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Book

“포기하지 마!” 그 교훈이 생명을 건졌다

49호 (2010년 1월 Issue 2)

1979
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가브리엘 산 해발 2600미터 중턱을 4인승 비행기 한 대가 들이받고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해 겨울에 내린 눈이 깊이 쌓여 있었고, 산을 따라 내려오는 계곡물들은 말랐거나 꽁꽁 얼어 붙어 있었다.
 
이 비행기에는 사고 당일 열릴 예정이던 주니어 올림픽 스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빅베어 스키장으로 향하던 남캘리포니아 스키 챔피언 11살 노만, 노만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자 친구, 조종사 이렇게 4명이 타고 있었다. 노만의 집은 1년 내내 날씨가 따뜻하고 파도가 좋아 서퍼들이 즐겨 찾는 캘리포니아 남부 토팡가 해변에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어린 노만의 스키 연습을 위해 주말에 10시간씩 차를 몰아 스키장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이 날은 빠듯한 일정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사고가 나기 이틀 전 노만은 남캘리포니아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해 주니어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냈다. 스키와는 거리가 먼 따뜻한 바닷가 출신 노만은 예선에서 스키장 주변 출신들의 텃세를 톡톡히 겪었다. 자기 선수들에게 코스를 설명해주는 현지 코치의 말을 엿듣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노만이 출발하기 직전에 주최측이 뿌린 눈 때문에 속도가 늦어져서 고전을 하기도 했다. 노만이 이런 악조건 속에서 우승과 함께 주니어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낸 기쁨도 잠시였다. 노만의 아버지는 다음 날 있을 아이스 하키 대회 결승전에 아들을 출전시키기 위해 늦은 밤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노만에게는 “내일 경기를 위해서 차에서 눈을 붙여라” 하고 주저 없이 길을 떠났다. 같이 갔던 아버지의 여자 친구는 하루를 쉬자고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하키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일단 돌아갔다가 스키 주니어 올림픽 경기에는 경비행기를 타고 가자고 주장했다. 힘이 들기는 했지만 노만도 이런 빠듯한 일정을 잘 소화해냈다.
 

 
노만의 아버지는 모험심과 도전 정신이 강한 전직 FBI 출신 변호사였다. FBI의 내부를 폭로한 를 펴낸 후에 FBI를 떠나 평화로운 토팡가 해변으로 이사해왔고, 파도와 싸우는 서핑 등 극한 스포츠(extreme sports)를 즐기는 마니아였다. 그 자신이 “절대 포기하지 말자”를 생활의 신조로 삼고 살았으며, 어린 노만에게도 특히 스포츠를 통해서 그런 정신 자세를 심어주는 것이 아버지 역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노만이 두 살 때는 등에 노만을 매달아 업은 채 서핑을 해서 그 기분을 맛보게 했을 정도였다.
 
스포츠뿐만이 아니었다. 멕시코에 살고 있던 노만의 할아버지댁 세탁기가 고장 났을 때에도 노만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더 싸다는 이유로 세탁기를 트럭에 싣고 어린 아들과 멕시코 국경을 넘어 차를 몰고 갔다. 곳곳에서 뇌물을 원하는 국경 경비대와 충돌했고 급기야 총격까지 당했다. 이를 피해서 외딴 시골 마을에 숨어 있다가, 날이 갈수록 의심의 눈초리가 더해지는 원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노만의 아버지는 직접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렀다. 멕시코 시골 마을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던 위기 상황에서 뱃심 있는 아버지 모습을 본 노만은 극한 상황에서 필요한 용기를 배웠다.
 
일상 생활에서도 노만의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강하게 키웠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에 노만은 어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의 남자 친구 닉 때문에 어린 아이로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노만의 아버지는 노만이 그런 어려움까지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했을 뿐 아들을 데리고 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노만의 아버지가 아들을 무조건 윽박지르거나 괴롭게 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노만도 때로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노만에게 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영웅이었다. 이 책의 제목 <폭풍우에 미치다(Crazy for the storm)>는 더 크고 강한 파도에 도전하던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노만이 쓴 회고록인데, 어렵고 힘든 상황을 찾아 나서고 든든하게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던 아버지에 대한 그의 애정과 그리움이 감동적으로 서술돼 있다.
 
짐작하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30년 전 그 비행기 사고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추락한 비행기에 탔던 네 사람 중 유일하게 노만이 살아남아서 이 책을 쓰게 됐다. 사고 이후 노만은 무려 아홉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물론 눈을 집어먹기는 했다), 폭설과 안개에 뒤덮인 급경사의 산을 맨손으로 기어 내려와서 결국은 구조됐다. 아버지와 조종사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버지의 여자 친구는 같이 산을 내려오다 절벽으로 떨어져서 죽었다.

노만이 산을 기어 내려오는 데는 극한의 어려움이 있었다. 35도의 절벽과 물이 마른 폭포를 기어 내려오면서 장갑조차 없는 두 손은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가 됐고,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벽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숨을 거둔 아버지를 눈 속에 버려두고 내려가는 내내 ‘정말 아버지는 이제 죽은 걸까?’하는 정신적인 괴로움과 싸웠고, 아버지의 여자 친구가 절벽으로 미끄러져 죽을 때 도와주지 못한 자책감도 컸다.
 
사고 직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가진 기자 회견에서 노만이 “아버지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라고 한 기록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노만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비를 11살 아이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신력으로 극복하게 한
원동력은 바로 아버지의 따뜻하지만 엄격한 교육과 진정한 부정(父情)이었다.
 
어느덧 30년이 지나 노만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던 그 스키장을 찾는다. 어려운 코스를 두려워하는 아들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은 ‘노력 없는 즐거움(effortless fun)’만을 쫓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 어려운 도전을 하게 만들고, 그것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버지 역할을 어떻게 잘 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자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오버랩됐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귀한 만큼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 우리 주변에 젊은이들을 보면 각종 ‘스펙’을 완벽하게 갖추고, 해외 어학 연수, 기업체 인턴 경험 정도는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부족한 점은 ‘강인한 정신력과 헝그리 정신’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가정 교육, 학교 교육이 문제다. 무엇인가를 혼자서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뭐든지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때로는 돌아서도 가고, 조직의 힘이 아닌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차세대 젊은이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가 앞으로 조직 역량 향상의 큰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하려 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조직원들에게 의사 결정권을 부여하고, 결과 지표를 관리하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핵심 성과 지표를 선정할 때도 정성적인 평가 지표보다는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조직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역량을 습득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조직원 개개인이 스스로 모티베이션을 가지고 최대 잠재치를 발휘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조직 역량 관리의 궁극적인 목표다.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김정수 이사의 ‘People in Book’ 코너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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