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1. MZ세대가 원하는 ‘로컬 여행’의 조건

인증샷 여행이 아닌 새로운 일상 경험
‘해녀의 부엌’처럼 가장 로컬답게 다가가라

남민정 | 332호 (2021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MZ세대에게 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의 연장이다. 이들은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기보다는 여행지에서 먹고 자고 취미를 즐기며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자 한다. MZ세대가 원하는 이러한 로컬 여행은 로컬리티, 커뮤니티, 그리고 지역의 지속가능성의 융합을 통해 그 요체를 형성한다. 해녀들의 삶과 애환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제주 ‘해녀의 부엌’과 쇠락해가는 항구 도시를 인기 여행지로 부상시킨 일본 오노미치의 U2 프로젝트는 이 세 요소에 충실함으로써 MZ세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딘앤델루카의 몰락이 의미하는 것

필자가 미국 뉴욕에서 유학하던 2000년대 초, 딘앤델루카(Dean & Deluca)는 가장 인기 있는 식료품 매장이었다. F&B 산업과 관련 있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성지 같은 곳으로 늘 손님이 북적였다. 채소, 과일, 치즈, 소스 등 온갖 구르메 식재료가 모여 있고 각종 식기와 주방용품도 살 수 있어 구경하는 재미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이곳이 2019년 파산을 신청했다. 발 디딜 틈 없던 뉴욕 백화점들이 적자로 돌아서며 고전을 면치 못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031


온라인 채널이 성장하면서 2018년을 기점으로 백화점,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종합 유통 소매 매장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목받는 오프라인 리테일 매장이 없는 건 아니다. 올봄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더 현대 서울(이하 더현대)’이 그 예다. 더 현대는 개장과 동시에 화제의 중심에 서며 오픈 10일간 누적 매출 2500억 원, 주말 기준 평균 방문객 수 8만∼9만 명을 기록했다.1

소비를 주도하는 주요 계층이 MZ세대로 변화하면서 이들의 니즈와 소비 행태를 수렴했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린다.

2017년 글로벌 기업 네슬레가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끝에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커피를 인수한 것도 MZ세대를 이해하려는 목적에서였다. 네스카페 등을 운영하는 네슬레는 커피 시장의 오랜 강자였지만 부모 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MZ세대의 커피 소비를 깊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네슬레는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블루보틀커피를 인수함으로써 변화를 꾀했다. 블루보틀을 품에 안은 이후에도 네슬레는 마트 등에서 파는 스타벅스의 커피 제품 유통 판권을 인수하는 등 젊은 연령대의 소비자를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2

여행은 일상과 취미 활동의 연장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유명한 역사 유적지? 호텔? 골목길? 요 몇 년간 필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여행 사진은 대부분 음식 사진이다. 20년 전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 사진은 팔 할이 유명 관광지였다. 그 시절엔 관광버스를 타고 유람을 떠나는 어르신도, ‘2주 안에 5개국 뽀개기’ 배낭여행에 나섰던 20대도 관광지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나는 부석사, 에펠탑을 한번 보고 왔다’를 모두가 중요하게 여겼던 시기다.

관광 동기는 관광지의 매력에 이끌려 여행을 떠나게 되는 유인 동기(Pull motivation)와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해 떠나는 추진 동기(Push motivation)로 나뉜다. 과거엔 ‘다시없는 기회인데 부석사, 에펠탑을 반드시 보고 말겠어’ 식의 유인 동기가 강했다. 그러나 여가 사회로 돌입하며 여행이 일상화되면서 ‘거주지에서 벗어나는’ 데 방점을 둔 추진 동기에 의한 여행이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이를 주도하는 이들은 MZ세대다.

032


요즘 MZ세대의 여행은 사뭇 다르다. 로컬의 숨은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동네 서점을 둘러보는 게 이들에겐 진짜 여행이다. 유명 관광지 방문은 그저 ‘서브 메뉴’일 뿐이다. 얼마 전 방영된 코카콜라 광고에는 콜라를 마시며 서울 을지로, 강원 양양의 죽도해변, 부산 해운대 등을 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대단한 관광자원이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장소에서 일상적인 음료(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광고는 ‘MZ세대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들에게 여행이란 일생에 한 번뿐인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일상의 일부다.

032_2

[그림 1]은 언뜻 코로나19 시대의 소비 현상을 정리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진행된 설문 조사 결과다. 재택형 소비와 문화 여행, 외식 등 ‘취향 중심’ 소비는 20대에서 특히 높게 나타났다. 즉, 코로나19 시국에 나타난 현재의 소비 패턴은 그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MZ세대의 니즈다. 코로나19는 이를 더욱 빠르게 확대시킨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한국관광공사가 2019∼2021년 관광 빅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한 코로나19 시대의 세대별 국내 여행 행태 조사는 MZ세대와 기성세대 간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 2) MZ세대는 맛집, 카페 등 일상 경험을 선호하는 반면 기성세대는 유명 관광지나 산, 섬 등 자연친화적 장소를 선호한다. 2020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서 한국인이 희망하는 국내 여행 유형은 자연경관-휴양 휴식의 숙박 시설-맛집 탐방 순으로 집계됐는데(표 1), 20대로 한정해서 보면 ‘휴양 휴식의 숙박 시설’(35%)에 대한 선호가 가장 높고 역사 유적지 방문(1.8%)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낮다. 또 ‘체험 활동 위주’는 연령과 반비례하는 것으로 집계돼 여행에서의 체험 추구는 MZ세대에게 두드러진 니즈임을 알 수 있다.

033

선호 여행지 순위에서도 세대별 차이가 확연하다. 20대는 제주, 강원, 부산, 서울을 선호하며 그 외 지역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30대는 제주, 강원, 전남, 서울을 선호한다. 반면 40대 이상에게 서울은 여행지로 별 인기가 없다. 이 중 20대의 선호 관광지는 위에서 언급한 코카콜라 광고의 배경과 일치한다. 특히 부산과 서울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 세대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제주, 강원, 부산은 비교적 외식 문화가 발달해 있고 해안을 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자연과 문화역사 중심의 여행지이기보다는 취향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034


로컬 경험의 3대 매개체

강원 양양의 해변에 가면 서핑을 즐기는 MZ세대로 북적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양양은 인기 여행지가 아니었다. 강릉과 속초 사이에 낀 작은 동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MZ세대 사이에서 서핑 붐이 일면서 이들 세대가 좋아하는 대표 여행지가 됐다.

양양을 인기 여행지로 부상시킨 주역은 서핑 전용 해변 ‘서피비치’이다. 서피비치 덕에 2014년 4만 명 수준이던 국내 서핑 인구는 50만 명으로 증가했고(2020년 기준), 서피비치를 찾는 여행자는 연간 80만 명에 달한다. 그 덕분에 양양은 16년 만에 인구가 증가하는 기현상을 겪고 있다. 3

035

MZ세대는 왜 서피비치에 모일까? 국내 여느 해변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까만 서핑복을 입은 서퍼들과 수영복 차림의 여행자들이 햄버거를 먹고 맥주를 마신다. 캐노피, 빈백, 해먹 등이 비치된 휴식 공간과 햄버거 가게, 수제맥주 펍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전에 없던 새로운 모습의 서피비치에 MZ세대는 열광했고, 예전엔 낯설던 서핑이 국내에서도 일상적인 여가 활동으로 자리 잡게 됐다. 서핑이 일반적인 여가 활동이 되자 서피비치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는 선순환도 만들어졌다. 이 비치를 조성한 박준규 양양서피비치 대표는 “MZ세대 여행자가 로컬(지역)에 기대하는 것을 제공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서피비치는 MZ세대가 여행에서 원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성공한 대표 사례다.

MZ세대가 여행에서 원하는 경험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이들에게 여행은 로컬에서의 새로운 일상 경험이고, 일상이란 문화 유적지가 아닌 먹고 자고 취미 활동을 즐기는 것이다. 따라서 먹고 자기 위한 인프라가 조성되지 않아 안락하게 일상을 즐길 수 없는 곳은 MZ세대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요즘 유행하는 ‘○○에서 한 달 살기’의 대상이 되려면 우선 일상에 필요한 인프라를 잘 갖춰야 한다. 새로움을 경험하러 가는 게 여행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을 포기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MZ세대는 무엇을 통해 로컬을 경험하고자 할까? 필자는 로컬 경험의 주요 매개체로 세 가지를 꼽는다. 1) 지역 관광의 핵심이 되는 로컬리티(locality) 2) 지역민과 여행자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커뮤니티 3) 지역의 지속가능성이다. 이 세 매개체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며 로컬 경험의 요체를 구성한다.

1. 로컬 여행 경험의 핵심, 로컬리티:
부산 영도에선 조선업을, 제주에선 해녀의 삶을 체험

로컬리티는 말 그대로 지역성을 의미하며 그 자체가 로컬 여행 경험의 핵심이다. 『로컬의 진화』4 에 따르면 로컬은 ‘대도시 집중보다 분산성, 과거의 가치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 지역의 능동적 삶을 위한 자립성’이란 의미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로컬은 ‘단순히 관광지나 휴양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거주지, 일터, 삶의 공간’이라는 비전을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로컬리티를 경험하는 매개체는 크게 두 가지, 하드웨어적 측면의 로컬 공간과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로컬 콘텐츠로 나뉜다.

우선 하드웨어적 측면의 로컬 공간의 성공 사례로 올 5월 오픈한 부산 영도의 ‘피아크’를 들 수 있다. 영도는 부산 최초의 개항지로 쇠락해가는 조선 공업 지역이었다. 피아크는 이곳의 폐공장 부지에 들어선 연면적 9900㎡(약 3000평) 규모의 대형 복합 문화 공간이다. 지역의 역사를 살려 대형 크루즈 선박을 공간의 모티브로 삼았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중심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과 야외 가든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탁 트인 대형 유리창 너머로 부산 바다가 펼쳐진다. ‘가장 영도스러운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영도만의 로컬리티를 제대로 살려낸 피아크에는 매일 3000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

036_1


피아크처럼 해당 지역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온전히 로컬 콘텐츠로 채운다면 여행자는 더욱 강렬하게 로컬리티를 경험할 수 있다. 제주 ‘해녀의 부엌’이 그 예다.

해녀의 부엌은 해녀라는 주제를 연극과 식사를 통해 다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액티비티 여행 상품이다. 해녀 집안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서른 살 김하원 대표가 쇠퇴해가는 해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 실제 현업에 종사하는 해녀들이 연극에 출연하고 식사를 준비한다. 관객은 연극을 통해 제주 해녀의 삶을 이해하고 뿔소라, 톳 등 각종 제주 토속 해산물로 만든 음식을 맛보며 해녀 문화를 오감으로 느낀다. 연극 및 식사가 진행되는 공간은 과거 활선어 위판장 창고였다. 버려진 창고를 재생했기에 로컬리티를 제대로 구현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가치 또한 갖고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036_2

제주의 로컬 문화를 뼛속 깊이 이해하는 MZ세대가 기획한 이 여행 상품에 대한 MZ세대의 반응은 뜨겁다. 지금까지 4만여 명이 관람했고, 체험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의 후기가 4.9점(5점 만점)에 달한다. ‘MZ세대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에도 너무 좋은 경험’이라는 후기도 자주 보인다. 해녀의 부엌은 참여 해녀들에게 2019년 기준 총 1억 원의 인건비를 지급했고, 제주 뿔소라에 킬로당 최저가 보장제도를 구축하기도 했다. 관광 상품을 통해 지역민(해녀) 경제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5

2. 지역민과 여행자를 연결하는 커뮤니티:
호텔은 자는 곳? ‘교류의 장’ 될 수 있어

‘지역사회’라는 의미를 가진 커뮤니티는 오늘날 취향 집단, 소비 집단 등 다양한 의미로 확장됐다. 커뮤니티 기반 소비는 기성세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MZ세대에 의해 새롭게 부상한 유형의 소비다. 기성세대는 학연, 지연, 혈연 중심으로 관계를 맺지만 MZ세대는 관심사나 취향 기반의 ‘느슨한 관계’를 지향한다.

여행 산업에서 대표적인 커뮤니티로는 ‘커뮤니티 호텔’을 꼽을 수 있다. 커뮤니티 호텔은 로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로컬 안에서 지역민과 여행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커뮤니티 호텔 자체가 이러한 커뮤니티의 기반이 되는 공간일 수 있고, 호텔이 단지 연결자 역할만 할 수도 있다.

커뮤니티 호텔의 개념을 정립하고 확산시킨 주역은 1999년 미국 시애틀에 등장한 에이스호텔(ACE Hotel)이다. 호텔이란 원래 타지에서 온 여행자가 숙박을 해결하는 곳이다. 에이스호텔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버렸다. 이 호텔은 로비를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투숙객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개방된 소셜 공간으로 조성했다. 호텔에 투숙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호텔 로비의 커다란 테이블과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또한 호텔 곳곳에 로컬 예술가와 장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호텔을 지역 내 크리에이터들의 작업 및 사교 공간으로 활짝 개방했다. 로컬을 밀착해 경험하고 싶은 MZ세대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싶어 하는 크리에이터들을 모두 수용함으로써 에이스호텔은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 6

037


이러한 흐름은 미국을 넘어 유럽, 일본, 한국 등으로 확대되며 세계적 추세가 됐다. 국내에선 제주도의 플레이스캠프가 커뮤니티 호텔을 지향한다. 총 6개 건물에는 여러 개의 식당, 카페, 편집숍이 다채롭게 구성돼 있다.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에서는 맥주를 마시거나 영화, 재즈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이벤트와 지역 상인과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는 마켓이 열린다.7 ‘Not Just a Hotel’이라는 슬로건처럼 이 호텔의 공간은 제주도민, 여행자, 투숙객이 함께 즐기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에이스호텔과 플레이스캠프가 ‘결집형’ 커뮤니티 호텔이라면 여행자를 로컬의 공간 및 지역민과 매개해주는 역할을 추구하는 ‘분산형’ 커뮤니티 호텔도 있다. 일본 아사쿠사에 위치한 와이어드호텔에 가면 로비 벽면에 ‘원 마일 가이드 북(1 mile guide book)’이라는 엽서가 다수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텔 근방의 식당과 상점을 소개하는 로컬 안내서다. 또한 호텔에서 사용하는 어매니티 등 각종 제품을 로컬에서 생산된 것들로 채우고 또 호텔 내에서 판매도 한다. 로컬의 일상 체험을 원하는 MZ세대 여행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관심 기반 모임도 여행에서 활발한 역할을 한다. 요가 여행, 자전거 여행, 카페 투어 등 목적과 취향을 공유하는 모임 자체가 여행 커뮤니티가 되고 있다. 심지어 ‘남의 집’ 여행을 즐겨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집으로 여행을 갑니다”라는 모토를 내세운 스타트업 ‘남의 집’은 소규모 인원이 호스트의 집을 방문해 취향을 공유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여행 서비스 플랫폼이다. 요리, 독서, 음악 등 특정 취향을 기반으로 남의 집으로 떠나는 커뮤니티 기반의 ‘작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3. 지속가능성의 가치 추구 :
도시 재생 통해 ‘신선한 낡음’ 체험

지속가능성 역시 기성세대보다 MZ세대에게 유난히 중요한 가치관이다. 지속가능성은 작게는 나 자신의 건강한 삶을, 나아가서는 문화와 사회, 지구환경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호시노야는 일본의 고급 숙박 시설인 료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리조트 기업으로 유명하다. 쇠퇴해가는 료칸 전통문화를 계승한 100년 기업이라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지니며 온천, 가이세키, 다도, 명상 클래스 등 웰빙 콘텐츠를 다양하게 보유해 MZ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몇 해 전 개관한 도쿄 지점은 도시 한복판의 빌딩 숲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시형 료칸’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제공한다. 신발을 벗고 다다미 마루에 올라가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 빌딩 최상층의 뻥 뚫린 천장을 통해 도쿄 하늘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

039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MZ세대는 재생에도 큰 가치를 둔다. 부산의 폐와이어 공장을 재생한 복합 문화 공간 F1963, 성수동의 공장 부지를 재생한 성수연방, 속초의 폐조선소를 재생한 칠성조선소, 남산의 오래된 제약회사 사옥을 재생한 피크닉은 다른 세대보다도 단연 MZ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기성세대에겐 그저 낡은 건물인 이들 공간에서 MZ세대는 역사를 느끼고 늘 다니는 현대적 건물에는 없는 ‘신선한 낡음’을 즐긴다.

로컬 여행의 정수,
일본 오모미치 U2 프로젝트

로컬리티, 커뮤니티, 지속가능성의 세 매개체를 바탕으로 MZ세대를 위한 경험 콘텐츠가 제대로 구현됐을 때, 로컬 기반의 지속가능한 여행이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이 세 요인이 모두 적용돼 시너지를 내는 사례로는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의 U2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에도시대 일본의 주요 기항지였던 오노미치는 항구의 수심이 낮아 대형화되는 선박을 수용할 수 없어 항구로서의 역할이 쪼그라들었다. 소도시 오노미치도 항구와 운명을 함께하며 쇠락해갔다. 고령화 및 인구 감소로 빈집이 늘며 도시의 기능을 상실해가자 오노미치시는 2008년부터 도시 재생 사업 U2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는 2700㎡ 규모의 폐해운창고를 복합 문화 시설로 개발하는 것이 골자로, 복합 문화 시설 내에 자전거 테마 호텔,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는 레스토랑, 다양한 로컬 상점 등을 입점시켰다. U2는 ‘2호 창고’를 의미한다. 1943년에 지어 2000년 사용이 완료된 니시고쇼 창고를 재생해 시즌2를 시작했다는 의미다.

040


오노미치는 주변의 섬들과 자전거 도로로 연결돼 있고, 도시 곳곳에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돼 있는 등 지역 전체가 자전거 친화적으로 기획된 도시다. CNN의 세계 7대 자전거 코스로도 선정된 바 있다. 자전거 여행을 하러 오노미치를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세계적 디자이너 폴 스미스도 있다. 이런 배경에서 U2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전거 테마 호텔인 사이클호텔(Cycle hotel)을 만들었다.

사이클호텔은 자전거를 가지고 체크인할 수 있는,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맞춤형 호텔이다. 투숙객은 자신의 자전거를 가지고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된 객실로 입실한다. 또 U2 복합 문화 시설 내에 글로벌 자전거 브랜드 자이언트(GIANT)가 입점해 있어 자전거 판매는 물론 유지 관리 렌털 서비스를 제공한다.

U2의 자전거 중심 설계는 자전거 도시 오노미치의 로컬리티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오노미치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자전거 여행의 성지로 등극했다. U2는 자연스레 자전거 여행자들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게 됐다. U2는 오노미치 일대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제사이클대회의 거점으로도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노미치 인근 지역은 과거 상업 시설이 미비하던 지역이었으나 유동 인구가 증가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오노미치의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18년 기준 33만 명으로, 2008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다. U2의 주요 수익원은 사이클호텔로, 이 호텔은 투자금 회수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디지털 디톡스로서의 여행

여행의 미래는 MZ세대의 니즈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만족시키느냐에 달렸다. 기술의 발달, 그리고 전례 없는 장기간의 전염병 사태로 모든 소비가 온라인으로 옮겨간 것처럼 여겨지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대표적인 오프라인 경험 소비인 여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행에 대한 갈증이 매우 높은 요즘이다. 팬데믹 시대의 여행은 그 반경을 축소하고 수단을 바꿔 이뤄지고 있다. 랜선 여행이나 메타버스 여행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온라인 여행은 코로나 이후 펼쳐질 진짜 여행을 위한 홍보 콘텐츠이거나 준비 수단일 뿐이다. 여행의 본질적 니즈를 해소하긴 어렵다.

여행은 오히려 생활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고 있다. 원격 근무의 증가로 ‘사는 곳’의 범주가 자유로워지자 주거조차 구독 서비스로 이용하며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디지털 노마드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한 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에게 ‘디지털 디톡스’ 차원에서라도 오프라인 소비 활동은 일상생활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그 핵심을 여행이 차지할 것이다.


남민정 인사이트플랫폼 대표 mjnam@insightplatform.co.kr
필자는 뉴욕대(New York University)에서 식품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CJ프레시웨이에서 전략 업무를 담당했다. 한양대에서 관광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부산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현재는 F&B 및 관광 특화 교육/컨설팅 기업인 인사이트플랫폼 대표이며,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식, 관광 관련 공공기관과 학회에서 자문 및 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도 있다. 주요 연구 및 강연 분야는 F&B 소비심리, 마케팅, 트렌드, 관광 소비행동 등이다.


참고문헌
1. 한 달에 한 번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면, 정희선, PUBLY, 2020
2. 마켓 5.0, 필립코틀러, 더퀘스트, 2021
3. Post-코로나19에 따른 국내여행 조사 보고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0년 6월
4. 2019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해외답사: 오노미치, 소도시의 창조적 생존전략, 정예은, 문화콘텐츠연구 제15호(2019)
5. 국토계획지역연구본부 국외출장 결과보고서, 박세훈 이수암, 국토연구원, 2018
6. 해녀의 부엌 홈페이지 http://haenyeokitchen.com/index
7. 부캐가 되는 여행, 커뮤니티 호텔, Dosearcher, 브런치, 2021년 1월
8. ‘한 사람이 67번 재방문한 호텔의 비밀은? 플레이스캠프 제주 편’, CHECIN, PUBLY, 2021
9. ‘경기 침체 위기감이 소비행태에 미치는 영향’, 오픈서베이, 2019년 12월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