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창조경영
편집자주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약 0.2%에 불과한 소수민족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모진 핍박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천재적인 두뇌와 시대의 흐름을 볼 줄 아는 안목을 바탕으로 전 세계 각 분야에서 최고위층의 지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주변부에서 핵심부로 올라선 유대인들의 지혜를 통해 초경쟁 시대의 생존 전략에 대한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요즘 박근혜정부의 모든 정책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창조경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후보시절부터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초한 경제 운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정책”으로서의 창조경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정부 출범 후 ‘창조’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공룡 부처의 신설로까지 이어졌고 이후 새 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정책에 ‘창조’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박근혜정부 내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창조’라는 단어의 개념은 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만큼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창조’가 어떤 뜻인지는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창조경제’의 내용에서 거슬러 올라가 유추해석해볼 수 있다. 새 정부의 창조경제가 이스라엘 경제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창조개념을 살펴보는 것도 보탬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을 일군 유대인들에게 ‘창조’라는 개념은 낯설지 않다. 새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설명하면서 많이 쓰는 단어인 ‘상상력과 창의성’은 세계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민족으로 성장한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강점으로 꼽히는 특성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는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처절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길러왔던 상상력과 창의성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를 어떻게 흡수하고 키워나가야 할 것인가’로 요약된다.
티쿤올람… 세상을 개선한다
유대인들의 창의성에 대해 얘기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단어가 ‘티쿤올람(Tikun Olam)’이란 히브리어다. 이 단어는 유대 종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용어다. 영어로 ‘to improve the world’라고 표현하는 티쿤올람은 우리말로는 ‘세상을 바꾼다’ 또는 ‘세상을 개선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소 알 듯 모를 듯한 이 말의 뜻을 유대 학자들은 이렇게 풀이한다. “신은 세상을 창조했지만 미완성의 상태로 놔두었고, 불완전한 (미완성) 세상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임무를 인간에게 부여했다”는 설명이다. 유대교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면 “신이 남겨둔 창조적인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역할이야말로 신의 파트너로서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의무”라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유대인일수록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창의적인 사고와 실천을 강조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이 티쿤올람이라는 개념을 얘기할 때 자주 드는 예가 사람의 몸이다. 그들의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신의 창조물인 사람이 완전하게 태어났다면 왜 아프겠냐는 것이다. 인간 역시 불완전하게 창조됐기 때문에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아픈 몸을 낫게 하는 것은 (신이 만들어 놓은) 불완전한 창조를 (인간이)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종교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행위로 인식된다. 유대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종교지도자인 랍비에 버금갈 만큼 높이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현대 의학 발전에서 유대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이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20세기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유대인 샘 레벤슨(Sam Levenson)과 관련한 이야기다. 지금은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나쁜 감정들이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상점이나 공원에 가면 ‘No Dogs, No Jews’, 우리말로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공공연히 붙어 있을 정도였다. 유대인을 혐오하는 반(反)유대주의인 이른바 안티 세미티즘(Anti-Semitism)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유대인의 역사만큼이나 긴 뿌리를 갖고 있던 반(反)유대인 감정은 당시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샘 레벤슨은 1960년 전후 주요 공중파 방송인 CBS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샘 레벤슨 쇼’를 맡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의 방송에 한 반(反)유대인 단체에서 “유대인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 대한 샘 레벤슨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은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당신이 굳이 유대인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처럼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유대인이 파는 상품을 쓰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유대인이 만든 약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들 말대로 유대인이 만든 약은 당신을 해칠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유대인이 만든 약을 쓰지 않는다면…
만약 유대인이 만든 약이나 의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선 혈액형구분법을 예로 들어보자. A형인 사람에게 B형의 혈액을 수혈한다면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대형 의료 사고가 된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됐지만 혈액형에 대한 개념이 없던 과거에는 수혈이라는 의료행위 자체가 목숨 건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수혈받은 환자 대부분이 혈액 속에 덩어리가 생겨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이 질병이 아닌 혈액 속 항원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1901년 오스트리아 태생 유대인 학자 칼 랜드스타이너(Karl Landsteiner)가 발견했다. 랜드스타이너는 이 공로로 1930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간단하고 안전한 혈액구분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혈을 못해 죽어갔을까.
세계 제2차대전 기간 중 7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평가되는 항생제 페니실린도 유대인 언스트 보리스 체인(Ernst Boris Chain)이 발견했고 페니실린 이후 최대의 의약 기적이라고 일컫는 스트렙토마이신도 유대인 셀만 아브라함 왁스먼(Selman Abraham Waksman)이 찾아냈다. 이 밖에 소아마비 백신, 인슐린, 비타민C 등 유대인들이 찾아낸 의약품은 그 리스트만으로도 몇 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란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유대인들은 의약 분야뿐만 아니라 의학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등 아이비리그의 유명 메디컬스쿨 교수는 70∼80%가량이 유대인들이다. 이스라엘 다음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산다는 뉴욕 지역에서 개업하는 의사들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이라는 말도 과언은 아니다. “유대인이 만든 약을 쓰지 마라”는 셈 레벤슨의 말은 “유대인이 개발한 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준엄한 경고인 셈이다.
세계 IT 산업의 지배자
창의성이 강한 유대인들을 더욱 빛나게 만든 것은 20세기 후반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이버공간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서부터다. 지난번 이 칼럼(DBR 126호, ‘시티그룹 회장이 유치원 이사장인 이유는?’ 참조)에서 유대인들은 창의성의 근본을 ‘남과 다름을 추구하는 것’에서 찾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그야말로 ‘과거에는 없었던, 정말로 남다른 공간’인 사이버세상은 그런 유대인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대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직은 불완전한 새로운 (사이버) 세상을 완성시키기 위해’ 그들이 갖고 있는 상상력과 창의성의 역량을 최대한 쏟아부었다. 세계 IT산업의 양 축이라 불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가 모두 유대인들의 놀이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대인 파워가 막강한 곳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 IT산업을 이끌고 있는 유대인들은 누구일까. 먼저 최근의 실리콘밸리를 살펴보자.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4인방이 있다. 세계인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는 소통창구가 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와 이 회사의 2인자인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 그리고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통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구글에서 일하다 페이스북에 스카우트된 셰릴 샌드버그의 이력이다. 그는 지난해 <포브스>
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1969년생으로 하버드대 경제학과와 MBA를 수석으로 졸업한 샌드버그는 대다수 하버드 출신 경제·경영학도들이 가는 월가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티쿤올람’ 사상이 몸에 밴 정통 유대인답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야망을 갖고 뭔가 ‘남과 다른’ 행로를 걸었다. 세계은행에 들어가 인도의 나병이나 에이즈 같은 보건문제를 다뤘고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유대인인 로렌스 서머스가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자 장관 비서실장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구글을 거쳐 페이스북의 2인자가 된 그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유대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장차 미국의 여성 대통령감으로까지 치켜세우고 있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대인의 뿌리는 파면 팔수록 깊고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회사를 일군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 마이크로소프트 CEO도 유대인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하버드대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PC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다”는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대학 기숙사에서 창업한 마이클 델(Michael Dell)도 전형적인 유대인 창조 기업가다. 1965년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태어나 1992년 27살 때 <포춘>이 뽑은 세계 500대 기업의 최연소 CEO이자 가장 어린 부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18살인 1983년 텍사스주립대 기숙사에서 1000달러를 가지고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컴퓨터시스템을 제공하겠다”며 과감하게 창업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회사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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