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2년 7∼8월 호에 실린 저스틴 폭스(Justin Fox)와 제이 로시(Jay W. Lorsch)의 글 ‘What good are shareholder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 2012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기업 임원들과 주주들이 함께 가야 할 앞길이 막혀 있는 것 같다. 임원들은 주주들의 간섭과 사후 비판 때문에 효율적으로 일하기 힘들다고 불평하는데 이는 맞는 말이다. 주주들은 경영진이 엄청난 돈을 챙겨가면서 성과는 별로라고 불평하는데 이것도 역시 맞는 말이다. 이사회는 어정쩡하게 중간에 끼어 있다. 이사회가 편한 조언자로 활동할 때 더 효율적이라는 증거가 많지만 감시자 또는 규율 담당자로 행동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이런 교착상태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권을 행사했던 경영자의 권력이 주주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던 시절이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요인도 작용하기는 했지만 힘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주주 우월주의 철학이 부상하면서 가능해졌다. 주주 우월주의는 경영진에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경영진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서 파생됐다. 이 철학에 따르면 기업이라는 우주의 중심은 주주이며 경영진과 이사회는 주주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지독히 비협조적이다. 법적으로 주주는 기업을 소유한 것이 아니다(그들은 기업의 이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해주는 주식을 가졌을 뿐이다).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그들에게는 대부분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이사회에 있다). 그리고 많은 최고경영진이 주주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경영진의 행동과 받는 보수는 그 충성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사여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일련의 기업 스캔들 및 내부붕괴와 맞물려 외부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는 요구를 불러왔다. 만약 기업이 진정으로 주주를 우선시했다면 자본주의가 훨씬 더 잘 작동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 이전 수년 동안 주주들에게는 힘이 있었지만 결과는 항상 좌절을 안겨줬다. 그렇다면 주주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기업의 보스가 되기에 부적절할지 모른다. 주주들이 기업을 이끌고 다스려나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실망으로 끝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주주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주주 제일주의에 집착하면서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에서 우리의 목표는 주주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움직이는 인센티브는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잘하는가? 그들은 무엇을 못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연구와 논의의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 (예일대의 밀스타인센터에서 발간한 벤 하이네만과 스티픈 데이비스 조사 보고서 ‘기관투자가들은 문제의 일부인가? 해결책의 일부인가?’를 참고하라.) 우리는 주주의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는 틀을 제시하고 변화에 대한 조언을 하려 한다. 우리는 주주의 역할을 자금, 정보, 규율의 세 가지 분야로 나눴다.
1. 자금
주주의 가장 간단한 역할은 자금을 대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는 전혀 간단치 않다. 기업들은 성장에 투자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 자금을 주주로부터 모두 받는 것은 아니다. 미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의 순주식발행은 2870억 달러 감소를 기록했다. 금융기관들이 필사적으로 자금을 조달했던 2008∼2009년을 제외하면 마이너스 규모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배당금 지불을 감안하면 지난 10년간 수조 달러의 현금이 미국 기업들에서 주주들에게로 넘어갔다.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들은 이익잉여금이나 대출금으로 투자자금을 조달한다. 그들은 주주의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이렇게 형편이 좋은 건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주식 투자자들의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 기업들은 대개 젊고 아직 성장 중이다. 은행이나 채권투자자가 원치 않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주주들이 없다면 이런 기업들은 저성장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아예 꼼짝달싹하지 못할 것이다. 자금을 대주는 투자자들은 대개 기여에 상응하는 영향력을 갖는다. 벤처투자자들과 엔젤투자자들은 이사회 일원이 되고 때로는 경영진의 결정이나 임명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다. 어려울 때 전면에 나선 투자자들은 종종 다른 투자자들보다 특혜를 받으며 전략적 결정을 내릴 때 결정권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경영진은 최소한 잠깐이라도 그토록 필요하던 자금을 대준 주주들에게 잘 응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주와 기업들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 상장사의 자금줄 역할은 주주 개개인보다는 주식시장이 맡고 있다. 시장은 유동성을 공급한다.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이 있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가격이 있다는 점이 채권자들과 사업 파트너들을 안심시켜 준다. 덕분에 합병도 가능하다. 초기 투자자들과 직원들은 회사의 주식을 팔고 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현금이 몹시 필요할 때 전면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나중에 투자에 대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바퀴가 돌아가도록 기름을 칠해주는 셈이다.
그 바퀴들은 어느 때보다도 많이 기름칠이 됐다. 유진 파마와 케네스 프렌치는 연구를 통해 1973년부터 2002년 사이에 주식을 발행한 기업의 비율이 매년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1973년부터 1982년 사이에 그 비율은 67%였는데 1993년부터 2002년 사이에는 86%에 달했다. 왜 이렇게 증가했을까? 주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합병과 스톡옵션이나 주식으로 직원들에 보상하는 규모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는 건강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주식합병은 가치를 훼손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기업들이 스톡옵션을 직원들, 특히 최고경영자들에 대한 보상 수단으로 남용해왔다(‘권한이 많지만 보상은 더 많아’ 참조). 그리고 좀 더 일반적으로 시장의 유동성에 따른 수익이 점점 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유동성을 제공받으려면 자금 시장에 변덕스러운 단기 투기자가 많아야 한다. ‘매수 후 장기 보유’ 전략의 투자자로만 구성된 시장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하지만 단타 투자자들이 대부분인 시장도 문제가 있다. 최근 단타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접수하고 있다. 1950년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된 주식의 평균 보유기간은 약 7년이었다. 지금은 6개월이다.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보유기간이 1000분의 1초 단위로 측정되는 초단타 매매자들이 뉴욕증권거래소 일일 거래량의 70%를 차지할 때도 있다.
이렇게 주식을 단기로 보유하게 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많은 국가에서 규제 당국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매매수수료 규제 완화 및 1990년대 후반 십진법 호가제도 등을 통해 거래 비용을 낮췄다. 둘째, 컴퓨터 및 커뮤니케이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금융공학에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거래를 가능하게 했다. 셋째, 한때 주식시장을 지배했던 개인투자자들이 전문가들 때문에 밀려났는데 이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보다 훨씬 더 자주 주식을 거래해야 할 인센티브와 압박을 동시에 받는다.
1950년에는 미국 기업 주식의 90% 이상을 가계가 소유했다. 이제는 기관투자가들이 상장기업 국내 주식의 50% 정도를 보유한다. (‘개인투자자 감소’ 참조) 해외 기관투자가들(미국 기업 주식의 해외 투자자 보유분은 개인과 기관으로 구별되지 않는다)과 헤지 펀드(이는 대부분 가계 보유분으로 분류된다)를 더하면 기관투자가들이 아마 65% 내지 70% 가까이 차지할 것이다. 대기업일수록 이 비율이 높다.
단기 투자자들이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가격의 변동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거래되는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와 그다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변동성은 유익하다. 사람들이 거래를 할 유인을 주고 시장의 유동성을 유지해준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변동성은 유동성을 죽인다.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수많은 모기지 관련 주식의 거래가 중단됐던 2007년과 2008년의 금융위기를 생각해보면 된다. 혹은 수백 개 기업의 주가가 갑자기 반토막이 났다가 몇 분 뒤 정상으로 돌아온 2010년의 플래시 크래시(시장급등락 현상)도 예가 된다. 영란은행의 앤드루 할데인이 언급했듯 미국과 영국의 주식시장 변동성은 최근 20년간 급증했다. 이것이 기업들의 자금조달이나 주식 거래 능력에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줬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현금이 필요한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시장 환경에서 고전 중이라는 징후들은 볼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잠시 IT기업 주식에 열광하던 때를 제외하고는 IPO가 감소 추세다. 회계 법인인 그랜트 소톤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잦아진 매매와 초저가의 거래수수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증권사들이 더 이상 신생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거래수수료를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주식시장 규제책은 너무 많은 유동성이나 너무 많은 거래, 너무 많은 변동성 같은 것은 없다는 인식하에 만들어졌다. 거래비용을 낮추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세금 제도는 다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단타 매매에는 장기 투자보다 높은 자본이득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연금, 재단, 기금 등 대형 투자자들의 상당수가 소득세를 면제받기 때문에 이런 세제 효과는 줄어든다.
플래시 크래시에 이어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갑작스러운 시장 변동성이 발생할 때 사용할 새로운 서킷 브레이커와 거래 중단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이는 최소한 방향성은 어느 정도 바꿔줄 것이다. 하지만 거래에 관련한 규범과 법률을 더 폭넓게 재검토해 봐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마찰도 가끔 쓸모가 있다. 과도한 유동성 같은 것도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토빈세나 로빈 후드세 등으로 불리는, 모든 금융거래에 소액의 세금을 붙이자는 제안이 많이 논의된다. 세금 주제들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그것이 유동성을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당연히 반대한다는 논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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