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고객
김경필 지음/ 김영사/ 1만3800원
마케터의 질문에 소비자가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무 이해관계가 없어도, 다음에 또 만날 일이 없다고 해도 소비자는 배려의 미덕을 발휘해 정직하게 답변하기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답을 더 자주 말해준다.
정해진 공식과 틀로 파악할 수 없는 현대의 소비자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특정 단어로 설명할 수 없고,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오늘날의 소비자를 ‘야생’으로 정의한다. 이전의 ‘표준 마케팅’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하기 위해 ‘야생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함께 내놓는다.
질문은 고객 니즈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술이지만 답을 얻어내는 과정에 오류가 불가피하다면 대안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관찰이다. 미국 디자인 컨설팅회사 아이데오의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 오랄비의 의뢰를 받고 어린이용 칫솔 기획에 나선 아이데오는 기계적인 문답으로는 아무런 시사점을 얻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내내 한번도 아이들이나 그들의 부모를 인터뷰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이 칫솔을 잡고 칫솔질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그동안 어린이용 칫솔은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상식이었다. 성인 칫솔보다 작은 솔기와 작고 얇은 손잡이가 어린이용 칫솔에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아이데오가 관찰한 결과, 어린이들은 칫솔을 잡을 때 마치 주먹을 쥐는 것처럼 온 손바닥을 사용했다. 성인이 연필을 잡는 것처럼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이를 발견한 아이데오는 어린이용 칫솔의 손잡이를 성인 칫솔보다 더 두툼하게 만들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음은 당연한 결과다.
질문이라는 도구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질문도 잘하면 도움이 된다. 특히 소비자 리서치에서 중요한 것은 왜 이 상품을 사느냐(Why)와 같은 궁극적인 구매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다. 무엇을 사는지(what), 또는 얼마나 사는지(how)는 중요하지 않다.
P&G의 종이 기저귀 브랜드 팸퍼스 사례를 보자. 팸퍼스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종이 기저귀다. 출시 초기부터 P&G 내에서 상당한 수익성을 자랑하는 효자 브랜드였다. 그러다 하기스 같은 경쟁 브랜드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고전하기 시작했다. P&G의 글로벌 마케팅을 담당하는 짐 스텐겔이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짐 스텐겔은 팸퍼스의 수익 부진을 분석했다. 제품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경쟁사의 품질이 올라가면서 과거와 같은 압도적 차별성은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팸퍼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텐겔은 기저귀를 주로 사용하는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했다. ‘팸퍼스를 왜 사느냐’라든지, ‘팸퍼스가 아닌 다른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종이 기저귀에 대한 그들의 생각, 추억, 경험을 물었다. 그리고 그들의 답을 통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발견했다. 나이 든 여성들은 팸퍼스를 ‘내 삶을 개선해 준 고마운 파트너’로 인식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 기저귀를 빨고 말려야 했던 이들에게 처음 등장한 종이 기저귀는 구세주와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종이 기저귀가 대중화한 이후에는 팸퍼스만의 이런 개성이 사라졌다. 젊은 엄마들에게 팸퍼스는 다양한 종이 기저귀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 점을 발견한 스텐겔은 여성들의 시각에서 사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삶의 구세주’를 대체할 새롭고 차별되는 포지셔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아이들의 성장단계에 맞는 다양한 제품이다. 성장과 개월 수에 맞게 기저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품군을 다양화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팸퍼스는 또 한번 도약할 수 있었다.
과연 오늘날 소비자는 파악하기도, 판단하기도 어려운 야생의 무엇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소비자를 읽어내야 한다. 그 여정에 책에서 소개되는 브레인 맵핑, 브랜드 차별화 등을 시도해볼 만하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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