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Sloan Management Review
편집자주
이 글은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12년 여름 호에 실린 임페리얼 칼리지 경영대학원 선임 연구원 마르쿠스 퍼크먼(Markus Perkmann)과 동 대학원 기술/혁신 경영 교수 아몬 솔터(Ammon Salter)의 글 ‘How to Create Productive Partnerships with Universities’를 번역한 것입니다.
내부 R&D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성공적으로 혁신을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외부 파트너와 협력하는 기업은 다양한 지식에 접근하고 R&D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1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인재와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대학은 외부 파트너 중에서도 특히 밝은 미래를 약속한다.
간혹 기업 관리자들이 대학과의 교류를 단순한 ‘기술 이전(technology transfer)’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이 대학 소유의 지적 재산2 을 활용하면 혁신을 이뤄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단순히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애쓸 뿐 혁신 프로젝트 진행 초기부터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대학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데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3 영국 기업들은 이미 대학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라이선스 계약보다 산학협동에 20배 이상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4
하지만 기업 관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학과의 협력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5 협력을 방해하는 2개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계가 진행하는 과학 연구에 내재돼 있는 개방성이 기술을 보호하고자 하는 기업의 필요와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학계의 연구는 장기적인 문제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더딘 반면 기업은 분초를 다투는 제품 개발 프로젝트와 일상적인 업무와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해 R&D를 진행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업은 대학이 좋은 파트너가 되기에 지나치게 느리고 관료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OECD 국가의 고등교육 기관 R&D 투자 규모는 무려 연간 1600억 달러에 이른다. 이와 같은 엄청난 투자 규모를 고려해 보면 대학과 협력하지 않는 기업이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다.6
기업이 산학협동을 추진할 때 전반적인 기업 전략의 일환으로 여기기보다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기업과 대학 간의 원활한 협력 관계 구축에 걸림돌이 된다. 고객 관계나 공급자 관계를 운에 맡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업 관리자들은 학계와 협력을 해야 할 때 일시적인 접근방법을 택한다. 산학협동에는 노력이 중복될 위험, 기회를 놓칠 위험, 지적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이게 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본 연구를 통해 기업이 산학협동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학계와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구 내용’ 참조.) 산학협동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기업은 산업과 학계 간의 차이점을 자사에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등 대학을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로열 더치 쉘 PLC(Royal Dutch Shell PLC)의 프로그램 관리자 클라우스 오토(Claus Otto)는 “대학의 연구 센터가 자사보다 더 나은 결과, 혹은 다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자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쉘은 사업적인 타산을 따져봤을 때 자사가 직접 기술 역량 구축을 위해 전폭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힘든 영역에서 대학과의 협력관계에 적극 투자한다.
연구 내용 이 글은 저자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진행한 몇 건의 연구 프로젝트를 토대로 한다. 이 글의 저자들은 2004년과 2009년에 각각 한 차례씩 총 2회에 걸쳐 유사한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대학과 협력 중인 수백 개의 기업과 학계에서 연구 활동 중인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했다.i 저자들은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 임원, 기업가, 학계 과학자 등을 상대로 수백 건의 공식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인터뷰를 진행할 때마다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할애했다. 저자들은 학계 과학자들이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학문적 자산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관한 연구ii , 구조 유전체학 컨소시엄(Structural Genomics Consortium, 이하 SGC)에 대한 심층 연구, 산학협동 센터 비교 연구 등 다양한 귀납적인 연구 기법을 활용해 이 자료를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학계 과학자들의 산업 참여에 대해 1990년부터 2011년까지 발표된 논문 중 전문가 검토가 이뤄진 모든 논문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문헌 검토를 진행해 방대한 양의 보조 자료를 확보했다. |
학계의 연구로부터 충분한 가치를 이끌어내려면 기업 임원들이 2개의 중요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는 협력 기간이다. 단기 협력은 유용하며 보편적이다. 뿐만 아니라 협력 구조가 대학 및 교수들의 업무 방식에 맞춰져 있을 경우에는 단기 협력 방식을 활용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 하지만 학계와 단기 협력을 추진하려면 창의적인 구조가 필요하다. 학계 연구와 기업의 업무 진행 속도 간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교수들의 장기적인 관점이 기업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 오직 다음 분기만을 생각하는 관리자들의 단기적인 사고 방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학계와 오랜 시간 협력하다 보면 수많은 가능성이 생겨나며 향후 5∼10년 동안 기업을 번성케 할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처럼 효과적인 장기 협력을 위해서는 좀 더 인내심을 갖고 투자를 해야 하며 경영진이 협력의 설계 및 관리 방식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산학협동이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두 번째 요인은 협력 결과를 공개하는 정도다.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기업은 협력 결과를 신속하게 공개한다. 사실 신속한 공개는 공공 과학(public science)의 생명수와도 같다.7 뿐만 아니라 협력의 결과를 신속하게 공개하면 지적 재산 관련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협력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보호하는 쪽이 연구 결과를 상업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2개의 요인을 조합하면 총 4개의 협력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1. 아이디어 실험실(idea lab): 새로운 선택 방안을 도출하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관리자들이 비밀 유지의 욕구를 접어둔 채 교수들과 협력하는 방식.
2. 원대한 도전(grand challenge): 공공 영역에서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관리자와 교수들이 협력하는 방식.
3. 확장된 작업실(extended workbench): 기업이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 파트너와 신속하게 협력해 자사의 소유권이 인정되는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방식.
4. 심층 탐구(deep exploration): 기업이 대학 파트너와 협력해 풍요롭고 영구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 심층 탐구 방식의 협력을 통해 도출된 결과를 소유할 수 있는 우선권은 기업에 돌아간다. (‘4대 산학협동 모형’ 참조.)
1. 개방적, 단기적: 아이디어 실험실
아이디어 실험실 방식의 산학협동을 진행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파트너와 협력하며 협력에 참여한 교수들에게 연구 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견 이런 유형의 협력이 기업 측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기업이 연구 결과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개방적인 방식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이 협력 방식은 기업이 해결해야 할 문제와 과제에 교수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꿀단지(honey pot)’ 역할을 한다. 이런 유형의 프로젝트에는 학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이 반영돼 있다. 따라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점진적인 응용 연구에 투입돼 있는 학업 자본을 이런 유형의 연구에 투입한다. 둘째, 스피드 데이트에 참여하는 남녀가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상대를 만날 수 있듯 개방형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은 다양한 관계를 구축하고 시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대개 규모가 작다.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지적 재산권 문제가 없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관리하기가 수월하다. 이런 접근방법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HP 실험실(HP Laboratories)의 혁신 연구 프로그램(Innovation Research Program)을 들 수 있다.8 HP 실험실은 새로운 연구 협력 관계를 구축할 목적으로 매년 엄선한 연구 주제에 관해 교수들의 의견을 구한다. HP는 교수들이 내놓은 제안서를 검토한 다음 자사의 이익 및 요구에 부합하는 제안을 선택한다. HP가 선택된 교수에게 수여하는 연구비는 5만∼7만5000달러 수준으로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HP는 매년 500건에 육박하는 제안서를 받아 그중 약 50건을 선별한다. HP 실험실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지적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표준화된 협력 연구 협약을 체결한다. 이 계약에 의해 교수들은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HP도 연구 결과를 활용할 수 있는 비독점적 권리를 갖게 된다.또 다른 사례로 베이어 AG(Bayer AG)가 운영하는 ‘목표 달성을 위한 연구비(Grants4Targets)’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베이어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약물 표적(drug target)을 분석하고 입증하고자 하는 연구원에게 5000달러에서부터 12만5000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한다.9 베이어는 관료적이고 번잡한 절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성공적인 지원자에게는 자사 과학자를 프로젝트 파트너로 붙여 준다.
새로운 혁신 생태계에 투자한 아럽파이어 1990년대 말 신규 소방 엔지니어링 서비스 그룹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업체 아럽그룹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소방 엔지니어링(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건물을 설계하는 영역)은 새로운 분야였던 탓에 일반 대중이나 전문가들이 소방 엔지니어링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전혀(혹은 거의) 신뢰하지 않았다. 건축물에 적용되던 기존의 화재 피해 완화 전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관례에 의해 결정됐다. 하지만 소방 엔지니어링을 통해 관례를 기반으로 하는 규제보다 융통성 있으며 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화재 제어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복잡한 건축물에는 소방 엔지니어링을 접목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규제 기관, 소방관, 개발업자들에게 관례를 따르지 않는 건물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아럽은 대학과의 장기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건축물 소방 안전에 관한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럽은 콘퍼런스, 박사 과정 학생, 개별 교수, 협력 연구 프로젝트, 산업 표준, 공통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을 지원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방 엔지니어링, 개발 관례, 대체 안전 방안 관련 기준 등에 관한 지식 풀(knowledge pool)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은 소방 엔지니어링 관련 최신 도구를 익힌 재능 있는 엔지니어들을 탄생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아럽에도 커다란 도움이 됐다. 1998년에 불과 4명의 직원으로 이뤄진 하나의 팀에서 출발한 아럽파이어(Arup Fire)가 2011년에는 2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했다.iii |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은 기업이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교수의 수완 및 시기 적절하게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교수의 능력을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 기업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고 실패하더라도 상당한 기회 비용이나 기타 손실을 초래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선택해야 한다. 사내 R&D 인력이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는 했으나 사내에서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 때 해당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개방형 협력은 각기 다른 다양한 미래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노키아(Nokia)가 운영하는 노키아 연구 센터(Nokia Research Center)에서 개방형 혁신 및 학계 연구를 총괄 관리하는 클라우디오 마리넬리(Claudio Marinelli) 이사는 이런 협력이 갖고 있는 가치는 대개 기성품과 다를 바 없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해결방안이 아니라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교수들과 소규모 협력을 진행하면(다양한 국가의 교수들과 협력하는 경우도 많다) 새롭게 떠오르는 다양한 연구 영역에서 펼쳐질 상황을 비용 효과적인 방식으로 검증할 수 있다. 가령 IBM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인 최첨단 연구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IBM 교수 연구지원금(IBM Faculty Award)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10 IBM 직원들은 협력을 지원하고 교육적인 발전을 장려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개인을 추천한다. 상금의 액수(4만 달러)는 그리 많지 않으며 상금을 수여받는 사람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아니다. 상금을 제공할 때 지적 재산에 관한 문제가 개입되지도 않는다. 다만 IBM은 연구 결과를 공개할 것을 강력하게 권장할 뿐이다. IBM은 2010년 한 해 동안 20개 국에 위치한 70개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105명의 연구자에게 상금을 수여했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와 같이 단기적이고 개방적인 탐구를 추진할 때 어떤 방법을 활용해야 할까? 우선 교수들이 유용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문제를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둘째, 대학과 계약을 체결할 때는 가능한 단순한 형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 셋째, 프로젝트를 관리할 때 마감 시한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해야 한다. 또한 교수들은 프로젝트의 내용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 프로젝트 운영 방식이나 목표를 재량껏 결정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유형의 협력에는 위험이 수반된다.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결과가 매우 편향될 가능성이 크다. 진행 중인 다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어느 정도 결과가 도출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실패로 돌아가는 프로젝트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방식으로 여러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이런 위험이 완화될 수 있다. 각 프로젝트의 비용이 다소 낮아지는 것 또한 위험이 줄어드는 원인이 된다. 대형 석유 회사의 한 임원은 이와 같은 시험 프로젝트 중 2년 후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의 비중이 20%만 돼도 만족한다고 이야기했다. 실패로 끝난 나머지 80%의 프로젝트는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자동적으로 종료된다.
그 외에도 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시험 프로젝트의 결과를 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시험 프로젝트를 통해 충분히 교훈을 얻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려면 가장 유망한 관계를 심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학계에서 활동하는 외부 파트너와 함께 연구를 진행할 내부 담당자를 임명하고 좀 더 장기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