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의 기술

[강대리 팀장만들기] 직접 생산? 생산 위탁? 어떻게 하지? 자장면-짬뽕도 잘 못 고르는 나

23호 (2008년 12월 Issue 2)

1번을 고를 것인가, 2번을 고를 것인가. 아니면 3번? 아 고민되는 순간이다.

신제품 전략 수립 막바지에 이르러 야간 회의가 계속되면서 배가 출출해진 팀원들이 누가 간식을 사올 것인가를 정하기 위해 ‘사다리 타기’ 게임을 시작했다. 성별, 나이,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동등한 조건에서 펼치는 복불복 게임.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민망한 사소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이것만큼 공정한 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이처럼 손쉬운 게임에서조차 쉽게 숫자를 고르지 못한다. 1번을 고를려면 2번이 아깝고, 3번으로 하려니 왠지 4번에 마음이 끌린다.
 
실제로 나는 매사에 좀 우유부단한 편이다. 자장면을 먹을 것인지, 짬뽕을 먹을 것인지, 하다못해 짬짜면을 먹을 것인지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결국 다른 팀원들이 모두 고르고 남은 숫자가 내 차지가 됐다. 결과는 내가 나갔다 오는 것.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손대수가 함께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지난 주, 그러니까 내가 회사에는 병가를 내고 다른 회사에 면접 보러 간 바로 그날 저녁 손대수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면접 잘 보셨냐면서. 창피하고 민망한 마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시 멈칫한 사이 손대수의 이야기가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형이 그 회사에 안 갔으면 좋겠다, 다른 회사에 가면 기획 쪽에서는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뭣 하러 그 나이에 다른 곳에서 그런 고생을 하느냐, 이 회사에서는 형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있지 않으냐,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이제 막 친하게 된 형이랑 좀 더 같이 지내고 싶다….”
 
얘가 알고 말하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조금은 덜 민망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던 것은 손대수의 그 말 덕분이었다.

그 후로 단 둘이 있을 때에도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손대수가 고마울 따름이다. 나를 인정해 주는 우리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지. 스카우트라니, 내가 무슨….
 
이 같은 결심을 하자마자 중대한 문제에 봉착했다. 생산 부서에서 우리 생각에 제동을 건 것이다. 원래 생활가전 제품 생산업체인 우리 회사에서 조명기기까지 제작할 경우에는 그에 따른 기본 설비나 생산라인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향후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라인부터 만들 수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쪽에서는 조명 전문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위험을 줄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초기비용 부담이 커지며, 사업이 실패할 경우 생산라인 처리가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말에는 수긍이 됐다. 그러나 직접 생산도 나름대로 장점이 많고, 그를 위해 신규 조직에 관련 인력까지 포함시켰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니 어쩌란 말인가.

일단 조명 업체와의 제휴도 검토해 보기로 하고 몇 몇 업체 담당자를 만나봤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공동 브랜드 노출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으며,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제작비를 너무 많이 요구했다. 우리 회사의 첫 번째 프리미엄 제품 기획을 위해 들인 공이 얼만데 어떻게 다른 회사 이름을 함께 넣을 수 있을 것이며, 이익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일단 다른 업체와 제휴를 해야 하나, 이번 신제품을 반드시 성공시킬 테니 조금 무리하더라도 우리 회사에서 직접 제작하자고 해야 하나.

아무리 따져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유 대리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몇 달 전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 단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양반이 웬일이지? 솔직히 아주 반갑지는 않았지만 저녁이나 먹자는 말에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유 대리님을 만났다.
 
팀원들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지,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등에 대해 두서없이 인사말이 오갔다. 어찌된 일인지 유 대리님은 좀 외로워 보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가 새 회사에서 정말 좋은 기획안을 제출했는데 위에서 늑장을 부려 의기소침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곤 부러운 눈치로 “강 대리 신제품은 언제 나와?”라고 물었다. 내가 “늦어도 내년 5월에는 나올 거예요”라고 하자 “그래?”하고 되물으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따분한 만남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유 대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일단 안전한 사업 진행을 위해 제휴하는 것이 더 나을까? 그렇지만 내가 기획한 신제품을 다른 회사에 일부나마 넘겨준다는 것은 좀…. 그런데, 이런 결정을 나 혼자서 해도 되는 건가? 아 모르겠다. 일단 직접 생산과 생산 위탁 두 가지 방안에 대한 내 의견을 정리해서 팀장님께 조언을 구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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