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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le Management

미래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경계를 즐기고 넘어서라”

박영규 | 288호 (2020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경계는 변화의 출발점이다. 경계에 서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경계는 영속적이지 않다. 기술과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영원한 기술, 영원한 기업이란 없다. 기술과 기업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히 경계에 서야 한다. 그 위에서 경계를 품고, 즐기고, 넘어서는 자만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를 훔칠 수 있다.



빅뱅이 있은 후 우주는 가스와 먼지로 뒤덮였다. 우주 공간을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 백억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먼지들을 눈사람처럼 뭉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많은 별이 태어났다. 지구도 그렇게 탄생한 별 중 하나였다.

수소와 메탄, 수증기가 풍부했던 초기 지구의 대기가 번개나 태양복사, 화산의 열에 노출되면 단순한 유기화합물의 혼합물이 형성된다. 이 유기화합물이 원시 바다에 축적돼 따뜻하고 묽은 유기물 수프가 만들어지고 이 수프를 영양분으로 삼아 바닷속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했다. 1920년대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제기된 ‘오파린-홀데인’ 가설의 주된 내용이다.



생명체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분자다. 이 특성 때문에 바닷속에는 생물들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변방으로 밀려나는 생물들도 생겨났다. 해륙(海陸) 간 경계에 서게 된 생물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바닷속에서 버티다가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것인지, 아니면 경계를 탈출해서 낯선 땅 육지로 거주지를 옮길 것인지. 경계에 내몰린 바닷속 생물들 가운데 대부분은 뭍으로의 이사를 포기한 채 바닷속에서 생명을 마감했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반면 과감한 변화를 선택한 생물들도 있었다. 이들은 용감하게 육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그곳에 자손들을 퍼뜨렸다. 식물과 나무, 꽃들이 그렇게 태어났고 인간의 조상인 동물도 그렇게 태어났다.

하지만 육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개체 수가 늘어남에 따라 육지도 곧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터로 바뀌었다. 그래서 변방(나무 끝)으로 밀려나는 동물들도 생겨났으며 이들 가운데는 또다시 경계를 돌파하는 종들이 생겨난다. 하늘을 나는 조류는 그렇게 탄생했다. 변화가 두려워 경계에서 머뭇거린 종들은 영원한 과거, 즉 화석으로 남았다. 반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계를 돌파한 종들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장자는 경계의 철학자다. 그는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경계에서 학문을 통섭적으로 즐겼으며 세월의 경계를 넘어 2500년이라는 미래를 훔쳤다. 서른세 편으로 구성된 『장자』는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생명체들에 대한 우화로 시작된다.

“북쪽 바다(北冥)에 물고기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붕이 하늘의 연못(天池)으로 이동하기 위해 날아오르니 물보라가 삼천리에 달했다. 붕은 6개월 동안 구만리를 날아간 후 비로소 쉬었다.” 1

책의 도입부 우화를 통해 장자는 자신의 생명관과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바다에서 살던 곤(어류)이 하늘을 나는 붕(조류)이 된 것은 생명체가 종간(種間) 경계, 개체 간 경계를 넘어 우주 질서 속에서 하나로 통합돼 있음을 뜻한다. 종간 경계를 돌파한 붕은 북쪽 바다[北冥]에서 하늘의 연못[天池]으로 날아감으로써 공간적 경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6개월간 쉬지 않고 비행함으로써 시간적 경계마저도 초월했다. 붕은 낡은 세계의 틀을 깨고 나와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엘랑비탈(élan vital, 생명의 비약)’이다.

육지에는 이러한 붕의 비상을 조롱하는 생물들이 있었다. “쓰르라미와 새끼 비둘기가 붕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蜩與學鳩笑之曰(조여학구소지왈) ‘살짝 날갯짓해서 느릅나무에 내려앉으면 그만인데 저 새는 무엇 하러 구만리씩이나 난단 말인가?’ 我決起而飛(아결기이비) 槍楡枋(창유방) 奚以之九萬里(혜이지구만리)”2 쓰르라미와 새끼 비둘기는 변화를 두려워해 경계 너머의 세계를 품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개체나 조직을 상징한다. 종(種)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종은 자신을 닮은 변종을 낳고, 그 변종은 또 다른 아(亞)종을 낳는다. 종과 변종, 아종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는 실선이 아니라 점선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선이다. “종이라는 이름은 서로 비슷한 일련의 개체에 대해 편의상 임의로 주어진 것이며 변종이라는 이름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3 분명한 것은 그 경계에서 종들의 운명이 갈렸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경계를 넘어선 종들은 미래를 향해 진화했고,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 종들은 퇴화하거나 멸종했다.

또 다른 우화에서 장자는 경계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장자가 어느 날 산속을 거닐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발견했다. 벌목공들이 그 옆에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나무를 베려하지 않았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들은 “쓸 만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구나.” 장자가 산에서 내려와 옛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됐다. 친구가 장자를 대접하기 위해 심부름하는 종에게 거위를 잡아 오라고 했다. 종이 “한 마리는 잘 우는데 한 마리는 잘 울지 못합니다. 그중 어느 놈을 잡아 올까요?” 하고 물었다. 주인은 잘 울지 못하는 거위를 잡아 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산중(山中)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는데 주인집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장차 어디에 몸을 두시겠습니까?” 장자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물 것이다. 그 둘이 만나는 경계에는 명예도, 비방도 없다. 한 번은 용이 되기도 하고, 한 번은 뱀이 되기도 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한다.” 4

경계는 변화의 출발점이다. 경계에 서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화에 나오는 용과 뱀이라는 대립적인 사물은 경계에서 존재론적으로 소통하며 서로를 교환하기도 하고 마침내 하나로 통합된다. 그 과정에서 경계는 지양(止揚)되고 극복된다. “사물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면 경계가 없어진다. 사물을 대상화하면 사물과 사물 사이에 경계가 생기게 된다. 경계는 영속적이지 않다. 사물은 경계가 있는 것에서 없는 것으로 변화하기도 하고 경계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5

연암 박지원은 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을 가리키면서 장자의 경계 철학을 멋지게 풀어냈다. “도(道)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니다. 바로 저 강 언덕에 있다. 압록강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그 경계란 언덕이 아니면 강물이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강물이 언덕과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 같은 것이다. 도라고 하는 것은 다른 데가 아니라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다.” 6

북경에서 열하로 가는 도중 연암은 하룻밤 사이에 강물을 아홉 번이나 건넌다. 연암은 강물 소리 때문에 두려웠지만 강물과 자신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를 통합적으로 인식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극복했노라고 말한다. “안장 위에 다리를 꼰 채 옹색한 자세로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때는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지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경지였다.” 7



장자도 우화를 통해 같은 맥락의 가르침을 준다. 열어구는 활의 명인이었다. 그가 어느 날 스승인 백혼무인 앞에서 활 솜씨를 뽐냈다. 백혼무인은 열어구를 높은 절벽 위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절벽 끝에 서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면서 활을 쏘게 했다. 열어구는 부들부들 떨면서 활을 제대로 쏘지 못했다. 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백혼무인은 이렇게 말한다. “지인(至人)은 위로는 푸른 하늘을 엿보고, 아래로는 황천(黃泉)에 잠기며, 사방팔방을 두루 품어도 신기(神氣)가 변하지 않는 법일세. 자네는 눈으로 그들을 경계 지으니 과녁을 명중시킬 수가 없는 것이라네.” 8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정신은 융합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같은 기술들이 산업 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다. 코닥이나 닌텐도, 노키아는 경계 속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한때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아마존과 구글, 페이스북은 경계를 넘어서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미래를 선점해 나가고 있다.

동양철학자 최진석은 아침마다 이렇게 중얼거린다고 한다. “나는 곧 죽는다.” 암 선고를 받은 이어령 선생도 죽음을 생각할 때 자신의 삶이 농밀해진다고 고백한다. 두 석학은 자신의 존재를 날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세움으로써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삶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경계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강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는 스틱스강이 불사(不死)의 능력을 갖게 해주는 것은 경계가 주는 긴장감과 깨어 있음 때문이다. 영원한 기술은 없다. 영원한 기업도 없다. 기술과 기업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히 경계에 서야 한다. 그 위에서 경계를 품고, 즐기고, 넘어서는 자만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를 훔칠 수 있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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