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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발적 탄소 시장 접근 어떻게

배출 감축권 구매했다고 탄소중립?
고객 속이는 그린워싱 이젠 안 통해

백광열,배미정 | 370호 (2023년 0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최근 글로벌 VCM이 급성장하면서 그린워싱 이슈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언론과 환경 단체, 학계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슈는 크게 2가지로 첫째, 탄소배출 감축권의 구매를 직접적인 탄소 감축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과 둘째, 탄소 상쇄 프로젝트가 갖춰야 할 ‘추가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VCM 관련 기구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신빙성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다. 기업은 탄소 감축의 실질적 효과를 따져 고품질의 탄소 감축 기술인 탄소 제거 기술에 투자하고, 배출 감축권을 거래할 때 측정, 보고, 검증 과정을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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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1일, 유럽의회는 544명의 찬성, 18명의 반대, 17명 기권의 압도적인 과반수로 기업이 탄소 상쇄(carbon offset)1 를 통해 탄소 감축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탄소를 감축하지 않은 채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VCM)에서 구매한 상쇄 크레디트를 활용해 탄소 감축을 주장하고, 자사 제품에 ‘탄소 중립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고객에게 친환경적인 제품임을 홍보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에 강력한 제동을 건 것이다.2 이는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 유럽이 수입 제품을 대상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수출 기업들이 탄소국경세를 피하기 위해 탄소 상쇄 감축권을 활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탄소 배출 감축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유럽의회가 이 같은 초강수를 둔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탄소 회피 크레디트를 둘러싼 그린워싱 논란이 커지면서 VCM 전체로 신뢰성 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23년 1월, 영국의 가디언과 독일의 디차이트(Die Zeit)는 세계 최대의 자발적 탄소감축권 발행 기구인 베라(Verra)가 검증하고 인증한 열대우림 상쇄 감축권의 90%가 아무런 환경적 가치가 없는 ‘유령’ 감축권이라고 폭로했다. 디즈니, JP모건, 셸, 구찌 등 글로벌 대기업이 구매한 감축권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 등의 과학자들이 열대우림 프로젝트를 전수 조사한 결과 대다수의 프로젝트에서 삼림 파괴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3 여기서 발행된 가짜 탄소배출권을 구매한 기업이 상품에 ‘탄소중립’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고객에게 고가로 팔고 있는 셈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고, 결국 유럽의회가 나서서 탄소 상쇄를 금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뿐만이 아니다. 최근 탄소 상쇄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미국에서도 VCM에 대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4

최근 VCM의 급격한 성장과 더불어 그린워싱을 둘러싼 논란 또한 커지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VCM은 거래 규모가 2020년 3억 달러에서 2030년 최대 5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다른 한편, 최근 VCM에서 이뤄지는 프로젝트 중에서 특히 탄소 회피(avoidance)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그린워싱 비판이 거세지면서 VCM 전체로 신뢰성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20여 년 역사를 지닌 글로벌 VCM은 이대로 몰락할지 아니면 대대적인 쇄신을 이뤄낼지, 중요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 탄소 상쇄가 비판받는 이유를 특히 최근 논란이 된 대규모 그린워싱 사례를 바탕으로 살펴보고 그 대안을 찾아보자.


1. 탄소 상쇄에 대한 오해

# 2019년 영국의 항공사 이지젯(Easy Jet)이 탄소 배출 상쇄 계획을 발표하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즉각 공격을 시작하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열 번 양보해 아마존의 산림을 보호하고 후진국에 탄소 배출을 줄인 밥솥(Clean Cookstove)으로 탄소 배출 감축이 일어났다는 걸 (확인은 못하지만) 인정하더라도, 그게 이지젯 비행기의 탄소배출량을 어떻게 감축하는가?”라고 따졌다.5 이지젯은 VCM에서 구입한 탄소감축권을 마치 실질적인 탄소 감축인 것처럼 포장했으며 VCM에서 구매한 탄소감축권마저도 저가로 품질이 낮아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이지젯은 결국 탄소 상쇄를 활용하는 계획을 포기했다.6

탄소 시장은 크게 규제 시장과 ‘자발적’으로 알려진 비규제 시장(VCM)으로 나뉜다. 많은 기업이 자주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VCM에서의 자발적 탄소감축권 구매, 즉 탄소 상쇄 행위를 규제 시장에서 탄소배출권을 획득한 것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발적 탄소감축권의 구매를 통해 자사의 탄소 배출을 감축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언론과 환경단체 등이 기업들이 직접적인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은 하지도 않은 채 탄소 상쇄만으로 보여주기식의 탄소 감축을 추진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VCM에서 거래되는 감축권은 규제 시장처럼 탄소를 배출할 권리, 즉 배출권이 아니라 ‘검증된 탄소 배출 감축의 증명’일 뿐이다.

우선 규제 시장과 VCM에서 탄소 상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규제 시장에서는 탄소 상쇄를 통해 발행된 탄소 감축분은 배출권으로 전환해 사고팔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개발도상국에 적용되는 청정개발체제(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 사업을 통해 온실가스 방출량을 줄인 감축분인 CER(Certified Emission Reduction)과 동유럽 국가에 적용된 공동이행제도(Joint Implementation) 사업에서 나온 탄소 감축분인 ERU(Emission Reduction Unit) 등이 사실은 탄소 감축권이지만 탄소배출권으로 통용된다.

반면 비규제 시장인 VCM에서 거래되는 탄소감축권은 탄소배출권으로 전환되는 제도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VCM에서 거래되는 탄소는 과거 자발적 배출감축권(VER, Voluntary Emission Reduction)으로 불리다 현재는 제3의 기구가 검증한 배출권이라고 해서 검증된 배출감축권(VER, Verified Emission Reduction) 또는 검증된 탄소 유닛(VCU, Verified Carbon Unit)이라고 부른다. VER이 ‘자발적’에서 ‘검증된’으로 바뀐 배경은 VCM 감축권의 75% 이상을 발행하는 베라의 이름이 바뀌어 온 변천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베라의 최초 이름은 ‘자발적’ 탄소 기준(VCS, Voluntary Carbon Standard)이었으며 이후 ‘검증된’ 탄소 기준(VCS, Verified Carbon Standard)으로 바뀌었다가 오늘날의 ‘Verra’가 됐다. VER의 의미가 베라의 이름에서 기원할 정도로 베라가 VCM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상당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VCM에서 규제 시장의 탄소배출권을 얻기 위해서 탄소 상쇄를 거래하지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관점으로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탄소 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예컨대 글로벌 기업, 특히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IT 기업, JP모건,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사 등은 탄소 감축 법적 의무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무실과 데이터 센터 운영, 전기 사용, 항공기 사용 등 사업으로 발생한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발적으로 VCM을 적극 활용한다. 기업뿐 아니라 월드컵, 올림픽, 골프대회, 학술회의 같은 국제 행사와 전시회, 연극 같은 예술 행사도 VCM에서 배출감축권(VCU)을 구매해 배출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런 활동은 의무이기보다는 도덕적인 의도와 홍보 마케팅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VCM에서는 배출 감축 크레디트의 가격, 즉 저렴한 것을 선호하기보다는 배출감축권의 품질과 실질적인 감축 효과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VCM에서 거래되는 탄소 상쇄 프로젝트는 크게 방지/회피(Prevention/Avoidance)와 포집/제거(Sequestration/Removal)의 두 종류로 나뉜다. 방지/회피는 산림 훼손 방지나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통해 추후 발생할 탄소 배출 억제 실적을 인증받아 감축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탄소 배출 감축 효과가 확실치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포집/제거는 대기에서 탄소를 포집해 저장하는 직접 공기 포집(DAC), 발전 과정이나 공장에서 나온 탄소를 지하에 매장하는 탄소 포집과 격리(CCS, Carbon Capture Sequestration), 탄소를 실내 농장에 방사시켜 식물이 탄소를 포집하는 방식 등 대기 중 탄소 농도를 낮춘 실적을 쌓아 획득한 감축권을 말한다. 탄소 감축의 효과는 확실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이번 유럽의회에서 탄소 배출 감축용으로 금지한 상쇄 감축권은 탄소 제거가 아닌 방지/회피 등의 상쇄 유형으로 그린워싱 논란 또한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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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탄소 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

탄소배출권은 탄소 배출의 ‘부정적인 외부성(negative externality)’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제도로 외부성을 상품 가격에 포함시키는 내재화(Internalization of Externalities) 과정에서 배출권을 구매하게 해 기업에 탄소 배출 책임을 물리는 것이다. 예컨대, 석탄 발전을 하는 기업은 지구온난화, 미세먼지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일으킨다. 이는 발전 가격에 직접 포함되지 않은 부정적 외부성으로 기업은 할당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경우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이를 상쇄해야 한다.

유럽 국가 및 한국 등은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운용하면서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 배출권 거래제에 의무적으로 참가하게 하고, 탄소배출권, 즉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팔게 한다. 한국의 경우 기업의 과거 배출량을 기준으로 정부에서 할당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인 할당배출권(Allowance)이 95% 이상이며 태양광발전 등 외부 사업을 통해 감축한 온실가스로 전환할 수 있는 상쇄배출권(Offset)은 5%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한편 유럽은 100% 할당으로 상쇄배출권을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연방 정부 차원의 시장이 없으며 캘리포니아/퀘벡주의 WCI (Western Climate Initiative), 뉴욕, 뉴저지, 버몬트 등 미동부 지역 주들이 사용하는 RGGI(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같이 주 단위로 제조업을 겨냥한 규제 배출권 시장이 형성돼 있다. 중국에도 규제와 비규제 시장이 존재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진다.


2. 탄소 상쇄의 ‘추가성’ 기준 위반

# 2021년 일본 닛케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림 보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의 카팅간 멘타야(Katingan Mentaya) 프로젝트가 흡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보다 최대 3배나 많은 탄소배출권을 발행했으며, 이는 탄소 사기라고 주장했다.7 베라가 검/인증 후 발행했고 폴크스바겐, 다케다제약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20개 이상의 기업이 구매한 이 프로젝트의 탄소배출권은 흡수원인 열대 이탄 지대를 보전하고 개발권을 중단해 벌목을 방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내용의 프로젝트로 60년 동안 연평균 745만 t, 총 4억4000만 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7년부터 3000만 t에 해당하는 자발적 배출권을 발행해 약 2억1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닛케이가 메릴랜드대의 위성 데이터를 사용해 이 지역 산림의 면적 변화를 분석한 결과, 대규모 화재가 발생한 한 해를 제외하고 산림은 연간 약 1%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산림 파괴가 거의 없었는데 사업자는 프로젝트 인근 지역에서 산림 벌채의 위협적인 징후가 있다고 거짓으로 주장한 것이다. 더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6개월 후인 2011년 5월 신규 산림 개발 금지안인 모라토리엄을 도입했다. 서울 면적의 두 배가 넘는 15만 ㏊ 면적 중 개발 가능성, 즉 산림 파괴의 위협은 모라토리엄으로 완전히 제거됐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보호하는 산림이 파괴될 위험이 있다는 명분으로 배출권을 발행해 판매한 사기 사건이라는 게 닛케이의 주장이다.8

인도네시아 카티안 멘타야 프로젝트는 추가성(additionality)이라는 탄소 상쇄의 중요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았더라도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으로 이 산림은 어차피 보호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가짜’ 배출권을 구매한 폴크스바겐 또한 ‘사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규제 시장이든 비규제 시장이든 상쇄를 통한 배출 감축을 인정받으려면 제3자 독립기관의 인증 및 검증을 받아야 한다. 검증 기준으로 측량성(Measurability), 영구성(Permanence), 집행성(Enforceability), 추가성(Additionality)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추가성이 특히 중요하다. 그런데 추가성 성립 여부와 측정은 전문가들이 판단, 수행하기에도 어려워 논란이 된다.

추가성은 탄소 상쇄의 핵심 개념으로 탄소 감축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배출량 감축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 즉 프로젝트가 ‘추가성’을 충족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추가성은 프로젝트에서 생성된 탄소 배출 감축이 실제적이고 의미 있는 것이며, 배출량의 진정한 감소를 나타내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준이다. 추가성이 없는 프로젝트는 배출이 줄어도 실제로는 이미 계획됐거나 프로젝트의 개입 없이도 어차피 일어났을 활동을 실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탄소 상쇄는 프로젝트의 추가성이 존재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예컨대, 유엔 탄소배출권 제도하에서 한국과 베트남에서 돼지 분뇨를 처리해 탄소 배출을 줄이면 베트남 업체에는 탄소배출권이 발행된다. 그런데 한국 업체에는 1t도 발행이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추가성 때문이다. 한국은 환경법에 의해 돼지 분뇨 처리가 의무화돼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선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에 추가성 조건 충족이 안 된다. 같은 이유로 한국처럼 법적으로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나라에서는 산림 조림을 해도 탄소배출권 발행이 안 된다.

탄소배출권 판매 이외에 재정적 이익이 발생되는 사업 또한 배출권 없이도 진행됐을 사업이기에 탄소배출권 발행이 안 된다. 이는 프로젝트의 수익성(IRR, Internal Rate of Return)이 비용(WACC, 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보다 높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자체로 수익성이 높은 사업은 어차피 경제적인 이유로 진행될 사업이므로, 즉 의도적인 탄소 배출 감축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생성하려면 생산원가가 늘어나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권의 또 다른 특성은 생산 과정과 분리될 수 없는 연계 상품(Joint Good)이라는 점이다. 탄소배출권 사업 대부분은 주 사업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사업이다. 비유하자면 소가죽을 얻으려고 소를 도살하지는 않듯이 탄소배출권 수익을 얻기 위해 태양광발전과 같은 프로젝트를 하지는 않는다. 경제성이 있는 주된 사업이 존재해야 탄소배출권 사업이 가능한데 이 사업의 경제성이 떨어져야, 즉 생산원가가 늘어나야 배출권 생성이 가능해지는 구조가 역설적이다. 이는 탄소배출권의 발행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UN CDM, 한국 환경부, 유럽 탄소배출권 제도 등 정부나 국제기구가 관리하는 규제 배출권은 엄격한 규칙과 검/인증 장치가 있지만 자발적 배출 감축의 경우 검/인증 시스템이 규제 시장만큼 엄격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VCM이 성장하면서 프로젝트의 추가성 충족 실패에 대한 비판 또한 늘어나고 있다.

2020년, 블룸버그는 환경 NGO인 TNC(The Nature Conservancy)가 소유한 필라델피아 근처 1200㏊ 산림이 파괴 위험이 있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갑자기 산림 전용 및 황폐화 방지를 통한 배출감축권(REDD, 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 and Degradation)을 발행한 것은 사기라고 보도했다. 이 프로젝트를 좀 쉽게 비유하자면 북한산이나 지리산국립공원의 산림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를 보존하겠다는 명목으로 산림 파괴 방지 탄소배출권을 팔아 그 돈으로 산림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산림은 원래 TNC가 보호하는 곳, 즉 REDD 사업이 없이도 보전될 수 있는 지역으로 추가성 기준을 충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록펠러재단의 글로벌 환경단체인 윈록인터내셔널(Winrock International)이 운영하는 ACR(American Carbon Reserve)이 이 프로젝트의 탄소배출권을 검/인증하고 발행했으며 디즈니, JP모건, 심지어 블랙록까지 여기서 생성된 배출권을 구매했다.9


3. VCM 검/인증 시스템의 허술함

유명 발행 기구와 글로벌 대기업들이 참여한 대형 탄소 상쇄 프로젝트가 사기에 가깝다는 글로벌 언론과 환경단체들의 비판은 VCM 시장 전반의 신뢰성을 위협하는 큰 충격을 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선 VCM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발적 배출권 발행 업체와 단체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시장이 과열된 탓이 크다. 현재 VCM에서 베라의 시장점유율은 75% 이상이고, 골드스탠더드(GS)가 15% 정도로 두 회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미국에 American Carbon Registry(ACR), Climate Action Reserve(CAR), (국제적인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중국의 탄소 시장(China Carbon Market), 중동의 글로벌 탄소위원회(GCC, Global Carbon Council), 태국의 FTIX 등 전 세계적으로 수십 개의 자발적 배출권 발행 업체와 단체가 난립하고 있다. 일본 또한 2023년 4월 정부와 기업, 대학, 학계가 협력하는 포럼인 GX리그(Green Transformation League)를 만들어 자발적 탄소배출권 거래제 시스템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대한상공회의소가 탄소감축인증센터를 발족하고 국내에 VCM을 활성화하려는 것도 이런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각국의 VCM 업체별로 지배 구조와 방법론 등이 제각각이고 이들을 통일하는 규율 체계가 없다 보니 부실한 배출감축권을 발행해 거래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특히 추가성 기준의 측정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발행 기구가 기후금융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채로 발행 수수료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부실한 감축권을 우후죽순 찍어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구매자들 역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따져보지 않으면 부실한 프로젝트에 투자하게 될 리스크를 지게 됐다. 국제민간항공기구인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Carbon Offsetting and Reduction Scheme for International Aviation)는 처음에는 VERRA, GS, ACR, CAR 등 미국의 탄소감축권 발행 기구만 인정했는데 바로 중국과 중동이 자국의 제도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받아들였다.

현재 VCM에서 베라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것은 지배구조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베라는 국제적 비영리 기구인 클라이밋그룹(Climate Group)10 ,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orld Business Council for Sustainable Development, WBCSD), 국제배출권협회(International Emissions Trading Association) 등 쟁쟁한 국제단체와 기업 연합, NGO가 공동으로 창립해 운영하는 기구이다. 이사회 등도 어느 특정 단체에 이해관계가 쏠리지 않도록 서로 견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기업을 대표하는 단체인 WBCSD는 베라가 기업의 영향력에 예속될 수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재정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않은 채 컨설팅만 했다.

이처럼 훌륭한 지배구조와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베라마저 가디언 등의 비판을 받으면서 공신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는 그만큼 VCM의 제대로 된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방증한다. 베라 내부에서는 과도한 업무 부담, 직원들의 전문성 하락, 하청 검인증 기구(VVB, Validation Verification Body)에 대한 관리 부실 등을 최근 사태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방법론 개정과 전면적인 조직 개편 등의 대대적인 쇄신을 준비하고 있다. 베라의 지배구조, 운영 방식, 앞으로의 쇄신 방향은 대한상의 등 국내에서 VCM을 활성화하려는 기업이나 단체들이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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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VCM의 쇄신: 탄소 회피에서 제거로

유엔의 탄소 정책 감독 기관인 GFANZ (Glasgow Financial Alliance for Net Zero)는 모든 기업은 기술, 정책, 신규 설비 등으로 최대한의 탄소 감축을 이룬 다음 마지막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에만 탄소감축권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유럽과 미국은 VCM의 감축권을 활용한 손쉬운 탄소 감축을 금지시키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물론, 넷제로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직접적인 감축 노력뿐 아니라 VCM을 활용한 탄소감축권 거래가 불가피하다. 이에 기업은 탄소 배출 감축 정책에 최우선을 두는 한편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고품질의 배출감축권인 탄소제거권(CDR, Carbon Dioxide Removal)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는 대다수의 탄소감축권 크레디트가 회피 프로젝트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앞으로 VCM에서 CDR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 감축에 사활을 걸고 있는 MAGA(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구글, 애플)는 REDD 등의 탄소 회피 프로젝트에서 발행된 회피 크레디트를 금지하는 대신 효과가 확실한 탄소제거권(CDR, Carbon Dioxide Removal)에 올인하고 있다. 애플은 2021년 CDR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2억 달러 규모의 기후복원펀드(Restore Fund)를 조성했으며 2023년 2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애플은 CDR을 활용한 고품질의 탄소 제거로 피하거나 줄일 수 없는 직접 배출을 상쇄함으로써 2030년 넷제로 달성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맥킨지와 구글, 메타 등은 2022년 10억 달러 규모의 프런티어펀드(Frontier Fund)를 조성해 CDR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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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R로 분류되는 바이오차(Biochar), 직접공기포집(DAC) 등은 탄소 감축의 효과가 확실하며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바이오차는 바이오매스를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 공급을 중단하고 에너지를 가하는 열분해(Pyrolysis) 방식으로 생성한 물질로 지하에 탄소를 매장하는 효과가 있다. 스위스의 DAC 스타트업 클라임웍스(Climeworks)는 아이슬란드에 설치된 세계 최대 DAC 플랜트 ‘오르카(Orca)’에서 탄소를 제거해 MS, 쇼피파이 등에 CDR을 공급했다. CORSIA와 별도로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은 탄소제거권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대한항공을 포함한 대부분 대형 항공사는 탄소 감축이 확실한 친환경 항공유인 SAF(Sustainable Aviation Fuel) 사용으로 실질적인 탄소 배출 감축을 준비하고 있다. 아부다비 글로벌 마켓(ADGM)의 규제를 받는 자발적 탄소감축권 플랫폼인 Air Carbon Exchange(ACX)에 따르면 탄소 제거 크레디트인 CCC의 가격은 91.66달러로 국제민간항공기구 인증 탄소인 CORSIA CET의 가격(1.75달러)의 52배에 달한다(2023년 5월 5일 기준).

VCM은 현재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놓여 있으며 그에 필요한 진통을 겪고 있다. 구찌는 2019년 베라의 열대우림 프로젝트에서 나온 탄소감축권을 활용해 “완전히 탄소중립을 이뤘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최근 그린워싱 논란으로 비판을 받자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해당 주장을 삭제했다. 그리고 그동안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업했던 스위스 탄소감축권 개발 및 생성 업체인 사우스 폴(South Pole)과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업의 ‘탄소중립’ 관련된 마케팅에 대한 검증과 규제 또한 점점 강화되고 있다. 영국 광고표준청(ASA, 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은 올해 말부터 기업이 탄소 상쇄를 활용해 제품이 ‘탄소중립적’ ‘넷제로’라고 주장하는 광고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11 VCM을 이용해 기업이 제품의 환경 영향에 대해 소비자를 오도한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에 기업이 자사 제품의 환경적 효과를 실질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부담 또한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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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자발적 탄소감축권을 거래하고 마케팅 등에 활용하기 이전에 그것이 발행되는 과정, 특히 측정, 보고, 검증(Measuring, Reporting, Verification)의 과정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예컨대 추가성의 기준을 갖추고 있는지를 발행 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직접 관심을 갖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애플은 기후복원펀드가 투자한 프로젝트의 영향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측정하기 위해 테크 기업과 협력해 여러 가지 최신 원격 감지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아이폰에 적용된 라이다 스캐너 기술을 활용해 모니터링 역량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MS는 2021년부터 매년 탄소 제거 프로젝트로부터 얻은 교훈을 정리한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연간 구매한 CDR의 리스트를 감축 효과의 지속성(durability)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해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들 기업은 넷제로의 목표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협력업체에도 동참을 요구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글로벌 트렌드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후 넷제로 목표 달성을 이루는 데 자발적 탄소감축권이 필요한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명확하게 따져봐야 한다.


DBR mini box II: VCM 생태계 주도 ‘베라’의 위기

탄소감축권 발행 기준 논란… “방법론 개선할 것”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베라(Verra)는 2007년 클라이밋그룹(Climate Group),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세계지속가능발전 기업협의회(World Business Council for Sustainable Development, WBCSD), 국제배출권협회(International Emissions Trading Association) 등의 국제단체가 기후 위기 대응 및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국가, 기업, 시민사회 등이 적용할 수 있는 기준과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 기관이다.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VCM)에서 발행되는 탄소감축권의 75% 이상이 베라에서 발행될 정도로 VCM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베라가 운영하는 ‘검증된 탄소 기준((Verified Carbon Standard, VCS)’은 국가, 기업 등의 온실가스 감축 및 흡수 프로젝트의 실적을 검증해 탄소 감축 인증 크레디트(VCU)를 발행하는 프로그램으로 VCM에서 표준적인 기준으로 통한다. 2021년 말 기준 1775건의 프로젝트를 등록했으며 누적 기준 8억3500만 tCO2 규모의 크레디트를 발행했다. VCS가 발행한 검증된 탄소 유닛(VCU)은 국제 항공 탄소 상쇄 및 감축 제도(CORSIA) 및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콜롬비아의 국가 규제 시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베라가 최근 그린워싱 이슈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대대적인 쇄신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과 독일의 주간지 디차이트(Die Zeit)는 학계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베라가 인증한 산림 전용 및 황폐화 방지를 통한 배출 감축(REDD) 프로젝트로 발행된 탄소감축권이 과대하게 계산됐다고 비판했다. REDD는 베라가 발행하는 탄소 감축 인증 크레디트(VCU)의 30% 이상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젝트로 이에 대한 비판은 베라뿐 아니라 베라의 크레디트를 거래한 기업 등 VCM 전체의 신뢰를 위협했다. 이에 대해 베라는 근거가 된 연구 결과의 결함을 지적하며 비판에 반박하면서도 새로운 REDD 방법론을 발표하는 등 대대적인 쇄신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베라의 창립 멤버이자 지난 15년간 CEO로 베라와 VCM의 성장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안토니올리가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CEO 교체를 시작으로 앞으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 등의 쇄신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베라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안젤로 사르토리 이해관계자 관여 부문 디렉터는 DBR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베라는 그동안 산림 벌채를 방지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인 탄소배출 감축에 기여해왔다”며 “앞으로도 과학자들의 최신 연구 결과를 근거로 면밀한 검토와 공개적인 자문을 바탕으로 기준과 방법론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VCM의 표준으로 통했던 베라가 개혁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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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베라 홈페이지
  • 백광열 | 연세대 경제대학원 기후금융 겸임교수

    필자는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경제학을, 맥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재무부 장관 수석 경제 고문과 총리 수석 정책 고문을 역임했다. JP모건이 인수한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기업인 에코시큐러티즈(EcoSecurities)에서 기후금융 수석 전략 고문을 맡아 탄소배출권 정책을 분석, 예측하고 상품을 개발했다. MIT-연세대 기후변화와 경제 프로젝트 공동 대표와 연세대 기후금융연구원장을 맡았다. 인도네시아 폐목 발전, 태국 조림, 캐나다 삼림 파괴 방지 등 여러 유엔배출권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했으며 현재 글로벌 IT 기업들의 탄소 정책을 자문하고 있다. 연세대 경제대학원 기후금융 겸임교수, 국제기후채권기구(Climate Bonds Initiative)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kwangyul.pec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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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미정 배미정 |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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