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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코너를 도는 12가지 방법 9

‘처절한 외로움’을 ‘찬란한 고립’으로…

구본형 | 50호 (2010년 2월 Issue 1)
1656년 24살의 한 청년이 유대 교회당 장로들에게 호출되었다. 그들은 청년에게 물었다. “그대는 친구에게 ‘신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는가? 또 ‘천사는 환상일지 모른다’고 말했는가? 그리고 ‘영혼은 죽으면 사라지는 단순한 생명일지 모른다’고 말했는가? 대답하라” 우리는 이 청년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겉으로라도 교회와 신앙에 충실할 것을 맹세한다면 연금 500달러를 주겠다고 한 제의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해 7월 27일 헤브라이 종교 의식에 따라 이 청년은 파문을 당했다. 파문의 의식은 다음과 같이 행해졌다.
 
“저주의 말이 읽히는 동안 이따금 커다란 뿔피리가 길게 꼬리를 끄는 처량한 소리를 냈다. 식이 시작할 때 환하게 타던 등불은 식이 진행됨에 따라 하나씩 꺼져 마침내 모든 등불이 꺼졌다. 파멸된 자의 영적 생명도 이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마침내 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 남겨졌다.”
 
도대체 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저주가 끊임없이 파문자에게 내려졌을까? 반 블로텐이라는 학자가 이 날의 파문서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 일부를 보도록 하자.
 
“고하노라. 교법 회의는 일찍이 이 자의 나쁜 견해와 소행을 충분히 확인하고 모든 방법을 다해 나쁜 길로부터 그를 계도하려 애썼지만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노라. 이제 많은 증인들 앞에서 장로들은 이 자의 유죄를 인정하노라… 이자를 이스라엘 백성에서 제적하여 영원한 벌에 처하노라… 파문하고 저주하여 추방하노라… 그는 낮에도 저주받고 밤에도 저주받으며 잘 때도 저주받고 일어날 때도 저주받을 지어다… 주의 노여움이 지금부터 그 위에 임하여 모든 저주가 그를 압박해 그 이름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실 것이다… 이로써 각자를 훈계하노라. 누구나 그와 입으로 말을 주고받지 말고, 글로써 그와 의사를 주고받지 말라. 아무도 그를 돌보지 마라. 아무도 그와 한 지붕 밑에 살지 마라. 아무도 그에게 접근하지 말고, 누구도 그가 입으로 전했거나 글로 쓴 문서를 읽지 마라.”
 
 

 
파문이란 시련을 극복한 위대한 철학자
아들이 뛰어난 학자가 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과의 인연을 끊었다. 누이동생은 그를 업신여기고 얼마 되지 않는 유산을 빼앗으려 했다.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한 흉한은 이 젊은이에게 단도를 들고 덮쳤다. 몸을 피해 다행히 목에 작은 상처를 입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위험은 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족 전체의 버림을 받고 가족과 떨어져 그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아야 했다. 고독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러나 그는 평온한 용기로 이 고독을 받아들였다. 테러 사건 이후 그는 암스테르담 교외의 레인스뷔르흐의 조용한 다락방으로 옮겨 살았다. 이 청년의 이름은 바뤼흐 스피노자였다. 파문이라는 시련은 스피노자가 그저 촉망받는 유대 신학자로 살아가는 대신, ‘근대의 가장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를 도약시켰다. 고독이 그를 위대하게 했다.
 
고독과 시련을 겪으면 사람들은 매우 표독해지거나 반대로 매우 온순해진다. 스피노자는 다행히 매우 다정하고 평온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하숙집 주인 부부도 그의 온화함을 좋아했다. 그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렌즈를 연마했다. 이것은 그가 유별나게 가난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유대인 학자들은 면학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할 기능직을 익혔다. 유대인들에게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직업을 가지지 않은 학자는 결국 부랑인이 되어 사회에 짐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 푼도 남길 수 없이 조촐하게 살았지만 그는 행복했다. 한 번은 이성보다 신의 계시를 믿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내가 자연적 오성으로 수집한 결과가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불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그 자체가 유쾌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나날은 탄식과 슬픔 속에서가 아니라 평화와 밝음과 환희 속에서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죽은 개만큼’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모든 철학에 스며들었다. 어떤 학파도 만들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쇼펜하우어의 ‘살려는 의지’,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 베르그송의 ‘생의 비약’으로 이어졌다. 그가 죽고 나서 200년이 지나자 헤이그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의 고독은 생을 넘어선 뒤에야 비로소 풀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당대의 고독은 모든 위대함의 필수 조건인지도 모른다. 여기 이러한 고독을 경험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고독에 치여 정신적 위기를 겪는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려고 했던 20세기 최고의 정신 의학자, 바로 프로이트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서 외로이 신경증을 연구하고 있네. 사람들은 나를 편집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내가 자연의 위대한 비밀 하나를 풀었다는 느낌이 확실한데도 말이야.”1895년 프로이트는 친구 프레더릭 플리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외로움은 찬란한 고립
고독했던 프로이트에게 플리스는 ‘세상을 향한 유일한 문’이었다. 학문을 연구하며 어떤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기쁨에 휩싸였지만, 연구가 잘 풀리지 않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할 때는 한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고독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심한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다.
 
1900년 11월 25일 그는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처럼, 아니 ‘훔볼트의 앵무새’ 1 처럼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라고 토로했다. 외로움은 길었다. 1913년 신경쇠약 직전까지 간 프로이트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달해 있었다. 옛 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을 막 집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긍지와 행복을 느낀다.”
 
그에게 그 당시의 외로움은 ‘찬란한 고립’이었고, 일종의 ‘영웅시대’였다. <열정과 기질>의 저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혁신가들에게 있어 위대한 비약을 이루기 직전의 정신 상태를 회고할 때 감정상의 절정과 추락이라는 비슷한 심리적 현상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살아생전에 모든 영광을 다 받고 간 피카소조차도 이런 고독에 시달렸다. 피카소의 창조성을 나타내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아비뇽의 처녀들’은 다섯 명의 창부를 그린 1907년 작품이다. 이 작품을 그린 스케치 노트만 8권에 이른다. 이것은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이미지를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자연 속에서 지각된 대상들은 모두 원통, 구, 원뿔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세잔의 말처럼 그 역시 인간과 사물 속에 내재한 기하학적인 형태를 찾아내어 변형시킴으로써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아비뇽의 처녀’는 갈등과 불균형으로 가득하다. 부드러운 육체의 곡선과 조악하고 모난 형태가 부딪히고, 부드러운 색조와 거친 색조가 충돌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피카소의 작품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다중시선(multiple view)이 등장한다. 결국 이 그림은 입체주의로 가는 길목에 있던 갈림길이었다. 화상인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느낀 정신적 고독이란 참으로 무서웠을 겁니다. 다들 괴상하고 기형적인 작품이라고 말했으니까요.” 피카소 역시 인정받지 못한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피노자, 프로이트, 피카소에게만 고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비난과 투옥에 시달렸다. 심지어 그의 과학적 스승이었던 조르다노 브루노는 말뚝에 묶여 화형에 처해졌다. 다윈은 격렬하게 비난받았고, 빈센트 반 고흐, 요한 세바스찬 바흐 모두 생전에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케인스 역시 무시당했다. 모두 위대했지만 종종 그 시대는 그들을 이해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멸시받고 조롱받고 심지어 살해당했다. 그들의 위대함은 후대가 되어서야 빛났다. 외로움과 절망의 과정으로 단련되지 않는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위대함은 없는지 모른다. 고독은 마치 영혼의 고통을 담은 용광로 같아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제련 과정이다.
 
 
 
필자는 서강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0∼2000년 한국IBM에 근무하면서 경영 혁신의 기획 및 실무를 총괄했다. 1998년부터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매년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한 저서를 출간해왔으며 활발한 강연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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