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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리 팀장만들기] 님도 벗도 다 잃고 떠나려는데… “그 경력으로 우리 회사엔 안되죠!!”

강효석 | 22호 (2008년 12월 Issue 1)
지난밤엔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게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회사에 출근하면 괜히 주눅이 들고 빨리 퇴근하고 싶어진다. 손대수에게는 더 이상 살갑게 대해주지 못할 것 같고, 임 주임과는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조차 참을 수 없다.
 
마치 의형제라도 맺은 것처럼 나와 매일 붙어 다니던 손대수, 몇 년 만에 내 가슴을 뛰게 만들던 임 주임. 이 두 사람을 동시에 잃게 된,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진 것은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때 내가 화장실엔 왜 갔을까? 거기서 누군가가 흘린 지갑은 왜 주웠을까? 그 지갑을 왜 열어 봤을까? 화장실 세면대 위에 지갑이 하나 놓여 있기에, 주인을 찾아주려고 지갑을 열어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손대수와 임 주임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근사한 호텔 앞에서 찍은 손대수와 임 주임의 사진.
 
!!!
 
그 순간, 내 가슴이 어찌나 철렁하던지. 둘이 사귀고 있는 건가? 손대수가 제주도에 놀러 갔다고 자랑하더니, 임 주임과 같이 간 건가? 그동안 내가 손대수에게, 임 주임에게 고백한 건 뭐가 되는 거지? 여하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물론 난 이 두 사람 중 누구에게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지갑은 손대수 몰래 자리에 갖다 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지내는 중이다. 이 두 사람과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 무안하고, 창피하고, 때로는 화가 치밀기도 한다.
 
산악동호회에서 유난히 가깝던 두 사람을 봤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손대수가 끊임없이 소개팅을 해줄 때 알았어야 했는데, 임 주임에 대해 고백하고 난 뒤에 내가 외롭다는 말이라도 꺼낼라치면 재빨리 말을 돌리던 그 때라도 알았어야 했는데, 하다못해 임 주임이 나를 찾아와서 남자친구 얘기를 꺼냈을 때라도 알았어야 했는데……. 그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대하는 게 괴롭다. 그렇다고 출근을 안 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아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느닷없이 헤드헌터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내 직책과 연봉을 모두 알고 있는 헤드헌터는 언제까지 작은 회사, 적은 연봉에 만족하며 젊은 청춘을 보내려 하느냐고 말했다. 지금이 바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때라며 내 능력에 맞게 좀 더 큰 바다로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기획 분야에서 지금보다 1.5배는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 할 수도 있는데 현실에 너무 안주하지 말라는 말도 했다.
 
내가 벌써 헤드헌터의 사냥을 받을 정도가 되다니. 내 능력이 그 정도나 됐단 말인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는 말은 바로 이 순간에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 어차피 괴로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바에야 좀 더 조건 좋은 회사로 옮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내가 기획한 신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무궁무진한 기회를 믿기로 했다.
 
헤드헌터에게 내 의사를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 마케팅 회사 기획파트의 면접 일정이 잡혔다. 서류 전형은 이미 통과되었으니 면접만 잘 통과하면 바로 채용될 것이라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손대수와 묵은 감정을 풀어야 할 것 같았다. 밤이 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동안의 이야기, 내가 알게 된 이야기, 나는 이미 다 털어냈다는 이야기, 두 사람이 잘 되길 바란다는 이야기, 아직은 비밀이지만 어쩌면 회사를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래도 앞으로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는 이야기를 했다. 손대수는 놀라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는 “형과 계속 함께 지내고 싶지만 조건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회사에 병가를 제출하고 찾아간 면접 자리.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 회사는 기획 분야의 인재를 원했는데 이 분야의 이력은 길지 않네요?”
하지만 제가 몸담고 있는 미래상품기획팀에서 개발하고 있는 제품도 제가 기획했는데…….”
미안하지만 그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면 무리가 있겠는데요. 아무래도 경력을 좀 더 쌓으신 후에 다시 찾아오는 것이 좋겠어요.”
 
!!!
 
이게 뭐야! 불합격이야? 나 정도면 아무데나 갈 수 있을 거라면서! 
그럼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그나저나, 아 내가 회사 그만둔다고 울고불고하던 손대수 얼굴은 어떻게 본담.
  • 강효석 강효석 | - (현) 골프존 상무
    - (현) 네이버 블로그 'MBA에서 못 다한 배움 이야기' 운영자
    - 삼성에버랜드 신사업추진팀
    - 삼성에버랜드 환경개발사업부 환경R&D센터 사업기획팀
    truef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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