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월드컵 열기가 기대되는 때가 왔다. 재기한 라이언킹 이동국, 프리미어 리거 이청용이 상대편 골문을 위협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묘한 흥분에 휩싸인다. 이즈음에서 잠시 진부한 질문 한 가지를 던져보자. 축구경기에서 스타 플레이어의 개인기가 팀 승리에 기여하는 수준은 얼마나 될까? 간단한 산수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 축구는 90분간 진행되고 11명으로 이루어진 2개 팀이 경기하며 공은 하나다. 한 선수가 공을 잡고 개인 기량을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은 통계적으로 5분이 채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스타라도 한 경기를 치르는 동안 85분은 공을 갖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관중은 스타가 공을 잡고 화려한 개인기를 펼치는 5분에 열광하겠지만, 실상 그 5분이 승패를 가늠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공을 갖고 있지 않은 85분 동안 11명 모두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2호를 읽으면서 필자는 공을 가지고 있을 때의 화려한 5분보다 공을 가지지 않은 85분 동안의 성실함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공급망 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가 바로 그러한 영역이다. 광고라는 예술적 업무가 존재하는 마케팅이나 치열한 전쟁에 해당하는 영업에 비해 SCM은 이목을 끄는 화려함이 없다. 그러나 SCM에 강한 회사만이 탄탄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마케팅이나 영업의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DBR은 예리한 분석과 적절한 예시를 통해 증명해주었다.
2000년대 들어 SCM 혁신 사례로 각광받던 델은 직접 판매 모델(Direct Model)로 2004년 전 세계 PC 시장 1위까지 등극했다. 그러나 기업, 정부 등 대규모 PC 구매 고객에 초점을 둔 공급망 운영은 저가 노트북을 선호하는 개인 고객 위주로 재편되는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세계 1위 도요타 자동차의 위기는 SCM 관리가 시스템 설계 역량에 의해서만 풀리는 것이 아닌 보다 복잡한 조직 관리의 함수임을 가르쳐준다. 델과 도요타 자동차의 사례에서 필자는 화려함에 도취되어 성실함을 잃어버린 스타 플레이어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고, 나와 내 조직의 상태를 점검해보기로 마음먹었다. 90분 내내 성실히 뛰는 산소탱크 박지성을 더욱 열심히 응원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신선한 자극을 준 DBR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