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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음식 소스 B2B 1위 동원홈푸드의 B2C 시장 확장 전략

보고에서 결정까지 ‘30분’ 만에 끝
기민한 소통으로 ‘헬시플레저’ 사로잡다

배미정 | 413호 (2025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내 B2B 소스 업계 1위 회사인 동원홈푸드가 관성을 뚫고 B2C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음과 같다.

1. 외부에서 영입한 B2C 마케팅 전문가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룹 회장 등 경영진이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2. 기존 업무 담당자들과의 폭넓은 커뮤니케이션, 사내 핵심 연결자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안 된다’는 구성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꿨다.

3. 차별화된 콘셉트와 강력한 연구개발 역량을 활용해 기존 시장에 없던 카테고리 상품을 개발했다.

4.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 끈질긴 도전을 통해 온라인 유통 플랫폼의 높은 진입 장벽을 뚫었다.

5. 대표와 팀장의 단순한 의사결정 라인을 기반으로 구성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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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홈푸드는 기업 간 거래(B2B) 조미식품 시장에서 지난 32년간 1인자 자리를 지켜 온 업계의 터줏대감이다. 굽네의 볼케이노, BHC의 뿌링클 등 인기 치킨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KFC,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와 유명 피자 프랜차이즈,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취급하는 웬만한 소스와 드레싱, 시즈닝 대부분을 동원홈푸드가 제조한다. 한국인이라면 이 회사가 만든 식품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처럼 소스로 사실상 한국인의 입맛을 정복한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동원홈푸드란 회사 이름 자체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국내 최고의 조미식품 연구개발(R&D) 노하우와 생산 인프라 등 차별화된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회사 이름을 내걸고 만든 독자적인 브랜드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1000여 개 식품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한 B2B 비즈니스가 탄탄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식품 시장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존 B2B 시장의 성장세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고객사의 요구 사항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패스트 팔로잉(fast following) 방식으로는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 성장의 페달을 밟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시장을 선도하는 리딩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제2의 성장 엔진을 만드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동원홈푸드가 B2C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처음으로 회사 이름을 걸고 내놓은 B2C 브랜드가 바로 ‘비비드키친(Vivid Kitchen)’이다. 국내 소스 시장 최초1 로 저칼로리 소스를 선보인 비비드키친은 2020년 출시 첫해부터 매년 꾸준히 2배 이상 안정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2024년에는 148억 원의 매출액으로 전년 대비 2.6배 성장하며 소스 시장에 저칼로리 열풍을 일으켰다. 동원홈푸드 조미사업본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0%가 채 안 되지만 핵심 사업인 B2B 사업과도 시너지를 내면서 사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또 K-푸드의 인기를 이어받아 2024년부터 해외 수출을 시작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다. 큰 조직, 기존 사업이 탄탄한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만큼 변하지 않으려는 관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동원홈푸드도 마찬가지였다. B2B 조미시장에서는 1등이었지만 B2C 시장에서는 신생 기업에 불과했다. B2B와 완전히 다른 성격인 B2C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상품 기획부터 연구개발, 생산, 물류 등 가치사슬의 전 단계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기존 B2B 비즈니스에 익숙한 구성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동원홈푸드가 이런 내부의 관성을 깨부수고 B2C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김민정 동원홈푸드 상무(브랜드전략실장)와 이충우 영업팀장 등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동원홈푸드의 B2C 소스 브랜드 비비드키친의 성장 스토리를 정리, 분석했다.


DBR mini box I

동원홈푸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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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설립된 동원홈푸드는 단체급식, 식자재유통 전문회사로 출발했다. 2007년 동원 F&B가 인수한 조미식품 전문회사인 삼조쎌텍이 2014년 동원홈푸드를 흡수합병하면서 조미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2015년 축산물 가공유통 업체인 금천, 2017년 온라인 가정간편식(HMR) 판매사인 더블유푸드마켓을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M&A)를 통해 축산사업부, HMR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동원홈푸드에서 조미사업을 담당하는 삼조쎌텍 사업부는 소스, 드레싱, 시즈닝 등을 주요 제품군으로 1000여 개의 고객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대부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외식 프랜차이즈에 소스와 드레싱류를, 식품 제조업체에 맛을 내는 원료를, 제빵업체에는 프리믹스류를, 커피 프랜차이즈에 시럽류 등을 제공한다. 특히 40명이 넘는 연구 인력을 갖추고 있는 식품과학연구소는 3000여 종의 원료와 3만 가지 이상의 레서피를 기반으로 고객사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최적의 맛을 구현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 조미식품 제조시설 중 최대 규모인 아산공장과 충주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충주 신공장은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국내 유일의 조미식품 전문 스마트팩토리이다.




외부 B2C 마케팅 전문가의 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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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동원홈푸드에 합류한 정문목 현 동원홈푸드 대표는 동원홈푸드가 B2B 업계 1위에 걸맞은 국내 최고의 조미식품 R&D와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시장에 안주해 성장이 정체된 것에 위기감을 느꼈다. 당시 국내 소스 시장의 성장세는 정체되고 있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소스 시장 규모는 2017년 1조6994억 원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으며 2018년 1조75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기존 B2B 소스 사업에서는 사실상 경쟁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가 어려웠다.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시장까지 진출하려면 동원홈푸드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내세운 강력한 B2C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B2B 사업에 집중해온 탓에 사내에 B2C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인력이 없었다. CJ푸드빌에서 7년간 일하면서 대표이사까지 지낸 정 대표가 사내 유일한 B2C 전문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외부 인재의 영입이 불가피했다. 이에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은 동원그룹 내 신사업에 도전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의지에서 정 대표가 직접 상품 개발, 마케팅 관련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도록 자율권을 부여하며 격려했다. 이처럼 혁신을 지향하는 그룹의 조직문화와 리더의 지원이 있었기에 기존에 없었던 마케팅 부서의 공백을 메꾸면서 창의적인 전략 기획과 실행이 가능한 사내 벤처 같은 마케팅팀 신설을 구상할 수 있었다.

정 대표는 CJ푸드빌 대표 시절, 뚜레쥬르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리뉴얼 담당 프로젝트 매니저로 함께 손발을 맞췄던 김민정 당시 팀장이 생각났다. 김 팀장(이하 김 상무)은 제일기획 출신으로 CJ푸드빌을 거쳐 현대카드에서 대형 브랜딩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었는데 디테일한 기획력과 추진력이 돋보이는 마케터였다.

정 대표의 영입 제안에 김 상무는 망설였다. 동원홈푸드라는 회사의 이름부터 낯설고 이 회사가 B2B 소스 업계 1위라는 얘기도 생소했다. 하지만 음식 맛의 핵심인 소스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만드는, ‘대한민국 식품 업계의 반도체’ 같은 회사라는 정 대표의 설명에 귀가 솔깃했다. 1990년대 피자헛, 도미노피자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소스를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하면서 글로벌 표준을 배우면서 성장한 회사였다. 앞으로는 한식 문화의 첨병으로 K-소스를 전 세계에 확산시킬 것이라는 강력한 비전이 마음을 흔들었다.

과거 CJ푸드빌 시절 경험한 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도 컸다. 브랜딩은 분석과 기획 과정에서 그 성과가 당장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케터 입장에서 리더를 설득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어렵다. 대기업의 대형 브랜드 담당자로 오래 일해온 김 상무도 층층시하의 보고 문화에 지친 한편 새로운 도전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김 상무가 경험한 정 대표는 수평적인 소통에 능한 실무형 리더였다. 김 상무는 “대표님은 실장, 본부장 등 상사와 함께 보고를 들어가면 항상 실무 팀장인 내 의견을 묻고 발언하게 하는 분이었다”며 “현장의 의견을 중시하는 리더의 신뢰가 뒷받침된다면 내 아이디어가 충분히 반영된 브랜드를 제대로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 상무는 2019년 8월 대표이사 직속의 신설 조직인 마케팅팀 팀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글로벌 브랜드를 키워보겠다는 리더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그가 당시 회사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훨씬 더 녹록지 않았다. B2C 비즈니스를 운영할 기반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 상무가 맡게 된 신설 마케팅팀의 팀원은 1년 차 신입 마케터 한 명뿐이었다. 사실상 김 상무가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구축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품기획은 김 상무가 직접 팀원을 가르치면서 할 수 있었지만 생산, 영업, 물류 등은 각기 다른 부서의 담당자들을 만나 업무 협조를 구해야 했다.


저칼로리/저당 소스로 콘셉트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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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기획은 B2C 브랜딩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김 상무가 가장 자신 있게 생각하는 일이었다. 우선 동원홈푸드가 소스에 대한 독보적인 전문성과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회사라는 점을 기반으로 소스 제조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객 가치를 제공하는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다채로우면서(vivid)’ 뛰어난 맛으로 소스뿐 아니라 다양한 요리를 포함한 즐거운 ‘식사(kitchen)’를 제공하겠다는 넓은 의미를 담아 김 상무가 직접 브랜드명을 ‘비비드키친’이라고 정했다.

당시 B2C 소스 시장에서 케첩과 마요네즈는 오뚜기가, 한식 소스는 CJ제일제당의 백설과 다담이 석권하고 있었다. 카테고리별로 봤을 때 소스 시장은 이미 수많은 브랜드가 혈투를 벌이고 있는 레드오션이었다. 기존의 카테고리에서는 차별화가 어렵다고 판단한 김 상무는 기능성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들의 행태 변화를 분석한 결과 식품 분야에서 컬리를 필두로 온라인 유통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컬리의 고객이기도 했던 김 상무는 앞으로 온라인 식품 유통 시장이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변화는 B2C 오프라인 영업 경험이 전혀 없는 동원홈푸드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온라인을 통해 식품을 주로 구매하는 젊은 여성 소비자로 타깃을 좁혔다. 그리고 이들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이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저칼로리, 저당, 비건 등의 건강한 다이어트 소스를 만들기로 제품 콘셉트를 구체화했다. 제로콜라 같은 저칼로리 음료가 시중에 나와 있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 같은 콘셉트의 제품은 지금처럼 대중화돼 있지 않았다.

2020년 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발발한 것은 이런 아이디어에 날개를 달았다. 거리두기 규제로 인해 오프라인 장보기에 제한이 생기면서 온라인 식품 유통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웰니스(wellness)’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건강하게 식사를 즐긴다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가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건강식과 음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김 상무는 “결과적으로 되돌아봤을 때 트렌드 덕을 본 셈이 됐지만 기획 단계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기획했던 콘셉트가 이처럼 빠르게 확산될 줄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안 된다’는 부정적 인식을 바꾸다

코로나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보다 더 큰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김 상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구성원이 B2C 시장 진출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전에 시도해봤다” “해봐도 안 될 것이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심지어 “잘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30년간 B2B 비즈니스에만 올인해왔기에 우리 회사가 직접 B2C 제품을 생산해 판매한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R&D(연구개발)부터 영업, 물류, 생산 관련 인프라와 업무 방식이 전적으로 B2B 고객사의 요구 사항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최적화돼 있었다. 구성원들은 잘 알려진 고객사가 아니라 잠재적인 대중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어떤 가치를 선도적으로 제안할지 등을 능동적으로 고민할 기회나 계기가 그동안 없었다. 오랜 업력의 탄탄한 핵심 사업이 역설적으로 구성원들의 새로운 사고와 도전을 방해하는 형국이었다.

예컨대 공장의 생산 라인은 1000여 개의 고객사 요구에 따라 맞춤 제작해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최적화돼 있었다. 최대 20㎏의 벌크 포장이 중심이라 B2C 제품에 맞는 병 라인의 생산 능력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물류 시스템도 B2B 고객사가 발주하면 특정 제품이 정해진 루트대로 배송되도록 돼 있어서 한곳에서 재고를 관리하면서 여러 유통 채널로 배송하는 B2C 배송이 불가능했다. B2B 고객사 주문에 기반한 생산과 배송에 익숙한 담당자들은 당장 매출이 불확실한, 즉 언제 팔릴지 모르는 B2C 제품을 대량 생산해 재고를 쌓아두고 보관 비용 등을 감수하면서 배송하는 B2C 운영 시스템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김 상무는 구성원들과 대화부터 시작했다. 영업, 생산, R&D, 물류 담당 부서의 팀장 40여 명을 최대한 자주 만났다. 김 상무는 “과거 어려운 클라이언트를 상대했을 때처럼 우리 구성원들이 느끼는 고충이 무엇인지를 듣고 또 듣고 공부하면서 문제의 해결 고리를 하나둘씩 찾아 나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충우 당시 영업1팀장이 사회 초년생 시절, 다른 회사에서 B2C 영업을 해봤고 또 당시 영업1팀에서 이마트 같은 할인마트 PB영업을 담당한 덕에 B2C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상무가 이 팀장에게 파트너로 함께 일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렇게 마케팅과 영업 전문가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면서 업무가 하나둘씩 진척되기 시작했다. 15년 차 영업맨인 이 팀장은 생산, 물류 등 사내 B2B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이를 바탕으로 신생 마케팅팀과 다른 팀을 이어주는 ‘연결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마케팅팀은 매주 이 팀장과 정기적으로 만나 공장과 물류 시스템에 대해 학습하고, 이 팀장은 마케팅팀의 아이디어를 생산, 물류 등에 전달하고 설득했다. 예컨대 생산 담당자가 당장 B2B 고객사를 챙기는 게 더 급하다며 비비드키친 브랜드 제품 생산에 소극적이면 “우리도 (컬리 같은) 거래처가 원하는 발주 일자에 맞춰 달라고 한다”고 주문하는 식으로 시급성을 전달했다. 이 팀장은 “B2C에서는 당연한 일이 B2B 영역에서만 오랫동안 종사한 구성원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며 “하지만 그들에게 익숙한 구조와 언어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김 상무도 구성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고충들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동원홈푸드는 식자재, 푸드서비스, 외식매장 등 사업부별로 영업 경로가 다르고 각각 다른 발주 시스템과 물류센터를 활용하고 있었다. 예컨대 조미사업부의 영업사원이 식자재사업부의 ‘비셰프’ 돈가스를 팔고 싶어도 발주 시스템이 달라서 팔 수 없었다. 이런 영업 담당 직원의 고충을 들은 김 상무는 모든 발주 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은 당장 어렵지만 제품이 필요한 고객사가 있는 경우 다른 사업부의 발주 시스템에 등록시키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냈다. 기존 구성원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기존 시스템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김 상무를 지켜보면서 구성원들도 하나둘씩 마케팅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R&D, 핵심 역량의 재발견

지난 30년간 1000여 개 고객사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요구에 대응하면서 식품과학연구소가 축적한 조미 R&D 역량은 B2B 1위의 자리를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만든 동원홈푸드의 핵심 경쟁력이다. 김 상무는 “연구소에 샘플을 제시했더니 먹어보고 바로 똑같은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동안 다른 회사의 주문을 받아 제조하면서 이런 내재된 경쟁력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우리의 잠재적 역량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케팅팀에서 저칼로리 저당 소스를 구현해 달라고 연구소에 제안하자 연구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설탕보다 감미도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당류 함량이 현저히 적은 알룰로스2 를 설탕의 대안 원료로 제시했다. 마침 전년도에 삼양사에서 자체 개발한 알룰로스를 연구소에 원료로 제안해 와 어디에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차였다. 연구소 역시 그동안 영업조직이 받아온 B2B 고객사의 요구 사항 중심으로 연구에 나서는 방식이 일반적이었기에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마케팅팀의 제안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마케팅팀과 연구소는 타깃 소비자의 수요와 취향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수십 차례에 걸쳐 사내 관능 테스트를 진행했다. 특히 가장 중요하게 내세웠던 원칙은 저칼로리, 저당이면서도 기존 제품과 맛은 똑같거나 오히려 훨씬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칼로리가 낮으면 맛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훨씬 더 큰 고객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 대표도 관능 테스트에 직접 참여하면서 맛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3개월 만에 케첩, 머스터드, 스위트칠리, 바베큐 등 4종의 저칼로리 저당 소스3 를 개발했다. 최대 1년이 걸리는 기존 신제품 R&D 속도에 비하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 편이었다. 마케팅팀에서 수립한 콘셉트와 세부 스펙이 명확했고 연구소에서 타이밍 좋게 확보해 놓은 알룰로스 원료와 그동안 축적된 원료 배합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비비드키친 소스를 처음 맛본 소비자들의 반응 중 가장 많은 것이 “평소 먹던 양념치킨 맛이랑 똑같은데 어떻게 저칼로리죠?”라는 놀라움이었다. 김 상무는 “이런 맛이 가능한 것은 B2B 소스 1위 업계 회사로 연구소가 1000여 곳의 고객사를 상대하면서 축적한 원료와 3만여 가지 레서피 덕분”이라며 “다른 회사에서 카피 제품을 만들더라도 이런 탁월한 맛은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온라인 초짜가 컬리를 뚫은 비결

저칼로리 R&D에 성공한 뒤 맞닥뜨린 다음 도전 과제는 영업이었다. 20여 년의 영업 경력을 자랑하는 이 팀장도 온라인 영업은 처음이라 소위 ‘생초짜’였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컬리가 온라인 식품 유통 분야에서 가장 잘나가던 때였다. 비비드키친도 어떻게든 컬리를 뚫어야 했다. 신생 브랜드지만 컬리의 까다로운 입점 절차를 통과하기만 하면 쿠팡 등 다른 온라인 마켓에도 쉽게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영업팀의 관심은 온통 컬리를 어떻게 뚫을지에 집중됐다. 하지만 아무도 방법을 몰랐다. 기존에 B2B 영업에서 하던 방식대로 우선 주변 네트워크를 수소문했다. 연결이 안 되자 윗선에서는 컬리 대표의 주변인들을 접촉해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래도 성과가 없었다. “컬리는 이제 새로운 입점을 안 받는다더라” “벤더 없이는 입점이 안 된다더라” 하는 뜬소문까지 돌면서 팀 분위기도 자꾸만 가라앉았다. 그동안의 상품기획과 R&D 노력이 물거품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모두가 속절없이 시간을 보내며 속을 태우고 있을 때 이충우 팀장은 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그는 “컬리 MD라면 네트워크를 통해서보다 본인이 직접 브랜드를 발굴해 소싱하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해 어떻게 하면 MD가 우리 브랜드를 발견하게끔 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봤다”고 말했다. 그는 마켓컬리 홈페이지 입점 신청란을 통해 입점 신청서를 올렸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예상한 바였다. 여기서 한 가지 수를 더 썼다. 이틀 후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입점 신청을 올렸는데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문의했다. 고객센터라면 소비자보호법상 회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고객센터에서 “빠르게 검토해 회신하겠다”는 의례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다른 답변이 없었다. 이 팀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입점 신청을 했다. 역시나 답변이 없자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고 “정말 죄송하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세 번째로 입점 신청을 하고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지난 문의를 기억했는지 “MD가 7일 내 답변하는 게 원칙인데 아무런 말이 없었냐”며 “MD한테 빨리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5일이 지난 날, 드디어 컬리 MD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는 데 성공했다. 3개월에 걸친 끈질긴 시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 팀장은 “컬리 MD에게서 메일이 왔음을 확인하고 클릭했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제안서를 잘 받았고 컬리 콘셉트와 너무나 잘 맞는 제품이니 빨리 미팅하자는 내용을 보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고 말했다. 김 상무도 브랜드 론칭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컬리와 미팅이 잡혔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때를 꼽았다. 그는 “비록 경험과 네트워크가 없더라도 기본에 충실한 정공법으로 노력하면 통할 수 있다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바로 컬리와의 미팅을 진행했고 우수한 제품력을 인정받은 비비드키친은 2020년 8월 27일 국내 최초로 저칼로리 소스를 컬리에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컬리를 시작으로 쿠팡과 네이버스토어까지 진출하면서 온라인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했다. 2023년에는 팬데믹 종식이 선언되면서 오프라인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는 데 발맞춰 이마트, 홈플러스, 백화점 등 오프라인으로도 입점을 확대했다.


팀은 유연하게,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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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무는 비비드키친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빠르게 론칭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 중 하나로 스타트업처럼 수평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꼽았다. 팀장과 신입 마케터 1명으로 시작한 마케팅팀은 브랜드의 국내 매출 성장과 더불어 해외 진출까지 추진하면서 2025년 브랜드전략실로 격상됐고 팀원도 마케터와 영업, 디자이너를 포함해 13명으로 늘어났다. 조직은 커졌지만 6년 전 팀이 신설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의사결정 라인은 김 상무와 정 대표 2명뿐이다. 중요한 전략적 방향성을 결정해야 할 때마다 수시로 김 상무가 담당 실무자와 함께 대표를 찾아가 빠르게 결재를 받고 추진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김 상무는 “브랜드를 론칭하는 과정, 과정마다 대표이사의 의견을 듣고 진행하기 때문에 나중에 의사결정자의 마음이 갑자기 바뀔 것을 대비해 대안을 준비하거나 하는 식의 불필요한 업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가 보고 내용을 확인하고 이견이 없는 경우 실무 담당자가 혼자 직접 대표에게 보고하는 경우도 많다.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구성원들이 낸 새로운 아이디어도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다. 김 상무는 “일례로 2024년 출시된 치폴레 소스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맛이라며 막내 팀원이 낸 아이디어였는데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바로 R&D에 얘기해 샘플을 받고 사내 관능 테스트를 거쳤다”며 “대표이사에게 보고해 최종 출시를 결정하는 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갈릭디핑, 홀스래디시 저당 소스 같은 신제품이 고객 니즈보다 한발짝 일찍 나올 수 있었던 비결도 팀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행시키는 의사결정 체계가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보통 대표이사 보고에서 의사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은 실제 30분이 안 걸린다고 한다.

브랜드전략실은 역할과 책임(R&R)에 칸막이를 두지 않은 채 어젠다와 목표 중심으로 수시로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특정 소스 담당 혹은 국내/해외시장 담당 등으로 업무를 구분하지 않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필요한 역량을 가진 인력으로 팀을 구성해 문제 해결에 올인하는 식이다. 특히 2023년 하반기부터 마케팅팀이 해외 수출 사업까지 담당하면서 업무 영역이 크게 확장되고 조직 규모 대비 다뤄야 할 이슈가 늘어났다. 김 상무는 “조직 규모에 비해 소화해야 할 어젠다가 많다 보니 이슈가 생길 때마다 꼭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프로젝트에 참여해 함께 해결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인력도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면서 필요한 역량이 생길 때마다 ‘외인부대’처럼 사내 리크루팅을 통해 수시로 충원했다. 브랜드전략실에서 추진하는 업무 대부분이 신사업이기에 경력보다는 기능(skill) 중심으로 인력을 충원한다. 예컨대 B2B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출 인력이 필요하면 국내 B2B 영업 업무를 담당했고, 무역학과 출신이고, 영어 소통 능력이 있는 직원을 선발하는 식이다. 비비드키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사내에서도 B2B 비즈니스에서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젊은 직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김 상무는 “경력이 없더라도 관련 시장에 대한 이해도와 도전과 학습 욕구가 강한 구성원들이 열정적으로 이전에 해보지 않은 새롭고 다양한 업무에 임하면서 각 개인의 역량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고 없이도 성장이 가능하다

코로나 사태는 잠잠해졌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제로콜라를 비롯한 저칼로리, 저당 식품의 인기가 폭발했다. 건강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일명 헬시플레저 열풍을 타면서 비비드키친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유튜브에 인플루언서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게시물이 늘어났는데 팔로우가 많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일 매출이 10배 이상 뛸 정도로 소비자들의 입소문 효과가 컸다. 동원홈푸드에 따르면 고객이 자발적으로 올린 유튜브 게시물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635개였으며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2023년까지 4737개에 달했다. 김 상무는 “고객이 스스로 제품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일명 모디슈머(Modisumer, Modify+Consumer) 트렌드를 실감했다”며 “그 덕분에 큰 광고비를 쓰지 않고도 유기적으로 매출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당초 저칼로리와 저당 소스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다이어트 식품으로 기획됐는데 시간이 갈수록 입소문을 타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고객층이 전 세대로 확장됐다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남성들이 “저칼로리 소스 10가지 맛을 번갈아 먹으면서 닭가슴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등의 후기들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 비비드키친 네이버 스토어 구매 고객 분석 결과 26∼45세 여성이 66%로 가장 많았지만 남성 고객도 20%에 달했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건강식 혹은 노년층을 위한 질병이나 건강관리용으로 전 세대에 걸쳐 저당 돈까스 소스, 저당 갈릭디핑 소스 같은 일상식 소스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비비드키친 인스타 팔로워 계정을 분석한 결과 저칼로리 소스를 찾는 이유로 식단관리(다이어트)가 68%로 가장 많았지만 다음으로 아이 건강을 생각한다는 의견이 20%로 많았으며 질병 관리, 건강관리를 위해 먹는다는 답이 그 뒤를 이었다.

2024년에는 첫 TV 대중 광고를 진행하면서 “맛있는 저칼로리 소스=비비드키친”이라는 포지셔닝을 강화하고 인지도를 높였다. 흥미로운 점은 비비드키친의 연간 매출이 광고 여부와 무관하게 2021년 이후 매년 2배가량 꾸준히 성장하는 흐름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상무는 “기존 고객의 충성도가 유지되면서 신규 고객이 유입되는 누적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트렌드의 흐름을 탄 덕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뛰어난 제품력을 통해 고객을 만족시킨 성과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B2B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비비드키친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면서 사내 기존 B2B 영업사원들의 관심도 커졌다. 과거에는 고객들의 요구 사항을 받아서 대응하는 데 급급했던 직원들이 이제는 먼저 자사 브랜드인 비비드키친을 홍보하면서 우수한 제품력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B2B 고객사들도 저칼로리, 저당 식품에 대한 새로운 고객 수요를 확인하면서 B2B 사업부에 저칼로리, 저당 원료를 요청했다. 실제로 카페 프랜차이즈 등에 저칼로리 음료 베이스를 새롭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B2B 브랜드가 B2C 비즈니스에도 새로운 고객 수요를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B2B 비즈니스는 무조건 ‘거래처 우선’이다 보니 직원들이 더 넓은 고객과 시장 관점에서 진취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B2C 브랜드는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해 고객의 새로운 니즈와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는 것이 핵심이다. 비비드키친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직원들도 하나둘씩 어떻게 우리 회사 브랜드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B2B 영업의 경우 고객사 제품이기 때문에 제품을 일단 납품하고 나면 그 제품에 관심을 가질 유인이 떨어진다. 하지만 B2C 브랜드는 우리 회사가 만든 우리 제품이기 때문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발전시킬 동기가 훨씬 커진다. 이충우 팀장은 “B2C의 첫 번째 고객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돼야 한다”며 “B2C 영업을 하면서 주인 정신을 갖고 고객 입장에서 문제를 발견해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진출과 브랜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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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드키친은 국내에서 굳힌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최근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건강을 중요시하는, 일명 BFY(Better For You) 식품4 이 인기를 끈 데 이어 최근 K-푸드 열풍에 힘입어 K-소스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세계 소스(조미료 포함) 시장은 2024년 433억 달러에서 2030년 600억 달러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비드키친은 2023년부터 독일 아누가, 미국 애너하임 등 글로벌 식품박람회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저칼로리와 비건 소스, 한식 퓨전 소스 등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비비드키친의 저칼로리, 저당 소스는 미국,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 7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김 상무는 “K-푸드가 인기를 끌면서 해외 식당이나 가정에서 소스를 활용해 좀 더 쉽게 김치 같은 K-푸드를 체험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실제 박람회에서 만난 고객들은 더 맵고 더 한국적인 맛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 거듭나 K-컬처에서 K-푸드로 넘어간 한류 열풍을 이제 K-소스로 증폭시켜 나겠다는 것이 비비드키친의 새로운 포부다.

글로벌 제품은 국내처럼 저칼로리, 저당 혹은 비건으로 건강에 좋은 동시에 세계인들이 한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국식 발효식품을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이 한국식 발효식품의 대명사인 김치와 치폴레 고추를 접목해 개발한 ‘김치 치폴레 마요 소스’ ‘김치 살사 소스’ ‘코리안 쌈장 BBQ소스’ 등이다. 또한 한국에서 인기 있는 소스 혹은 한국에서 먹었던 치킨, 떡볶이 같은 인기 음식을 해외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코리안 치킨 소스’ ‘파이어 핫 소스’ ‘불고기 BBQ 소스’ 등도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SNS에 외국인이 프라이드치킨이나 햄버거 같은 현지 음식에 김치 치폴레 마요나 코리안 치킨 소스를 뿌려 맛보는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외국인들이 현지에서 직접 어렵게 한식을 요리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즐겨 먹는 햄버거, 샌드위치, 파스타 등에 비비드키친 소스를 뿌려 먹으면서 쉽고 건강하게 한식을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K-문화의 일환으로 한국 편의점에서 즐겨 먹는 다양한 맛의 제로 슈거 음료도 수출하고 있다.

동원홈푸드는 비비드키친의 브랜드 고객 경험을 저칼로리, 저당에서 더 나아가 건강한 식생활을 돕는 브랜드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김 상무는 “지금까지는 소스에서 해로운 것, 예컨대 당을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더 좋은 성분을 더해서 소스가 있기 때문에 야채를 더 먹고, 건강한 집밥을 더 자주 먹고 싶어지는 식의 새로운 가치를 고객에게 제안하고 싶다”며 “소스를 통해 더 건강한 식생활을 추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소스 시장의 판도를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외부서 ‘변화관리자’ 수혈… 기존 방식에 젖는 ‘성공의 함정’ 극복


김희천 캐나다 캘거리대 경영대학 교수 heechun.kim@ucalgary.ca


히트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실패하는 신제품이 더 많다. 2004년 6월, 코카콜라는 건강을 중시하는 남성들을 위한 새로운 콜라 ‘C2’를 출시했다. 기존 코카콜라의 단맛을 유지하면서도 칼로리와 탄수화물을 약 50% 줄인 제품으로 칼로리와 탄수화물을 낮추고 싶지만 다이어트 코크(Diet Coke)의 맛이나 여성적인 이미지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20∼40세 남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했다. 코카콜라는 하이브리드 성격을 지닌 C2가 22년 전 출시된 다이어트 코크(Diet Coke) 이후 콜라 업계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킬 제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C2는 당시 유행하던 아트킨스식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열풍이 점차 식어갈 무렵에 일반 코카콜라보다 높은 가격에 출시됐으며 C2 고객 중 15%는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던 사람들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5000만 달러 규모의 공격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C2는 2007년 단종됐다. 실패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애매한 포지셔닝이었다. 남성들은 일반 코카콜라나 다이어트 코크 대신 값비싼 하이브리드 탄산음료를 선택할 명확한 이점을 찾지 못했다. 그들은 칼로리와 탄수화물이 전혀 없는 진한 맛을 원했지 칼로리와 탄수화물이 절반인 음료는 원하지 않았다. 남성 소비자 니즈에 대한 오판으로 인해 결국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그렇다면 동원홈푸드가 새롭게 출시한 B2C 브랜드 비비드키친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성공 요인: 시장과 조직 관점의 분석

1. 정확한 타이밍의 승부수, 타깃 고객층의 문제를 해결

동원홈푸드는 단순히 비비드키친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가정에서 사용하는 B2C 소스 시장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했다. 특히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야외 활동이 제한되면서 운동량 감소와 체중 증가 문제가 심화됐고 이에 따라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집밥 문화가 확산되면서 젊은 여성들(20∼40세) 사이에서 식단 관리에 대한 니즈가 높아졌고 이는 기존 소스 업체들이 간과해온 시장의 요구였다. 동원홈푸드는 이러한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해 알룰로스를 첨가한 저칼로리·저당 소스를 개발함으로써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경쟁이 치열한 B2C 소스 시장에서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국내 B2C 소스 시장은 CJ제일제당, 청정원, 오뚜기, 풀무원, 샘표 등 전통 강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레드오션이었다. 다른 한편 삼양식품, 교촌에프앤비 등 신규 진입자들에게 소스 시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을 주도한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액상 소스의 단독 출시를 요청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2018년 ‘불닭소스’를 정식 출시하며 소스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기존의 소스 업체들은 새롭고 독특한 소스를 개발해 소비자의 미각을 잡으려 한 반면 식단 관리를 고려한 건강 소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반면 신규 진입자인 동원홈푸드는 이러한 공백을 기회로 활용해 건강식 트렌드를 반영한 저칼로리·저당 소스라는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2. 외부인이 던진 한 수, B2C 시장의 문을 열어

전형적인 B2B 기업이었던 동원홈푸드는 조미사업의 B2B 시장에서 절대 강자였지만 성장 정체에 빠졌다. 2018년 동원홈푸드에 합류한 정문목 현 동원홈푸드 대표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B2C 시장으로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했지만 조직 내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동원홈푸드는 오랫동안 B2B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으며 기존의 프로세스, 문화, 의사결정 구조가 B2B 모델에 최적화돼 있었다. 직원들은 전혀 다른 시장 논리가 적용되는 B2C 시장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현상은 경영학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으로 설명될 수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이 강할수록 조직은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데 보수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동원홈푸드 역시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오히려 B2B 시장에서의 성공 경험이 조직의 시야를 제한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정 대표는 이런 조직의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변화관리자(change agent)’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내부의 반발과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장 논리를 도입하기 위해 그는 B2C 시장 경험이 풍부한 외부 인재를 영입해 변화를 주도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동원홈푸드는 내부의 사고방식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며 B2C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향후 과제

1. 격전이 예상되는 국내 시장에서 선점 효과를 지켜라

동원홈푸드는 2020년 8월 ‘비비드키친’을 론칭하고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같은 전통적인 소스부터 비빔장·쌈장·고추장 등 한식 소스, 돈까스·바베큐·칠리 등 양식 소스, 짜장·짬뽕·마라 등 중식 소스, 샐러드드레싱 등 마니아층을 겨냥한 제품까지 라인업을 확장하며 국내 B2C 시장에서 선점 효과(first-mover advantage)를 확보했다. 이 같은 선점 효과는 얼마나 오랫동안 누릴 수 있을까?

우선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가 확산되고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집밥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국내 저칼로리·저당 소스 시장도 당분간 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오뚜기, 팔도, 마이노멀컴퍼니 등 경쟁 업체들이 유사한 제품을 속속 출시하며 시장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CJ제일제당의 시장 참여가 동원홈푸드의 경쟁 우위 유지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CJ제일제당은 2015년 세계 최초로 알룰로스를 대량 생산하며 상용화에 성공했고 2016년 9월 ‘백설 스위트리(Sweetree)’라는 브랜드를 통해 분말 및 액상 형태의 대체 감미료를 선보이며 국내 B2B 당류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했다. 하지만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CJ제일제당의 대체 감미료 사업이 유전자변형작물(GMO) 상용화의 대표 사례로 지적되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CJ제일제당 측은 2019년부터 사업성을 이유로 대체 감미료 사업을 점차 축소하더니 결국 완전히 철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내 대체 감미료 시장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데다 알룰로스의 단가가 설탕보다 3∼6배 비싸다는 점에서 채산성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헬시플레저 문화와 제로 열풍이 확산되자 CJ제일제당 역시 알룰로스를 활용한 다양한 저칼로리·저당 소스를 출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동원홈푸드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동원홈푸드가 소스의 핵심 원료인 알룰로스를 자체 생산하지 않고 삼양사가 2016년 개발해 2020년부터 양산한 제품을 원료로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 내 경쟁 구도 및 소비 트렌드 변화 속에서 동원홈푸드가 선점 효과를 유지하려면 다음의 전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강력한 브랜드 전략이 필수적이다.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을 위해 스타 셰프와 협업한 제품을 선보이거나 건강한 집밥 문화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도 브랜드 스토리텔링 차원에서 효과적일 것이다. 둘째, 외형과 내실을 모두 갖춘 수익성 있는 성장을 위해 공급망 전략이 중요하다. 알룰로스와 같은 핵심 원료의 자체 생산을 고려하거나 공급선 다변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셋째, 장기적으로 건강을 고려한 혁신적인 소스 제품군을 확대해야 한다. 동원홈푸드는 “국민 건강을 위해 식문화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 갑니다”라고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에 부합하는 조미사업을 전개하려면 단순히 저칼로리·저당 제품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프로틴(단백질) 강화 소스, 면역력 증진 성분을 포함한 소스 등 기능성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2. 신중하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라

동원홈푸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며 그중 하나로 비비드키친을 앞세운 글로벌 시장 공략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2024년 2월부터 호주, 미국, 캐나다, 베트남, 홍콩 등지에 자사 소스를 본격적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현재 한인마트 및 아시안마트를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 동원홈푸드는 비비드키친이 한국 소스로서 저칼로리·저당 제품임을 해외 소비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소스 제품은 매운맛이 특징인 라면이나 김치와 달리 K-푸드의 대표적인 카테고리로 인식되지 않는다. 즉 해외 소비자들이 단순히 한국산 소스라는 이유만으로 구매할 가능성은 낮으며 K-푸드가 지닌 전반적인 프리미엄 효과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는 이미 무열량(칼로리 프리), 무당(슈거 프리) 소스 등 다양한 대체 제품이 넘쳐나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에서도 비비드키친보다 저렴한 제품이 많아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설탕 대신 알룰로스를 사용해 칼로리를 낮춘 저당 소스임을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울 수 있지만 해외시장에서는 이러한 차별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동원홈푸드는 무리한 글로벌 확장을 경계하고 전략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 첫째, 차별화된 시그니처 소스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단순히 ‘저당 소스’라는 점을 강조하기보다 K-푸드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현지 시장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시그니처 소스 개발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식 특유의 맛을 살린 퓨전 소스를 중심으로 이미 현지에서 조금씩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러한 노력을 강화함으로써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욱 확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 각 국가와 지역의 문화적 취향에 맞춘 제품 라인업을 구축하고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맞춤형 마케팅을 전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미 시장에서는 바비큐 소스 및 샐러드드레싱 등 현지 소비 트렌드에 맞춘 소스 제품을 강화하고 동남아 시장에서는 한식 붐을 활용해 비빔장과 고추장소스 등의 제품군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동원홈푸드는 소스 자체의 기능적 차별화뿐만 아니라 K-푸드의 강점을 살린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현지 맞춤형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양대 경영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전략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아주립대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전략 및 국제경영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Organization Science,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등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 기업들의 성장 전략과 당면 과제를 다룬 책 『Routledge Handbook of Korean Business and Management』를 공동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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