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20년째 ‘유망주’인 분야가 있다. 2000년을 전후해 E-health로도 불렸고, 어느 순간 유비쿼터스를 의미하는 U-health가 됐다가 모바일을 의미하는 m-health를 거쳐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디지털 헬스케어로 불리기까지 어느새 20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누군가는 전부 다른 개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간판만 바뀌고 대동소이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 모바일 기술의 대두,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화려하지만 이 모든 기술이 헬스케어와 만나면 빛을 잃는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의사 출신 경영인이다. 환자들을 진료하던 경험을 떠올리면 보통의 환자들은 아프기 전까지 의사들의 ‘덕담 같은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프기 시작하면 비로소 의사를 찾아와 고통을 호소하지만 진통제를 주고 기다리는 것 외에 의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고객의 니즈가 아프기 전까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 헬스케어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가 있어도 니즈가 강하지 않은 고객에게 판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고,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그러한 막연한 수사보다는 눈앞의 삼겹살과 소주가 맛있어 보이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필자는 그 해답을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사용성의 개선’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계산의 정교함’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여러 면에서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유사하다.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때 그것을 미리 계산하고 예측해 최적의 방식을 알려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의 헬스케어는 예전에 교통방송을 들으며 지도책으로 길을 찾던 시절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 실시간으로 교통량을 수집하기 위한 센서가 곳곳에 설치되고 GPS는 점점 정교해졌다. 스마트폰은 항상 네트워크에 연결돼 수시로 도로 상황을 업데이트했고, 이렇게 풍부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개선되니 최적의 경로를 알 수 있게 됐다. 헬스케어는 방금 이야기한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방대하고, 훨씬 복잡하고, 훨씬 민감하다. 결국 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고, 더 복잡한 계산을 처리해야 하며,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려면 사용자를 배려한 사용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사물인터넷의 발달은 고무적이다. 필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 웰트의 스마트 벨트처럼 일상의 사물에 공기처럼 존재하며 일상생활의 다양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축적된 수많은 양의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분석해 그 안의 숨은 패턴을 찾아 건강을 예측하려면 그에 걸맞은 분석기법이 필요하다. 머신러닝 등의 인공지능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과 예측은 이러한 가능성을 높여준다.
아마 이러한 시스템이 완성된다면 의사들도 ‘덕담’을 멈추고, 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다면적으로 계산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당신의 수면장애와 소화불량, 만성피로,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저녁 산책을 멈추고, 대신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 운동량을 확보하라”는 뜬금없는 족집게 처방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블록체인 같은 분산형 시스템으로 각자의 데이터를 각자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최소한 나의 민감한 정보가 타인에 의해 다른 목적으로 오남용될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화두 아래 모든 분야의 혁신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지금, 우리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 그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