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클로즈업
오래전부터 나, 마르셀은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 나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재워주는 것이었다. 방학이 되면 부모님과 나는 시골 콩브레에 있는 레오니 숙모 댁에서 지냈다. 나약한 내 성격을 고치려는 할머니 때문에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재워주지 않았다. 콩브레에서의 기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됐다.
성인이 된 나는 사교계에 출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삶의 어두운 이면을 보게 되고 절망과 허무함을 느꼈다. 그렇게 회의감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마들렌 부스러기가 섞인 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났다. 추위에 떨고 있던 어느 겨울날, 어머니는 내게 따뜻한 보리수 꽃차와 마들렌 한 조각을 줬다. 콩브레에서의 어느 일요일 아침, 레오니 숙모는 내게 마들렌이 담긴 따뜻한 차를 줬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어머니와 콩브레에 대한 기억들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지금까지 내 삶은 어떠했는가? 사교계의 화려함,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동경, 사회적인 명성 등을 추구했지만 그 어느 것도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하지만 기억이란 이름의 과거의 조각들은 이제 내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고 있다.
#2. 깊이 읽기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13년에 걸쳐 집필한 시간과 기억과 회상에 관한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 이 작품에서 프루스트는 무의식에 대한 탐구, 액자소설1
형식, 기억과 회상에 의존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 시공간을 무시한 소설적 구조 등 다양한 형식을 사용한다. 이 책은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출발점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타임스, 르몽드 지(誌)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세기 2대 걸작 중 한 편으로 이 작품을 읽지 않고서는 문학을 논할 수 없다.”
-T. S. 엘리엇(영국 시인, 평론가)
우리의 삶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차 의미와 가치를 잃어가고 덧없이 흘러가 버린다. 이것이 ‘잃어버린 시간’이다. 이런 시간의 파괴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오직 ‘기억’뿐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선명하게 상기시켜주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마들렌 조각이 담긴 차(茶) 같은 ‘감각적 경험’이다.
프루스트 현상(Proust Effect)
-특정한 냄새나 맛, 소리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되살아나는 현상
그렇다면 기억이란 무엇이며, 인간에게 어떤 일을 하는가?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 메모리와는 다르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주는 능력이 있다.
“가능성에서 보면 인간은 기억을 소유하고 있지만 본질에서 보면 인간은 기억 그 자체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큄멜
프루스트가 말하는 기억에 대한 회상(回想)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방법이자 ‘잃어버린 공간’을 찾는 방법이요,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방법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 속에서 자신조차 잃어버린 당신에게 마르셀 프루스트는 묻는다. 지금이라도 도도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기억해내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잃어버린 당신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3. 비즈니스 인사이트 시장은 기업이 기억을 두고 싸우는 전쟁터에 다름없다. 기업은 고객의 마음속에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기억을 오래 남기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 치열하게 싸운다.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브랜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브랜드는 우리가 보여준 것들이 남긴 잔상의 합이다.” 우리는 고객의 머릿속에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감각적 경험’을 키워드로 제시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쌀가게 ‘아코메야’가 화제가 되고 있다. 아코메야는 쌀을 테마로 하는 다이닝 라이프스타일 매장으로 ‘갓 지은 쌀밥이 주는 행복을 맛보게 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한다. 고객이 행복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20여 종의 쌀을 다품종 소량 방식으로 판매하며 현장에서 알맞게 도정한 쌀로 직접 만든 밥을 맛보게 한다. 여기다 반찬류와 프리미엄 사케는 물론 매장 한쪽에서는 조리기구와 주방용품까지 판매한다. 이 모든 것은 고객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쌀을 직접 고르고, 알맞게 도정하고, 밥을 짓고, 어울리는 반찬과 사케를 곁들여 행복한 한 끼를 먹어 보는 경험을 매장에 감각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아코메야는 쌀집의 개념을 180도 바꿔놨다. 아코메야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고객에게 복합적인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기억에 각인되는 것은 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품에 담긴 문화, 그것의 감각적 경험이다. |
강신장 모네상스 대표 ceo@monaissance.com
필자는 삼성경제연구소 시절 대한민국 최대 CEO 커뮤니티 ‘SERI CEO’를 만들었다. ㈜세라젬 사장일 때는 몸을 스캐닝한 후 맞춤 마사지하는 헬스기기 ‘V3’를 개발했다. IGM세계경영연구원장 시절에는 경영자를 위한 ‘창조력 Switch-On’ 과정을 만들었다. 2014년 2월 복잡한 인문학 지식을 ‘5분 영상’으로 재창조하는 콘텐츠 기업 ㈜모네상스를 창업했으며 한양대 경영학부 특임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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