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세기는 끝나지 않았다

136호 (2013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2 11월 호에 실린 월터 키쉘 Ⅲ(Walter Kiechel Ⅲ)의 글 ‘The Age of Strategy’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12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이 세상에 최초로 경영의 세기가 도래한 때와 장소를 꼽으라면 1886 5월의 시카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그곳에 설립된 미국기계학회(American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s)에서 예일 록 매뉴팩처링 컴퍼니(Yale Lock Manufacturing Company)의 공동 설립자인 헨리 타운(Herny R. Towne)경제학자로서의 기술자(The Engineer as an Economist)’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타운은일찍이 훌륭한 기술자와 기업가는 존재했지만 훌륭한 기술자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기업가인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노동의 경영은 너무 위대하고 중요해 현대 예술로 분류할 수 있을 법한 것이 됐다고 강조했다.

 

타운의 연설은 최소 세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현실을 예고했다. 그는 최초로 경영을 연구했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로 여겼다. 당시 청중은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에게 경제란 제한된 자원으로 최상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했다.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부터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톰 피터스(Tom Peters), 그리고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에 이르는 물질 세계의 전문가들이 앞으로 펼쳐질 경영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었다.

 

타운은 시대의 흐름을 좇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 이후 한 세기 동안 경영이 생성됐고 우리가 일하는 이 세계를 형성했다. 188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 시대가 등장했다. 첫 번째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다. 과학의 정밀함이 스스로를 경영 엘리트라 칭했던 새로운 사람들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줬다. 두 번째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80년까지로, 선의의 관리주의 시대다. 자신감과 폭넓은 지지가 극에 달했던 때이기도 하다. 세 번째 시대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일종의 후퇴기라고 부를 수 있다. 전문화와 시장 원리에 대한 복종, 도덕적 야망의 축소 등이 특징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 세계적인 승리의 시대이기도 하다. 핵심 아이디어에 대한 합의와 꾸준히 증가하는 생산성, MBA 학위의 세계적 득세, 노동자 처우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 상승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인이나 일부 영어권 사람들이 경영의 시대 초반을 지배했다. 그들의 사상이 가장 넓게 통용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외도 존재한다. 1908년 프랑스에서 가장 큰 채굴 회사 중 하나를 운영했던 기술자 헨리 페이욜(Henri Fayol)이 경영의 법칙들을 열거한 바 있다. 계급적인 명령 체계와 기능의 분리, 기획과 예산 측정의 중요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1916년 그의 위대한 저작 <산업의 일반관리론(Administration Industrielle et Generale)>이 번역돼 프랑스 외 지역에도 영향을 끼치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세계화는 경영적 사고에 대해 더 다양한 소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직 미국에 국한된다. (‘전 세계적인 편협성에서 벗어나자를 보라.)

 

 

 

‘과학적 경영의 시대

 

19세기를 마무리하는 20년 동안 미국은 작은 마을과 작은 사업, 농업들이 느슨하게 연결된 세계에서 철도를 통해 도시와 공장, 대규모 회사들의 산업화된 네트워크로 변해가고 있었다. 새롭게 부상한 중산계층은 전문화했다. 초기 미국의학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와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부패한 정치적 지도자들과 악덕 자본가처럼 석유나 철강 같은 산업을 통합하기 바빴던 자본주의자들에게는 진보적 압박이 가해졌다. 진보주의자들은 과학에 뿌리를 두고 실제 작업 절차에서 발견한 지혜를 주장했다. 프레드릭 테일러는훌륭한 경영은 진정한 과학이며 명확히 정의된 법칙과 규율, 원칙에 의거한다라고 선언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루이스 브랜디즈(Louis Brandeis)나 아이다 타벨(Ida Tarbell)과 같음을 분명히 했다. 그가 공언한 목표는관리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공정한 책임 분배를 통해고용주를 위한 최대 이익과 피고용자 개개인을 위한 최대 이익을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노동자의 잠재적 공헌에 대한 테일러의 생각을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그의 말을 다시 풀이해보자면 노동자는 최적의 효율을 위해 경영자가 분석하고 설계한 프로세스를 따라 일해야 한다. 이를 위한단 한 가지 최선의 방법은 노동자가 주어진 기간 내에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내는 것이다.

 

1911년 출판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의 제원리(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는 본래 미국기계학회에 선보여진 것이다. 1923년 영국인 올리브 셸든(Oliver Sheldon)의 표현을 빌자면 이는생산의 물질(things of production)’생산의 인간성(humanity of production)’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한 난제를 던진 것과 같았다. 다른 이들은 이를숫자로서의 사람들(numbers people)’인격체로서의 사람들(people people)’ 간의 균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경영적 사고를 규정하는 핵심 긴장 관계다.

 

경영의 역사를 다룬 만화들은 1920∼1930년대에 시작된 인간 관계 접근법이 테일러의 무자비하고 환원주의적인(reductive) 정량화 접근법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고 묘사한다. 두 접근법(테일러의 접근법과 인간 관계 접근법)을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여기는 더 바람직한 시각도 있다. 그 증거로, 엘튼 메이요(Elton Mayo)나 혁신적인 호손(Hawthorne) 연구의 추종자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의 연구는 과학을 적용해서 경영의 생산성과 협업을 개선하려는 테일러의 야망을 공유한다. 여기서 과학은 심리학이나 때로는 심지어 사회학을 의미했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연구는 일리노이 시세로(Cicero, Illinois)의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의 호손 공장(Hawthorne plant)에서 1924년부터 1932년까지 진행됐다. 이후 다른 공장과 회사들도 연구에 포함됐다. 분석은 주로 하버드비즈니스스쿨(Harvard Business School)에서 진행됐는데 Fatigue Lab과 같은 기관도 포함됐다. (만일 피곤한 노동자가 문제라면 이들의 피곤을 덜어주면서도 성과는 여전히 극대화할 수 있는 운영 방안은 무엇인가?) 호손 연구는 산업계에서 행해진 가장 중요한 사회과학적 연구였다. 배웠던 것에 대한 대중적 신화를 깨뜨리기 위해 이 프로젝트는 약간 풀어헤쳐볼 가치가 있다. (“불을 켜면 생산성이 향상됐다. 불을 꺼도 마찬가지였다. 경영진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신호라면 어떤 것이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충분했다.”) 본질적으로 이 연구들은 각각을 해체하는 일련의 가설들을 통해 진전됐다. 물리적 조건(더 밝은 조명)이나 업무 일정(더 넉넉한 휴식)의 변화도, 보상 체계의 개선도, 실험실의 조립파트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 그룹 - 언제나소녀들이라고 표시되는 - 의 생산성이 왜 꾸준히 향상됐는지 완벽히 설명할 수 없었다.

 

실험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HBS에 새로 부임한 한 호주 출신 심리학자 메이요는 최소 두 가지 요인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첫째는 여성들이 스스로 하나의 조직을 만들었고, 조직의 집단 역학 원리 -조직 구성원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현상- 가 작업 성과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둘째는소녀들이 연구원들에게 각 단계마다 설명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연구의 의도를 이해했고 제안을 요청받기도 했다. 소녀들을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던 이 사실은 인간 관계 수업에서 가르치는 가장 기본적인 통찰을 낳았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성과를 측정하고 촉진하는 로봇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알고 느낀 바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과 생산을 위해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조직이 상당한 조절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함께다.

 

이 같은 통찰은 인간적인 것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실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심리학을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노조 형성을 저지하며 노동자들이 경영자들과 좀 더 협력하도록 하는 방법을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테일러와 소위하버드 서클이라 불렸던 사람들의 노력 뒤에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거의 이해 불가능한 엘리트주의와 계급 우월주의 같은 사상이 있었다. 의 창립자인 월레스 던햄(Wallace B. Donham) 총장은 대공황과 무능한 정부, 사회적 격변과 같은 국가적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잘 교육받은 관리자 그룹 -‘새로운 관리 계급’- 이라고 믿었다. 찰스은행에 있던 월레스와 다른 이들은 노동자를 열등한 존재로 봤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들을 조종해도 괜찮다고 믿었다. (혹은 테일러가 말한 바와 같이 노동자는 철광물을 나르기에 적합한 사람들, 너무 멍청하고 무기력해서 황소의 기질을 닮은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경영의 승리

 

이제까지의 케케묵은 경영에 신선하고 깨끗한 바람이 불었다. 이를 드러커 허리케인(Hurricane Druker)이라고 부르자. 개인적인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올바른 신념을 지닌 다른 경영학도들처럼 이 위대한 사람에게 의례적으로 존경을 표하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그를 혁신적 사상가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드러커보다 앞선 이들의 연구에 스스로 깊게 빠져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회적 제도에 대한 인간 심리학의 적용 <기업의 개념(Concept of Corporation, 1946)>에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 1954)> <창조하는 경영자(Managing for Results, 1964)>로 이어지기까지 피터 드러커는 사회적 제도로서 기업의 비전을 제시했다. 더 정확히는 사회적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비전은 참여자 개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이 존중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상사감독’ ‘노동자라는 단어(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가짐)관리자피고용인으로 바뀌었다. 드러커가 경영의 개념을 창조하지는 않았다 해도 그는 누구보다도 ‘m’이라는 단어를 소개하려고 애썼고 이는 조직 운영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반복 적용됐다.

 

드러커 혼자 경영 혁명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프리츠 뢰슬리스버거(Fritz Roethlisberger) 1937년 호손 실험을 집대성한 그의 저작에서 조직을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또한 경영자의 역할이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1950년대 드러커는 매리 파커 폴레트(Mary Parker Follett)의 업적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1920년대 잊혀진 인물로 ‘∼를 지배하는 권력보다는 ‘∼와 함께하는 권력이나건설적인 대립’ ‘윈윈해결책의 추구와 같은 경영적 개념을 펼쳤다. 이는 전후 시대에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냈다.

 

다른 이들도 끼어들었다. 매사추세츠 공대(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MIT) 경영대학원(Sloan School) 최초의 경영학 교수였으며 이후 안티오키대(Antioch College)의 총장이 된 더글러스 맥그리거(Douglas McGregor)가 있다. 그는 인간 욕구의 단계를 소개한 인간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Abraham Maslow)에 의존한다. 맥그리거는 그의 유명한 X이론(Theory X, 인간은 본래 게으르며 감독이 느슨하면 태만한 직무태도를 가진다는 이론) Y이론(Theory Y, 인간은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며 일이 잘 기획되면 긍정적인 방식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이론)을 제기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이론이 서로 다른 우주론(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이긴 하지만 경영 전략은 아니라고 주장하려고 애썼다. 아쉽게도 그의 자세한 설명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전후 시대 경영 혁신가들 주장의 요지는생산의 인간성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근로자들이 존중받고 관리자들이 동기를 부여하며 근로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면 그들은 합리적으로 일할 것이며 생산성은 극대화할 것이다.

 

() 체제가 아무 저항 없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업의 개념>의 집필을 위해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를 연구했던 드러커는 GM의 떠오르는 중역 찰리 윌스(Charlie Wilson)에게 일련의 개혁을 제안하도록 설득했다. 공장 매니저들에게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과 우리가 오늘날노동자 권한 부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개혁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세력이 이를 불가능하게 했다. 하나는 CEO였던 알프레드 슬론(Alfred P. Sloan)을 포함한 GM의 나머지 관리자들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경영과 노동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월터 루서(Walter Reuther)로 대변되는 전미(全美)자동차노동조합(United Auto Workers)이었다.

 

보다 개화된(enlightened) 경영에 대한 접근법들은 다른 양상들(예를 들어 2차 대전 이후 미국 사회의 민주화나 경제적 재화에 대한 지연된 수요의 폭발)과 결합하면서 20여 년간 좋은 시대정신을 이끌었으며 기업과 기업 행동에 대한 만족감을 유발한 것 같았다.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태업 발생 횟수는 전후의 지독한 수준에 비해 현저히 감소했다. 전체 노동자 대비 노조 가입 비율은 정점에 달했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감소하고 있다. (1953 3% 이하로 하락한 실업률은 경영적 배려를 자극했을 것이다.)

 

 

전략적 사고의 출현 직원에 대한 보다 진보적인 태도에 더해 전후 시기에는 관리자들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의식이 고조됐다. 여기서 다시 드러커가 등장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모든 기업은 전략을 가졌고 모든 중역들은 주요 목표라는 것을 갖게 됐다. 이전 세대의 특징이라고 불리던방향의 부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드러커가 <경영의 실제>에서 지적한 것처럼 초기 경제학자들은 -의미상 경영학과 학생들을 포함한다- 기업가와 그의 행동을 순전히 수동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비즈니스에서의 성공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속하고 현명하게 적응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외부란 기업가가 조정할 수 없으며 그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힘으로 형성된 경제였다. (실제 사업가들이 정말로 그렇게 무력하게 느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드러커는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경영은 관리다. 관리는 단순히 수동적인 적응 행동(adaptive behavior)이 아니다.” 경영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기업 행동의 자유에 대한 경제적 환경의 제약들을 지속적으로 극복하면서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는 이런 노력을 돕기 위해 경영자들은 목적을 가져야 하며 그 목적에 따라 경영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드러커는 1964 <창조하는 경영자>에서 기업은 결과를 생산하기 위해 존재하고 경영자들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시장을 체계적으로 살펴야 한다며 보다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 1985년 출간된 <창조하는 경영자>의 서문에는 이 책이 비즈니스전략을 다룬 최초라고 주장하려 했지만 이 단어를 쓰지 말라고 만류당했던 그의 회상이 적혀 있기도 하다.

 

컨설턴트들에게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전 중역이자 뼛속까지 미국인이었던 브루스 핸더슨(Bruce Handerson) 1963년 보스턴컨설팅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의 전신을 세웠다. 그들은 즉시 기업 전략 -이때까지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였다- 을 미션으로 정의하고 이를 기업들에 전파했다.

 

이는 단순히 용어상의 변화가 아니었다. 기업 전략의 등장은생산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대담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의미했다. 경험곡선(experience curve), 성장-점유 매트릭스(growth-share matrix)와 같은 BCG의 기본 개념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래 깔려 있는 분석적 열정이었다. 컨설턴트들은 기업들이 이전에는 측정하지 않았던 깊이까지 비용이나 고객, 경쟁자들 이면의 숫자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했던 위대한 테일러리즘이 전략의 지속적인 동지이자 조력자였다. 이는 가난하고 그저 그런 일용직 노동뿐 아니라 회사 운영과 관련된 모든 측면에 정교한 통제와 측정 가능하게 했다.

 

전략은 공격적이었다. 경쟁자와의 관계에서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어떻게 하면 경쟁자를 넘어서는 유리한 지점을 잡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모든 수치들을 수집했다. BCG는 다양한 그래프와 도표를 통해 속한 산업에서 1인자 혹은 2인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강조했다.

 

1967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새로운 산업 국가(The New Industrial State>를 출간하면서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미국 기업들과 그 리더십이 너무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일었다. 갤브레이스는 기업들이 지나치게 거대해진 사실을 비난했다. 1974년까지 미국의 200대 제조기업들이 국가 전체 제조업 자산의 3분의 2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5분의 3이 넘는 매출과 고용, 소득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적 목표가 점점 더 기업의 목표에 적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 리더들의 경영 기술구조(technostructure)는 소비자가 무엇을 구입할지 지시할 뿐 아니라 암암리에 삶의 방식과 생각까지도 지배할 수 있었다.

 

 

 

 

 

불안한 세계화의 시대

 

심각한 불황 없이 20년을 보낸 후 1970년대 석유파동과 경기침체가 발생하면서 관리주의적 승리의 개념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됐다. 1966년 해리스(Harris) 여론조사는 미국인의 55%가 대기업 리더들에게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했지만 1975년 이 비율은 15%로 추락했다.

 

변화를 위한 힘 과도한 경쟁과 기업, 노동계층, 정부 사이에 존재했던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의 붕괴 등 다양한 힘들이 미국 경영자에게 맞섰다. 미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항공과 철도, 트럭 수송에 대한 규제 철폐를 시도했다. 그의 후임자들은 탈규제의 관심을 통신과 재무 등으로 돌렸다. 국제 무역을 장려하는 각종 시도 역시 성공적이었다. 수입 자동차와 철강, 가전제품들이 국내에 쌓이면서혹시 외국인, 특히 일본인이 우리보다 경영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부르기도 했다.

 

기술, 특히 컴퓨터 기술은 연산 능력을 꾸준히 발전시켰다. 집적회로(1950년대 말)에서 미니 컴퓨터(1960년대 중반), 마이크로프로세서(1970년대 초), 마이크로 컴퓨터(1970년대 중반)순으로 발전해온 기술은 유비쿼터스 컴퓨터(ubiquitous PC)로 이어졌다. 계산자(slide rules) 시대에 탄생한 위대한 테일러리즘이 기업이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더 정교한 모델을 만들기 위한 도구를 찾은 것이다.

 

1982년 주식시장이 다시 가열되면서 경영권 확보를 위한 활발한 시장이 형성됐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 1972년 달성한 최고치(1000)에 다시 이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적대적 인수에 대한 낡은 규제들이 사라지고 인수자가 활용 가능한 새로운 자본 공급원이 출현했다. (정크본드(junk bonds)를 생각해보라.) 자본가들은 엉망진창이 된 기업을 사들이고 그 일부를 매각해서 벌 수 있는 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0년대 <포천> 500대 기업 중 25% 1989년 다른 기업에 인수됐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넘어선 주주 자본주의 이 격변의 시기 동안 전략과 기업경영의 목적은 명확해졌다. 주주의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확실히 하자면 이 개념은 모험을 즐기는 자본가들이 있었던 19세기부터 줄곧 존재했다. 그러나 선의의 경영 시대에는 보다 폭넓은 개념이 이곳저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이클 린드(Michael Lind)는 미국 경제사에 대한 그의 책

<약속의 땅(Land of Promise)>에서경영의 역할은 직접 영향을 받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인 주주, 직원, 고객, 그리고 광범위하게는 일반 대중 사이의 주장에서 공평하고 실질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1951년 뉴저지의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 회장의 주장을 언급했다. 때로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 폭넓은 개념은주주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에 의해 조금씩 무너졌고 기업의 목적에 대한 논의에서 거의 사라졌다.

 

경영 사상가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기업을 괴롭히는 새로운 압력에 대응했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1980년 그의 책 <경쟁전략(Competitive Strategy)>을 통해 전략에 학문적 엄격함을 더했다. 당시 컨설턴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다음 책인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 1985)>에서 가치사슬(value chain)과 같은 개념으로 기업을 무장시켰다. 이는 기업 운영의 모든 단계를 비용을 계산하고 벤치마킹하며 측정할 수 있는 단위로 쪼개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가 활기를 띠고 월가에서의 거래로 재미를 본 사람들이 증가하자 많은 사람들이 경영층에 합류하거나 MBA 학위를 따서 최소한 자격이라도 갖추고 싶어 했다.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회사가 학위 소지자에게 더 많은 연봉을 지급하면서 학위는 더 빛이 났다. 1970 26000명이었던 미국의 MBA 학위자는 1985 67000명에 달했다.

 

경영대학원에서는 포터와 같은 전략 전문가가 그동안비즈니스 정책(business policy)’을 가르쳐오던 교수들을 대체했다. 재무 교수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들은 인간 행동학이나 조직 역학처럼덜 공격적인 과목을 가르치는 주변부 교수들을 밀쳐냈다. 이는 한때 던햄(Donham)이나 메이요(Mayo)의 경영학 교육 중심에 있던 과목들이었다. 업계와 학계 모두에서 점점 늘어나는 전문화된 영역에 양적 정밀함을 부여하는 이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수많은 경영인들의 마음 전부를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맥킨지(McKinsey) 컨설턴트였던 톰 피터(Tom Peter)와 밥 워터맨(Bob Waterman) 1982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을 펴냈다. 이는 그저 정량적 행위에 불과한 전략을 향한 공격인 동시에 조직 내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찬가였다.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인간적 요소에 대한 찬양이기도 했다. 피터는부드러운 것은 강하다(Soft is hard)”고 간파했다. 이 책은 60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 결과는 두 작가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출판업계로 하여금 경영적 지혜에 대한 책을 원하는 거대한 독자층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책에서 미국 기업과 그들의 관행을 극찬한 것도 판매에 도움이 됐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미국에 다시 찾아온 아침을 선언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식 경영 방법의 우수성에 점점 지겨움을 느끼던 때이기도 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지난 30년 동안 두 가지 큰 줄기의 사상이 불편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하나는 숫자로 가해지는 고수익성의 압박이고, 다른 하나는생산의 인간성에 대한 존중을 바라는 외침이다. 경영진 사고의 고지뿐 아니라 아이디어와 책, 구루들과 학교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기 위한 전투가 있었다. 이 논쟁은 회의장과 사무실은 물론 기업과 직원들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영진의 마음속에서도 일어났다.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와 적자 지출에 힘 입어 1982년 이후 미국 경제가 급격히 살아났다. 하지만 1950년대와 달리 모두를 구해내지는 못했다.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거나, 기업을 인수하거나(혹은 인수를 피하거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전략에 맞지 않는 사업을 팔아 치우거나 대규모 노동자 집단을 해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장 유명하게는 잭 웰치(Jack Welch) 시절,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에서 평생 고용과 같은 절대적 보장 내용이 포함된 노사 계약이 파기된 것을 꼽을 수 있다.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치솟은 주가와 휘황찬란한 뮤추얼펀드, 401(K) 플랜, 개인 퇴직 예금과 같은 것에 현혹되면서 주식 시장이 환호했다.

 

경영 문헌들은 새로운 공격에 지적 근거를 제공했다. 1960년부터 전략가들은 경쟁자 파악의 중요성을 지적해왔다. 이전 시대 사상가들이 거의 전적으로 무시했던 부분에 대한 간청이었다. 컨설턴트들은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 1966)이나 법률 데이터베이스(LexisNexis, 1970년대)를 도구 삼아 고객 기업이 그들의 상황이 포터나 다른 이들이 고안한 틀에 어떻게 들어맞는지 세세하게 채워가는 것을 도왔다. 1980년대 주목할 만한 기사 두 가지에서 마이클 젠슨(Michael Jensen)은 기업인수 활동에 합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을 부활시켰다.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관리자들이 너무 자주 스스로의 이익만 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개념이다. 특히 관리자들이 지배적 지분을 충분히 지니지 않을 때 그렇다. 관리자들이 보상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인수당할지도 모른다는채찍과 주가와 연동된 성과급이라는당근이 동시에 필요했다.

 

시기 적절하게도 1993년 미 의회는 기업 경영진에게 스톡옵션 형태의 보상 지급을 장려하기 위해 세법을 변경했다. 린드가 지적했듯 1990년대 말 <포천>

500대 기업의 경영인 절반 이상이 스톱옵션의 형태로 보수를 받았다. 만일 낡고 좁은 방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CEO의 급여 비율이 오르지 못할 산만큼 높게 느껴졌다면 어떨까? CEO가 창출하는 모든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그렇다, 아마도 이것은 월레스 던햄(Wallace Donham)이 관리자 계급에 대해 갖고 있었던 도덕적 리더십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주장도 잊혀진 지 오래다.

 

기업 혁신 바람이 불면서 최신 정보 기술을 활용하려는 긴박함이 효율과 경쟁력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켰다.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 1990 아티클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프로세스를 완전히 없애버리라고 꾸짖었다. 제임스 챔피(James Champy)와 함께 쓴 베스트셀러에서도 이런 내용이 실렸다. 궁극적인 고객을 고려해 프로세스를 다시 만들라는, 새로운 정보통신에 대한 경탄이 담긴 시각이었다. 기업들은 기업 혁명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정당화한 것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결국 무고한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고 이후 끔찍하게 잘못된 경영의 핵심 사례가 됐다.

 

리더십과 혁신을 향한 전환 한편, 생산의 인간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좀 더 불명확한 입장을 지속하고 있었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 출판된 지 몇 년이 지난 후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는 책에서 인용된 기업 중 3분의 1은 더 이상 저자들이 제시한 우수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당황스러운 결과는 인본주의자들에게 좀 더 일반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직원들에게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경영 방식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측정하고 가치를 매겨야 하는가에 대한 혼란이었다.

 

 

전략은 최소한 사상가들의 연속적인 세대들이 발전시켜 갈 수 있는 명확한 패러다임과 일련의 체계들을 갖고 있었다. 주주 가치 옹호자들은 주가를 모든 것을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다. 이에 비해 조직 내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온갖 것들을 탐구했다. 주주 가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이들 중 하나인 제프리 페퍼(Jeffry Pfeffer)수준 낮은 패러다임 개발이라고 부른 것과 그들 사이에서조차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점을 비난했다.

 

관대하게 표현해서 이절충주의는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반영됐다. 학습하는 조직이 되는 법에서부터 팀의 지혜, 기업 충성심의 힘과 핵심 경쟁력의 필요성, 고객 만족의 중요성과 필수적인 방향 전환 등의 내용을 담은 책이 출판됐고 사람들은누가 자신의 치즈를 옮겼는지파악하려 애썼다.

 

만일 인간적인 측면의 사상에 통합이 있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했다. 리더십과 혁신이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경영대학원들은 그들의 사명을일반 관리자의 양성(educating general manager)’에서리더 개발의 지원(helping leaders develop)’으로 바꿨다. 관리자와 리더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몇몇 훌륭한 글들이 있기는 했지만 리더를 만드는 요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고귀한 존재가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의 경기침체는 리더가 가진 권한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무엇이 당신을 보스로 만들었는가?’를 참고하라.)

 

혁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 않았다. 인본주의자들은 물론 인간을 숫자로만 보는 사람들도 그 중요성을 인식했다. 갑자기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업계 리더가 순식간에 바뀔 수 있으며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경쟁 우위가 단 몇 개월 만에 무너지기도 하는 시대에 혁신은 기업을 살리는 핵심이었다.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은 그들의 저서에서 경영 분야의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전체 업계의 순위가 뒤집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기존의 것을 체계적으로 대체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혁신은 이전과 다르게 생산의 인간성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에 의지하면서 시장의 강력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곳에서 일어난다. 발명을 자동화하거나 인간 상상력의 발화를 대체할 만한 기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21세기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익숙한 일을 반복하려는 조직 내 기류에 저항하고 직원들 안에 내재된 불꽃이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일 것이다.

 

경영의 세기는 물론 끝나지 않았다. 경영적 사고는 자본주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그리고 새로 머물 곳을 찾아 확산되고 있다. 혹자는 지난 20년간 소련 공산체제의 붕괴와 중국 및 인도의 경제 자유화로 30억 명이 넘는 인구가 이 체제 안에 편입됐다고 본다. 더 높은 생산성을 위해 분투하는 자본주의와 경영적 사고가 이 세상을 더 풍요롭고 교육이 더 잘된 곳으로 만들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자나 관리자급 엘리트뿐 아니라 작년 한 해에만 50만 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MBA 또는 그와 비슷한 해외 학위를 받았다. 빈곤선(poverty line)보다 낮은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지난 50년간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하락했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 사무실과 공장, 상점과 심지어 작은 농장, 특히 대기업에 속한 곳에서 사람들은 평등과 존중으로 대접받기를 기대한다.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노골적인 성차별이나 약자에 대한 괴롭힘, 충격적인 경영 행태들은 대부분 사라져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어느 곳에서나 기업의 현관을 통과할 때면 방문객은 일정한 규칙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관리주의가 직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일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을 달성하려면 정부와 경제학자들의 노력은 물론 공공의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관리주의가 부상하면서 때로 잔인한 역설적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피터 드러커가 관찰했듯 그가 비엔나에서 자라던 소년 시절 가장 오랜 시간 일하던 사람들은 경제적 사다리의 가장 밑에 있던 이들이었다. 하녀는 여주인이 오페라 감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최고관리자 엘리트들이 그렇다. 그들은 하루에 300통이 넘는 e메일과 전 세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처리하면서 밤늦도록 일한다.

 

관리주의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영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그들의 조직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며 인간은 인간다워지려는 성향을 고집스럽게 지켜가려고 하기 때문에유일한 최선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방법은 거의 언제나 있다. 경영은 그것을 찾아갈 것이다.

 

 

월터 키쉘

월터 키쉘 Ⅲ(Walter Kiechel Ⅲ)은 하버드비즈니스출판사의 전 편집장이자 <포천>의 전 managing editor였다. 하버드 출판, 2010)>의 저자이기도 하다.

 

번역 |최두리 dearduri@gmail.com

 

 

동아비즈니스리뷰 286호 Leadership for the New Era 2019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