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0년 12월 호에 실린 하버드 경영대학원 경영학 부교수 로버트 C. 포젠의 글 ‘The Cases For Professional Board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08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여러 금융업체들이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로부터 엄청난 금액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당시 경영자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업 이사회를 비난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회의 감시에 관한 문제는 엔론 사태가 벌어진 10년 전에 이미 해결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즉 엔론 파산 후 미국 의회가 사베인옥슬리법을 통과시키면서 이사회 문제도 해결된 것으로 여겼다.
사베인옥슬리법은 이사회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규정한다. 이론적으로는 사외이사가 사내이사보다 주주 이익을 한층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베인옥슬리법 도입 이후 고위 경영자들은 내부 통제 상황에 대한 연례 평가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고위 경영자들이 작성한 평가서는 외부 회계 감사관의 검토를 거친 후 추가로 준 정부 감독 위원회의 검토를 받는다.
하지만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는 사베인옥슬리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금융위기 당시 대부분의 대형 금융회사들은 사베인옥슬리법에서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감시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2008년에 몰락한 여러 은행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감사위원회, 보상위원회, 임명위원회뿐 아니라 이사회마저도 구성원의 80% 이상이 사내 인물이 아니라 독립성을 확보한 인물이었다. 파산 신세를 면치 못한 모든 금융회사들은 매년 내부 통제 상황을 평가했다. 외부 회계 감사관들이 2007년에 발표한 보고서에는 통제 상황을 살펴봤을 때 중대한 취약점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패를 막을 수 없었다.
사베인옥슬리법을 통한 개혁이 효과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사베인옥슬리법은 이사회 구성원의 질을 향상시키거나 이사들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키지는 못한 채 이사들에게 주어진 관리 역할에 법적인 의무 사항을 추가한 제도에 불과하다. (‘비밀 회의: 효과가 있는 개혁’에서 예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사장 및 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동시에 규모가 큰 여러 산업기업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학자로는 오랫동안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많은 기업의 이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만성적인 문제를 확인했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사회의 규모가 너무 크다. 규모가 너무 비대하면 효과적인 의사결정 집단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둘째, 이사들이 관련 업계에 대한 충분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셋째, 기업의 글로벌 운영 방식에 내재돼 있는 복잡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는 이사가 극히 드물다. 이게 바로 가장 중대한 결함이다. 이에 따라 필자는 이번 글에서 새로운 기업지배구조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문 이사회 도입
필자는 효과적이지 않은 의사결정을 초래하는 3개의 요인을 극복할 수 있는 전문 이사회 모델을 제안한다. 전문 이사회 모델에서는 모든 이사회의 규모가 7명으로 제한된다. 즉 최고경영자(CEO)가 내부 경영진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고 나머지 6개의 이사 자리는 사외이사에게 돌아간다. 사외이사 대부분은 해당 회사에 대해 방대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정기 이사회가 열리는 날 외에 한 달에 최소 이틀 이상 해당 기업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