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 <The vanitas-holic> Resin, lens, c-print, 2008
‘덧없음(vanitas)에 대한 집착(-holic)’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유명 브랜드의 상품 라벨을 이용한 설치 예술 활동을 해온 김지민 작가의 작품이다. 1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이 각기 원하는 상품 라벨을 각 아이콘들의 얼굴 부위에 처리, 인간의 욕망을 세대별로 표현해냈다.
선거철이 되면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이는 앞서가는 후보자를 계속 지지하려는 군중 심리를 뜻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를 뜻하는데, 절대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자에게 연민을 느껴 불리한 후보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입니다. 수많은 영세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생업 기반인 재래시장은 백화점, 대형 할인점, 홈쇼핑 업체 등 유통업계 절대 강자들에 눌려 고사 위기에 처한 절대 약자, ‘언더독’입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 노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내부 역량을 집결하고 상생 전략과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척박한 토양 위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위기를 딛고 일어선 재래시장 5곳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언더독’들의 통쾌한 역전 드라마를 통해 지혜와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180m 길이의 골목을 중심으로 상점이 늘어선 재래시장. 시장 골목에서는 8개의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DJ도 시장 상인, 초대 손님도 상인이다. 상인들은 시장 고객과 동료 상인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진솔한 스토리를 털어놓는다. 초대손님은 이야기보따리를 풀다가 흥이 나면 구성진 노래도 한 자락 뽑는다.
라디오 스튜디오 옆으로 고객들이 쉴 수 있는 커피숍과 휴게공간이 있다. 쇼핑에 지친 손님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장바구니를 맡겨놓고 다른 일을 볼 수 있다.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상인 기자단’이 소식을 전하는 시장 신문도 읽을 수 있다.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 재고가 쌓일 틈이 없다. 그만큼 물건도 신선하다. 주차는 백화점처럼 물건을 사면 1시간 동안 무료다. 5000원어치 물건을 사면 100원짜리 쿠폰도 준다. 쿠폰 10장을 모으면 1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매달 열리는 경품행사에 응모해 상품권을 받는 행운까지 거머쥘 수 있다.
골목시장에는 아케이드형 지붕이 설치돼 비나 눈이 와도 걱정이 없다. 노란색 선에 맞춰 늘어선 상점 진열대는 손님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시장 상인들이 진행하는 요리강습을 받거나 상인들의 요리 비법이 담긴 레시피를 얻어간다. 시장 내에서는 상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나 밴드 공연도 종종 열린다. 아이들을 시장 내에서 열리는 경제캠프, 미술교실 등과 같은 각종 교육 프로그램에 보낼 수도 있다. 게다가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인들의 휴먼 스토리와 정과 나눔의 인정이 있다.’
일본 등 선진국의 재래시장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경기 수원의 작은 골목시장인 못골시장의 모습이다. 이 시장에는 수원은 물론 서울에서도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내로라하는 전국의 대형 재래시장 상인들도 벤치마킹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펼친 재래시장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못골시장처럼 정부의 투자와 시장의 자구 노력이 시장의 새로운 핵심 경쟁력을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른바 ‘긍정적 예외(Positive Deviants)’다. 난마처럼 얽힌 재래시장 부활의 열쇠도 이 사례의 관찰을 통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수원의 작은 골목시장에서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못골시장이 어떻게 경쟁자와 차별화된 시장 특유의 자원을 창출하고 성장했는지를 분석했다. 또 못골시장 혁신 프로그램의 한계와 앞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풀어야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진단했다. 작지만 강한 ‘강소시장’인 수원 못골시장은 우리에게 “재래시장은 무엇을 사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팔달문 막내시장의 변신
경기 수원시에는 21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이 가운데 구도심 팔달문을 중심으로 9개의 시장이 몰려 있다. 순대로 유명한 지동시장, 혼수 전문 영동시장 등 비교적 큰 시장들이 지동(池洞) 일대에 들어서 있다. 이곳은 예전에 큰 연못이 있었던 자리라고 해서 못골로도 불린다. 이 대형 재래시장의 틈바구니에 못골시장이 있다. 못골시장은 채소, 수산물, 떡, 어묵, 반찬 등의 식재료를 주로 판매한다. 골목길에 식재료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1975년 무렵 시장이 형성됐다. 팔달문 인근 시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고 역사도 짧은 편이다. 그래서 ‘막내 시장’으로 불리곤 한다.
2010년 4월 28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못골시장. 약 180m의 골목길 양쪽에 상점 90여 곳이 들어서 있었다. 현대식 시장으로 재단장한 시장골목은 깔끔했다. 눈, 비를 막기 위해 아케이드 지붕이 설치된 데다 상점 간판이 저마다 특성을 살려 디자인됐다. 물건을 진열한 가판대가 튀어나와 고객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재래시장의 불편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장은 평일 오전인데도 물건을 흥정하고 고르는 손님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정오를 넘어서자 시장 골목이 붐비기 시작했다. 이름이 알려진 한 떡집 앞에는 떡을 사기 위해 긴 줄까지 늘어섰다. 오후 4시를 넘어서면서 장을 보러 온 주부들이 늘어나자 시장 골목길이 명절 대목처럼 북적이기 시작했다.
시장 곳곳에 설치된 8개의 대형 LCD 모니터에서는 시장 상인들이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 ‘못골온에어’의 프로그램 진행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날은 한달마다 열리는 고객 대상 경품 추첨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상인 DJ들이 고객들이 응모한 쿠폰이 담긴 상자에서 경품 당첨자를 뽑아 발표하는 장면이 모니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다. 경품행사에 참여한 고객 이희숙(수원시 팔달구 지동·36) 씨는 “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신선한 데다 상인들이 친절해 매일 장을 보러 나온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하루 방문객은 2008년 12월 기준 1만301명에서 2010년 12월 1만3392명으로 30% 증가했다. 상점의 하루 평균 매출액은 2008년 12월 평균 50만 원에서 2010년 12월에는 61만4000원으로 22.8% 늘었다. 빈 점포도 찾기 어렵다. 이충환 상인 회장은 “상가 임대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한달 평균 상인회로 빈 점포를 찾는 문의가 서너 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다른 재래시장에서는 손님이 끊겨 울상이지만 이곳 상인들은 높아지는 임대료 때문에 고민이다.
주변에 기업형 유통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형 아웃렛 매장이 있다. 이 매장 내부는 물론 인근 시장 내에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슈퍼가 있다. 이 회장은 “공산품은 몰라도 식재료는 대기업 슈퍼보다 더 싸고 질 좋은 상품을 팔 수 있다”며 “상인들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품목만 많이 겹치지 않는다면 대형 유통매장과도 얼마든지 공생할 수 있다”며 “인근 아웃렛 매장이 내부 수리 때문에 잠시 문을 닫은 적이 있었는데, 유동인구가 줄어 시장 매출도 같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기업형 유통망에 밀려 벼랑 끝에 선 한국 재래시장의 위기를 적어도 이곳에서는 실감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