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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tegies for Learning from Failure

실패사용설명서 : 줄기찬 실험이 성공 낳는다

에이미 C. 에드먼슨 | 95호 (2011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1년 4월 호에 실린 에이미 C. 에드몬슨의 글 ‘Strategies for Learning from Failure’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실패를 거울 삼아 발전하는 기업은 놀랄 정도로 드물다. 배우려는 의지가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제약, 금융서비스, 제품 디자인, 통신, 건설업종의 기업과 병원이나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왕복선 프로그램 책임자와 인터뷰를 했다. 이들 모두는 실패를 통한 성장과 개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는 사후 조치나 원인 분석 등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했던 경영진의 대부분은 ‘실패는 나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들의 실패 활용법은 간단했다. 뭐가 잘못됐는지를 점검하고 앞으로는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식이다. 더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실패 원인을 파악하고 보고서로 작성해서 조직 전체에 배포하는 전담팀을 두는 게 고작이었다.
 
안타깝지만 이들은 실패에 대해 잘못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실패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실패는 나쁠 때도 있지만 불가피할 때도 있다. 심지어는 바람직할 때도 있다. 둘째, 실패를 통해 발전하는 길이 쉽지 않다. 효과적으로 실패를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조직은 결코 흔하지 않다. 실패를 통해 발전하려면 상황별로 적절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들에겐 거의 없었다. 피상적인 결론(‘절차를 지키지 않아서 실패했다’)이나 변명(‘제품은 훌륭한데 시장이 준비가 안 됐다’)을 뛰어넘는 학습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낡은 문화적 관념과 성공에 대한 전형적 사고를 벗어던지고 실패가 선사하는 교훈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문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실패 원인 분류
 
고의적 규정 무시 조직원이 정해진 절차와 관행에 어긋나는 행동을 선택
부주의 조직원이 의도치 않게 세부 규칙을 지키지 못함
능력 부족 조직원이 해당 작업을 수행할 기술, 조건을 알지 못하거나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했음
부적절한 절차 역량 있는 조직원이 정해진 규정을 준수했지만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
어려운 과업 업무가 너무 어려워서 매번 안정된 결과를 내기 어려움
복잡한 절차 수많은 요소 및 단계로 구성된 절차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문제를 일으킴
불확실성 미래의 일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옴
가설 입증 실험 새로운 아이디어와 디자인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 실패로 돌아감
모험적 실험 지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실험이 실패로 돌아감
 
 
 
네 탓이야!
 
실패는 누군가의 잘못으로 일어난다. 실패와 잘못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다른 가정, 조직,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부터 실패를 인정하면 책임도 함께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실패를 통해 발전한 사람을 칭찬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조직 문화가 흔치 않은 이유다.
 
병원, 투자은행 등 다양한 조직의 경영진과 인터뷰를 한 결과 이들은 모두 실패를 통한 발전과 무조건적인 용인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무책임하지 않으면서도 실패에 건설적으로 대응할 방법은 무엇일까? 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게 이들의 고민이었다.
 
이런 우려는 잘못된 이분법적 시각에서 비롯된다. 실패를 인정하고 이를 사실대로 보고하도록 하는 문화에는 높은 성과를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이 함께 따른다. 일부 조직에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고의적 규정 무시나 신중한 실험 등의 다양한 실패 원인을 소개한 ‘실패 원인 분류’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실패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이 중 정말 책임을 물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실패 원인 분류’에서 첫 번째로 설명한 ‘고의적 규정 무시’는 책임져야 마땅한 행동이다. 그러나 부주의로 인한 실수는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보자. 노력이 부족해 실패했다면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오래 근무를 하다가 피곤해서 어쩔 수 없이 실수를 저질렀다면 근무 시간을 길게 배정한 관리자에게 더 책임이 있다. 실패 원인 목록을 짚어가다 보면 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때도 있다. 신중히 계획한 실험의 경우 실패가 소중한 정보를 알려주기 때문에 오히려 칭찬해야 마땅하다.
 
기업 최고경영진에게 ‘실패 원인 분류’를 보여주고 징계 대상이 돼야 하는 실패가 전체의 몇 % 정도인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2∼5%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실제로 잘못을 추궁하는 경우는 어느 정도냐고 물었더니 이들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70∼90%라고 답했다. 이렇게 실패의 책임자를 추궁하는 조직 문화에서는 실패를 아예 보고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을 기회도 사라진다.
 
 
 
 Focus on Failure
 
M&A
기업 인수를 위한 과다 비용 지출은 되풀이되는 경영 실패 중 하나다.
8억5000만 달러: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비보(Bebo)를 2008년 AOL이 인수한 가격
1000만 달러: AOL이 비보를 2010년에 매각한 가격
 
 
모든 실패가 같진 않다.
실패 원인과 맥락을 좀 더 세심히 이해하면 문책 대상을 찾는 소모적 일을 피하고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효과적 전략을 정착시킬 수 있다. 실패를 유발하는 경우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실수는 대개 △예방 가능한 실패 △복잡성으로 인한 실패 △똑똑한 실패의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예상 가능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예방 가능한 실패.
여기에 속하는 실수는 ‘나쁜’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 생산 및 서비스 분야에서 대량의 제품을 다루거나 일상적 업무를 소화할 때 규정된 절차를 지키지 못해 생기는 실패기 때문이다. 적절한 연수와 지원만 받으면 이런 업무는 일관성 있게 수행할 수 있다. 일상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을 때는 대개 규정 무시와 부주의, 무능력이 원인이다. 이 경우 원인이나 해결책을 찾는 일이 쉽다. 하버드의대 외과의 아툴 가완디(Atul Gawande)가 베스트셀러 <체크리스트 매니페스토(The Checklist Manifesto)>에서 설명한 ‘점검 목록 확인’이 좋은 방법이다.
 
도요타가 자랑하는 도요타 생산시스템(TPS·Toyota Production System)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TPS는 절차와 조금씩 어긋나는 작은 실수를 꼼꼼히 점검하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을 제도화한 것이다. 생산·운영 관리를 전공한 학생이라면 잘 알겠지만 도요타의 생산 라인 직원들은 문제를 발견하거나 문제가 될 소지를 발견했을 때 ‘안돈 코드(andon cord)’라고 불리는 줄을 잡아당긴다. ‘안돈 코드’가 잡아당겨지는 즉시 생산 공장은 문제 진단·해결 모드에 돌입한다. 문제가 1분 내에 해결되면 생산은 재개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든 생산공장의 생산이 멈춘다. 기업의 수익이 아무리 떨어져도 실패를 완전히 파악하고 해결하기 전까지 생산은 재개되지 않는다.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피치 못할 실패.
조직이 경험하는 실패의 대다수는 업무의 불확실성 때문에 생긴다. 다시 말해 특정한 수요와 사람, 문제가 맞물려 전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상황이 벌어진다. 환자 상태의 경중에 따라 응급실 환자를 분류할 때, 전장에서 적에 대한 대응 방식을 결정할 때, 급성장 중인 신생 기업을 경영할 때는 모두 불확실성과 맞서 싸워야 한다.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발전소와 같이 복잡한 시스템을 갖춘 조직에서 시스템 실패는 항상 존재하는 위험이다.
 
안전 및 위험 관리를 위한 모범 관행을 충실히 따르고 실패를 철저히 분석한다면 심각한 실패는 피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작은 절차상의 실패는 피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는 절차상의 실수를 나쁘게만 생각한다면 복잡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실패를 막으려면 작은 실패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수정해 가야 한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고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연이은 작은 실수들이 어느 순간 나쁜 방향으로 조합되면서 일어난다.
 
시장을 앞서가는 똑똑한 실패.
바람직한’ 실패의 범주다. 조직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귀중한 지식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심 시트킨(Sim Sitkin) 듀크대 교수(경영학)는 이를 ‘똑똑한 실패’라고 부른다. 똑똑한 실패는 실험의 결과로 생긴다. 실험은 전무후무한 상황과 마주쳤는데 적절한 답을 모를 때 실행된다. 신약 개발, 신사업 출범, 혁신제품 설계, 미개척 시장의 고객 반응 시험이 그 좋은 예다. 이런 실험을 우리는 ‘시행착오’라 부른다. 그러나 이 말에는 어폐가 있다. 우선, 착오(error)라는 말은 어딘가에 착오가 없는 ‘옳은’ 결과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미개척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실험을 실시한다면 유용한 실패를 빨리 해야 한다. 실험으로 올바른 실패를 한 경영자는 필요 이상의 규모로 실험을 실시하는 ‘미련함’을 피할 수 있다.
 
디자인 컨설팅업체 아이디오(IDEO)의 지도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아이디오는 고객사의 기존 라인 내에서 개발된 제품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해당 분야에서 아이디오의 역량은 아주 높았다. 그러나 아이디오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혁신 전략 컨설팅이었다. 고객이 새로운 제품 라인을 만들도록 돕기 위한 서비스다. 아이디오는 신규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매트리스 생산업체를 대상으로 먼저 작은 컨설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새로운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외부에 알리지도 않았다.
 
매트리스 회사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고객사는 아이디오의 서비스를 받은 후에도 제품 전략을 변경하지 않았다. 아이디오는 경험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이후 아이디오는 MBA 학위를 가진 컨설턴트를 채용해 고객사들이 더 효과적으로 신규 사업을 개척하도록 도왔다. 고객사의 경영진 일부도 팀에 넣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전략 혁신 서비스는 현재 아이디오 사업 수입의 3분의1을 차지한다.
 
복잡한 시스템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절차상의 실패나 시장 개발을 위한 똑똑한 실패를 용인한다고 해서 기업의 성과가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건 아니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싶다면 먼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실패 그 자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실패를 겪으면 이성적인 사람도 감정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지도자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실패를 편안히 받아들이는 문화
 
직원들이 현재와 미래의 실패를 포착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실패를 편하게 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줄리 모라스(Julie Morath)는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미네소타 아동병원 및 임상센터의 최고운영책임자로 재직하면서 실패를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의료 사고를 대폭 줄였다. 다양한 사례 연구를 통해 발견한 5개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모라스가 사용한 방법도 포함돼 있다.
 
업무 범위를 정확히 정의한다.
직원들은 주어진 업무 환경(일상적 업무, 복잡한 업무, 혁신 업무) 속에서 어떤 실패 유형이 발생하는지, 실패를 감지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서 공개적 논의와 협업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정의는 실패가 가진 독성을 완화시켜준다.
병원처럼 복잡한 업무 환경 속에서는 일련의 작은 사고가 겹쳐 중대 사건이 발생한다. 병원 체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직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모라스는 미국 의료사고율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고 토의그룹을 조직한 후 조직원에게 영향력이 큰 사람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의료 사고의 심각성에 관한 정보를 조직원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과업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실패를 보고하는 사람을 치하한다.
안 좋은 소식이나 질문,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실수를 지적하는 사람은 처벌하기보다 치하해야 한다. 먼저 뉴스 가치에 감사를 전한다. 이어 문제를 고치고 그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얻을 방법을 연구한다.
모라스는 누구 잘못인지 따지지 않는 보고 방식을 도입했다. 의료 사고와 사고로 번질 뻔한 실수는 익명으로 보고할 수 있었다. 모라스가 이끄는 팀은 새로운 형식의 환자 안전 보고서를 만들고 의료진이 직접 설명한 사고 내용과 원인을 보고서에 포함시켰다. 모라스가 구상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자 사고 보고율은 즉시 급증했다. 모라스는 사고 자료를 통해 실패를 극복할 수 있으므로 자료가 들어오면 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직원들을 교육시켰다. 그리고 모든 사고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했다.
 
한계를 인정한다.
자신이 모르는 일, 했던 실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솔직히 인정하면 다른 사람들 또한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모라스는 미네소타 아동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환자 안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자신이 새로 합류했기 때문에 아동병동의 업무 처리 방식에 관해 제한적 지식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후 의료진과 그룹 회의나 1대1 대화를 가지면서 모라스는 의료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참여를 독려한다.
직원의 의견이나 생각을 묻고 이들이 실패를 감지·분석한 후 유용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조직원의 참여가 확대되면 변화에 대한 저항과 방어적 태도 또한 약해질 수 있다.
모라스는 각 부서 전문가가 참여하는 팀을 구성해 이들에게 실패 분석을 맡겼다. 이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 부서 직원들을 불러 필요한 질문을 했다. 초기에는 환자 치료와 관련해서 직원들이 바라는 만큼 모든 상황이 안전하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직원들은 대답을 생각하면서 치료 환경에서 개선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너나 할 것 없이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범위를 설정하고 자신의 업무는 자신이 책임지도록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잘못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고 있을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징계를 내리거나 해고할 때에는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사고로 입은 피해와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말해준다.
누구 잘못인지 따지지 않는 보고 방식을 도입하면서 모리스는 실패를 보고하는 행동 자체는 처벌받지 않지만 특정 행동(무모한 행동, 의도적 규정 위반, 자신의 역량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무리하게 처리)은 처벌받는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같은 실수를 3번 해서 정리 해고된 사람이 있었다. 이때 직원들은 동료의 처지에 대해 슬퍼하고 걱정하긴 했지만 안도감을 가장 크게 느꼈다. 해당 직원의 잘못으로 환자가 위험에 처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는 점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학습 문화 구축
 
오직 리더들만이 실패했을 때 서로를 책망하지 않고 실수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하며 이를 통해 배우는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실패를 편안히 받아들이는 문화’ 참조) 실패가 발생했을 때 ‘누구 때문이야’보다 ‘무슨 일이 있었나’로 초점을 옮기는 게 중요하다. 조직도 이런 초점의 변화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실패의 규모가 크든 작든 일관성 있게 보고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새로운 이론을 실험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경영자는 직원이 수행하는 작업의 성격에 맞게 메시지를 조정한다. 연구개발(R&D) 업무를 수행하는 연구원에게는 “우리의 목표는 새로운 발견이다. 빨리 실패하면 그만큼 빨리 성공한다”고 말해준다. 그런데 이렇게 미묘하며 중요한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간과하는 경영자가 의외로 많다. 이들은 실패를 다룰 때에도 조직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자료 분석을 통해 결함을 평가하는 통계적 공정관리는 소프트웨어 에러처럼 특정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무작위로 발생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결함을 수정하는 데에 맞지 않다. 독창적 신제품 개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위대한 과학자라면 본능적으로 받아들일 아이디오의 슬로건, ‘빠르게 성공하려면 자주 실패하라’는 말은 생산공장에는 맞지 않다.
 
특정 분위기나 업무가 기업 문화를 장악하면 기업이 실패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자동차 업체의 경우 예측 가능한 대량 생산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실패를 예방하는 일이 가능하며,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 및 조직에서는 앞서 말한 일상 업무와 복잡한 업무, 신시장 개척을 위한 업무 등의 3가지 작업이 동시에 수행된다. 따라서 리더는 각 분야에 맞는 방식으로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조직은 감지, 분석, 실험이라는 3가지 활동을 통해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
 
 
 
 
 
 
 
실패 감지
 
피해와 비용이 엄청난 대규모 실패를 포착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즉각적이고 노골적인 피해가 나타나기 전까지 실패를 감지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실패가 큰 재난으로 이어지기 전에 초기에 감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2006년 9월 보잉(Boeing)을 떠나 포드(Ford)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앨런 멀럴리(Alan Mulally)는 실패 감지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그는 업무 보고서를 작성할 때 색깔을 이용해 상태를 표시(녹색은 ‘양호’, 노란색은 ‘주의’, 붉은색은 ‘문제 발생’)하라고 지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2009년 <포춘(Fortune)>에 따르면 멀럴리가 취임한 후 처음으로 열린 회의에서 모든 관리자들은 녹색으로 표시된 보고서를 들고 왔다. 멀럴리는 크게 실망했다. 포드는 전년도에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멀럴리는 이 사실을 지적하며 “정말 문제가 하나도 없냐”고 노골적으로 따졌다. 이후 제품 출시를 늦출 수 있는 심각한 결함을 노란색으로 표시한 보고서가 제출되자 회의장은 숨막힐 정도로 조용해졌다. 멀럴리는 박수로 용기를 치하했다. 그러자 다음 주간 직원 회의부터 보고서 색깔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포드 사례는 기업에 만연한 근본적 문제를 보여준다.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에 발생할 실패는 여러 방법으로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이 제대로 활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사적품질경영(Total Quality Management)과 고객 의견 수렴은 일상 업무에서 발생하는 작은 실패를 탐지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고신뢰 조직(High-reliability-organization) 방법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맡은 일을 완수하는 고신뢰 조직의 특성에 기반해 만들어진 방법이다. 대재앙을 몰고 올 실패, 다시 말해 원자력 발전소 등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발생 가능한 실패를 예방하기 위해 사용된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58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프랑스 전력공사(Electricité de France)다. 일상적 규제 요건을 준수하는 데서 한 단계 나아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표준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게 없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조사에 나서며 이를 모든 발전소에 즉시 공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흔한 건 아니다. 누군들 상사와 동료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어하겠나. 예를 들어 보자. 소비재 대기업으로 옮겨간 한 임원이 있었다. 그가 조직에 합류한 직후, 기업 인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신참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한 그 임원은 인수 논의가 오가는 동안 침묵을 지켰다. 다른 임원들은 모두 인수를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결국 인수가 결정됐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기업 인수는 실패로 드러났다. 경영진이 다시 모여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검토했다. 임원들은 외부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어떤 행동이 실패에 일조했는지를 분석했다. 신참 임원은 침묵을 지킨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모두가 ‘그렇다’고 할 때 혼자 ‘아니오’를 외치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밉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간호사가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솔직히 말할 수 있느냐에 따라 병원 내 사고나 실수가 크게 달라진다. 가장 큰 변수는 중간급 관리자가 실패에 반응하는 태도였다. 중간급 관리자가 실패를 자유롭게 논의하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질문을 허락하면서 겸손과 호기심을 보인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들어맞는 얘기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우주비행사 7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 컬럼비아 우주 왕복선 사고다(HBR 2006년 11월 호, 마이클 A 로베르토, 리처드 M.J. 보머, 에이미 C. 에드몬드슨 공저, <애매모호한 위협을 만났을 때(Facing Ambiguous Threats)> 참조). 2년 이상 컬럼비아호의 실패 원인을 연구한 필자는 다음의 사실을 발견했다. NASA 관리자들은 발사 시 외부 연료 탱크에서 떨어져 나간 단열재가 선체 좌익에 남긴 구멍이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무려 2주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위험의 소지가 있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점검(위성 사진을 찍거나 승무원의 우주 유영으로 점검)하라는 엔지니어의 요청을 거절했다. 중요한 실패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에 16일 후 엄청난 재앙이 발생했다. 당시 프로그램 관리자 사이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근거 없는 무기력함이 퍼져 있었는데 이 또한 컬럼비아호의 문제를 간과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사후 조사 결과, 이들이 행동을 취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재난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 절차가 확립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다.
 
언제 실험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지도 난감한 일이다. 실패를 선언하는 적절한 시점을 선택하도록 직원을 훈련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최선의 결과를 바라고 실패를 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실패를 과감히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된다. 위계적 명령 체계는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 결과, 연구개발(R&D) 프로젝트의 실패가 불 보듯 뻔한데도 과학적·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 않은 수준까지 실험을 이어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며 막연한 희망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엔지니어나 과학자가 치명적 결함을 감지한 후에도 실패를 인정하는 공식 결정이 수개월 뒤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해결책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다. 실패 ‘낙인’을 없애면 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세계적 제약사인 일라이릴리(Eli Lilly)는 1990년대 초반부터 귀중한 지식을 알려주고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도록 도와준 실패를 기리는 ‘실패 축하 파티’를 열고 있다. 파티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진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신속히 투입되면서 오히려 수십만 달러의 돈이 절약됐다. 당연히 새로운 발견이 촉진됐다.
 
 
 
   성공적 실패 설계
 
모의 테스트는 유용한 실패보다 성공을 위해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유용한 실패란 가치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실패를 말한다. 현재 계획 중인 모의 테스트가 유용하게 설계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책임자가 다음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하자.
 
모의 테스트는 (최적화된 실험 환경이 아니라) 실제 사업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가?
 
투입된 직원과 자원, 실험 대상이 된 고객이 실제 운영 환경을 대표하는가?
 
모의 테스트는 (해당 신제품의 가치를 증명하기보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진행되는가?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모든 직원 및 관리자가 이해하고 있는가?
 
모의 테스트 성공 여부가 직원 보상과 성과 평가에 반영되는가?
 
모의 테스트 결과로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는가?
 
 
실패 분석
 
일단 실패를 감지하고 나면 뻔하고 피상적인 원인만 나열하지 말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실패의 근본적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엄격한 절차를 통해 첨단 분석법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교훈을 도출하고 효과적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다. 이때 지도자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만 몰두하지 말고 문제를 제대로 파고들어가 실패 뒤에 숨어 있는 교훈을 발견해야 한다.
 
철저한 실패 분석은 왜 어려울까? 우선, 자신이 저지른 실패를 꼼꼼히 분석하는 일은 불쾌할 뿐 아니라 자부심을 저해할 수 있다. 자율에 맡길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 분석을 건성으로 해치우거나 분석 자체를 회피한다. 둘째, 조직의 실패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솔직한 답을 해야 한다. 애매한 원인을 감내하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책임자의 미덕은 침착한 반성 능력이 아니라 결단력과 효율성, 실천력이다. 올바른 조직 문화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패 분석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이론보다 자신의 기존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편향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실패했을 때 인간은 내 잘못을 찾기보다 외부 상황을 탓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실패했을 때는 외부의 영향을 축소하고 그 사람의 책임을 확대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기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불리는 심리적 오류의 덫에 걸린 것이다.
 
연구 결과, 많은 실패 분석이 제한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병원처럼 사람의 목숨이 결정되는 복잡한 조직이라고 상황이 다른 건 아니다. 의료 사고나 절차상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는 병원은 거의 없었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10년 11월 호에 게재된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병원 조사 결과를 보면 매년 수천 명의 사람이 의료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이 수십 년 전에 알려졌는데도 병원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예외도 있다. 실패를 통한 학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준 사례들이다. 유타(Utah)와 아이다호(Idaho) 남동부에 있는 23개 병원이 연합한 인터마운틴 헬스케어(Intermountain Healthcare)는 의사가 정해진 치료 프로토콜과 다른 조치를 취하면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분석해서 프로토콜을 보완하는 기회로 삼는다. 기존 프로토콜이 적절치 않다면 이를 보완하도록 허용하고 해당 조치로 치료 경과가 개선됐는지도 자료로 공유한다. 다행히 프로그램에 대한 의사들의 호응은 높다. (HBR 2010년 4월 호 리처드 M.J. 보머의 기사 ‘일선 병원에서의 의료 서비스 개혁(Fixing Health Care on the Front Lines)’ 참조)
 
실패의 첫 번째 이유(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뒤에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를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때는 각 부서에서 다양한 기술과 관점을 가진 인원을 차출해 전문 분야가 다른 전사적 팀을 구성하면 도움이 된다. 복잡한 실패는 서로 다른 부서나 팀에서 발생한 복수의 사건이 하나로 결합돼 나타날 때가 많다. 따라서 상황 파악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팀끼리 상세한 분석과 논의를 해야 한다.
 
컬럼비아호 사고가 터진 후 내로라하는 의사와 엔지니어, 항공 전문가, 해군 지도자, 우주비행사들이 모여 수개월에 걸쳐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이들은 사고의 직접적 원인(발사 당시 떨어져 나간 단열재 일부가 왼쪽 날개 시작 부분을 파손)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또 다른 원인도 찾아냈다. 경직된 위계 구조와 정해진 시한에 얽매이는 NASA의 조직 문화였다. 엔지니어들이 애매한 위험 가능성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못하고 확실한 사안에 대해서만 보고를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Focus on Failure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일본의 콩고구미가 문을 닫았다. 절과 사원을 짓는 일본가족기업이었다. 1400년간 사업을 해왔던 회사였다.
 
 
실험 장려
 
실패를 통한 학습을 완성하기 위해 세 번째로 필요한 게 바로 전략적 실패 경험이다. 적절한 시기와 장소를 선택해 체계적인 방법으로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다. 기초과학 연구는 성공할 경우 엄청난 발전을 가져오지만 대부분(어떤 경우 70% 이상)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매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실험에 임할까? 첫째, 이들은 실패가 피해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란 걸 안다. 과학적 발견의 선봉에 서다 보면 실패는 생활의 일부가 된다. 둘째,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이들은 실패를 통해 귀중한 정보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경쟁자보다 이를 먼저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기업에서 신제품 및 서비스 시험을 맡은 책임자들은 그렇지 않다. 신제품 및 서비스 시험은 기업의 가장 대표적 실험 활동인데 이를 실시하는 책임자들은 실험이 시작되자마자 완벽한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안타깝게도 성공을 향한 열망은 상품의 성공적 출시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책임자들은 시장에서 마주칠 법한 가장 현실적 환경 대신 가장 이상적인 환경으로 실험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의 테스트는 어떤 방법이 실패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지 못한다.
 
DSL 서비스 초기, 한 선도적 통신사는 주요 도시의 각 가정에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전면 개시하는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 결과는 재난 수준이었다. 통신사들은 약속의 75%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주문기한을 지키지 못한 일도 무려 1만2000건이나 됐다. 고객은 분노했다. 항의 전화가 빗발치면서 서비스 담당자들은 제대로 전화를 받지도 못했다. 직원 사기는 땅으로 떨어졌다. 오랫동안 높은 고객 만족도와 브랜드 가치를 자랑했던 선도 기업이 이런 위기에 봉착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교외 지역에서 시행했던 소규모 실험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성공에 고무된 이 통신사의 경영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실제 서비스 환경은 실험 환경과 너무 달랐다. 친절과 전문성을 함께 갖춘 최고의 직원이 배치됐고 고객은 모두 교육 수준이 높고 기술 사용에 능했다. 당시 DSL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었다. 기존 전화와 달리 가정 컴퓨터 환경과 고객의 기술 사용 능력에 따라 서비스 경험이 현저히 달라지는 상품이었다. 이 때문에 서비스 전달 과정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 통신사는 실험 과정에서 이런 변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본사의 지원을 제한하고 기술 사용 능력이 낮은 고객과 구형 컴퓨터를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면 보다 유용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최상의 조건 속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뻔한 결과 대신 실패로 이어질 각종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성공적 실패 설계’ 참조) 물론 이를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성공이 아닌 유용한 실패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책임자가 알고 있어야 한다.
 
뛰어난 조직은 실패를 탐지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배움과 혁신을 얻는 영리한 실패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 조직의 책임자들이 실패를 즐겨서가 아니다.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실험의 부산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실험을 하는 데 대규모 예산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적은 예산으로 신기술 모의 실험과 시뮬레이션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행동을 조장하지 않으면서도 실패 보고를 장려해야 한다는 다소 모순된 목표를 이루려면 자신과 타인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경영진은 직원들이 용감하게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무능력의 소산으로 보일 수 있는 실패에 대해 화를 내거나 꾸짖어도 안 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조직의 실패 뒤에 복잡한 시스템이 도사리고 있으며 대화를 억압하면 실패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시스템을 개선할 기회마저 잃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현명한 경영자는 직설적이고 권위적인 생각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이들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문제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능력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연구와 강연, 컨설팅 등을 진행하면서 만난 경영진은 실패를 이해해주기 시작하면 근무 기강이 해이해져 실수가 증가할 수 있다는, 반대쪽의 위험에 훨씬 더 예민했다.
 
이젠 이런 우려를 접을 때가 왔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자.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업무 환경에서는 실패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조직보다 먼저 실패를 감지하고 수정해서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기업이 성공하는 시대가 왔다. ‘누구 잘못이냐’만 따지는 기업은 그런 성공을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번역 |우정이 woo.jungyi@gmail.com
 
에이미 C. 에드몬슨
 
에이미 C. 에드몬슨(Amy C. Edmondson)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리더십·경영 교수이며 기술 및 생산관리 공동 학과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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