일 대비 우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버티컬 몰도 추가 성장을 위해서는 카테고리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컬리의 뷰티 진출 사례가 보여주듯 많은 버티컬 몰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장이 바로 ‘뷰티’다. 개인화가 중요하고, 객단가가 높아 매출 및 수익 창출에 유리하며, 아직까지 지배적인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이 없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단, 이런 확장 전략은 자칫 버티컬 몰의 경쟁력이던 전문성과 브랜드 정체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있다.



출혈 경쟁의 일단락: 롱테일 강자 주도의 시장 재편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이커머스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업체들은 거래액 증대와 외형 성장에 열을 올리며 적자를 감수했다. 주요 이커머스 업체 8개사의 2022년 연간 영업적자는 1조6155억 원에 달해 2021년 대비 117%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2022년 하반기부터 달라졌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수익성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략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장 성장은 코로나19 종식에 따른 리오프닝1 으로 제한됐고, 수년간 성장해 온 기저에 따라 단기간에는 이를 뛰어넘는 성장이 쉽지 않아졌다. 더불어 높아진 금리와 물가로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들며 소비 자체가 위축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요인들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면서 이커머스 업체들은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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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바로 새벽배송 서비스의 중단이다. 이커머스를 통한 빠른 배송이 핵심 경쟁 요소로 떠오르면서 많은 업체가 새벽배송 서비스에 뛰어들었는데 비용 부담 탓에 2022년부터 몇몇 업체가 이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롯데온은 2020년 5월 롯데마트몰을 통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든 지 2년 만인 2022년 4월 새벽배송을 중단했다. BGF가 5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던 헬로네이처는 8년간의 적자 끝에 역시 새벽배송 사업을 종료하고, B2B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GS리테일의 GS프레시몰도 2022년 7월, 시장에 뛰어든 지 5년 만에 새벽배송 서비스를 중단했고, 올해 10월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대신 슈퍼마켓, 편의점을 기반으로 퀵커머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업체들의 경영 기조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매출액은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이와 함께 영업 손실도 줄었다. 이렇게 코로나발 출혈 경쟁은 일단락되고 있는 모양새다.

출혈 경쟁의 1막이 내리고, 1차 전의 승자는 네이버와 쿠팡으로 결정됐다. 올해 상반기 온라인 쇼핑 판매액 109조 원 가운데 네이버와 쿠팡의 거래액이 절반에 가까운 수준을 점유한 것이다. 두 업체 모두 수많은 셀러가 다양한 품목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롱테일 부문의 강자들이다. 특히 네이버의 스마트스토어 수는 2022년 말 기준 55만 개에 달해 지난해 말 국내 한식 음식점(36만2000개), 커피음료점(9만9000개), 치킨점(8만1000개)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쿠팡은 2021년 기준 취급하고 있는 상품의 개수가 SKU(Stock Keeping Unit) 기준 4억~5억 개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매우 많은 수의 상점이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는 롱테일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력과 규모로 이 경쟁에 새로 문을 두드리는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먼저 2022년 9월 티몬을 인수한 큐텐의 공세가 가장 매섭다. 2023년 들어 인터파크커머스와 위메프를 차례로 인수하며 몸집을 키운 큐텐은 2023년 10월, 11번가 인수에 나서면서 이커머스 점유율 3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알리바바 산하 직구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와 핀둬둬의 자회사 테무 등도 한국에 진출한 만큼 다양한 품목으로 승부하는 롱테일 시장에서의 점유율 변화가 예상된다.


몸집으로 안 되면 한 우물만: 버티컬 몰의 가능성

하지만 모든 이커머스 업체가 이 경쟁에 참전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몸집으로 승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업체들은 다른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전문 몰인 버티컬로의 집중이다. 버티컬 몰은 수직(Vertical)이라는, 말 그대로 특정 카테고리 품목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커머스를 뜻한다. 오프라인의 카테고리 킬러와 비슷하다 볼 수 있다. 다만 버티컬 몰은 온라인 기반이고 오프라인 대비 데이터가 풍부하기 때문에 좀 더 적중률이 높은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같은 카테고리 내에서도 물리적인 선반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상품을 깊게 다룰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무신사/에이블리(패션), 오늘의집(인테리어), 정육각/온브릭스/설로인(식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한국 온라인 판매액을 쇼핑몰 성격별로 분류했을 때 매출 성장세가 종합 몰을 상회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기간이던 2020년 잠시 오프라인 쇼핑이 제한되고 생필품 등의 온라인 소비가 늘면서 종합 몰이 앞서는 모습이 나타났지만 전반적인 추이를 보면 전문 몰의 성장세가 뚜렷하다. 이커머스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20년 이상을 달리는 시점에서 소비자들의 취향이 섬세해지고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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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컬 몰의 가능성은 모순적으로 쿠팡의 실패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쿠팡은 2020년 4월 자체 패션 전문 플랫폼 C에비뉴를 론칭했다. 한국의 이커머스 침투율은 36.7%(자동차/연료 및 온라인 배달 등 서비스 금액 제외)로 성숙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쿠팡 또한 가입자 수나 활성객 수를 더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활성객 수당 단가 상승을 통한 성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쿠팡은 여성, 남성, 유아동, 신발/잡화, 스포츠패션 등 5개 카테고리의 120여 개 브랜드 입점으로 C에비뉴를 시작했으며 쿠팡의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패션 부문까지 발을 넓히려 시도했다. 그러나 3년이 흐른 지금, 이는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C에비뉴 입점 브랜드도 1300여 개까지 늘어났다가 현재는 800개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쿠팡에서 패션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비중은 16.3%에 불과했다. 네이버 쇼핑이 33.3%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거래액 규모에 비해 낮은 수치다. 이에 쿠팡은 C에비뉴에 이어 패션 PB 상품과 외부 업체를 통해 독점 수입·판매하는 쿠팡 온리(ONLY) 브랜드도 전개했지만 현재 전개 브랜드 수는 21개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쿠팡의 실패는 패션이라는 카테고리의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다. 패션은 생필품이나 일반 공산품과 다르게 개인화가 매우 중요하다. 대형 마트에서 의류 구매가 활발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형 마트 의류 매출액은 지난 10년간 딱히 성장하지 못했으며 코로나 기간 확진자 수가 둔화됐을 시기의 기저 효과로 일부 기계적인 성장만 있었다. 즉, 저렴한 가격과 편의성이 모든 품목의 구매를 결정하는 데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커머스에서도 롱테일 업체들 대비 버티컬 플랫폼들이 우위에 있는 부문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패션, 뷰티, 고관여 식품(한우, 과일, 건강기능식품 등), 여가 활동(캠핑, 악기, 스포츠 등)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부문은 특정 카테고리에 전문적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소구하기가 유리하다. 누적된 데이터, 후기, 취향 등을 바탕으로 개인에게 맞는 다양한 브랜드와 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것도 경쟁력이다. 그리고 이는 또다시 브랜드들에도 버티컬 몰에 입점하게 하는 선순환 요인이 된다. 반면 쿠팡의 최대 경쟁력은 로켓배송인데 이런 서비스도 그 대상이 소비자가 탐내는 물건일 때 비로소 강점으로 작용한다. 버티컬 몰이 비교 우위가 있는 카테고리의 품목들은 쿠팡에 입점했을 경우 오히려 종합 몰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전문적, 덜 매력적으로 보일 여지도 있다.


뷰티컬리로 보는 버티컬 몰의 카테고리 확장과 우려

이에 이커머스 업체들 중에서도 버티컬 몰을 신사업으로 추진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을 펼치는 곳들이 눈에 띈다. 컬리의 뷰티컬리가 대표적이다. 컬리는 2022년 11월, 7년 만에 서비스명을 마켓컬리에서 컬리로 변경하면서 신선 식품 및 장보기의 ‘마켓컬리’와 뷰티 부문을 다루는 ‘뷰티컬리’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신선 식품과 마찬가지로 전날 밤 11시 이전에 주문하면 백화점 1층에서 볼 법한 뷰티 제품들을 다음 날 새벽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바비 브라운, 맥, 에스티로더, 라메르, 설화수 등 백화점에 입점한 고가 브랜드부터 닥터자르트, 바닐라코, 동국제약 마데카 라인 등 H&B 스토어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는 브랜드, 퍼스널케어 브랜드들까지 서비스 초기부터 1000여 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이런 뷰티컬리의 출현은 버티컬 몰에는 뷰티란 소재가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뷰티 카테고리는 온라인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품목이다. 화장품 소매판매액은 전체 소매판매액 성장률을 상회하는 성장을 해 왔으며 동시에 국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업체가 아직까지 없는 시장이다. 더불어 개인화가 중요한 카테고리다 보니 소비자들의 충성도 및 구매 전환율도 종합 몰 대비 높을 수 있다. 현재 온라인 뷰티 시장 내 점유율 1위는 CJ올리브영이다. 올리브영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9년 10.6% 수준이었는데 코로나19를 지나며 2023년 1분기 27.9%까지 상승했다. 아이지에이웍스가 집계한 지난해 10월 말 기준 앱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로 봐도 1위다. 흥미로운 점은 올리브영의 뒤를 잇는 앱이 커머스 업체가 아니라 화장품 성분 및 리뷰 정보 플랫폼인 ‘화해’란 사실이다. 3위 이니스프리, 4위 아모레몰의 이용자 수는 그에 비해 미미해 올리브영 외에 뷰티 커머스로 두각을 보이는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다.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가 30조 원대인데 1위인 올리브영의 매출이 2조 원대고, 온라인 매출 비중이 30%에 못 미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컬리 입장에선 충분히 노려볼 만한 시장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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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컬리 외에도 많은 국내 커머스 기업이 뷰티로의 확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무신사는 2021년 800여 개이던 뷰티 브랜드를 2022년 1200개까지 늘렸으며 올해 상반기 무신사 뷰티 거래액 또한 전년 동기 대비 117% 증가했다. 10~20대가 주요 고객층인 패션 버티컬 에이블리 또한 2023년 9월까지 뷰티 부문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0%, 고객 수는 같은 기간 약 3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스타일의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도 2022년 4월 뷰티 전문관 ‘직잭뷰티’를 론칭했다. 서비스 시작 당시 입점 브랜드는 200여 개였으나 현재는 2000개, 상품 수는 3만 개까지 늘었고, 2023년 상반기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315% 증가했다. 기존 대형 유통업체도 이 시장에 참전 중이다. 롯데온 또한 뷰티 전문관 ‘온앤더뷰티’를 오픈했고 쓱닷컴은 뷰티 전문관 ‘먼데이문’을 개편하는 등 온라인 화장품 판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장의 성장세 및 가능성에서도 그렇지만 컬리의 상황을 봤을 때 전략적으로도 뷰티 부문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할 만하다. 먼저 컬리는 1) 새벽배송을 2) 직매입을 통해 하고 있는 회사다. 공간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물류센터에 재고를 매입해서 판매하는 구조다. 따라서 물류센터에서 자리를 최소한으로 차지할 수 있게 부피가 작으면서도 단가가 높고 수익성이 좋은 화장품은 컬리에 안성맞춤인 품목이다. 부피 대비 매출을 기준으로 애호박 하나를 파는 것과 파운데이션 하나를 파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임대료가 비싼 명동에 화장품 가게가 많듯이 마진을 고려하면 화장품만 한 품목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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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컬리는 2023년 초까지 상장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품보다 객단가가 높은 화장품을 강화하며 몸집을 키우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적자를 피하기 어려워 기업 가치 산정 시 가격과 매출액의 비율(P/S)이나 총거래금액(GMV)과의 비율(P/GMV) 등 외형 기반 밸류에이션을 적용해 왔다. 이는 곧 화장품을 통해 객단가를 높이고 외형 성장을 꾀해야 기업 가치를 지탱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컬리가 2021년 12월 프리IPO 때 마지막으로 받았던 기업 가치는 4조 원이었다. 컬리가 주식시장에 상장했을 때 기대되는 기업 가치는 6조~7조 원이었는데 이는 2022년 매출액인 2조372억 원에 2.9배 배수가 적용돼야 설명이 가능한 수치다. 지금처럼 금리가 오르고 성장주에 대한 멀티플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멀티플을 적용하면서도 높은 기업 가치를 만들려면 매출액을 더 키워야 한다. 이렇듯 현실적인 측면에서 신선 식품보다는 화장품이 기업 가치를 정당화하는 데 유리하다. 컬리도 이런 전략적 고민에서 뷰티 부문으로의 확장을 결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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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일각에서는 우려도 있다. 컬리가 신선 식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브랜드 정체성이 희석된다는 지적이다. 컬리의 본질이자 정체성이었던 30~40대 여성을 위한 ‘프리미엄 식품’ 플랫폼이라는 이미지가 비식품 부문으로의 확장을 통해 다소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먹거리에 진심인 김슬아 대표가 상품기획(MD) 직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직접 먹어보면서 원재료 출처, 맛 등을 까다롭게 선별한다는 이미지는 컬리의 차별점으로 작용해 왔다. 다른 버티컬 몰과 마찬가지로 이런 전문성이 소비자들에게 소구했던 만큼 뷰티 진출로 매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 동안 컬리의 누적 적자는 7286억 원인데 여타 이커머스 업체들이 수익성 집중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과 달리 컬리가 신사업인 뷰티컬리를 확대하고 비식품 쪽으로 확장하는 것은 실적에는 다소 부담일 수 있다. 본격적으로 비용 줄이기에 돌입하면서 매출을 희생하면서 적자 규모를 줄이고 있는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과는 상반되는 행보이기 때문에 고금리, 고물가의 어려운 이커머스 환경 내에서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커머스, 채널을 넘어 브랜드로 거듭나기

민간 소비가 위축됐던 만큼 경쟁을 지양하고 조용한 한 해를 보냈던 이커머스 업계도 2024년부터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해부터 상장을 연기했던 업체들의 자금 조달 및 상장 재추진 여부도 가닥이 잡힐 것이다. 이렇게 격동의 시기에 이커머스 업체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략을 짜내고 있는데 ‘브랜드화’도 그중 하나다. 최근 마켓컬리와 당근마켓은 사명에서 마켓을 떼 냈다. 이는 굳이 사명을 통해 특정 분야에 한계를 두지 않고 브랜딩을 통해 확장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실제로 컬리도 신선 식품에서 뷰티로 영역을 넓힌 것 외에도 이커머스를 넘어 오프라인 무대에서 컬리라는 브랜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9월 컬리는 오프컬리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처음으로 오픈했다. 총 4층, 194.7㎡(약 59평) 크기의 성수동 주택을 꾸며 만든 곳이다. 이곳에 대해 회사 측은 “다양한 테마 관련 제품과 문화를 큐레이션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시즌제로 운영하면서 매 시즌 테마를 선정하고, 1층에서는 테마에 맞는 굿즈와 식재료 판매를 하고, 2~3층에서는 이 테마에 맞춘 체험형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설명이다.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문가의 지식 전달, 그리고 큐레이션 매장 경험을 제공해 점점 더 섬세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고객의 취향에 잘 다가가기 위한 행보다. 물론 이를 두고 실패한 실험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간도 크지 않고, 상품 판매를 강조하지도 않아 매출액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체험 요소 역시 인원이 제한적이고 추가 비용이 발생해 진입장벽이 높았으며, 브랜딩 측면에서도 성과가 기대 이하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커머스 업체들의 가장 큰 숙제가 브랜딩 고도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오프라인을 활용해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노력의 연장으로 2023년 7월 초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컬리 푸드 페스타’라는 행사도 열었다. 디저트, 간편식, 신선 식품, 국/반찬 등 다양한 식품을 소비자들이 직접 시식하고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동안 통상 이러한 행사는 제조업체들의 입점을 위한 B2B 영업의 장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다. 하지만 컬리 푸드 페스타는 최종 소비자와 제조업체들의 접점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했으며 이를 통해 ‘컬리가 새롭고 다채로운 식품과 식재료를 엄선한다’는 전문성을 보여줬다.

이처럼 컬리의 다양한 시도는 수많은 상품을 취급하는 롱테일 강자들 틈새에서 시장 파이를 지키고 카테고리 확장을 꾀하면서도 고유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버티컬 몰의 고민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산품이 아니라 고관여 식품과 뷰티 판매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타깃 고객에게 집중하는 전략이 유효한데 그렇다고 하던 것만 계속해서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고, 소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환경에서 적응과 변화는 필수 요소가 됐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즐거웠던 성장 축제를 마친 지금, 컬리를 위시한 버티컬 몰이 이 변화를 지나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 오린아 | 이베스트투자증권 책임연구원

    오린아 책임연구원은 메릴린치증권, BNK투자증권을 거쳐 현재 이베스트투자증권에서 유통/화장품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주로 e커머스, 플랫폼 비즈니스, 중국 화장품 산업 분석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유튜브 채널 ‘오린아의 유통귀환’을 운영하고 있다.
    lina.oh@ebests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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