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노벨물리학상 수상 나카무라 슈지
Article at a Glance – 혁신 기업인 출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의 시사점 1) 다른 사람이 주목하지 않는 분야에 장인정신을 가지고 매달렸다. 2) 일류 대학이라는 간판과 기업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지방대 출신 중소기업인이다. 3) 학계의 연구와 거리를 두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연구에 몰두했다. 4) 용접으로 연구기기를 직접 만들 정도로 현장의 밑바닥까지 훑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5) 불확실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에 투자하는 벤처정신을 가진 투자자를 만났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이 일본 출신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일본 출신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19명에 달한다. 일본에 큰 자랑이다. 그런데 이번 물리학상 수상자는 분야가 다소 특이하다. 소립자와 천체 등 순수학문이 아니라 발광다이오드(LED) 개발 등 응용학문에서 연구물을 냈다. 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이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나카무라 슈지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버라캠퍼스 교수 등 3명은 에너지 소비가 적은 고효율 청색 LED를 발명했다. 백열등이 20세기에 세상을 비췄다면 21세기는 LED가 세상을 밝힐 것”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LED의 발광 원리는 1940년대에 이미 예측됐다. 1962년 GE의 닉 호로냑(Nick Holonyak)이 적외선에서 발광하는 LED를 개발했다. 왕립아카데미는 LED의 원리보다 산업화에 공헌한 연구자들을 높게 평가했다. 수상자 모두 일본 지방대 출신으로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특히 나카무라 교수는 지방(도쿠시마현 아난시)의 중견 화학업체에서 논문과 특허에는 벽을 쌓고 오직 청색 LED에만 매달린 기업연구인 출신이다. 그가 어떻게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 그의 과거 경력을 살펴보는 것은 국내 기업인과 연구자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고난의 길을 자청한 나카무라
나카무라의 업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LED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LED는 전기를 흘리면 빛을 내는 반도체다. 칩의 기본구조는 p형 반도체(정공이 많은 반도체)와 n형 반도체(전자가 많은 반도체)로 구성되는데 칩에 전압을 가하면 정공과 전자가 이동하고 재결합(pn접합)한다. 재결합을 한 뒤 전체 에너지는 p형과 n형 반도체의 에너지 총합보다 적은 수준이 되고 나머지 에너지는 빛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LED의 발광원리다. 그러나 백색 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3원색인 청색과 녹색, 적색의 발광 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파장이 가장 짧은 청색 발광 칩 제작이 쉽지 않았다. 나카무라 교수 등은 20세기에는 개발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됐던 청색 LED를 개발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기여했다.
왜 청색 LED 개발이 어려웠을까? 빛의 색깔은 LED칩에 사용되는 화합물에 따라 달라진다. 청색 LED는 SiC(실리콘 카바이드), ZnSe(징크셀레나이드), GaN(질화갈륨) 등의 화합물로 만든다. SiC나 ZnSe로 청색 LED를 만들기가 쉽다. 하지만 밝기가 약하고 가격이 비싸다. 응용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제작이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SiC와 ZnSe로 청색 LED를 제작하는 연구에 집중했다. 나카무라 교수 등은 다른 연구자들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질화갈륨을 사용하는 연구에 매달렸다. 1989년 질화갈륨을 사용한 청색 LED 발명에 성공했고 1993년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다. 아카자키 이사무 메이조대 교수는 질화갈륨을 사용해 밝은 청색을 발산시키는 데 성공했고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는 양질의 GaN 단결정을 제작하는 데 성공해 실용화를 앞당겼으며 나카무라 교수는 빛을 안정적으로 장기간 발산하는 청색 LED 재료를 개발해 제품화에 기여했다.
3명 모두 연구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분야를 과업으로 삼았다. 아카자키 교수는 당시 질화갈륨으로는 p형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는 학계의 편견에 도전해 고독한 연구에 매달렸다. 그는 “마치 황야를 혼자서 걷는 기분 같았다”고 말했다. 아마노 교수는 이런 아카자키에 매료돼 제자를 자청했다. 1500번 이상 실험을 거치며 저온의 성장로에서 양질의 결정이 형성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원리 발명 불과 4년 후인 1993년 니치아화학공업이라는 지방 중견화학업체가 휘도 1cd(칸델라)의 청색 발광다이오드를 출시한 것이다. 개발자는 학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나카무라 교수였다. 사실 나카무라 교수는 노벨물리학상을 아카자키와 하마노 교수와 함께 수상했지만 별다른 관련이 없다. 그는 독자적으로 청색 LED 개발과 실용화에 성공했다.
책과 논문 대신 장인정신
나카무라 교수는 1979년 도쿠시마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뒤 종업원 180명, 매출액 40억 엔 정도의 니치아화학공업에 입사했다. 교토 교세라에도 합격했으나 이미 결혼을 했고 자녀도 있어서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선택했다. 니치아는 오너인 오가와 노부오가 개발한 CRT 모니터나 형광등에 사용되는 형광체 재료를 생산·판매하는 지방 중견기업에 불과했다. 대다수 직원은 샐러리맨과 자영 농업을 겸했다. 순수 샐러리맨은 나카무라뿐이었다. 나카무라의 전공은 전자공학이었지만 전자 재료를 개발하고 싶다고 알려 개발과에 배속됐다.
첫 연구는 화합물반도체 인화갈륨(GaP)의 재료인 금속Ga을 정제하는 것이다. 개발과에는 과장과 나카무라를 포함해 연구원 2명이 전부였다. 게다가 전자 관련 학문을 전공한 사람은 나카무라가 유일했다. 개발과 자체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런데 영업과에서 금속Ga뿐만 아니라 인화갈륨 자체를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 제안했고 개발담당자로 나카무라가 지명됐다. 말이 신규 사업 개척이지 개발에 필요한 기기와 부재료를 구입할 예산이 거의 없었다. 나카무라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나카무라는 개발 이전 교과서와 논문, 특허 관련 자료 등을 탐독해서 인화갈륨 제조기술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책과 자료를 아무리 읽어도 인화갈륨을 만들 수 없었다. 회사는 결과물을 원할 뿐이다. 책을 버리고 개발에만 몰두하기로 했다.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생각했다. 인화갈륨의 결정이 성장하려면 비싼 석영관이 필요하다. 문제는 결정 성장 과정에서 석영관을 잘라야 한다. 나카무라는 석영관을 용접해서 다시 사용했다. ‘용접공이 되기 위해 입사했나’라며 자책도 여러 차례 했다. 용접기술은 거의 장인수준으로 발전했다. 폭발사고도 빈번했다. 연구실에 화재가 발생하기 일쑤였고 화재를 진압하면 퇴근 시간이 될 때도 잦았다.
대학 동기들은 논문을 쓰거나 학회에도 이름을 알렸다. 자신은 매일 용접이나 하는 처지였다. 낙담하기도 했으나 연구하고 싶은 분야인 반도체 재료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자위했다. 제품 개발 의욕은 남달랐다. 왜냐하면 팔리는 제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회사가 언제 도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개발에 성공했다. 1981년 인화갈륨을 판매했다. 영업에도 뛰어들었다. 영업담당자가 반도체 재료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고객 불만사항도 직접 처리했다. 하지만 제품 판매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인화갈륨의 매출은 월 수백만 엔 정도에 불과했다.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사업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1982년 제조를 후임에게 맡기고 개발에서 손을 뗐다. 나카무라는 ‘회사가 시키는 것을 모두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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