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일상은 컨펌 받기의 연속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컨펌(confirmation)’은 업무 진행에 필요한 절차상의 승인, 허락, 확인을 뜻한다. 넓게는 의사결정자의 ‘예스(Yes)’를 가리키기도 한다.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모든 직장인은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업무를 진척시킬 수 있다.
컨펌의 주체는 상사와 회사
컨펌의 주체는 바로 상사, CEO, 그리고 회사다. 주체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컨펌은 불가능하다. 컨펌을 위해서는 먼저 회사가 바라보는 숲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 내가 기안한 내용이 조직의 방향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어떤 결과물을 내놓든 컨펌의 안전 범위 안에 들 수 있다.
항상 CEO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일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게 좋다. CEO가 컨펌할 만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뛰어나고 회사의 비전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월마트의 후계자 결정 과정을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76년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은퇴를 앞두고 후계자로 데이비드 글래스를 임명했을 때, 언론은 물론 기업 내부에서도 깜짝 놀랐다. 이미 론 마이어라는 강력한 CEO 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40대 초반의 마이어는 의욕에 불타는 천재였고, 모두 그가 차기 경영자가 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월튼은 마이어가 “월마트 문화에 스며들 수 없는 인재”라고 여겼다. 월마트의 기업 문화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곤 했던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월튼은 평범하지만 월마트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키려 노력하는 글래스를 선택했다. 글래스는 기업의 가치를 변질시키지 않고 “이 가치가 기업을 운영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월마트를 포천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은퇴할 때까지 회사의 연 매출을 10배 성장시킴으로써 월튼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증명했다.
이처럼 회사는 아무리 능력 있고 성과가 뛰어나도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나 비전에 공감하지 못하는 직원을 키우지 않는다.
당신이 몸담은 조직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라.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을 반영하라. “저 사람은 조직적인 관점이 있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해”라고 평가받는 사람은 상사뿐 아니라 회사의 신뢰도 얻는다.
컨펌 받지 못한 보고서를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 원 참, 조직이 안 도와주네.” 하지만 돌이켜보라. 내가 조직을 도와주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회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직원이 됐을 때, 회사는 알아서 당신을 도와주고(컨펌을 내려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상사의 컨펌을 쉽게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진심으로 상사의 편이 돼야 한다. 그러면 벌써 일하는 자세부터 달라지고, 나의 성공이나 발전을 위해서도 더 좋다. 경영 컨설턴트 류랑도는 저서 <하이퍼포머(High Performer)>에서 “직장인의 제1 고객은 상사”라고 역설한다. 상사의 니즈를 채워주는 일은 비즈니스맨으로서 직장인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업무라는 뜻이다.
컨펌에는 스피드가 필요
컨펌 받을 준비를 단단히 한 뒤 컨펌을 받으러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스피드다.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 높은 멋진 기획서가 아니라 스피드임을 잊지 말라. 상사가 칭찬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것을 반영해 전체적인 틀만 잡아 신속하게 기획서를 제출하고 일단 컨펌을 받아라. 상사의 머릿속에 그 아이디어가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을 때 말이다. 일단 컨펌을 받은 뒤 실행해 나가면서 세부 사항까지 점검해 최종 계획을 멋지게 완성해도 된다.
때로 컨펌은 완성도가 아니라 ‘시간’을 평가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사는 스피드를 컨펌하는 셈이다. 같은 맥락으로 컨펌을 위한 보고의 황금률은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의욕이 과해 준비한 자료를 죄다 설명하려 들거나, 인과관계를 이해시키겠다고 구구절절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듣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말을 못해?’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뭐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려던 상사도 짜증이 밀려와 괜한 트집을 잡으려 할지 모른다. 의사결정자를 사로잡고 싶다면 핵심 정보를 빼놓지 않으면서도 짧게 압축하는 내공이 필요하다. 결코 상사가 복잡한 문제와 넘쳐나는 자료 속에서 길을 잃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