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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불확실을 이기는 전략 : 센스메이킹

美 맨 협곡 화재가 비극이 된 원인은…
집단적 센스메이킹이 위기를 해결한다

김양민 | 282호 (2019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경영자는 불확실한 세상을 100% 정확하게 판단,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센스메이킹’을 통해 현실을 ‘가장 그럴듯하게’ 이해하고 베팅할 수 있다. 센스메이킹에 성공하는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보는 현실은 고정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양한 소스의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때때로 달라진 상황에 따른 전략의 수정도 감행해야 한다.
2. 경영자는 직접 서비스 현장을 방문해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이해함으로써 공급자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3. 기업에서 센스메이킹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 팀 단위로 이뤄진다. 개인 간의 경쟁보다는 팀워크를 촉진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2019년 1월 출간된 필자의 저서 『불확실을 이기는 전략: 센스메이킹(박영사)』의 내용을 발췌, 요약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불확실한 세상에서 산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한국이 일본과 무역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이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일어난 사건인지, 그 사건이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센스메이킹(Sensemaking)’이다.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칼 웨익1 미시간대 석좌교수는 센스메이킹을 조직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여러 현상을 ‘메이크 센스(make sense)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필자는 책 『불확실을 이기는 전략: 센스메이킹』에서 경영 현장에서의 센스메이킹을 ‘조직의 내·외부에서 진행되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을 명백하게 이해하게 하고 그 이해에 바탕을 둔 액션을 취하게 하는 인지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웨익과 필자 외에도 센스메이킹에 대한 정의를 내린 학자는 데보라 안코나 MIT 교수 2 를 포함해 매우 많다. 많은 학자가 동의하는 대목은 조직 내의 센스메이킹은 조직원들이 혼란스럽고, 놀라운, 많은 경우 예기치 않았던 사건과 마주할 때 중요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블랙 스완과 마주할 때 많은 개인과 조직이 센스메이킹에 실패한다. 『블랙 스완』은 2007년 출간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책 제목이다. 탈레브는 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서 ‘블랙 스완’을 ‘좀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중대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유럽인들은 17세기 말 네덜란드의 탐험가 윌렘 데 블레밍 일행이 호주 서부에서 검은 백조를 데려오기 전까지 지구상의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처음 검은 백조를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즉, ‘블랙 스완’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 밖의 사건을 지칭하는 메타포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은 일종의 극단값(outliers)이라고 주장한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놓여 있는 관측치’를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다.



9·11 테러는 당시 미국 국방을 책임진 사람들에게 과거의 경험으로 예측할 수 없는 극단값이었다. 2001년 9월11일 미 동부시간 오전8시 48분부터 약 2시간40여 분간의 CNN 라이브 방송을 유튜브 3 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 비행기가 북쪽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고 나서 거의 20여 분간 앵커들은 이것이 단순사고인지, 의도된 공격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첫 충돌 19분 후 두 번째 비행기가 남쪽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앵커들은 이것이 테러라는 확실한 의심을 갖고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미 두 무역센터 빌딩이 화염에 휩싸이고 맨해튼 하늘이 검은 연기로 자욱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린 것이다. 국방·안보 담당자들의 대응도 별로 빠르지 않았다. 이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없으니 반응이 신속하게 나올 수 없었다.

2007년 출시된 아이폰도 일종의 극단값이었다. 출시 직후 IT 업계의 전반적인 반응을 생각해 보자. 당시 MS CEO 스티브 발머는 아이폰 발매 직후 한 인터뷰에서 “500달러에 플랜에 가입하면 보조금 지급이라고?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전화기일 듯한데! 게다가 자판이 없으니 그다지 좋은 e메일 기기는 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치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500달러나 되는, 물리적인 키보드가 없는, 전면 거의 전부가 화면인 전화기는 발머의 경험에 없는 극단값이었다. 유튜브에 업로드돼 있는 이 동영상 4 은 아마도 스티브 발머 생애 최악의 흑역사일 것이다. MS뿐 아니라 당시 모바일 시장을 주무르던 노키아와 모토로라, 그리고 PC 업계의 선두주자들인 델이나 HP 역시 자그마한 기기의 파괴력을 짐작하지 못했다.



2010년 6월, 아이패드를 선보인 직후 병색이 완연한 스티브 잡스는 ‘All Things Digital: D8’ 콘퍼런스에서 아주 도발적인 예언을 한다. 앞으로 PC의 판매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 PC 판매가 시작된 이후 PC 산업은 오로지 우상향의 그래프를 그린 성장산업이었기에 스티브 잡스의 예언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잡스의 예언이 실현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패드 등장 후 불과 2년 만에 PC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2년 2.5% 감소에서 시작해 2013년 한 해에만 무려 11.5%의 감소를 기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가 모바일 시대로의 변곡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경영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델, HP, 그리고 MS도 그 후 상당기간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개의 사례, 즉 9·11 테러 직후의 미국 언론, 군, 안보책임자들(그리고 방송을 지켜보던 대다수의 미국인), 그리고 2007년 아이폰과 2010년 아이패드 등장과 같은 사건들은 센스메이킹이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자신의 유작이 된 아이패드를 선보인 후 한 잡스의 예언은 그가 얼마나 센스메이킹에 뛰어난 리더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PC를 트럭에 비교하면서 왜 PC 판매가 줄어들 것인지를 설명했다. 20세기 전반에 농업시대의 차들은 상당수 픽업트럭이었으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자동차 시장을 세단이나 SUV 등과 나눠 갖게 됐다. 잡스는 PC도 한 세대 전의 트럭처럼 전체 컴퓨팅 디바이스 시장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나눠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컴퓨팅 디바이스 시장의 크기는 한정돼 있는데 기기의 종류가 늘어나니 PC의 수요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MS는 발머가 CEO 자리에서 물러난 후 극적인 회복세를 보여주는데 그 부활을 주도한 것은 바로 새 CEO 사티아 나델라 5 이다. 그는 모바일과 클라우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MS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켰고 시장은 나델라 취임 후 MS의 주가를 네 배 가까이 상승시킴으로써 그의 노력에 화답했다. 그는 잡스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포스트 PC 시대에 진입한다고 판단하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사업이 앞으로 대단히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업을 이끌어 왔다. 돌이켜 보면 잡스나 나델라나 참으로 ‘메이크 센스’한 주장을 했고, 자신들의 주장을 실천에 옮기면서 소속 기업의 주가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한마디로 그들은 센스메이킹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센스메이킹과 위기관리

칼 웨익이 1995년 자신의 센스메이킹 이론을 집대성한 책, 『조직 내에서의 센스메이킹(Sensemaking in Organization)』의 서두는 “센스메이킹은 사람들이, 그 발생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돼서(implausible) 보고하기조차 두려워하는 사건과 마주할 때 극단적으로 시험대에 오른다” 6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센스메이킹이 위기 상황에서 특히 중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웨익은 1993년 한 논문에서 센스메이킹에 실패할 때 조직이 어떤 비극을 맞게 되는지를 1949년 몬태나주의 맨 협곡에서 일어난 산불 진화작업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의 예로 설명했다. 7 이 산불 진화 작전에서 낙하산으로 투입된 대원 15명 중 무려 12명이 사망하는데 충격적인 사실은 그들이 불을 끄다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원들은 다들 불로부터 도망치려다 사망했다. 낙하산 소방대원이 투입되는 산불은 대개 쉽게 통제가 가능한 초기 산불로 ‘스모크점퍼’라 불리는 이 대원들의 임무는 아직 크지 않은 산불의 발원지에 투입돼 초기 진압하는 것이었다. 웨익은 예상과 달리 간단한 산불이 아니었는데다 소방대장과 부하들 간의 충분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조직이 붕괴된 점을 센스메이킹의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이 맨 협곡의 참극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정작 소방대장 자신은 ‘에스케이프 파이어’라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에스케이프 파이어는 초원으로 덮인 지역에서의 산불에 대처하는 방법 중 하나로 불에 탈 수 있는 물질을 미리 태워버림으로써 연소된 지역에 더 이상 불길이 덮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당시 소방대장인 와그너 닷지는 앞에 불길이 다가오자 대원들에게 소방장비를 버리라고 외치고, 자신의 뒤편 산등성이에 불을 지르며 대원들에게 그 불이 타고 난 자리에 가서 엎드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나머지 소방대원들에게 이 대장의 말과 행동은 전혀 ‘메이크 센스’하지 않은 것이었다. 속으로 ‘우리가 소방대원인데 장비를 다 버리라니? 게다가 앞에 있는 불도 걱정인데 새로운 불을 놓다니? 다가오는 불길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불을 놓은 후 그 자리에 엎드리라니, 이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도 대장의 말을 듣지 않고 다들 불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운이 좋아 풀이 없는 큰 바위로 피신한 두 젊은 대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불길에 잡히고 말았다. 웨익은 잘못된 센스메이킹을 할 때 위기가 재앙이 되는 경우로 이 맨 협곡 산불을 예로 든다. 만약 대원들과 대장 간에 신뢰가 있거나, 에스케이프 파이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첫 소방 작업을 하는 대원들이 많았고, 그들이 소방 훈련을 받는 시기에 소방대장 닷지는 기지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어서 대원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다. 즉, 대장과 대원 사이에 신뢰가 쌓일 틈이 없었다. 게다가 이 에스케이프 파이어는 닷지 자신도 처음 해보는 ‘정말로 기발한’ 탈출 수단이었다. 따라서 대원들에겐 불을 지른다는 행동이 도저히 메이크 센스하지 않게 보였고 그 명령을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센스메이킹은 결국 현실을 어떻게 ‘해석(interpretation)’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실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추정(presumption)’들이 그 해석을 방해하거나 제약할 것이다. 만약 잘못된 추정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행동을 취한다면 그것 자체로 현실에 대한 해석은 물론, 센스메이킹 자체가 실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센스메이킹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 것일까? 칼 웨익 교수와 데보라 안코나 교수의 논의를 종합해 한국적 관점에서 센스메이킹을 키우는 방법과 그것이 한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을 다섯 가지 제안으로 정리했다.

DBR mini box : 센스메이킹 개념의 유래와 발전
여러 현상을 make sense, 즉 ‘말이 되게 하는 것’

센스메이킹은 미시간대 경영대학의 석좌교수이자 조직이론학자인 칼 웨익이 1969년 발표한 『조직화의 사회심리학(The Social Psychology of Organizing)』이라는 책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이다. 물론 ‘make sense’, 즉 ‘말이 되게 하다’라는 표현에서 파생된 것이므로 센스메이킹이라는 표현은 그 이전에도 쓰였으나 조직이론 측면에서 이 말을 사용한 사람은 웨익이 처음이었다. 웨익은 환경의 변화 때문에 기존에 일어나던 일이 중단되거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 조직의 액터(actor)들이 조직 내·외에 진행되는 여러 현상을 ‘메이크 센스하게 하는 것i 을 센스메이킹이라 설명했다. 워터맨은 센스메이킹을 ‘모르는 것을 구조화’하는 과정이라고, 링과 랜즈는 ‘개인들이 그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인지적 지도를 개발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주로 조직심리학 분야의 서적이나 논문에서 거론되던 이 개념이 일반 경영학 분야의 주제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89년 웨익이 발표한 논문 ‘위기상황에서 센스메이킹의 발현(Enacted sensemaking in Crisis Situations)’일 것이다. 이 논문에서 웨익은 위기상황에서 센스메이킹은 더욱 중요해 진다고 주장했다. ‘위기’ 자체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서 위기에 닥치면 조직원들은 평소 자신이 아는 조직의 환경과 위기 상황의 환경이 다르다고 느끼고 새로운 위기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상황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즉, 센스메이킹을 하기 위해서) 취하는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자칫 위기를 더 부추길 수 있다. 따라서 잘못된 센스메이킹을 하면 그 위기는 재앙이 되고, 잘하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실패 원인을 단순히 기술적 측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의 관계, 그리고 인간 간의 관계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위기관리 측면에서뿐 아니라 조직의 프로세스 연구 측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조직행동과 센스메이킹

웨익은 2005년 동료 교수들과 공저한 논문에서 조직 내 센스메이킹 과정을 [그림 1]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황 변화(예: 경제 환경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등장 등 사건 발생)가 일어나면 조직은 거기에 맞게 여러 가지 행동(enactment)을 취하는데 이 행동은 끊임없는 조직 내·외부 정보의 업데이트를 통해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조직 구성원들은 행동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 단서(예: 경제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단서, 또는 새로운 기술이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단서)를 회고(retrospective)를 통해 찾아내고, 그 단서에 따라 적절한 대안들이 선택(selection)되고 보존(retention)된다. 회고는 단어 뜻 그대로 변화가 일어나는 당시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상황이 벌어지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야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건의 흐름에 따라 그 사건을 해석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내는 것이 회고다.



일단 대안이 선택되고 보존되는 과정에서는 조직의 정체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센스메이킹에서 조직의 정체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현대 조직이론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 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신제도주의 이론에 따르면 조직은 그 조직이 속한 사회의 제도와 그 제도가 만들어 낸 내부의 논리에 따라 적법성, 지위, 이상 등을 추구하는 존재다. 웨익에 따르면 조직의 정체성은 조직원들의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각’을 말하며 이런 정체성은 조직의 결정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조직의 정체성은 조직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한할 뿐 아니라 조직원들이 선호하는 안을 선정하는 기준까지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센스메이킹을 ‘맥락적 합리성(contextual rationality)’에 관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맥락적 합리성 때문에 센스메이킹을 하는 사람들은 ‘넓은 현실(wider reality,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현실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 이미지는 100%의 정확성(accuracy)이 아니라 그럴듯함(plausibility)에 의해 만들어진다. 조직이 보는 현실은 100% 정확한 현실이 아니라 조직이, 자신의 정체성에 기반해 제한적 합리성을 통해 알아낸 ‘비교적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조직의 선택은 100%의 정확성이 아니라 ‘그럴듯함’을 좇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센스메이킹은 100% 확신이 아니라 70% 정도의 그럴듯함을 좇는 것이다. 단, 70% 정도의 그럴듯함은 언제든지 50% 미만의 매우 불확실한 가능성으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피드백과 업데이트를 통해 조직의 판단과 행동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피드백조차 조직의 정체성에 기반해 선택된 정보에 의한 피드백이지 100% 객관적인 원데이터(raw data)로 하는 피드백이 아니다.


연구 동향과 주요 학자들

초기 센스메이킹 연구는 주로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가 조직원의 센스메이킹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메이어는 어떻게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병원 관리자들의 병원 관리 능력이 엉망이 됐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관리자들이 그 파업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쏟아내면서 얼마나 센스메이킹을 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분석했다. 보그너와 바는 ‘초경쟁(hypercompetition)’이라 명명한 기업 간 과열 경쟁이 경쟁 업체, 고객 및 기타 산업 구조에 대한 경영진의 기존 믿음을 어떻게 완전히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줬다. 2000년대 이후 학자들은 조직의 정체성에 위기가 닥칠 때나 미리 계획된 사건(예: 새로운 CEO가 등장해서 기존의 기업 비전과 상반되는 비전을 제시한다든가)에 의해 어떻게 센스메이킹이 시작되는지 등에 관해 많은 실증 연구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웨익과 그 동료들은 2005년 발표한 논문에서 웨익의 1995년 저서에서 빠진 가장 중요한 센스메이킹의 변수로 ‘감정’을 꼽았다. 최근의 연구 경향을 보면 센스메이킹은 단순히 인지적 과정(cognitive process)이 아니라 감정적 과정이기도 하다. 감정은 그 자체로 센스메이킹을 촉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대안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 분야는 최근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xi

지난 10여 년간 센스메이킹이라는 주제로 연구 논문을 가장 활발하게 발표하는 학자로는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의 샐리 메이틀리스(Sally Maitlis) 교수를 꼽을 수 있다. 교육 측면에서 센스메이킹이라는 주제를 경영자들에게 강의하는 것으로 유명한 학자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데보라 안코나(Debora Ancona) 교수다.


1. ‘현재진행형’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라

칼 웨익은 센스메이킹을 통해 해석하는 ‘현실(reality)’은 ‘현재진행형(ongoing)’이라고 주장한다.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지된 사진, 즉 스냅숏이 아닌 진행되는 상황을 봐야 한다. 따라서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 맞는 정보를 업데이트해서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은 이러한 상황 판단을 못해서 무너졌다. 앞서 언급한 발머는 아이폰이 불티나게 팔리고 그 후속작인 아이패드가 출시된 후에도 여전히 PC 시장은 공고하게 성장할 것이라 자신했다. 실제 위에서 소개한 스티브 잡스의 PC 시장이 감소할 것이라는 도발적인 예언이 나온 지 얼마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당시까지 MS CEO였던 발머는 잡스의 견해에 반대하면서 앞으로도 PC는 여전히 더 많이 팔릴 것이라 주장했다. IT 업계 전체의 발전 속도, 아직도 제3세계의 많은 가정에 PC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잡스보다는 발머의 의견이 더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 후 우리 모두 아는 대로 PC 시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는데 그 후에도 발머는 여전히 PC가 대세라는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이런 식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많은 기업이 이미 정한 결정을,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고집하다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상황이 바뀌면 해결책도 바뀐다는 평범한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2. 정보의 소스는 다양해야 한다

2003년 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과 그 책을 토대로 만들어진 동명 영화의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A’s)의 단장(현재는 부사장) 빌리 빈 8 이다. 오클랜드 A’s의 2000년대 초반 선수 선발 예산은 연 4000만 달러 정도였다. 빌리 빈은 이 금액으로 총연봉 연 1억3000만 달러 정도를 쓰는 부자 구단들인 뉴욕 양키스나 LA 다저스와 경쟁하며 선수를 선발했다. 경쟁 구단 대비 3분의 1도 되지 않는 예산으로 선수를 선발하니만큼 부자 구단들에 비하면 훨씬 값싼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s는 빌리 빈이 단장 또는 부사장으로 있는 동안 무려 여섯 번의 지구 우승(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과 여섯 번의 지구 준우승(그중 세 번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 시즌 진출)을 했다. 특히 영화 ‘머니볼’의 무대가 된 2002년 시즌에는 20연승을 거둠으로써 아메리칸 리그 연승 신기록을 세운 바 있다. 책 『머니볼』의 성공과 더불어 빌리 빈의 ‘가격 대비 성적 좋은 선수 선발 방법’, 즉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9 는 학계와 스포츠 언론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세이버메트릭스를 바탕으로 한 선수 선발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구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통계 자료가 많이 양산되는 운동이고 이 빅데이터는 모든 이에게 공개돼 있다. 따라서 이런 식의 ‘싸고 좋은 인재’를 획득하는 경쟁력은 지속되기 어렵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내가 싸고 좋은 인재를 획득하는 방법을 발견해서 재미를 볼 경우, 그 방법은 금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고 사용될 것이다. 결국 유능한 인재를 찾는 구단(또는 회사)들의 경쟁 덕분에 싸고 좋았던 인재는, 제 가치에 해당하는 높은 가격을 주고 사야만 하는 희귀 자원(scarce resource)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빌리 빈이 이끄는 오클랜드 A’s는 어떻게 첫 지구 우승을 한 2000년 이후 10년이 훌쩍 지나서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빌리 빈은 훌륭한 스카우트의 비밀은 정보를 가능한 많이 모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정보, 예컨대 선수의 친구들, 선수의 가족 정보까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로 선수의 인성을 나타낼 수 있는 교우 관계라든가 가족 관계를 직접 선수의 동창이나 지인들을 통해 파악함으로써 통계적인 지표만이 아니라 성실성이나 성격 같은 중요한 덕목들을 선발기준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기업 조직이라면 소비자, 공급자, 경쟁자, 내부 다른 부서의 자료뿐 아니라 1, 2차 자료, 즉 컴퓨터의 통계자료와 개인적 인터뷰 자료를 다 섭렵해야 제대로 된 센스메이킹을 할 수 있다.


3. 현장에서 보라

데보라 안코나 MIT 교수는 세계적인 산업디자인 회사 아이디오(IDEO)의 예를 들어 현장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10 어느 해 아이디오는 병원의 응급실을 디자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병원 응급실 디자인을 위해서 당연히 주요 사용자들, 이해관계자들과 심도 깊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응급실 담당 외과의사들과 마취 의사들, 수간호사를 비롯한 간호사들, 심지어 응급실로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911(우리의 119) 구급 대원들에게 응급실로 들어오는 공간의 동선 관련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근데 뭔가 빠진 것 같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사용자, 즉 환자의 인터뷰가 빠졌다. 문제는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들은 인터뷰를 할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팔다리가 으깨지고 머리에서 피가 나고, 심장이 멎고, 의식을 잃은 상태인 사람들을 상대로 “여기 응급실 이용해보니 어떠세요?”나 “뭐 딱히 사용하기에 불편한 것 없으세요?”라고 질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궁리 끝에 아이디오가 사용한 방법은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 이마에, 그 보호자의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장착했다. 10시간의 촬영이 끝난 후 실제 영상을 틀어보니 과연 무엇이 찍혀 있었을까? 환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응급실에서의 10시간, 그 시간 동안 환자가 구경한 것이라고는 응급실의 천장뿐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응급실에 입원한 환자가 일어나서 돌아다니며 다른 환자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의사에게 다가가 “선생님, 저 언제 퇴원할 수 있죠?”라고 묻고 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당연한 결과가 아이디오의 디자인팀에게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대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그 이전까지는 아무도 응급실 천장 디자인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영상을 본 디자이너들은 응급실 천장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고 이곳에 중요한 시청각 자료들을 비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응급실에서의 환자의 경험’이라는 생생한 1차 자료가 없는 상태의 응급실 디자인은 상당히 맥 빠진, 사용자의 측면에서 볼 때는 낙제점 수준의 디자인이 됐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디즈니는 당시에는 작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와 계약을 맺었다. 픽사가 세 편의 오리지널 영화를 만들고, 디즈니가 마케팅과 배급을 책임지며, 비용과 이윤은 반씩 나누기로 한 것이다. 다만 디즈니가 철저히 ‘갑’의 위치에서 맺은 계약으로 디즈니는 영화 캐릭터에 대한 모든 권한과 함께 속편이 만들어질 경우 그 권리도 획득했다. 픽사의 첫 작품 ‘토이 스토리’와 두 번째 작품 ‘벅스 라이프’가 대박을 내고, 세 번째 작품 ‘토이 스토리 2’까지 나오자 픽사 CEO를 겸했던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이 불공정 계약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공개적으로 디즈니 CEO 마이클 아이즈너를 비난했다. 아이즈너는 이미 픽사의 모든 스타 캐릭터와 그 속편에 대한 권한까지 확보했으므로, 더 이상 픽사와의 파트너십이 절실하지 않다며, 더 공정한 계약으로 바꾸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이 불안한 동거가 깨질 판이었다. 당시 디즈니의 2인자이자 COO(최고운영책임자)였던 밥 아이거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픽사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콘텐츠 창조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디즈니 놀이공원의 캐릭터 퍼레이드를 아이즈너 옆에서 구경한 경험을 고백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디즈니의 캐릭터들 중 특히 아이들의 환호를 가장 많이 받은 것들은 사실 다 픽사의 캐릭터였던 것이다. 그 퍼레이드 관람 경험은 아이거로 하여금 픽사가 디즈니에 절실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했을 뿐 아니라 콘텐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그는 픽사 인수를 주도하고 아이즈너의 뒤를 이어 CEO가 된다. 현장을 통해 콘텐츠의 중요성을 확인한 밥 아이거는 뒤이어 마블, 루카스필름, 20세기폭스사 인수까지 진행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성공으로 아이거는 디즈니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영화사로 자리 잡게 했고, 인수한 콘텐츠를 활용해 만들어 낸 스타워즈 테마, 아바타 테마 등을 통해 놀이공원 사업에서도 부동의 최고 자리를 지키게 했다.



4. 팀워크를 위한 문화를 만들어라

기업의 센스메이킹은 많은 경우 개인이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다. 기업의 각 레벨에서 내려지는 결정들, 특히 중요한 결정들은 한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많은 조직원의 인풋과 암묵적인 동의, 지지 없이는 성공적으로 내려지기도, 실행되기도 어렵다. 기업 내의 센스메이킹은 구성원 간의 대화, 조정, 타협, 무엇보다도 협업을 통해 이뤄지며 설사 조직 내 반대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구성원이 가급적 같은 맥락에서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앞서 센스메이킹을 잘한 리더의 예로 MS CEO 사티아 나델라를 소개했다. 표면적으로 MS의 부활은 PC 소프트웨어 중심의 회사를 모바일과 클라우드 쪽으로 전략 변화를 준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성과 관리의 방법과 기준 변경을 통해 기업 문화를 바꾼 것이다. 나델라가 주도한 성과 관리 방법은 코넥츠(Connects)라는 이름으로, 구성원 간의 협업을 강조하고 있다. 나델라의 전임자인 스티브 발머 퇴임 직전까지 MS의 성과평가 시스템은 스택 랭킹(Stack Ranking)이라는 상대평가 시스템이었다. 10명의 평가 대상 팀원이 있다면 그중 두 명은 무조건 고성과자, 7명은 그저 그런 평균 레벨의 성과자, 1명은 저성과자로 분류돼야만 했다. 경영학 전공자로서 조직이론이나 경영전략 과목을 수강한 사람이라면 이 방법의 문제점을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팀원 간 협조가 아니라 경쟁을 부추기는 평가 방법이다. 만약 팀워크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개인의 영업실적으로 성과 평가가 가능한, 예컨대, 세일즈 관련 직종이라면 이런 평가방법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팀원 간 협조가 절실한, 혁신을 창출하는 부서에서 이런 평가방법을 쓴다는 것은 재앙이다. 실제 2012년 『배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의 전직 MS엔지니어는 “책임자급에 있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잘해 보려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내가 MS에서 배운 최고의 스킬은 동료들이 내 랭킹을 앞지르지 못할 만큼의 정보만 제공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는 것처럼 예의 바르게 보이는 것이었죠”라고 고백했다. 11 이런 분위기에서 혁신이 나오기는 어렵다. 오히려 조직원들의 갈등만 심해질 것이다.

MS의 라이벌 구글은 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연구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구글 연구 프로젝트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을 차용해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팀 성과 극대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1년이 넘는 조사 끝에 마침내 구성원들이 이 그룹의 규범을 이해하고 그 규범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의 여부가 팀 성과에 가장 중요한 예측 변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크게 다음 다섯 가지 요인으로 이 변수들을 분류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안전(Psychological Safety)’이다. 팀원 상호 간에 서로 상처받거나 창피당할 걱정 없이 팀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글은 이 항목이 나머지 4개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개인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며 팀의 신뢰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12 결국 상호 신뢰가 팀 성과를 증진한다는 뜻으로 상호 신뢰를 높이려면 상대평가로 팀 성원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MS는 나델라 취임 이후 팀원 평가 시에 절대평가제도뿐 아니라 평가 기준 중 하나로 동료와의 관계를 도입했다. 팀원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내가 팀원의 업무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가 주요 지표다. 2018년부터는 ‘비판’이라는 뉘앙스가 강한 ‘피드백’이라는 용어 대신 ‘퍼스펙티브(관점)’란 이름으로 동료의 업무를 칭찬하거나 건설적인 제안을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에는 팀장이나 매니저가 동료들의 평가를 종합해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라면 새로운 체제에서는 동료들 간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되 공격적인 언사를 자제함으로써 생산적인 토론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13



5. 100% 확신이 아니라 그럴듯한 가능성에 걸어라

센스메이킹은 100%의 확신이 아니라 ‘그럴듯함(plausibility)’에 베팅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판단과 미래 예측의 방법론의 대가인 필립 테틀록 펜실베이니아대 석좌교수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284명의 소위 경제, 정치 컨설팅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예측의 정확성에 근거한 토너먼트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의 결론은 전문가 집단이 특별히 뛰어난 예언가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비전문가보다 이들 전문가 집단이 나을 것이 없었다. 테틀록은 특히 사회적으로 유명한 전문가가 한 예측일수록 틀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14 그는 2011년 이후 아내이자 연구 동료인 바바라 멜러스, 돈 무어와 함께 예측력과 판단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Good Judgement Project)를 전개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 중에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진 그룹과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그룹으로 나눠 누가 예측력이 더 뛰어난가를 분석한 대목이다.

결과는 신중한 태도를 가진 그룹이, 미래에 대해 자신만의 확신을 가진 그룹에 비해 훨씬 더 예측 정확도가 높았다. 이 신중파들은 성실하고, 상세한 정보를 모았으며, 자기와 다른 시각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노력을 보였고, 자신의 접근이 틀렸다고 생각했을 때 방향을 바꾸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모르는지 알고, 그래서 겸손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100%의 확신보다는 자신들의 정보를 십분 활용해 확률에 따라 그럴 가능성이 높은(probabilistically) 것에 베팅하는 사람들이었다. 15 우리가 아는 현실은 100% 정확한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비교적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100% 확신보다는 그때그때 가장 그럴듯한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이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잘못된 확신이 어떻게 비극을 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역사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임진왜란이다. 16세기 말의 조선 조정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고 그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의사결정에 사용하고 행동했다. 이들이 만든 이미지는 실제의 현실을 정보 부족으로 다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조선 조정이라는 조직 내에서 만들어낸 ‘사회적으로 제작된 현실(Socially Constructed Reality)’이었다. 그 ‘제작된 현실’은 역사적 사실과 잘못된 추정 등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시까지 한반도에서 일본과의 전면전은 한 번도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1592년 이전까지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은 항상 북방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일본은 중국과는 비교도 안 되고 조선보다도 훨씬 작은 소국’이라는 잘못된 믿음(조선시대에 그려진 지도들, 예컨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나타난 중국, 조선, 일본열도 크기를 비교해 보기 바란다), 따라서 ‘명을 치러 갈 테니 길을 내어 달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국서는 말도 안 되는 허풍’이라는 생각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조정은 왜군의 침공을 막연하게 예상하면서도 그 ‘규모’를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해 통상적인 경우보다 조금 더 큰 왜구의 침입을 상정해 대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름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적의 침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센스메이킹에서 잘못된 확신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조정, 아이폰 등장 직후의 많은 IT기업은 잘못된 확신, 넓은 의미에서 ‘확인 편향’으로 일을 그르쳤다. 잘못된 확신을 갖는 것보다는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끊임없는 의심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는 전 인텔 CEO 앤디 그로브의 발언은 시대를 초월하는 명언이다.


결론: 정보에 바탕을 둔 변덕쟁이가 되라

최근 불거진 미·중 무역갈등이나 한일 충돌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기업인들은 당연히 그 양측의 정보를 다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일 갈등을 다룬 일부의 언론 기사나 유튜브 동영상들에서는 애국심이 지나쳐 국수적인 내용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오히려 일본 경제나 아베 정권이 몰락하고 한국은 반드시 일본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이런 내용은 현실적인 상황 파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일본 서점가에서 인기를 끄는 ‘혐한류’의 책들이 별 도움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보는 일단 ‘비교적 객관적’이어야 하고, 특히 양자가 개입된 사안에 관한 것일 경우 그 양측의 정보를 다 취합해 판단해야 한다. 미·중 갈등에 대한 일반 기업의 판단은 현지에 나가 있는 지사나 기업 자체 보유 연구소의 분석 리포트에서 얻은 정보 외에는 언론에 실리는 기사 내용에 근거한 것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그럴 때도 양측의 목소리를 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 미·중 갈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경영자라면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CNN뿐 아니라 인민일보나 CCTV의 소리도 들어야 향후의 정국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에 대한 정확한 센스메이킹이 가능해 질 것이다. 한일 충돌도 마찬가지로 양국의 정치인, 기업인들, 양국의 유력 언론사들의 목소리를 다 들어야 양측의 정확한 생각과 그에 따른 향후 이 사건의 진행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객관적’이라는 말에 작은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센스메이킹에서 어차피 100% 객관적인 판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센스메이킹 자체가 ‘맥락적 합리성(Contextual Rationality)’에 기반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한 상황에 따라 맥락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센스메이킹을 통해 얻는 답 중에 100% 객관적으로 옳은 답은 없다. 그때그때의 맥락에서 가장 합리적인 답을 찾는 것이 센스메이킹이다. 다만 맥락적으로 합리적이라고 해서 양방의 입장이 다른 사안을 우리 측만 고려해서 생각해서는 정답에 근접한 답을 찾기 어렵다. 앞서 끊임없이 정보를 업데이트함으로써 상황이 바뀌면 해결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락이 바뀌면 우리가 앞서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해결책이 더 이상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맥락이 바뀌면 답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맥락은 기업 외부의 정치·경제적 환경뿐 아니라 기업 내부 환경인 조직문화, 보유 자원의 종류와 규모 같은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센스메이킹을 잘하는 조직이라면 변덕쟁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조령모개(朝令暮改)’라고 했다. 아침에 지시하고 저녁에 고친다는 뜻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비꼬는 이 부정적 어감의 사자성어는 윤종용 부회장에 의해 졸지에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비슷한 개념으로 즉흥적 역량Improvisational Capability이 있다)을 뜻하는 ‘쿨’한 말이 됐다. 실제로 윤 전 부회장은 한참 진행 중인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중단시키고, 그 계획 자체를 완전히 접기도 했다. 중단하면 그동안의 엄청난 투자비가 고스란히 매몰비용이 되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라도 접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 더 큰 위험과 손실을 막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서는 조령모개가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략이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전술적 결정은 얼마든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맞게 변화시켜야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정관정요』는 ‘제왕학 교과서’라 불리는 중국 고전이다. 중년이 돼 처음으로 제대로 읽으면서 필자는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가뿐 아니라 기업경영자 모두가 그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 태종 이세민의 리더십과 그가 이룬 태평성대를 다룬 책이지만 나는 정작 그 주인공이 이세민이 아니라 황제의 잘못된 결정을 바꾸는 ‘악마의 변호인들’이라고 생각했다. 위징 같은 신하들부터 부인이었던 장손황후까지, 이세민은 많은 ‘건설적 반대자’를 둔 지도자였다. 위징(580∼643)은 원래 당 태종 이세민의 형이자 정적인 황태자 이건성의 참모였다. 건성이 ‘현무문의 변’으로 살해당하고 이세민이 황제에 즉위하자 옛 적수의 참모가 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이세민에게 집요한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 『정관정요』에 나오는 그의 간언 횟수가 중요한 것만 3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 반대자를 중용하는 포용력이 이세민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만들었다. 리더 스스로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면 그의 잘못된 결정을 지적하는 ‘악마의 변호인’이라도 옆에 둬야 할 것이다. 안팎으로 어려운 한국 경제계에도 위징 같은 많은 ‘건설적 반대자’가, 그리고 그들을 포용하는 많은 ‘이세민’이 등장해 올바른 센스메이킹을 해 주길 기대한다.

필자소개 김양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ymkim@sogang.ac.kr
필자는 서강대 경영대학 및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미국 마케트대 경영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서강대를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에서 MBA, 텍사스 A&M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경영 전략 전공)를 취득했다. 연구 분야는 글로벌 경쟁 및 혁신, 신성장 발굴 전략, 전략적 제휴, 인수 및 합병, 기업지배구조, 최고경영진 등이며 ‘한국갤럽학술논문상’ ‘경영학연구 우수논문상’ ‘인사조직연구 논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불확실을 이기는 전략:센스메이킹』(2019), 공저로 『한국 기업의 경영 패러다임 혁명』 『중소기업을 위한 컨설팅 방법론 입문서』가 있다.
  • 김양민 김양민 | - (현)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 전략경영학회, 인사조직학회, 인사관리학회 이사
    - 미국 마켓대 경영학과 조교수
    ymkim@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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