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그리움 찾아가다 배를 돌렸다 마음을 따른 왕휘지, 욕심에 선 긋다

173호 (2015년 3월 Issue 2)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승흥이래, 흥진이반

 

왕자유(王子猷)는 산음에 살고 있었다. 밤에 큰 눈이 내렸다. 깨어나 방을 열어 술을 올리라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새하얗기만 했다. 좌사의 초은시를 읊조리다 홀연히 섬계에 사는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났다. 곧 작은 배에 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장차 문에 이르렀는데 앞으로 가지 않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왕자유는 말했다.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노라. 반드시 대안도를 보아야만 했는가?”

- 세설신어(世說新語)

 

그림 왼쪽 면에 적힌 글이다. 왕자유의 답승흥이래 흥진이반(乘興而行 興盡而反,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온다)”은 이후 유명한 구절로 널리 알려졌다. 그림은 눈이 가득 쌓인 섬계의 물가 대안도의 집 앞을 그리고 있다. 왕자유의 작은 배가 도달했지만 다시 돌아오려는 순간이다.

 

양기성(梁箕星), ‘섬계회도(剡溪回棹, 섬계에서 배를 돌리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x29.4cm, 일본 야마토분가칸

 

욕심의 경계

 

시작할 때의 마음이 순수하고 신선했더라도 그 마음에 집착이 생기면 그것은 욕심이 되고 모든 상황이 사뭇 달라져간다. 어디부터 욕심인지 내 마음이 알아서 선을 그을 수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눈 오는 밤 강을 홀로 가는 왕자유의 마음은 친구 대안도를 만나고 싶은 그리움뿐이며 그것은 밤에 배를 띄울 만큼 강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의 흥분이 눈 내리는 배 위에서 사무치다 사라졌는지, 감정으로 나섰지만 이성으로 판단해 흥을 가라앉혔는지 정밀한 내면은 알 수 없다. 다만 누구라도승흥이래 흥진이반이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어안이 잠시 벙벙해지다가 왕자유의 대답에 감탄하게 된다. 왕자유는 자신의 마음이 욕심으로 넘어서는 그 지점에서 경계선을 그었고 그 너머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마음을 신선한 상태로 지켰다.

 

왕자유는 누구이고, 대안도는 누구인가

 

왕자유의 본명은 왕휘지(王徽之, ?∼387), 자유(子猷)는 그의 자(). 동진(東晉)시대, 서예로 이름을 드날리고 서성(書聖)이라 불린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이다. 왕휘지도 글씨를 잘 썼으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는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출전을 둔 대나무 일화다. 왕자유가 남의 집에 잠시 거하게 됐을 때, 그 집 뜨락에 곧장 대나무를 옮겨 심게 했다. 사람들이 까닭을 물었더니 왕자유가 답했다. “어찌 하루인들 군자(此君)가 없을 수 있겠는가?” 왕자유의 답으로 중국뿐 아니라 조선시대에서차군(此君)’은 대나무의 별칭 혹은 애칭으로 통용됐다. 이 단어를 모르고서는 대나무와 관련된 어떤 시문도 해석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집 뜰에 나무를 옮겨 심다니! 한갓 외물에 집착하는 그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다는 조선의 문인도 있다. 왕자유에게 대나무가 필요했던 것은 속()된 마음을 단속하기 위해서라고 왕자유 자신이 설명했다.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왕자유는 알고 있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속된 생각과 과한 감정, 분노 혹은 욕심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나무는 그를 붙들어 주는 상징적인 무엇이었다.

 

대안도의 본명은 대규(戴逵, 326∼396), 안도(安道)는 그의 자다. 박식하고 문장에 능하며 서화를 모두 잘했다. 특별히 금()을 잘 타서 당시 성명이 자자했고 성격이 곧았다. 늘그막에 섬계에 살았으며 저서로 <대규집> 9권이 전한다.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왕자유는

알고 있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속된 생각과 과한 감정, 분노 혹은

욕심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나무는 그를 붙들어 주는

상징적인 무엇이었다.

 

 

설중방우

 

벗과 흥을 찾아 배를 띄웠던 것은 왕자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송나라 문인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은 유배시절에 갑갑한 가슴을 달래고자 가을 달 맑은 날 물안개 자욱한 강 위에 배를 띄웠다. 그날 밤 소식은 배 위에서 만난 소()를 부는 손님과 더불어 인생과 역사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동이 트는 줄 모르고 배 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의 특별한 사연을 긴 노래로 남긴 것이 만고불후의적벽부(赤壁賦)’. “임진 가을 칠월 기망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한중의 문인들이 누구나 소리 내어 암송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그 멋을 따라 음력 7월 보름이 다가오면 한강이고 남강이고 배에 술동이를 채워서적벽부의 그 밤을 재현하고자 했다. 선비들의 뱃놀이 계획은 달포 전부터 이뤄졌기에 선비의 종들은 편지를 들고 이리저리로 뛰어다녀야 했다. ‘적벽부는 가을밤 뱃놀이라는 술잔치의 빌미를 제공했고 중국과 한국 사회에 오늘까지 이어지는 걸진 술자리의 전통을 마련해준 듯도 하다.

 

창 밖에 눈이 내리면 조선의 학자들은 누구라도 왕자유가 대안도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눈이 내리면 보고 싶은 사람이 문득 더 그리워지는 것은 요즘 사람이나 예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마침 멋진 왕자유가 그런 마음의 실천을 보여줬으니 마음에 동요가 일면 친구를 찾아 떠나도 문제가 없다. ‘눈 속에 벗을 찾는다를 일컬어설중방우(雪中方友)’라 했다.

 

배를 띄운 소동파를 그린적벽부도나 눈 속에 벗을 찾은 왕자유를 그린방대규도(訪戴逵圖)’는 한국과 중국에서 헤아릴 수 없이 그려지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후에는 그림 속 소동파와 왕자유가 보여준 깊은 생각보다 그들의 겉멋만 따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왕자유를 기억하라

 

이 그림을 제대로 봐야 한다. 그림의 왼쪽 상단섬계회도(剡溪回棹, 섬계에서 배를 돌리다)’는 그림 제목이며 곧 이야기의 제목이다. 회도(回棹)란 노를 돌려 젓는 것이다. 오른쪽 하단의 양기성(梁箕星)은 도화서의 화원이다. 이 그림은 영조(英祖)의 왕실에서 제작된 그림책 <예원합진(藝苑合珍)>에 실려 있다. 조선왕실에서 자제들이 감상하며 배우도록 만든 책이니만큼 책에 실리는 내용은 당시 최고의 학자들이 엄선했다. 항간의 많은 사람들은 왕자유의 이야기를 대나무에 대한 유별난 애정이나 흥에 취해 오간 낭만의 정도로 이해하고 말지만 그것은 왕자유의 이야기를 오르내리게 하는 흥미소(興味素)일 뿐이다. 조선왕실에서 장차 국가의 경영을 맡게 될 어린 자제들에게 이 그림을 펼쳐준 이유는 왕자유가 보여준, 마음을 다스리는 철저함과 마음을 돌아보는 용기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감정이 지나쳐 전권을 쥐기 전에 스스로 돌아서는 왕자유의 모습을 잊지 말고 기억해두라는 속 깊은 다독거림이 이 그림에 담겨 있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 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한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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