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Case Study: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
Article at a Glance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우등생’으로 꼽혔던 도시바에서 7년간 2248억 엔의 회계부정이 일어난 사건이 발각됐다. 투자자와 해외 기업들은 ‘일본에 과연 시장경제가 존재하는가’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형 사건이지만 도시바의 경영진은 물론 이를 지도하고 감독해야 할 국가 기관마저 지지부진하게 대응하다 최근에서야 제재를 가하고 나섰다. 도시바 사태는 개인이나 일부 이익집단의 문제가 아닌 조직 전체가 장기간 암묵적으로 ‘협력’해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의 첫 번째 주범은 경영자들의 이익지상주의다. 사장 퇴임 이후에도 회장, 고문 등으로 남아 실세를 유지하다보니 ‘자기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임기 기간의 부정을 서로 밀어주고 분칠해주기 바빴다. 또 정경유착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은 과연 시장경제인가?
도시바가 7년간 2248억 엔의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건이 발각됐다. 기업지배구조 우등생인 도시바가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원년’에 먹칠한 셈이 됐다. 아베 정권은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기업가치의 지속적 향상을 위한 자율적 대응’을 위해 ‘코퍼레이트 거버넌스 코드’를 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5년 6월부터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에 대해 이를 실천하도록 의무화했다. 140년의 찬란한 역사와 더불어 재계 리더의 산실인 일본의 대표 기업 도시바의 회계부정 사건은 일본 기업사회는 물론 해외 투자가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회계부정 사건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부정을 일벌백계로 다스려 시장경제를 지켜내 온 역사가 있다. 그러나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을 둘러싼 일본의 처리과정을 보면 과연 일본이 시장경제 국가인지 의심이 든다. 점입가경인 것은 2015년 2월 처음 발각된 이 사건과 관련해 거의 1년이 다 된 지금까지 속속들이 새로운 세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인들이나 미디어는 한국 대기업의 기업지배구조, 재벌체제를 곧잘 비판해왔다. 오너 경영자의 전횡이 문제라는 시각이다. 도시바는 일본이 자랑하는 경영자 기업의 대표 주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회사에서 경영자의 전횡에 의해 대대적인 회계부정 사건이 저질러진 것이다. 그것도 역대 사장들이 지속적으로 부정에 가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장 3대에 걸쳐 7년간이나 회계부정이 저질러진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院政의 폐해
도시바 경영자들을 이익지상주의에 매달리게 하는 유혹은 또 있다. 일본의 재계 대표라 할 수 있는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 회장단 취임의 유혹이다. 재계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자 시절의 업적이 좋아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의 대기업 구조와 문화는 구미와는 물론 한국과도 상당히 다르다. 이번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은 일본적 기업구조나 기업문화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사건의 본질은 개인이나 일부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저지른 부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진과 종업원이 일체가 돼 7년 동안이나 지속적인 부정을 저질렀고, 또 이를 견제할 사내·사외 감시기능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도시바의 임직원들은 그다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 또다시 부정이 저지러질 개연성도 있다고 비판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일본적 경영의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가 된 것이다. 회계부정 사건이 발생한 배경과 그 과정,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사후처리 과정을 보면 일본적 경영의 민낯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평론가들은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경영자들의 ‘이익지상주의’를 지목한다. 이윤 추구는 기업의 본래의 목적이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도시바의 경영자들에게는 이익지상주의에 집착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때문에 회계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이익을 부풀리고 싶은 동기가 작동한 것이다. 바로 도시바의 경영자 시스템이 회계부정의 동기를 배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도시바의 사장 임기는 대개 4년이다. 그런데 사장 퇴임 이후에도 회장·상담역·고문 등으로 회사에 남아 실력을 행사하는 ‘원정(院政)’ 시스템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96∼2000년 사장을 지낸 니시무로 타이조(西室泰三)다. 사장 퇴임 후 5년간 회장을 맡았고 상담역으로 물러났지만 지금까지도 도시바 본사 최상층에 화려한 사무실을 두고 도시바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그는 도시바의 ‘천황’이라고도 불린다. 또 회계부정이 시작된 시기에 사장을 지냈고 이번 사건의 핵심적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니시다 아쓰토시(西田厚聰)는 10년간이나 권력을 휘둘렀다. 도시바의 상담역과 고문은 17명이나 된다.
이처럼 장기간 원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차기 사장에 자기 사람을 심어야 한다. 대개 자신이 관여했던 사업부 후계자를 지명한다. 때문에 새 사장은 이전 사장의 실패를 덮어두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사장 시절 업적이 나쁘거나 전략사업이 바뀌게 되면 다른 사업부 출신자가 사장으로 지명되기도 한다. 그러면 경영진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 때문에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업적 부풀리기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2009년에 원자력 발전 사업 출신으로 사장이 된 사사키 노리오 사장과 당시 회장이었던 니시다와의 갈등은 외부에도 공공연히 알려질 정도였다. 일본에는 이러한 경영자 시스템을 가진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도시바 고유의 문제점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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