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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회 문화 분석

서민식당 들러 하노이맥주 마신 오바마. 베트남 현지화 전략, 이 정도는 돼야

이한우 | 224호 (2017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 분단,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설이면 한 살 더 먹은 것을 축하하며 세뱃돈을 주고받지만, 54개 종족이 산재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주의 국가.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베트남은 한국에 있어 세 번째로 큰 수출대상국일 정도로 중요한 교역 파트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계가 ‘미래’를 담보하진 않는다. 실제로 베트남인들은 전반적으로 한국에 우호적이나 한국의 권위주의적 기업문화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 내 한국 기업에서의 노사분규도 많은 편이다. 계속해서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을 더 알고, 그들을 이해하고 현지화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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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분단, 전쟁… 한국과 유사한 역사 공유


1993년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용 장식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응우옌(Nguyen)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Hue)에 가면 용을 지붕 위에도 얹어 놓고, 계단 난간 등 곳곳에 설치해 놓았는데 가히 ‘용의 나라’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용은 중국 황제의 동물이 아니던가? 이렇게 용을 여기저기 배치해 놓았으면 중국이 베트남을 가만 놔두지 않았을 텐데 베트남이 중국에 대한 저항정신이 강했던 것일까?

이후 베트남을 좀 더 공부하며 동남아에 용 신앙이 널리 퍼졌고, 베트남은 스스로를 남국(南國)으로 칭하며 북국(北國)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대내적으로 천명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은 기원전 111년부터 기원후 938년 독립하기까지 1000년 동안이나 베트남을 직접 지배했다. 이후에도 중국은 수차례 베트남에 공격을 감행했으나 베트남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모두 물리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베트남은 중국에 항거하고 남부로 영토를 확장하는 역사를 전개해왔다. 그래서 베트남의 역사를 ‘북거남진(北拒南進)’의 역사라고 한다.

당초 베트남 영토는 지금의 북부에만 있었고, 중부에는 참파(Champa)라는 국가가 있었으며, 남부는 캄보디아 땅이었다. 참파 인구는 주로 동남아 도서부 말레이 종족과 같은 계열의 사람들로 힌두교를 믿고 있었다. 북부 베트남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들은 남부로 흩어졌고 지금은 주로 메콩 델타 지역(메콩강 하류의 베트남 남서부 삼각주)에 거주한다. 베트남이 남쪽 끝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이 18세기 중반이니 역사 전체로 통틀어 보자면 근래의 일이다. 긴 영토로 인해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수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부 후에에 자리 잡았다.

이후 베트남은 19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짧은 기간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쳐 1945년 독립을 선언하지만 프랑스의 재침략으로 1954년까지 전쟁을 치렀다. 남북으로 분단됐던 베트남은 1975년 통일되기까지 다시 전쟁을 겪었다. 이런 식민지배, 분단, 전쟁의 과정은 한국과 공통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1970년대 후반 경제적 침체에 빠지자 1980년대 초부터 부분적 경제개혁정책을 도입하다가 1986년 말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쇄신’을 뜻하는 ‘도이머이’라는 탈사회주의적 전면적 개혁정책을 채택해 실행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과는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경제협력관계를 발전시켜왔다.



다양성의 사회

베트남에서 한국 TV 드라마가 한창 유행하자 일부에서는 그 원인 중 하나로 한국과 베트남이 유교사회라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 베트남은 중국에 저항하면서도 유교를 들여와 사회질서의 기반으로 삼았다. 초기에 유교는 상층부에만 영향을 끼쳤고 기층부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었지만 점차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됐다. 물론 베트남 사회가 한국처럼 지극한 가부장제 사회는 아니다. 베트남 남부는 부계제가 아닌 양계제(兩系制)를 따르는 동남아 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비교적 여성들의 지위가 높은 사회문화 속에 있다. 베트남인들 마음의 저변에는 불교나 풍수지리의 영향도 전반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베트남 사회가 유교적 덕목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더욱이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매우 애국적이다.

베트남에는 여러 종족이 공존한다. 낀(Kinh)족이라고도 불리는 다수 종족 비엣(Viet)족은 전체 인구의 86%를 차지한다. 이외 53개 소수 종족이 전국에 산재해 있으며 산악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보통 북·중·남부로 지역을 구분한다. 이를 북부와 남부로 크게 나눠보자면 북부는 대체로 마을 단위 공동체성이 강한 편이며, 남부는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노이 사람들의 얼굴이 무표정하거나 근엄했던 반면 사이공(호찌민)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다. 예컨대 호찌민의 호텔에서 20여 년 전부터 ‘서(Sir)’라는 호칭을 들었지만 하노이에선 불과 몇 년 전부터 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베트남 대표 음식으로 알고 있는 쌀국수 ‘퍼(pho)’만 하더라도 지방별 다양함을 엿볼 수 있다. ‘퍼’는 본래 북부 음식이었는데 북부 사람들이 남부로 이주하면서 퍼뜨려 이제는 전국적 음식이 됐다. 지방별 쌀국수도 다양해 남부의 ‘후띠우(hu tieu)’, 중부의 ‘미꽝(mi quang)’ ‘까오러우(cao lau)’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베트남 문화코드 이해하기

1. 우리에게 설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뗏(Tet)’

베트남인들은 평소에도 꽃을 참 좋아하지만 ‘뗏(Tet)’이라고 불리는 설에는 반드시 꽃나무를 준비한다. 집의 거실이나 가게 입구에 금귤 나무나 분홍빛 복숭아꽃 나무, 노란 살구꽃 나무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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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추석을 지내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베트남에서 가장 큰 연중행사는 설이다. 베트남에서는 설을 우리보다 훨씬 성대하게 지낸다. 설이 되면 우리 세뱃돈에 해당하는 ‘믕 뚜오이(mung tuoi)’ 또는 ‘띠엔 리씨(tien li xi)’를 자녀들에게 준다. 우리처럼 엎드려 절하고 받는 풍습은 없지만 한 살(tuoi) 더 먹은 걸 축하하는(mung) 돈이다. 직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소액을 넣은 빨간 봉투를 직원들에게 돌리며 즐거워한다. 설에 ‘바잉쯩(banh trung)’이나 ‘바인뗏(banh tet)’을 먹고, 추석에는 월병을 먹는다. 바잉쯩은 안에 돼지고기, 콩 으깬 것 등을 넣어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큼지막한 쌀떡인데 북부에서 그냥 쪄 먹거나 쪄낸 것을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 구워 먹는다.



사람들은 설을 앞둔 일주일 전부터 설 준비에 분주하고 설 이후 1∼2주는 가족, 친지, 동료 모임에 다니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기업들은 설 때 거래처에 선물을 돌린다. 보통 선물로 과일바구니를 준비하는데 여러 가지 과일과 술, 봉투(phong bi·퐁비)를 함께 넣어 보낸다. 또 기업이 설에 직원들에게 꼭 줘야 하는 게 있으니 바로 ‘13월의 월급’이다. 베트남에서는 설을 크게 지내기에 직원들은 설 보너스를 당연히 받으리라 기대한다. 이런 기대 가운데 보너스를 받지 못하면 직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초기 외국인 투자기업에서 노사분규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이제 외국인 투자기업들도 베트남 문화를 잘 알기에 조화롭게 대응하고 있어 요즘 이를 둘러싼 갈등은 적은 편이다.

2. 가장 중요한 것은 ‘띤깜’ 만들기

어떤 일을 하든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를 쌓는 일이다. 베트남어로 ‘띤깜(tinh cam)’은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는 아주 가까운 사이에 가지는 감정이다. 한자어 정감(情感)으로부터 온 말이겠지만 그 글자의 의미 자체보다 중국의 ‘관시(關係)’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베트남 사회생활에서 띤깜을 가진 사람을 많이 두는 것은 곧 재산이기도 하다. 결국 무엇을 하든 마음을 사는 게 중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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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띤깜을 만들 수 있을까? 미국 대통령들의 베트남 방문 당시 행보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클린턴 가족은 2000년 베트남 방문길에 호찌민에서 ‘Pho 2000’이라는 쌀국수집에 들렀다. 지금도 그 집에 가면 클린턴이 먹었던 닭고기 쌀국수를 메뉴에 표시돼 있다. 부시는 2006년 호찌민에서 띱(Tib)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에 들러 후에(Hue) 음식을 즐겼다. 2016년 오바마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그는 하노이의 흐엉리엔(Huong Lien)이라는 한 서민 식당에 들러 넴(nem), 분짜(bun cha)와 함께 하노이 맥주를 마셨다. 이로써 과거 적대국이었던 미국의 대통령들은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다. 또 2015년 설 일주일 전 ‘옹따오(Ong Tal)가 하늘로 가는 날’에 미국 대사 테드 오시우스가 물고기를 방생한 것이 언론에 보도돼 국민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설을 일주일 앞둔 음력 12월23일은 베트남에서 부뚜막 신 옹따오가 그 가정의 한 해 일을 하늘에 보고하러 가는 날이다. 사람들은 종이로 만든 금괴, 말, 배, 모조 달러 등을 태워 옹따오를 전송하고, 물고기를 방생하기도 한다.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한국인들은 왜 미국인들처럼 하지 못할까? 이미 익숙한 문화를 가졌기에 베트남 문화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아 그런 것인가, 아니면 경직된 관료주의로 인해 참신한 의견이 채택되지 않아서인가? 기업인들도 이런 노력을 더한다면 빠르게 베트남에 친근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오(o)’를 갖게 된다면 베트남에서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지 않을까 한다. ‘오’는 우산을 뜻하는 단어로 바로 우리의 ‘백’, 즉 유력자에 해당하는 말이다. 베트남 사회에서도 이런 인간관계가 큰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3. 명분과 함께 ‘실리’를 따지는 사람들

베트남에 있다 보면 잘못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베트남인을 만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분명히 잘못했는데도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하더라도 잘못했다, 실례했다는 뜻의 ‘씬로이(xin loi)’보다는 이해해달라는 뜻의 ‘통깜(thong cam)’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더욱이 잘못하고 나서 말없이 멋쩍게 웃고 있는 이를 보고 있노라면 부아가 끓어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멋쩍은 웃음이 곧 잘못했다는 표현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베트남에서는 한 번 말해 일이 이뤄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때는 주어진 일을 끝내면 받게 될 이익을 분명히 제시해 줘야 한다. 베트남인들은 명분도 중시하지만 무엇보다 실리를 최우선적으로 따지니 말이다.



베트남의 변화 추세 읽기

1. 베트남 경제변화

베트남 경제변화의 전반적인 추세를 파악하는 것은 베트남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베트남의 2016년 GDP 성장률은 6.2%로 나타났다. 일부 사람들은 비교적 높은 실적이라고 하나 한창 성장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이 보통 10%를 훌쩍 넘는 실적을 내는 것에 비하면 그리 높지 않은 수치이기도 하다. 베트남도 한창 성장세를 보일 때는 9%대의 성장률을 나타내곤 했다. 명목상 1인당 GDP는 약 2200달러며 이를 구매력평가지수로 계산하면 6500달러 정도다. 경제 규모로는 베트남이 세계 46위로 11위인 한국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사회주의국가인 베트남이 매년 발간하는 통계연감에는 소유 부문별 GDP 비중이 실린다. 2014년 기준으로 총 GDP에서 국유경제 부문은 32%, 국내 비국유경제 부문은 48%, 외국인투자 부문은 20%를 차지했다. 국유경제 부문의 비중은 조금씩 계속 감소해왔고, 외국인투자 부문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정부는 국영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있으나 중요 기업들에서는 전환 이후에도 과반수 주식을 보유해 지배지주로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60만 개인 기업 수를 2020년까지 100만 개로 늘리는 청사진을 발표했는데 사영기업(민간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산업 부문별로는 GDP에서 차지하는 농림수산업 비중이 2014년 18%에서 2016년 16%로 감소했는데 공업 및 건설 부문의 비중은 같은 기간 39%에서 43%로, 서비스 부문의 비중은 43%에서 41%로 변했다. 2016년 농업 부문 침체가 가뭄의 영향 때문이었기에 앞으로 농업의 비중이 단기간 증가할 수는 있어도 전반적으로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다. 공업 부문에서만 보면 국유 부문이 16%, 국내 비국유 부문이 34%, 외국인투자 부문이 50%를 점하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투자기업이 수출의 70% 정도를 담당하고 있어 당분간 베트남의 외국인투자에 대한 우대는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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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베트남의 수출품 구성을 보면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이동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지는 않다. 베트남 수출품 중 저급 기술을 채용한 제품 비중이 1995년에 30%였는데 2008년에도 30%로 같았고, 중급 기술 제품은 같은 기간에 2%에서 7%로 증가하고, 고급 기술 제품은 7%에서 12%로 증가했을 뿐이다. 중국의 수출품 중 고급 기술 제품 비중이 1995년 24%에서 2008년 51%로 증가한 것과 대비된다. 단, 베트남의 휴대폰 관련 산업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점은 눈에 띈다. 현재 공산품 수출에서 휴대폰과 관련 액세서리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의류, 컴퓨터 및 부품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물론 휴대폰처럼 첨단기술을 채용한 제품은 삼성, LG 등 외국인투자기업에 의해 생산되고 있으며 외국인투자기업의 수준 높은 기술이 베트남 국내 산업으로 파급되는 효과는 아직 크지 않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가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할 것을 표명한 상황이므로 향후 경제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

2. 정치사회 정세

베트남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평가돼 왔으나 미시적으로 보면 갈등도 존재해왔다. 1997년 북부 홍하델타 여러 지역에서 농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고 2001년 서부 산간지대 소수 종족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대만 투자기업 포모사의 오염물질 방류로 인해 중부 해안에서 대대적 물고기 폐사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규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정치지도자들의 친(親)중국 행태를 비판하는 반정부 블로거들의 활동이 확대됐다.



그러나 현 통치체제를 바꿀 대안세력은 아직 부재하다. 어떤 정치적 변화가 오더라도 정부가 경제발전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 것이기에 외국인 투자에 대한 베트남의 우호적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력 상황을 보면 베트남에는 35세 이하 인구가 60%로 젊은 층이 많아 노동 공급과 소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은 갑작스레 고임금 체계로 전환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저임금이라는 요인만 바라보고 베트남에 투자하기는 곤란하다. 지금 베트남의 최저임금은 월 15만 원 전후로 중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베트남 정부는 최저임금을 지속적으로 매년 15% 정도 올리고 있다.

3. 국제 환경의 영향

미국은 베트남의 제1위 수출대상국이다. 따라서 베트남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며 얻을 이익을 따져 베트남에 투자를 늘린 것은 적절했다. 물론 이런 예상 수익은 엉뚱하게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불발로 그치게 될 공산이 커졌지만 말이다. 그러나 TPP의 실행이 불투명한 지금도 베트남이 여러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기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으리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게다가 베트남은 미국 없이 TPP를 구성하는 데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1 이는 정치적으로 대(對)중국 견제용이기도 하다. 베트남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은 강국 주변에 있는 국가의 대응전략이다.

베트남은 중국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1000년간 베트남을 직접 지배했고 독립 이후에도 수차례 침공한 역사로 인해 베트남이 중국에 대해 오래된 원한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해야겠다.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한 근래 사례만 살펴봐도 ▲통일 직전인 1974년 남베트남 관할하에 있던 파라셀 군도 서부를 장악한 것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에 대응해 1979년 2월 베트남 북부 국경지역을 침공해 한 달 만에 철수한 것 ▲1988년 베트남이 지배하던 남중국해 섬을 침공해 자국의 관할하에 둔 것 등을 들 수 있다. 요새 베트남 내에서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한 날에 희생자들을 기리며 거리시위를 벌이는 일이 많아졌다. 공자학원2 이 2015년 말에야 처음으로 하노이에 설치된 것도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경계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베트남의 행동에 섭섭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베트남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고, 베트남전쟁 때도 북베트남에 연인원 32만 명을 파견하고 다량의 군수물자를 제공했다. 물론 현재도 중국은 여전히 정치·경제적으로 베트남에 매우 중요한 국가다. 중국은 베트남의 제1위 교역대상국이자 제1위 수입대상국으로서 수입의 25%, 수출의 10%를 점하고 있다. 2015년 베트남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323억 달러 적자를 봤는데, 총수입 1656억 달러의 20%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이기에 베트남은 중국이라는 우산이 필요하다. 그간 베트남 공산당 지도자들은 국가 정책 방향을 중국과 긴밀히 협의해왔다. 양국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경계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사진은 양국관계를 상대방의 가슴에 권총을 겨누며 입맞춤하는 사이로 그렸다.



한국과 베트남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12월 수교해 올해 25주년을 맞는다. 그간 양국 관계는 전례 없이 빠르게 발전했고 상호의존관계가 심화됐다. 상대국에 거주하는 인구도 13만 명을 넘어섰다. 양국 간 교역액은 1992년 5억 달러에서 2016년 451억 달러로 90배 증가했다. 2016년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수출액은 326억 달러, 수입액은 125억 달러로 한국은 201억 달러의 교역흑자를 봤다. 2016년에 베트남은 한국의 제3위 수출대상국, 제8위 수입대상국이 됐다. 한국이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투자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투자기업 수가 3년 전 4000개에서 현재 5000개를 넘어선 상황이다. 한국인투자기업은 베트남에서 100만 명을 고용하고 수출을 담당해 교역적자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 이 때문에 쯔엉떤상(Tuong Tan Sang) 전임 국가주석은 “한국 기업들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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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양국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상대방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2010년 한국동남아연구소 주관으로 최호림 교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베트남인 응답자는 68%, 보통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는 29%였다. 한국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베트남인은 63%,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은 33%였다. 한국인들의 태도 가운데 예의바름, 정직, 친절 항목에 대한 응답자 비율은 각기 차례로 긍정 51% 및 보통 38%, 긍정 35% 및 보통 54%, 긍정 35% 및 보통 57%였다. 한국인들은 특히 정직, 친절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국인투자기업에 대한 베트남인의 평가는 긍정(47%)과 보통(45%)이 비슷하다. 2013년 한 베트남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투자기업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한국인 관리자의 능력이 뛰어나다고(60%) 높이 평가하고 친절하고 열정적이라고(33%) 답했지만 동시에 엄격하고 냉정하다거나(30%) 심지어는 무섭다고(4%) 생각했다.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응답(71%)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19%)보다 월등히 많고, 그들이 한국을 일본 다음으로 가고 싶은 나라로 꼽은 것은 전반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다는 것을 말하지만 이 조사들은 한국인들이 개선해야 할 점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베트남인들이 한국의 권위주의적 기업문화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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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베트남 내 노사분규 대부분이 외국인 투자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과 대만 기업이 수위를 다투는 형세다. 노사분규는 투자 초기에 베트남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근래에는 실질임금 하락이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모든 노동조합은 베트남노동총연맹에 소속돼야 하나, 외국인 투자기업에는 노동조합이 설립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더욱이 베트남에서 노동조합은 유사 관료적 조직이어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잘 대변해주지 못하기에 노사분규는 거의 대부분 노동조합에 의해 주도되지 않고 노동자 스스로 일으키는 불법파업 형태로 발생한다. 이런 일과 함께 한국으로 결혼 이주한 베트남인 여성들이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일 등으로 인해 베트남인 중에는 한국인을 좋지 않은 감정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다.



베트남은 앞으로도 한국의 파트너?

최근 베트남에서 한류가 쇠퇴했다는 우려의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의 TV 드라마가 인도 드라마에 밀렸다는 얘기도 나오고 한 K팝(K-pop) 공연에서 좌석이 다 차지 않아 썰렁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몇 가지 사례로 과장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공연의 경우 주요 관객은 젊은이들인데 입장료를 너무 비싸게 책정해 그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아직까지 베트남에서 한류는 큰 흐름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산 화장품, 의류 등은 여전히 인기다. 중국에서와 달리 베트남에서 한류는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관계는 단기간에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낙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무역이나 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에는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혹시 베트남어를 배우려는 열의를 갖고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 한국인 사업가는 본인이 선택해 베트남어를 배우고, 대기업의 베트남 지사에 자원해 근무한 연후에 독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그 후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대해오고 있다. 베트남에 다니다보면 실패한 투자자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 많이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음은 ‘기본 상식’이다. 또 실패로 인한 ‘수업료’가 아주 많지 않다면 이를 아까워하지 말아야겠으며 베트남에 거주한 지 일 년도 안 돼 전문가가 된 양 행세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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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고급 브랜드로 나아갈지, 서민 브랜드로 머물지 정확하게 타깃을 잡고, 가급적 최대한 현지화 전략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사이공 7군이나 하노이 경남빌딩에 한국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지만 음식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제 베트남에서 한국 음식이 보편화돼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음식점을 많이 찾고 있는데 그들의 입맛과 경제력 수준에 맞추려는 노력은 아직까지 부족한 상황이다. 정작 베트남기업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들이 베트남인 고객들로 붐비고 있는 현상을 주시해야 한다. 여러 분야에서 성공의 관건은 결국 효과적인 ‘현지화 전략’에 있다고 본다.



이한우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asia@sogang.ac.kr

필자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베트남의 개혁정책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주임교수로 있으며 베트남 개혁과정에서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모든 사진은 필자가 제공했다.



생각해볼 문제

1 클린턴 가족은 2000년 베트남 방문길에 쌀국수 집에 들렀다. 2016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하노이의 한 서민식당에서 분짜와 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같이 소탈하게 베트남 음식을 즐기는 자연스러운 모습은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당신은 베트남 기업에서 신뢰관계, 즉 ‘띤깜(tinh cam)’을 형성하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또 기울일 계획인가?

2 베트남인들은 대체적으로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 투자기업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한국인 관리자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지만 엄격하고 냉정하다거나 심지어는 무섭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권위주의적 기업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베트남 현지 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해 나가야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고 장기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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