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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Case Study: 레진엔터테인먼트

웹툰은 무료? 유료만화 성공 가능성 ‘0’? 만화光들, 작가·독자 共生의 시장 만들다

최기영 | 190호 (2015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미 무료라는 인식이 강한만화라는 콘텐츠로 돈을 번다고 했을 때. 그러나 레진엔터테인먼트는 만화를 팔아서 성공한 스타트업이 됐다. 레진은 일단 기본에 충실했다. 좋은 만화를 만들 수 있는 만화와 작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냈다. 레진이 수익이 나야 만화 시장에도 돈이 돌고 작가들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에부분 유료화라는 수익모델을 만들어냈다. CMS(Contents Management System)를 개발해 각 에피소드의 조회 수와 구매율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품질 모니터링을 가능케 했다. 과감히 댓글과 공유 기능을 없애는 대신 만화를 편리하게 볼 수 있는 UI 개발에도 힘썼다. 이를 통해 레진은 월 방문자가 750만 명이 넘는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했다.

 

기업소개

레진엔터테인먼트는 2013 6월에 설립된 만화 서비스 벤처로 네이버나 다음의 웹툰 서비스와 달리 ‘20∼30대 독자를 위한 프리미엄 채널이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웹툰은 무료라는 고정관념을 깬 이들은 다음 편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서 보려면 결제해야 하는 사업모델을 만들었다. 사업 시작 첫 달에 손익분기점을 넘은 레진엔터테인먼트는 2014년도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꾸준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예상 성공 가능성 : 0 %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면 성공은 뒤따라온다.’ TV나 신문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개성파 배우에서부터 첼리스트, 디자이너, 로봇 연구가, 스릴러 소설가까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데 책 읽기, 영화 보기, 음악 듣기처럼 진부하기 짝이 없는 취미들만이 떠오르면저런 사람들의 성공 같은 것은 남의 일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들이 쉽게 시도하지 않는 특별한 것을 좋아하고, 열심히 해야 빨리 성공하는 거라고 지레 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모두가 좋아하는만화로 성공한 기업이 있다. 웹툰 서비스 채널인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이하 레진). 이미 레드오션이 된 듯했던 웹툰 시장에서 설립 첫달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긴 레진이 레드오션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만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만화가게를 했던 권정혁 CTO는 물론이고 고등학생 때부터 만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는 한희성 대표, 대기업에 갈 수 있었는데도만화를 좋아해 레진으로 온 개발 경력자들까지.

 

만화를 접하는 것이 생활이었던 레진의 구성원들은 항상 볼 만한 만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기꺼이 돈을 주고도 보고 싶은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만화의 유료화, 그것이 만화 시장을 살찌우는 길이면서도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레진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투자자들은 서슴없이망할 거다라는 말까지도 내뱉었다.

 

대한민국 콘텐츠 잔혹사

 

콘텐츠 사업은 자본을 들이붓는 대기업도 성공하기 어렵다. 특정 콘텐츠에 대한 수요나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한 지는 꽤 됐지만 이에 맞는 유통망 구조나 가격 체계, 거래 시스템은 아직도 안착하지 못했다. 콘텐츠 자체가 성공한다 해도 불법으로 복제되고 공짜로 유통된다. 2000년대 초반 많은 인터넷 업체들이 무료 콘텐츠를 통해 회원을 유치하고 광고 수익을 얻는 전략을 취했던 것도디지털 콘텐츠는 공짜라는 지금의 사회적인 인식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생산자와 판매자 사이의 고질적인 불신도 빠질 수 없는 문제다. 디지털 콘텐츠를 유료화하거나 수익 방안을 다각화하려는 노력은 2000년대 초부터 끊이지 않았지만 게임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성공을 거둔 사례가 거의 전무하다.

 

 

영화, 음원, , TV 프로그램, 게임 등 많은 콘텐츠들 중에서도 만화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돈을 쓰지 않는 콘텐츠다. 만화방에서 돈을 주고 만화책을 빌려보던 것은 어느새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의 일이 돼버렸다. 이제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웹툰을 무료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웹툰이 처음 등장한 2003년 이래 10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 만화시장의 80% 이상을 웹툰이 차지하고 있다. 웹툰의 수익화 방안에 대한 연구와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도 2013년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온라인에서 만화를 유료로 팔고 있는 곳을 한번 떠올려보자. 네이버와 다음에서 연재됐던 웹툰 중 일부가 유료로 전환됐다. 리디북스나 교보문고 샘(Sam)에서는 출판 만화를 e-book으로 판매 중이고, 출판 만화의 경우에는 롱테일 전략으로 수급이 가능한 거의 모든 만화책들이 온라인 마켓에서 거래되고 있다. 네이버 N스토어 같은 콘텐츠 전자상거래에서도 만화 콘텐츠를 취급한다. 출판 만화 외에 몇몇 성공한 웹툰이 유료화된 경우를 제외하면 팔리고 있는 웹툰은 없다. 성공적으로 유료화한 웹툰의 전형으로 꼽히는 주호민 작가의 네이버 웹툰신과 함께는 유료화 직후 두 달 동안 3700만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네이버는 웹툰에 유료판매, 간접광고 등이 결합된 PPS(Page Profit Share)를 적용했다. PPS는 광고와 콘텐츠 판매를 결합한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작가가 선택적으로 콘텐츠 유료판매와 광고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사업 모델로 네이버 웹툰은 한달간 58900만 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했다. 월 평균 방문자가 1700만 명에 이른다는 네이버 웹툰으로서는 능력에 못 미치는 수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에서는신과 함께’와 PPS를 바람직한 수익화 사례로 치켜세웠다. 웹툰 시장이 그만큼 척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쉽사리 웹툰을 전면적으로 팔겠다고 할 수 없었다. 레진이 새로운 웹툰 시장을 정의하고 부분 유료화 사업 모델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는.

 

대기업도 실패하는 만화 사업

 

지금까지 만화 유통 사업자들이 고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본이 부족해서도, 사회적 인식이 건전하지 못해서도, 디지털 인프라가 불편해서도 아니었다. 레진의 권 CTO가 지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만화를 보는 이들의 시각이 만화를 불법으로 유통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온라인에서 출판 만화와 웹툰은 서로 다른 유통 양상을 보인다. 출판 만화의 경우 작가가 만화를 연재하면 출판사에서 이를 묶어 책으로 출간하지만 웹툰은 작가가 작품을 디지털로 작업해 온라인 사이트에 먼저 연재한다. 또한 출판사가 비교적 많고 출판물의 성격도 다양한 출판 만화와 달리 웹툰은 온라인 유통 채널의 수가 제한적이다. 현재 웹툰을 서비스하는 곳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 통신사인 KT SKT 정도다. 이들은 모두 대중적인 장르를 취급하는데다 무료로 웹툰을 제공하고 있다. 다루는 만화의 종류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온라인 만화 유통사들도 만화 시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은 부족한 상황이다.

 

만화를 불법으로 유통하는 사람들은 그 만화에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잠깐의 유흥거리로 여기기 마련이다. 만화가나 유통사가 입을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 만화의 미래도 생각하지 않는다. 온라인 만화 유통사들 역시 콘텐츠로써 만화가 가지는 가치를 진지하게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만화를 사용하고 있다. 출판 만화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은 모든 만화의 가치를 평균화시키는 정액제를 도입하고, 불법 유통되는 만화와 다를 바 없이 1페이지의 너비가 530픽셀인 이미지를 제공한다(만화를 공급하는 대부분의 전자책 플랫폼이나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는 이미지 전송 시에 발생하는 트래픽의 문제로 530픽셀 정도의 해상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스캔 만화의 해상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보니 독자들은 보고 싶은 만화가 있으면 번거롭게 합법적인 방법을 이용하기보다는 웹하드에서 다운받는 쪽을 선택한다. 퀄리티 면에서는 어차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7000억 원 규모였던 만화 출판 시장은 현재 절반도 안 되는 2800억 원까지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만화 작가는 물론 출판 만화사까지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결과적으로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김민기 작), ‘타짜’(허영만/김세영 작), ‘26’(강풀 작), ‘삼국지’(고우영 작)의 뒤를 잇는 대작 만화가 뜸해지고 있다.

 

웹툰도 출판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웹툰을 연재하는 사이트들은 이용자 유입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무료 웹툰을 사용한다. 웹툰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다수의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에서만 한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자연히 만화의 장르적 다양성이 사라졌고 소수의 웹툰 플랫폼에 만화가들이 목매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레진은 만화 유통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만화가와 독자, 레진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했다.

 

웹툰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다

 

권정혁 CTO레진은 만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라고 말한다. 만화라는 콘텐츠가 가진 가치에 대한 비전과 신뢰가 있어야만 만화의 유료화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레진에 합류한 사람들은 어렸을 적 만화방에서 1000원을 내고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만화책을 읽었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돈을 주고 만화책을 읽었던 10∼2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 요즘 청소년들은 만화를 책으로 접한 적이 거의 없다. 이들에게 만화는 당연히 웹툰이다.

 

투자자들이 레진에게 망할 것이라고 말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들 무료로 웹툰을 보는 세상에서 어떻게 작은 스타트업이 유료 모델로 비즈니스를 해낼 수 있겠냐는 의미였다. 만화의 가치에 맞는 적합한 가격 체계로 보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연재하겠다는데도 만화 시장은 레진을 환영해주지 않았다. 만화 출판사들은 냉랭했고 심지어 지금 레진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작가들조차 그때는유료 웹툰은 안 될 것이고 불법 복제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의 완강한 만류와 걱정에도 팀원들은 레진의 성공을 믿었다. 웹툰에 대한 수요의 성격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웹툰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처음 웹툰을 접했던 청소년들은 이제 20∼30대가 됐다. 독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진지한 주제의 웹툰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윤태호 작가의미생이나 주호민 작가의신과 함께가 성공한 것도 독자들의 새로운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에는 좋은 만화에 대한 성숙한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만화 플랫폼이 없었다. 포털에서 연재되는 웹툰 중 이런 수준의 것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네이버 웹툰은 초··고등학생, 다음의 웹툰은 20대를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포털의 웹툰은 다수의 대중을 한정된 수의 웹툰으로 만족시키려다 보니 장르도 제한적이다.

 

 

레진은 비어 있는 틈새를 채울 수 있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의 웹툰이 연재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다만 다른 사이트들이 하는 것처럼 무료 웹툰을 연재할 수는 없었다.

 

초기 콘텐츠를 무료 배포할 정도로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무료 웹툰 연재는만화도 프리미엄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신념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료 웹툰으로는 만화 시장에 돈을 공급하지 못하고, 이는 만화가들이 거대 포털이 아닌 다른 작품 활동 공간을 찾지 못해 만화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레진은유료 만화라는 다른 논리로 접근하기로 했다. 모두가 실패를 확신했지만 독자들에게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에 쉽지 않은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성공의 레서피: 독자와 작가 모두가 행복하게

 

레진코믹스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좋은 만화만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좋은 만화를 공급하려면 우선 만화들이 재미있어야 하고, 보기 쉬워야 하며, 결제 방식 또한 번거롭지 않아야 한다. 다른 서비스 업종에서는 당연히 중시되는 이런 점들이 만화 시장에서만큼은 그렇게 여겨지지 않았다. 만화 출판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보수적이었고 웹툰 플랫폼들은 굳이 추가적인 자본을 들여 발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 파란(paran)을 운영했던 포털 기업 KTH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권 CTO와 개발자들은 레진이 정체돼 있는 만화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좋은 만화의 공급에는 재미와 쉬운 결제, 빠르고 편리한 이용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업의 방향을 결정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작업은레진에서 연재하는 만화는 모두 재미있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줄 수 있도록 만화를 선별하는 것이었다. 아마존의 성공 법칙이었던 롱테일전략에 따라 가능한 한 많은 콘텐츠를 수급하는 전자책 플랫폼이나 온라인 콘텐츠 마켓과 반대되는 이러한 전략을 취한 이유는 재미없는 만화가 한 번이라도 팔리면 수익은 얻겠지만 그 대신 플랫폼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레진은 재미있는 만화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하는가도좋은 만화를 공급하는 과정의 일부라 여기고 이 점에 주목했다. 레진코믹스의 특징 중 하나는 댓글과 공유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연결망이다. 하지만 레진은 그보다는 만화를 편리하게 볼 수 있는 크로스 뷰어(cross viewer, 상하 또는 좌우로 끊임없이 볼 수 있는 스크롤 만화와 페이지를 넘겨 보는 페이지 만화를 동시에 지원하는 기능)나 결제 수단, 이미지 로딩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또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들이 더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각 에피소드의 조회 수와 구매율을 실시간으로 나타내는 CMS(Content Management System)를 개발했다.

 

 

작가들은 제공되는 CMS를 보고 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객관적으로 살펴봄은 물론 전날의 수익을 직접 계산해볼 수도 있다. 이런 툴은 여타 웹툰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작가들은 조회 수나 구매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날이면 레진의 콘텐츠팀과 긴급 회의를 하기도 하면서 만화를 발전시켜나간다.

 

모두의 행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 수익 모델

 

이 모든 만화들을 연재하고 기능들을 개발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수익이다. 작가들이 더 좋은 만화를 만들 수 있도록 자극하고, 개발자들이 더 좋은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은 바로 레진의 독특한 수익 모델이다. CTO가 일명시간을 파는모델이라고 부르는 이 수익 모델은 게임업계를 참고해 개발했다. 넥슨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지금은 전 세계 게임의 공식 수익 모델이 된부분 유료화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부분 유료화모델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는 무료지만 특정 혜택을 누리려면 돈을 주고 아이템 등을 구매해야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 게임애니팡은 누구든지 다운받아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블록을 깨주는 아이템이나 제한 시간을 늘려주는 아이템을 사려면 실제 돈으로 결제해야 한다. 레진은 이렇게 기능의 일정 부분만 유료화한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여기에시간이라는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더욱 구매욕이 높은 소비자에게 호소하게끔 만들었다. 가령 오늘 올라온 어느 만화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곧바로 보고 싶은 사람은 코인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 에피소드가 무료로 공개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돈을 낼 필요 없이 시간을 보내면 되게 한 것이다.

 

2013 67일에 안드로이드 앱을 출시한 데 이어 817일에 아이폰 앱을 내놓자마자 레진코믹스는 8월 한 달 만에 8만 명에 가까운 유저를 확보했다. 또한 현재까지 약 350명의 작가가 레진코믹스에서 활동 중이며 그중 한 명의 작품인뼈와 살 12월 한 달간 1600만 원가량의 수입을 기록했다. 레진코믹스에 만화를 처음으로 제공한 모 출판사의 경우에는 단 여덟 편의 작품을 공개했음에도 첫 2주간 1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2015 10월 기준 1250여 편이 서비스되고 있고, 월방문자(UV) 750만 명을 넘는다.

 

 

 

한 대학의 만화학과 교수님이 레진에 전화를 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는 에피소드는 레진이 만화업계에 미친 영향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예전에는 만화학과 졸업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네이버와 다음 웹툰 등으로 한정돼 있었는데 장르도 다양하고 성과에 따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매체를 탄생시켜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글로벌 웹툰 허브를 넘어 한국의 마블엔터테인먼트로

 

일본의 만화가 우리나라로 전달되는 데는 불과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만화를 대부분 월간 잡지에 연재하고, 그렇게 한 편 한 편 쌓이면 그것들을 모아 단행본을 만든다. 그리고 이 단행본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번역을 비롯한 준비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는 총 6개월가량이 소요된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사람은 일본 잡지에 만화가 실린 다음 날이면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스캔본을 구해서 읽는 것이 가능하다. 화질도 나쁘고 조악하긴 하지만 모두 번역도 돼 있다. 합법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반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 어쩔 수 없이 스캔본을 보는 경우가 많다.

 

불법 복제를 막고, 만화가 국가 간에 더욱 빠르고 쉽게 유통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레진은 그 첫걸음으로 일본 진출을 선택했다. 레진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일본 만화 시장에서 좋은 만화를 발굴해 국내에 소개하고, 반대로 우리나라의 웹툰을 일본에 수출할 경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일본에서 서비스 중이다. 일본에서의 레진은 2015 4월 시작 이후 7월에 500만 조회를 돌파할 정도로 안정적으로 성장 중이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등의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레진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등 다수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마블엔터테인먼트(Marvel Entertainment)와 같은 트랜스미디어(transmedia)가 되는 것이다. 트랜스미디어는 하나의 스토리를 여러 플랫폼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미디어다. 마블엔터테인먼트가 처음에는 만화였던스파이더맨을 영화와 뮤지컬, 게임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레진 역시 지금은 웹툰을 공급하는 플랫폼이지만 미래에는 2, 3차 생산물까지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되길 꿈꾼다. 2014 2월에는 시나리오와 만화, 영화 간의 연속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취지의 제휴를 CJ와 맺기도 했다. 레진은 자신들을만화가들의 벤처캐피털리스트라고 부른다. 잠재성과 리스크가 매우 높은 초창기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처럼 레진도 만화의 가치를 찾고, 만화와 함께 성장하고자 한다. 벤처 자체에 애정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이 벤처캐피털리스트인 것처럼 레진도 만화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레진을 만들었고, 또 앞으로의 레진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성공 요인 및 향후 과제

 

레드오션인 만화 시장에서 레진코믹스의 성공은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특히 웹툰을 부분 유료화 서비스로 전환해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발상은 레진코믹스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2010년 전후 네트워크 경제(Network economics) 이론에 따라 많은 온라인 비즈니스 기업들은 고객 유치와 확보에 모든 힘을 기울여 왔다. 즉 온라인 콘텐츠 등을 무료로 제공해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온라인 콘텐츠 사업의 성공요인으로 불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보편적인 성공 원칙을 따르지 않은 레진코믹스가 유료화 서비스를 통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수익모델의 구조가 웹툰을 제공하는 일반적인 대형 포털과는 차별화돼 있다. 예를 들어 대형 포털의 경우 먼저 공짜로 웹툰을 독자들에게 볼 수 있게 한 후 추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유명 웹툰 등은 유료화로 전환을 한다. 하지만 레진의 경우는 반대로 유료화 서비스를 먼저 제공하고 있다. 레진에서 어떤 만화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바로 보고 싶은 사람은 돈을 (: 코인) 내고 봐야 한다. 하지만 레진에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당 에피소드는 무료로 전환이 된다. 즉 레진의 유료화 서비스는 유료에서 무료로 전환되는 수익 모델인 것이다. 이 경우 새로운 고객들은 수많은 무료 만화에 노출될 수 있고 신규 충성고객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새롭게 충성고객이 된 독자는 추후 자신이 보고 싶은 만화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먼저 보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또한 기존 포털과 다르게 레진의 수익구조는 웹툰의 가격이 정액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대형 포털에서 제공하고 있는 웹툰에 비해 권당 가격이 약 2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유료 서비스를 통해 초고화질 보기, 결제만화 영구 소장, 보너스 만화 등 다양한 혜택을 추가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수익구조의 차별성으로 발생한 수익을 만화작가의 수익 배려 부분을 고려해 웹 콘텐츠 사용에 대한 정당한 지불을 했다는 점이 긍정적인 효과로 발생했다.과거 무료 서비스로 인해 만화작가들의 작업환경과 경제적 여건이 열악하다는 인식이 많았는데 레진의 유료 서비스를 통해 억대 연봉을 받는 작가나 기존 포털에서 받던 원고료보다 더 많은 수익을 받는 작가가 생겨나게 됐다. 이는 만화 산업 전체에 고무적인 일이 됐다. 이에 따라 좋은 작가들이 레진으로 몰려오게 돼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게 되고, 결국 더 많은 독자들을 유입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두 번째로 레진은 공급자 측면인 만화가에 집중을 함으로써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레진코믹스는 다양한 만화와 작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것을 선순환 구조의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특히 레진은 일반 포털이나 다른 웹툰 서비스들과 다르게 고객들의 평점이나 댓글을 남기는 구조가 아니다. 과거 유명 웹툰의 경우 독자들의 댓글과 비난 등으로 인해 작가의 원래 의도가 아닌 결말을 맺은 웹툰도 있었다. 독자들의 의견에 따라 줄거리를 바꾼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 보면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좋은 사례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댓글이나 리뷰를 남기는 비율이 전체 고객 중에서 크지 않고 연령층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좋은 전략이 아니다. 즉 의견이나 댓글을 남기는 더 많은 고객들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몇몇 소수 독자들에 의해 줄거리나 결말이 바뀐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어떤 웹툰 작가가 그렇게 줄거리를 바꿨다면 독자들도 추천 댓글 등을 읽음으로 앞으로 전개될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감도 반감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형 포털 웹툰에서는 미리보기 서비스를 통해 줄거리를 스포일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작가들의 작품 완성에 대한 동기 부여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신 레진의 경우 각 에피소드의 조회 수와 구매율만을 모니터링하고 저조할 경우 작가와 레진의 콘텐츠팀과 긴급 회의를 하기도 하면서 만화를 발전시켜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 작가는 만화 품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게 되며, 이는 좋은 품질의 만화를 제작 및 제공할 수 있고, 결국 최종 고객인 독자들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의 만화를 보게 돼 더 많은 혜택이 작가들과 레진에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레진의 이런 성공 요인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레진이 가야 할 방향은 매우 명확해 보인다. 1990, 그리고 2000년 초반 수많은 한국 만화 잡지와 만화책, 그리고 작가들이 배출되며 한국 만화의 전성기를 이끌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종이로 출판이 된 만화는 불법 복사와 스캔 등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만화는 추후 웹툰이라는 형태로 단지 포털이나 웹사이트로 고객을 유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레진은 웹툰은 무료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바꾸고 웹툰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가치를 부여했다. 이는 만화가 단지 포털 등으로 고객을 유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문화 콘텐츠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에게는 과거 만화 전성기 시절 만화 그 자체의 가치를 즐기기 위해 출판된 만화를 열심히 구매하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제 레진이 앞으로 더 번창하고 나아갈 방안은킬러 콘텐츠혹은킬러 작가의 발굴 및 양성이라고 생각한다. 레진은 그에 따라 미래에는 2, 3차 생산물까지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되길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CJ와 제휴를 맺기도 하고 일본에 진출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웹툰 역시 2, 3차 생산물인 영화나 TV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웹툰과 만화가 2, 3차 생산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소에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인지할 수 있는 유명한 만화 혹은 만화가 양성이 필요하다. 이런 킬러 콘텐츠와 유명 작가를 꾸준하게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은 이미 레진이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판단된다. 앞으로 킬러 만화를 발굴하고 홍보하며 꾸준히 발전하는 레진코믹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최기영 현대오토에버 과장 stefhano0930@gmail.com

정새롬 플래텀 에디터 Suburn00@gmail.com

박재홍 경희대학교 빅데이터연구센터 부소장 jaehp@khu.ac.kr

 

최기영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와 카이스트 테크노 MBA를 거쳐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비석세스에서 스타트업 취재, IT 트렌드 분석 등을 담당했다. 현재 현대오토에버에서 기술기획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스타트업 부자들> <왜 지금 드론인가>가 있다.

정새롬은 성균관대 사학과를 거쳐 마케팅 전문 미디어 트렌드인사이트에서 마이크로트렌드 전반에 관한 분석을 담당했다. 현재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래텀에서 국내외 최신 IT와 신규 비즈니스 모델 취재, 국내 스타트업 인터뷰, 미디어 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박재홍 교수는 경희대에서 경영학 학사를 마치고 미국 Stanford Univeristy에서 통계학 석사학위와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Unisys, 한국능률협회, 투이컨설팅 등과 함께 다수의 IT 컨설팅 및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빅데이터 분석과 관련해 경희대 빅데이터연구센터 부소장을 맡고 있다. E-Commerce IT 투자 효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최기영 | - 현대오토에버 과장
    - <스타트업 코리아>, <한국의 스타트업 부자들>, <왜 지금 드론인가> 저자
    stefhano09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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