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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한 우물만 파다 물이 나오지 않으면?

신동엽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경영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의 질도 개선될까? 많은 사람들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정보와 피드백을 받으면 더 훌륭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은 물론 개인이나 정부를 막론하고 더 많은 정보를 가진다고 항상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누가 봐도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증거가 속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사업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붓다 치명적 위기에 빠지는 사례가 허다하다.
 
한때 세계 경영에 나서며 위용을 떨쳤던 대우그룹의 붕괴를 비롯해 30대 재벌들 중 16개가 무너진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이런 현상이 자주 목격됐다. 한국 재벌들의 위기는 대부분 오너가 내린 신사업·신시장 진입 의사결정에 무조건적으로 집착하면서 나타났다. 또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시작한 공공사업이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봐도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것이 명약관화해지는데도 계속해서 혈세를 투입한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왜 출중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기업이나 정부 조직에서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 생길까?
 
 
몰입의 상승과 대참사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배리 스토(Barry Staw) 교수는 이런 현상이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합리적인 전문가로 구성된 기업이나 정부에서도 매우 자주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몰입의 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라고 불렀다. 몰입의 상승은 어떤 의사결정을 내린 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증거와 새로운 정보들이 나타나는데도 과거의 의사결정을 수정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몰입하고 집착하여 투자를 보다 늘리는 현상을 말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누구라도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특히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의 경영 의사결정 오류는 오히려 일상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초 의사결정이 잘못됐다는 증거가 속출하는데도 수정하지 않고 끝까지 과거 선택에 집착하면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몰입의 상승 때문에 벌어진 심각한 위기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특히 세계 각국 정부와 지도자들의 의사결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초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결정했다. 이미 1950년대 베트남 디엔비에푸 전투에서 거의 궤멸 수준의 참담한 패배를 맛봤던 프랑스의 드골을 비롯해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기기 어렵다며 참전을 반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통킹 만 사건을 구실로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이후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이 이기기 어렵다는 증거가 속출했다. 열대 정글로 이뤄진 현지 지형과 베트남 특유의 게릴라 전술 등을 감안하면 미국이 그동안 수행했던 어떤 전쟁과도 근본적으로 달랐고 패배할 확률이 높았다. 또 초기 미군 전사자가 100여 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거꾸로 엄청난 규모의 추가 파병과 북베트남 폭격, 그리고 한국 등 우방국들의 참전 요청 등을 통해 베트남전에 대한 몰입 수준을 대폭 상승시켰다. 그 결과 10여 년의 전쟁 동안 6만 명에 가까운 미군이 전사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완벽한 패전을 맛봤고 베트남은 1975년에 공산화됐다.
 
몰입 상승의 원인
스토 교수는 몰입의 상승이 발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원하는 경영자들은 반드시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다.
 
먼저, 인간의 독특한 본성 중 하나인 ‘과거지향적 합리성(retrospective ratio-nality)’이 몰입의 상승을 일으킨다. ‘과거지향적 합리성’이라는 표현을 자세히 살펴보면 개념 자체에 심각한 어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어떤 사람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미래에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동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합리성은 ‘미래지향적 합리성(prospective rationality)’이다. 그러나 스토 교수는 인간은 묘하게도 미래뿐 아니라 과거에도 자신이 합리적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며 과시하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 의사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심지어 미래를 희생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과거 의사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과시하기 위해 엄청난 추가 투자와 노력, 희생을 감수하면서 과거의 선택에 집착하다 결국에는 참사를 겪게 된다. 경영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의사결정에서 과거가 가지는 의미는 과거 경험을 통해 축적된 학습에 기초해 미래에 보다 더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지향적 합리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경영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 행위다. 과거에 집착하다 미래를 희생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 가장 비합리적인 경영 의사결정이다.
 
몰입의 상승을 초래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모든 문화권에 걸쳐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일관성의 규범(norm of consis-tency)이 지목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관성과 합리성은 유사한 개념으로 여겨졌고 도덕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장점으로 인식됐다. 필자도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 가는 제자들의 추천서를 쓸 때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평가 항목이 일관성(consistency)이다. 중국 사자성어에서도 초지일관(初志一貫)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 속담 또한 ‘한 우물을 파라’는 말로 일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규범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결정에서 일관성을 고집하는 것은 심각한 비합리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경영 의사결정에서 합리적 태도는 ‘한곳에서 우물을 팔 만큼 팠는데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곳을 파는 것’이다. 특히 어떤 옵션이 실제로 더 나은지 미리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택이라면 항상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정보나 증거가 나오면 개방적 태도로 유연하게 과거 선택을 재검토해야 한다.
 
초경쟁 환경과 몰입 상승의 위험
몰입의 상승은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 특히 위험하다. 초경쟁 환경은 극도로 불확실성이 높아서 정확한 의사결정이 어렵다. 또 수시로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합리적이었던 의사결정이 하루아침에 잘못된 선택으로 판명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초경쟁 환경에서 승리하려면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사업이나 상품, 기술을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모험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 의사결정이 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우려해 지나치게 심사숙고하거나 의사결정을 미루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한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을 항상 인정하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려 과감하게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와 증거를 받아들여 잘못을 적시에 수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창조적 혁신을 시도하는 것 못지않게 경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 시도한 일에서 몰입의 상승에 빠지지 않고 적시에 발을 빼는 개방적 유연성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신사업 진입(entry) 의사결정에만 골몰하지 말고, 잘못 들어간 사업에서 적시에 철수(exit)하는 의사결정에도 그 못지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고 권한다. 예를 들어 불확실성이 높은 신사업이나 신시장에 들어갈 때 일정 기간 내에 일정 규모의 자원을 투자하여 일정 수준의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면 경영자의 주관적 판단에 상관없이 무조건 철수한다는 명문화된 기준을 사전에 만들어두는 게 좋다. 이런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면 몰입의 상승 때문에 모기업과 기존 사업까지 위태롭게 하는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초경쟁 환경에서 경영자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개인은 물론, 기업이나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몰입의 상승에 빠지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과거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 용기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 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 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등 저명한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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