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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시실리 섬의 혈전

임용한 | 79호 (2011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맹주 자리를 두고 아테네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맹주인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맞대결을 펼쳤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알려진 이 대결은 육군의 스파르타, 해군의 아테네라는 두 나라의 극단적 장점으로 여간해서 승부가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테네가 기선을 잡았지만 스파르타에 운이 왔다. 전쟁으로 인구가 과밀해진 아테네에서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 아테네는 위기를 넘겼다. 전쟁 17년째인 기원전 416년엔 힘의 균형이 다시 아테네로 약간 기울었다. 이때 이탈리아 시실리 섬의 도시국가 에게스타인이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스 발음으로는 시켈리온이라고 불렸던, 시실리에서 제일 강력한 도시국가인 시라쿠사를 정복해달라는 것이었다.

아테네는 이 제안에 솔깃했다. 시실리에는 여러 종족이 세운 폴리스가 난립해 있었다. 시실리는 그리스의 절반쯤 되는 크기다. 시실리를 제패하면 아테네의 국력은 몇 배로 강해지고, 스파르타와의 긴 전쟁도 끝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테네인들은 전쟁으로 동맹도시나 예속지역에 대한 지배와 조공을 강화하면서 뜯어먹는 재미에 맛을 들였다. 에게스타인이 아테네에 시라쿠사 정복을 요청해 온 해만 하더라도 아테네는 중립을 유지하던 멜로스 섬을 공격해 성인 남자는 모조리 죽이고 부녀자는 노예로 팔아버렸다. 탐욕으로 사나워진 아테네는 세상은 약육강식이 정의라고 말했다. 이제 중립은 없다. 정복당하거나 복종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지어다.

시라쿠사 정복에 나선 아테네

탐욕과 노략질은 아테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아테네는 동맹도시를 총동원, 사상 최대 규모의 원정군을 편성한다. 143척의 전투함(삼중노선), 30척의 곡물 수송선, 100척의 화물선으로 구성된 함대가 발진했다. 중무장보병이 5100, 궁병 480, 창병 800, 방패병 120명이었다. 삼중노선의 승무원은 최대 200명으로 수병과 선원은 2만 명에 달했다.

야심차고 자신만만하게 출발한 원정이었는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시실리의 도시들은 그리스군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그리스군은 마을에 들어가지 못해 야지에서 야영을 거듭해야 했다. 피로가 누적됐고 병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기병이 약했던 그리스는 시실리 현지에서 기병을 조달할 생각이었는데, 이 계획이 실패하면서 군 전력에 큰 차질이 생겼다. 기병이 없다보니 추격과 섬멸이 되지 않아 전투에 이겨도 적을 몰아낼 뿐 적군에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리스군은 3명의 장군이 지휘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총사령관격이던 알키비아데스가 정치적 음모에 의해 숙청당했다. 알키비아데스는 바로 스파르타로 망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제일 적극적이며 패기만만하던 장군 라마코스가 사소한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남은 지휘관은 니키아스뿐이었는데, 그는 시라쿠사 공략 중 병에 걸려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

난감한 상황을 역전시킨 건 그리스군의 노련함이었다. 시실리군의 무장과 전술은 그리스와 같았다. 그러나 전투경험과 전술운영에서 17년간 전쟁을 해 오고 있는 그리스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리스군은 노련하고 유연한 전술, 계략과 속임수에서 시라쿠사군을 압도했다. 그리스군은 속임수로 시라쿠사군을 유인해내고, 그 사이 해안에 무혈상륙했으며, 단숨에 시라쿠사 외곽의 전략요충인 고지대를 점령했다. 그리고 바닷가까지 이르는 방벽을 쌓기 시작했다. 시라쿠사군을 완전히 고립시켜 항복을 받아내려는 작전이었다. 그리스군은 시실리의 다른 도시들을 설득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과연 그리스군이 우세를 보이자 몇몇 도시들이 협조적으로 돌아섰다. 시라쿠사는 낙담했고 항복을 결의하기 위해 의회를 소집했다.

그 사이, 스파르타의 육군과 코린토의 지원함대가 시라쿠사에 도착했다. 시라쿠사가 아테네의 속국이 되면 전세가 역전될 것을 우려한 펠로폰네스 동맹에서 급히 지원군을 파견한 것이다. 여기에는 스파르타로 망명한 알키비아데스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시라쿠사군의 병력과 전투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실전경험의 부족으로 지휘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 스파르타군이 가세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해군도 면모를 일신했다. 코린토 수군은 비록 아테네에 여러 번 패하긴 했지만 그리스 제2위의 수군 강국이었고 아테네의 특성과 전술을 잘 알았다.

시라쿠사군이 공세로 나오면서 아테네군은 몇몇 거점을 상실하고 역으로 포위됐다. 처음에 아테네군이 포위용 방벽을 쌓자 시라쿠사군은 아테네 군 방벽 맞은편에 대항방벽을 건설했다. 결국 이 방벽공사는 누가 상대를 감싸느냐는 싸움이 됐는데, 아테네가 승리하기 직전 스파르타와 시라쿠사의 공세로 역전됐다.

시라쿠사, 스파르타와의 협공으로 전세 역전

전황이 불리해지자 니키아스는 아테네에 원군을 요청했다. 판돈을 모두 잃지 않으려면 한 번 더 배팅이 필요하다는 논지였다. 아테네는 1차 원정군에 버금가는 대병력을 편성했다. 지휘관은 스팍테리아에서 경보병을 이용해 무적의 스파르타군을 전멸시켰던 명장 데모스테네스였다.

하지만 그 사이, 니키아스군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시라쿠사의 방어가 성공을 거두자 여기에 고무된 많은 도시들이 시라쿠사에 속속 가담했다. 아테네군의 방벽은 너무 길었고 육지와 바다를 동시에 지켜야 했기 때문에 병력이 부족했다. 희생자가 늘고 병사자와 탈주병도 속출했다. 절망하기 직전 데모스테네스가 도착했다. 아테네군이 2배로 늘었다. 그러나 적도 그 이상 증원돼 있었다. 기민했던 데모스테네스는 빨리 전황을 역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바로 시라쿠사의 방벽을 공격했다. 그러나 로마군과 달리 그리스군의 공성전 능력은 초보적 수준이었던 탓에 공격은 실패로 끝난다.

너무 신중했던 니키아스와 달리 빠른 결단이 장점이던 데모스테네스는 방벽 중 제일 중요한 고지를 야간기습으로 탈환하는 작전을 세운다. 노련한 그리스 병사들의 장점은 전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점이었다. 적국에 고립돼 있는 그들로서는 잦은 전투로 힘을 소모하지 말고 한 번에 빠르게 승부를 결정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방벽을 빨리 확보하고 적을 추격해서 섬멸하기 위해 아테네군은 대형을 버리고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이 결사적인 태도가 독이 됐다. 좁은 고지에서 난전이 벌어진 것이다. 아테네군은 좁은 산길을 올라 공격하는 입장이었고 병력이 훨씬 많았던 탓에 난전이 되자 혼란이 더 심해졌다. 게다가 아테네군은 여러 종류의 동맹군이 섞인 혼성부대여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편끼리도 싸웠다.

아테네의 처참한 패배

날이 새자 결과는 처참했다. 데모스테네스는 실패를 인정하고 철수를 주장한다. 아직 함대는 무사하니 철수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니키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니키아스는 시라쿠사의 군자금이 거의 떨어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구원군이 왔으니 적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버티면 이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돌아가면 정치적 실각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으로 아테네군은 철수시기를 놓쳤다. 또 한번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출발하려던 날 월식이 일어나자 불길하다며 니키아스가 또 주저앉아버렸다. 그 사이에 시라쿠사군은 최대한 함대를 보강해서 아테네군의 해상탈출로를 봉쇄했다. 뒤늦게 아테네군이 해상철수를 시도했다. 해전실력은 아테네군이 월등했지만 아테네군의 정박지가 아주 좁은 만 안이라 자신들의 전술과 기술을 발휘할 수 없었다. 반면 시라쿠사군은 코린토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아테네군 선박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좁은 바다에서 난전이 벌어졌다. 남은 선박의 전력만으로는 아테네군의 승리였지만 아테네군은 결국 바닷길을 이용한 탈출에 실패했다. 남은 방법은 육로로 탈출해서 작은 도시나 우호적인 도시로 들어가 도시 방어전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방어전투는 공격보다 쉽다. 항구를 확보하고 아테네의 지원함대를 받아 넓은 바다에서 싸우면 시라쿠사의 해군 따위는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실리의 안쪽은 산악지대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도 험한 지형과 좁은 도로로 고전했다. 아테네군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탈출로를 봉쇄한 시라쿠사군은 고지에서는 화살과 투창, 돌멩이 세례를 퍼부었다. 평지로 내려오면 시라쿠사의 기병과 경보병이 아테네의 둔한 중무장 보병 주위를 맴돌면서 화살과 야유를 퍼부었다. 아테네군은 기병이 없어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없었다. 경보병을 잡기 위해 경보병을 내보내면 여지없이 적 기병에 유린당했다. 아테네의 중장보병이 워낙 단단해서 시라쿠사군이 직접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아테네군은 봉쇄선을 돌파할 수 없었고 식량과 물이 바닥났다. 마지막 전투에서 지친 아테네군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많은 병사들이 전투를 포기하고 강으로 달려들더니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라쿠사의 기병이 달려들어 그들을 학살했다. 기병의 창이 내리꽂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물을 찾았다. 그러나 강이 금세 피로 물들어 최후의 한 모금마저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리스군은 항복했고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처형됐다. 포로가 된 병사는 약 7000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노예로 팔렸다. 이 패전으로 아테네는 전투능력을 상실했고, 18년을 끌어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그것도 자신들이 우세해진 시점에 말이다.

뛰어난 인재 vs. 적절한 인재

무엇보다 결정적인 패인은 니키아스 자신의 졸렬한 지휘였다. 니키아스는 사려깊고 신중한 인물이었다. 조직관리와 운영능력도 탁월했다. 장거리 원정과 상륙작전이라는 특성상 아테네군은 필요한 물자를 모두 운반해 가야했다. 니키아스는 필요한 장비와 물품, 수량을 산정했고, 방벽 건설을 위해 목수와 석공을 뽑았으며, 병사의 사기 진작과 체력관리를 위해 일류 조리사를 차출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으로 지나친 보신주의자였다. 흠결을 잡히지 않기 위해 그는 언제나 교과서적인 방법을 택했다. 사려깊고 신중한 성격은 과감한 결정을 방해했다. 아테네군은 시실리 도착 직후 쓸데없이 메세나와 팔레르모 같은 시실리의 주요 항구도시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했다. 기병을 확보하고 시실리 도시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시라쿠사가 준비할 시간만 벌어줬다. 기병이 없다는 것은 큰 단점이었지만, 그럴수록 신속하고 과감한 작전이 필요했다. 실제로 초기에 보여준 아테네군의 전술능력을 봤을 때 시라쿠사로 바로 상륙해서 승부를 걸었더라면 쉽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패전이 니키아스의 탓만은 아니다. 이 비극의 진짜 원인은 필요한 인재를 선발해 군 통솔을 맡기지 못한 아테네 지도부에 있었다. 니키아스는 원래 그런 인물이었고 원정에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집단적 자만감과 탐욕에 사로잡혀 시실리 정복이라는 과욕을 부린 아테네는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알키비아데스를 정쟁을 이유로 숙청했다. 알키비아데스는 결과적으로 스파르타의 참전에 불을 지폈다. 데모스테네스도 재치와 순발력은 있지만 대규모 병력을 운영하는 조직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뛰어난 인재와 적절한 인재는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모든 상황을 담당할 수는 없다.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재를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출발은 인재의 능력을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이다. 인재의 그릇과 됨됨이를 정확하게 판단해 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조직을 운영하는 지도자가 명심해야 첫 번째 계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yhkmyy@hanmail.net

 

  • 임용한 임용한 |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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