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퇴마록』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유명한 표현과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유’에서 ‘유’가 창조될 때가 많다. 원래 존재하던 무엇에 착안해 아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또 조금 다르게 만들어내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원래의 것에선 볼 수 없던 독창성, 새로운 오리지널리티가 탄생한다. 대중문화계에서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가장 재미있고 풍부하게 나타난 대표적인 시대로 1990년대를 꼽을 수 있다. 이 시대에 서구의 것이라고만 여겨졌던 다양한 장르가 폭발적으로 한국화되기 시작했다. 랩과 힙합 같은 음악 장르서부터 스릴러, 블록버스터 같은 영화 장르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계 전 영역에 걸쳐 장르의 현지화가 활발히 진행됐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 이처럼 ‘바깥’에서 어떤 것을 들여오는 방식에는 사실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 저기에서 아무리 ‘잘나가던’ 것이라 한들 여기선 너무 낯선 나머지 대중의 외면을 받기가 쉽다. 문화의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콘텐츠를 현지화하는 것, 다시 말해 그저 낯설기만 한 것을 대중이 자연스럽게 접하고 좋아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없던 새로운 열망을 심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만큼 커다란 성공을 기대할 수 있기도 하다. 이질적인 것일수록 현지화에 성공했을 때 혁신적인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1990년대 대중문화계의 과감한 실험들을 되돌아보면 특히 더 그렇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듣도 보도 못했던 랩 음악을 들고나왔을 때, 데뷔 무대에서 가장 낮은 점수와 혹평을 받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때의 비난을 까맣게 잊고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이 거둔 위대한 성공만을 기억한다. 랩을 소수의 리스너가 애호하는 ‘그들만의’ 장르에서 한국 대중이 열광하는 ‘우리의’ 장르로 바꿔버린 힘, 그럼으로써 한국 대중가요계의 판도 전체를 뒤집어버린 힘.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휘했던 그런 힘이 바로 훌륭한 현지화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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