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 농심 수미칩 차별화 전략
Article at a Glance
생감자를 썰어 만드는 생감자칩 시장은 10년 넘게 오리온 포카칩이 독주하며 정체 상태에 있었으나 2010년 출시된 농심 수미칩은 5년 만에 시장점유율을 25% 가까이 끌어올리며 업계 판도를 바꿔놓았다. 포화된 넌-하이테크(non-high tech)시장에서 차별화에 성공한 수미칩의 성공비결은 다음과 같다.
(1) 물류 투입 차별화: 가공용 ‘대서’ 감자를 쓰는 경쟁제품과 달리 일반 요리용 ‘수미’ 감자를 전량 국내에서 구매해 풍미를 살림 (2) 생산/운영 차별화: 조미료맛보다 감자맛을 극대화하도록 칩을 두껍게 만듦. 호불호가 갈리는 대신 뚜렷한 팬층을 확보 (3) 마케팅/판매 차별화: 독특한 작명. 진열대에서 눈에 잘 들어오는 ‘스탠딩 파우치’ 포장 사용 (4) R&D 차별화: 여러 시드(seed) 제품을 준비해놓았다가 경쟁사의 허니버터칩 열풍이 불자 허니머스타드 맛을 출시. 경쟁사보다 오히려 더 빠른 라인 확장으로 물량 대결에서 승리 (5) 조달: 최장 30년 넘게 이어온 계약 농가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허니’ 열풍 당시 발 빠른 물량 확보에 성공 |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예림(이화여대 국문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감자는 생물(生物)이다.”
‘수미칩’을 만드는 농심 직원들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말이다. 2010년 6월 출시된 수미칩은 ‘국산 감자만을 사용하고 감자 고유의 풍미를 살린 프리미엄 감자칩’으로 시장에서 포지셔닝했다. 첫해 감자칩 시장점유율은 4% 내외에 불과했지만 매년 꾸준히 성장하며 2015년 6월에는 약 22.5%까지 올라섰다. 특히 2014년 12월 출시된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는 ‘허니’ 열풍의 원조인 경쟁사의 ‘허니버터칩’과 유사 제품들을 제치고 스낵류 매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표 1)
과자를 사먹을 때 재료의 원산지까지 확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수미칩은 ‘좋은 국산 감자’가 제품의 핵심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생산라인과 저장시설을 이에 맞게 최적화했다.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더 이상 차별화할 것이 없다고 생각됐던 감자칩 시장에서 수미칩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자세히 알아본다.
100% 국산 감자 프로젝트
감자칩은 감자를 얇게 저며 튀겨내는 스낵이다. 간식으로, 또 술안주로도 소비된다. 감자칩 시장은 크게 ‘프링글스’처럼 감자 전분을 틀에 넣어 굽거나 튀기는 성형 감자칩, 수미칩과 포카칩처럼 생감자를 썰어 튀기는 생감자칩으로 구분된다. 생감자칩은 성형 감자칩보다 원료 수급과 생산이 더 까다롭다. 한국에서는 1980년 농심이 ‘포테토칩’을 선보이며 생감자칩 시장이 처음 열렸다. 1988년에는 오리온이 ‘포카칩’을 출시해 본격 경쟁구도가 시작됐다. 오리온 포카칩은 ‘불량감자’라는 유행어를 낳은 CF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1990년대 말부터 시장 1위 지위를 유지해왔다.
10년 넘게 큰 변화나 혁신 없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생감자칩 시장.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었던 농심은 2009년 비밀리에 수미칩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핵심은 ‘국산 감자로만 좋은 감자칩을 만들어보자’였다. 다른 감자칩들은 국산 감자와 수입 감자를 섞어 사용하거나 아예 수입 감자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100% 국산 감자로 제품을 만들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인지시키면 농산물의 원산지에 점점 더 민감해지는 소비 추세에 따라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봤다.
농심이 국산 감자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품종의 특성 때문이다. 감자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다. 잉카제국을 점령한 스페인이 16세기 후반에 감자를 유럽으로 소개했으며 한반도에는 19세기 초 만주를 거쳐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약 4000종이 있을 정도로 품종도 다양하다. 감자가 널리 재배되기 시작한 일제강점기에는 쪄먹기 좋은 ‘남작’ 품종의 감자가 유행했지만 현재는 국내 농가 재배량의 70% 이상이 미국에서 개발된 수미(Superior) 품종이다. 수미 품종은 찌개나 반찬용, 즉 요리용으로 감자를 많이 쓰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고 생육기간이 100일 정도로 짧아 재배하기도 쉽다는 장점이 있다. 초여름과 초가을 두 번 수확이 가능하다. 그런데 감자칩이나 프렌치프라이 등 튀김 가공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껍질이 얇아 상처를 입기 쉽고 당분이 많아서 튀길 경우 갈색 혹은 검은색으로 변색되기 쉽다. 변색된 감자칩은 상품가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업체가 튀김 가공용으로는 당분이 적고 전분이 많은 대서(Atlantic) 품종을 이용해왔다. 대서는 수미에 비해 당 함량이 낮고 질감이 단단하다. 애초부터 감자칩과 감자튀김에 쓰기 좋도록 개발된 종이다.
농심, 오리온, 해태 등 국내 감자칩 업체들은 대서 감자 상당량을 미국 등 해외에서 수입해왔다. 국내에서도 계약 재배 물량을 늘려왔지만 근본적으로 대서 감자는 품종 특성상 3개월 이상 저장이 어려운데다가 감자칩 제조용도 외 일반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물량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업체들은 국내 감자 비수확철인 겨울부터 봄까지는 주로 수입 감자를 써왔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국내산, 12월부터 3월까지는 미국산, 4월부터 6월까지는 호주산을 쓰는 식이다. 일부 제품은 포장용지도 연 2회 교체한다. 하반기 생산품에는 ‘국산 감자 100%’라는 문구를 커다랗게 넣다가 상반기가 되면 ‘생감자 100%’라는 문구로 바꾸는 식이다.
농심의 수미칩 프로젝트는 이런 기존 감자칩 제품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시사철 국산 감자만을 쓰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튀김 전용인 대서 감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많이 재배되는 수미 감자로 감자칩을 만들 수만 있다면 원료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뿐더러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하고 ‘농민의 마음(農心)’이라는 사명에도 어울리는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소비자 조사 결과도 부합했다. 기존 감자칩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했더니 좋은 감자 원료를 사용할 것, 그리고 지방 함량이 적을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또 한국인들은 식료품을 선택할 때 조미료보다는 원재료의 맛이 진하고 풍부하게 느껴질수록 고급 제품으로 인지한다는 분석 결과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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