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굴곡이 있다. 소위 잘나가거나 평온한 시기가 있는가 하면 괴롭고 힘든 시기도 있다. 개인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일이 잘 풀리면서 승승장구할 때도 있지만 막히고 힘든 시기도 있다. 그러나 한없이 좋은 일만 있을 수도, 끝없이 추락만 하는 법도 없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고, 별 볼 일 없던 기업이 때를 만나기도 한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성공은 실패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고대 동아시아인들의 통찰 속에 이것은 상식이었다. “사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物極必反).” 왜냐하면 ‘되돌아오는 것이 곧 도의 움직임(反者道之動)’ <노자> 40장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생겨나서 성장(혹은 팽창)하다가 쭈그러들어서 사라지는 과정을 겪는다. 우리가 사는 우주조차도 한 점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우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동아시아인의 사유에 비춰본다면 언젠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인들은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이 한 가지 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음양(陰陽)의 작용이다. 음양은 이 우주를 이끌어가는 두 힘이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더움이 있으면 추움이 있고,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고, 팽창이 있으면 수축이 있다. 이 음양이 있기 때문에 만물은 ‘존재’하는 것이다.
음양은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힘이다. 한쪽이 커지면 한쪽이 작아지고, 한쪽이 성해지면 한쪽은 쇠퇴한다. 낮이 오면 밤이 가고, 여름이 오면 겨울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음양은 대립만 하는 관계는 아니다. 음 속에는 이미 양이 포함돼 있고 양 속에 역시 음이 들어 있다. 사계절의 예를 들자면, 양이 가장 극에 달한 때인 하지(夏至)는 양의 기운이 가장 큰 시기임과 동시에 바로 음이 기운을 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동지(冬至)는 한창 추워지는 시기이지만 이미 봄의 기운이 움트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한창 잘나가는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으며, 괴롭고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시기는 오히려 상승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음양적 사유를 바탕으로 옛 현인들은 두 가지 조언을 한다.
첫째, 시련의 시기는 나의 성장을 위한 하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힘들게 하고, 그 근골(筋骨)을 수고롭게 하며, 그 육신을 굶주리게 하고, 그 사람을 궁핍하게 해 그가 하는 일을 어그러뜨리고 어지럽힌다.” <맹자> 고자 하. 시련은 사람을 ‘옥처럼 다듬어 성취하게 해 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근심이 없을 때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겸손하라는 것이다. 만사에 ‘얇은 얼음을 밟듯, 깊은 연못가에 선 듯’ 항상 조심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종일토록 힘쓰고 노력하면서 저녁까지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넉넉함 속에서 이웃을 배려하고,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내지 않으며, 후속 세대들에게 어려움이 무엇인지 가르쳤던 경주 최부자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위기에서도 희망을 보는 여유, 실패의 나락에 빠지지 않고 성공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은 역시 이치를 알고 그것으로 세상과 만물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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