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코드CEO포럼

창조는 有에서 有를 만드는 것

15호 (2008년 8월 Issue 2)

“미술은 돈이다… 권력이 아름다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파블로 피카소는 젊은 시절에 “미술은 돈이다”라고 말했다. 피카소가 ‘미술은 돈’이라고 말한 것은 미술품에 투자해서 떼돈을 벌라는 얘기가 아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표현을 빌려 피카소의 발언을 설명하면 “다가오는 미래 사회의 권력은 예술, 감성, 창조의 힘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미래 사회에서는 힘이 아니라 설득으로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설득하려면 유혹할 수 있어야 하고, 유혹하려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실제 미술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은 2004년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1억 400만 달러에 팔려 단일 작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우리 돈으로 1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돈이다. 이뿐 아니라 피카소가 죽었을 때 프랑스 정부는 유일하게 현물 대납이라는 상속법을 제정했다. 유족들로부터 그림을 받아 상속세를 대신한 것이다. 이 결정 이후 피카소의 작품을 분류하는 데만 무려 6년이 걸렸다.
 
6년 뒤 상속세 대신 받은 피카소 작품으로 프랑스 정부는 파리 마레 지구에 국립 피카소박물관을 지었다. 피카소가 프랑스 사람이 아님에도 외국인 화가를 위해 나랏돈을 들여 국립 박물관을 지은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박물관을 짓느라고 세금만 낭비한 것이 아니다. 매년 피카소박물관을 찾아오는 관광객, 피카소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 등 피카소 관련 사업으로 프랑스가 버는 돈만 매년 적게는 5000억 원, 많게는 1조 원에 이른다.
 


“독창성을 발견하는 것이 창의력”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을 미국에서는 ‘비디오아트의 조지 워싱턴’이라 부른다. 한 명의 외국 예술가를 자신들의 국부급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다. 실제로는 사기가 아니지만 고정관념, 상식이라는 울타리에서 보면 창조는 사기다.
 
백남준은 왜 비디오아트를 시도했을까. 한국인에게 달은 시, 예술, 고향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비추는 달의 이미지를 TV를 통해 형상화한 사람이 백남준이다. 한국인의 융통성도 유별나게 뛰어나다. 제주도에서 칠성굿을 하는 무당이 굿을 앞둔 직전에 위패를 가져오지 못한 걸 깨달았다. 그 무당의 임기응변이 기가 막히다. 무당은 칠성사이다 병에 나무막대기를 꽂아 굿을 했다. 이런 민족에게 TV가 예술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몰입은 창의력의 원천이다. 창의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독창성(originality)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경영학의 블루오션 이론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블루오션의 핵심은 차별화와 비교우위를 통한 경쟁 없는 시장 발굴이다. 이 경쟁 없는 시장이 바로 예술에서 말하는 오리지널, 즉 기원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예술가에게 독창성은 창의성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독창성을 발견하려면 남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자전거 안장과 자전거 손잡이로 만든 피카소의 작품을 보자. 자전거 부속품을 통해 소의 머리를 생각해 냈다는 자체가 대단한 독창성이다. 피카소는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피카소가 말했듯 창조는 발견이다. 몰입해야 발견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몰입을 잘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린아이들은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단히 몰입을 잘한다. 순간순간 몰입하고 곧 관심을 다른 대상으로 돌린다. 자기가 좋아해서 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모두 탁월한 관찰자다.
 
잘 노는 사람은 창조적이다. 일을 놀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즐겁게 몰입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창조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일본의 전설적인 세일즈맨인 하라이치 헤이는 “나는 누구보다 많이 걷고 뛰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일즈를 놀이, 즉 몰입의 대상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세일즈를 좋아했다는 의미다.
 
세계 축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거스 히딩크 감독도 마찬가지다. 히딩크의 축구는 선수들에게 몰입의 계기를 제공하고 새로운 전복을 일으켰다.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게 축구를 즐겼다는 점이 히딩크 축구의 핵심이다.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피해도 크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라”
장난감 자동차, 항아리, 샐러드 담는 그릇, 탁구공, 문손잡이, 도예대 등 기존에 있던 온갖 사물(오브제)을 통해 원숭이 머리를 만든 작품이 있다. 기능과 목적에 매여 사물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재료들로 원숭이 머리를 만들 수 있었다. 고정관념에서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절대적이지 않다.
 
최정현의 ‘네티즌’이란 작품을 보자. 개인이 정보 수용자에서 정보 생산자 및 권력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키보드 자판을 뱀의 가죽 패턴과 연관시켜 생각한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사물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독창성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도 “낯선 것은 익숙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강을 소재로 한 김재홍의 ‘시집가는 날’을 보자. 정면으로만 보면 아무리 봐도 단순한 풍경화로만 보일 뿐 왜 이 작품의 제목이 ‘시집가는 날’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을 90도 돌려서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족두리를 쓰고 시집가는 신부의 얼굴이 담겨 있다. 사물이 아니라 패턴을 창조한 작품이다.
 
예술가들이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는지 보여 주는 예는 다음과 같다. 마크 퀸이라는 작가는 ‘조각은 고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액체로 조각을 만들었다. 액체의 소재는 자신의 피였다. 자신의 피를 계속 뽑아 모아 놓은 다음 이를 얼려 조각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셀프(self)’다. 내 피가 내 자신이라는 의미에서 ‘초상(self portrait)’이라는 단어에서 셀프만 취한 것이다. 이 작가는 아들의 태반과 피를 얼려 또 다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피에로 만조니의 ‘캔(CAN)’을 보자.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 소장된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대변 30g씩을 90개의 캔에 담은 것이다. 29살에 요절한 만조니는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사물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더럽고 하찮은 대변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고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런 시도가 철부지나 방탕자의 소행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또한 창조의 길에 이르는 과정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는 1961년 서울 출생으로 1984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등을 거쳐 학고재 관장, 아트컨설팅 서울 이사, CJ햄스빌 아트갤러리 명예관장, 스위치 커뮤니케이션아트 마케팅 고문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2> <미술로 보는 20세기>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관 기행> 등이 있다.
 
편집자주 IT전략연구원과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인문학적 상상력과 문화·예술적 창의력 배양에 초점을 둔 최고경영자(CEO) 교육 과정 ‘퓨처코드 CEO포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포럼의 일부 강의를 요약해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인문학, 과학, 문화콘텐츠, 디자인 등에 특화한 강의를 만나 보십시오. 이번 호에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미술과 창조: 다르게 보기’ 강의를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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