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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금쪽이

통보하는 자도, 받는 자도 괴로운 권고사직
"막막한 상황, 어찌해야 할까요?"

정리=이규열 | 364호 (2023년 03월 Issue 1)
첫 번째 질문

어제 사무실에서 짐을 전부 뺐습니다. 옆 팀 사람들은 다들 분주히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저희 팀 사람들만 부산스럽게 짐을 정리했죠. 경기가 어렵다, 회사가 어렵다…. 늘 듣던 말이지만 내 일처럼 와닿지 않았습니다. 팀원 전부가 권고사직을 제안받기 전까지 말입니다.

3일 전 갑자기 팀장이 팀원 개개인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평가 시즌도 아니었던 터라 다들 무슨 일인지 의아했습니다. 처음 면담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한 동료가 손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다독이며 무슨 일인지 묻자 팀이 해체될 예정이며 현재 팀원 전부 권고사직 대상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인사팀과 함께하는 다음 면담에서 권고사직을 받아들일지, 그렇다면 어떤 조건으로 회사를 떠날지 등을 논의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저 역시 권고사직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부서를 옮겨달라 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에 대한 신뢰와 애정 모두 바닥난 상태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콘텐츠가 최우선이라며 사람을 대대적으로 뽑을 때는 언제고 1년 만에 팀 전체를 날리겠다니. 속는 셈 치고 이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그간의 커리어는 물거품이 되겠죠. 받을 수 있는 건 전부 받아내는 조건으로 회사를 떠날 생각입니다.

슬프기보다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3년 전 신설된 팀으로 회사의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조직도 커지고 성과도 많아졌던 터였습니다. 그간의 노력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누구보다 열심히 발로 뛰었고, 저희 팀보다 열심히 하지 않고 성과도 못 내는 팀도 많은 것 같은데 왜 하필 우리 팀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팀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모두가 억울하다고 하지만 회사에 남겠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연스레 떠나겠다는 이들과 남겠다는 이들 사이에 묘한 경계 기류가 형성됐습니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스스럼없이 지내던 다른 팀 팀원들도 저희 팀의 눈치를 보는 듯합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애써 눈을 피하거나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더군요. 저 역시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없는데 말이죠. 회사를 떠나겠다고 결심했지만 남은 기간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회사를 나간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두 번째 질문

내 손으로 뽑은 팀원들에게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내 입으로 고하라고 합니다. 그게 절차라고 하네요. 가까웠던 팀원들과 돌이킬 수 없게 멀어지는 것도 한순간이더군요. 어려운 때라 신사업부터 축소하겠다고, 윗선에서 결정했다면서 우리 팀을 반 토막 냈습니다. 누구 하나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누구는 남고, 누구는 떠나야 한다니…. 우리 팀보다 실적이 나쁜 팀도 있었지만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 아래 권고사직 대상에서 제외된 팀도 있다고 하네요. ‘내가 좀 더 힘이 있었다면 팀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도 밀려옵니다.

보내야 하는 팀원들이 상처 입지 않도록 최대한 세심히 보듬어주고 싶지만 어떤 말을 해도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남은 팀원들도 계속 불안해합니다. 한 팀원은 회사의 지원이 줄어들면 팀의 성과도 줄어들 것이고, 당장 경기가 좋아지지도 않을 텐데 다음 권고사직 차례는 자신들이 되는 것 아니냐며 토로하더군요. 권고사직 대상에서 빠졌던 팀원 몇 명이 다른 회사 면접을 봤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이번 일을 함께 진행하는 인사팀 동기도 심적으로, 또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보이더군요. 권고사직 대상자들과 면담 중 "언젠가는 똑같이 토사구팽당하게 될 것이다" 라는 등 험한 소리도 많이 들었나 봅니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인사팀으로 입사하지 않았을 거라고까지 하더군요. 저 역시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앞으로 이 팀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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