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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정체성과 전략

유연한 정체성이 기본인 시대 새로운 내러티브로 사회적 인정을 얻자

김영규 | 179호 (2015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경영일반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은 중요하다. 이는 소비자가 인식한 우리 기업의 모습이며 이를 통해 기업의 행동이 제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업기회가 있더라도 기업은 사회적 정체성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실현하는 것이 기업의 생존과 성과 측면에서 더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 범주로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 기업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들은 보다 유연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이 기존의 정체성과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새 기회를 탐색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내러티브(narrative)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합리화하는 방법이다.

 

 

산업 간 경계의 재정의

누군가가현대자동차의 가장 큰 경쟁자가 누군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1990년이었다면 대우자동차라고 대답했을 것이고, 2010년이라면 도요타나 GM, 폴크스바겐 같은 대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30년에는 어떨까?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 혹은 삼천리자전거일 수도 있고, 애플이나 구글, 또는 삼성전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산업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경쟁을 다양한 이해영역(arena)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가 학계 및 산업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예컨대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이후 2012년까지 미국 가정의 통신비는 11% 증가한 반면 자동차 구매에 대한 지출은 줄어들었다는 조사가 발표된 바 있다. 이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이 동종 기업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면 실제 경쟁의 주요한 측면을 완전히 놓치게 된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예가 될 것이다.1 통신 분야의 혁신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자동차로 직접 이동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으리라는 점을 기존 산업 분류나 카테고리 중심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다른 분야에서 이뤄지는 혁신이 내 사업에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반면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처럼 사물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기술 혁신이 기존 산업구조에 큰 폭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산업 분석의 틀은 여전히 유용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많은 산업의 경계가 재정의되고 새로운 산업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존 산업 중심의 생각에서 탈피하고 더 나은 경쟁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이 필요할까? 필자는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과 내러티브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산업 간 경쟁을 살펴봄으로써 미래의 기업들이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소비자들의 니즈를 풀어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산업 분류에 따른 기업의 사회적 정체성

인간은 어떤 개체를 비슷한 개체와 묶어 하나의 무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본성이 있다. 인지적 한계 때문이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같은 무리에 속한 개체들 간의 차이보다 서로 다른 무리에 속한 개체들 간의 차이가 크도록 개체들을 분류한다. 예컨대 시베리안 허스키는 외모 면에서 늑대와 닮았지만 다른 측면들에서는 진돗개나 슈나우저 등 다른 개들과 더 비슷하기 때문에 개로 분류한다. 이때 사람들은 종종 다른 종류 간의 차이를 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분류는 사회적으로 형성(socially constructed)된다. ,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사는 사람들이 집합적으로 그것이 실제를 반영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공유할 때 그 분류가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유된 믿음은 우리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산업은 오랫동안 시장을 구성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market constituents)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생산자, 특히 기업의 역할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형성된 기업의 분류 기준으로서 시장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개인이 어떤 무리의 일원이라고 인식(이를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이라고 한다)하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자신이 스스로 인지하는 자신을 정체성(identity)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인지하는 자신은 이미지(image). 이 둘을 모두 포함한 것을 정체성이라 하기도 한다. 사회적 정체성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컨대 자신을 백인으로 보는가, 또는 흑인으로 보는가에 따라 그 개인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사회적 정체성은 시장에서 그 기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지금까지는 기업이 어떤 산업에 속하는지에 따라 이러한 사회적 정체성이 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산업 분류에 따른 사회적 정체성은 기업의 생존과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왔다.예컨대 정부가 규제 및 육성정책을 산업별로 전개함에 따라 비슷한 역량을 가진 기업들이라도 어떤 산업으로 분류되는지에 따라 운명을 달리 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은 여러 산업으로 다각화된 기업의 성과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시장의 과소평가 원인은 물론 하나의 영역에 집중하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품질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류기준에 맞는 영역, 즉 기업의 주 사업영역의 성과만 제대로 반영되고 그렇지 않은 영역의 성과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 경향은 투자자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는 주식 애널리스트가 산업별로 전문화되기 때문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2 소비자 역시 구매하고자 하는 제품의 범주(category)를 먼저 정하고, 그 범주 내에 있다고 생각되는 제품들을 비교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생산자가 어떤 범주에 전문성(category expertise)이 있다고 인식되는지가 소비자 의사결정 및 경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됐다.3 따라서 생산자는 자신들이 어떤 특정 범주에 속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편이 그렇지 않은 편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산업으로 명확하게 분류되기 어려운 기업들은 생존이나 성과 평가 등 여러 면에서 불리하다는 연구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기업들은 어떤 산업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정당성(legitimacy)을 얻기 위해 해당 산업의 다른 기업들과 동형화(isomorphism)돼 간다.

 

 

물론 같은 범주에 속한, 즉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갖는 기업들이 모두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의 중심적이고, 다른 조직과 구분되며, 지속적으로 발현되는 성격(core, distinctive, enduring character)으로 정의되는 조직정체성(organizational identity)4 은 기업에 따라 다르다. 이들은 성과를 비롯한 다양한 측면에서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에 의해 열등하게 인식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같은 범주의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된다. 다만 이들이 차별화된 조직정체성을 갖고 차별화된 전략을 실행하더라도 사회적 정체성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즉 다양한 사업기회가 있더라도 기업은 사회적 정체성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실현하는 것이 기업 가치 측면에서 더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외부적으로 다양한 기회를 실현하는 데 대한 정당성을 얻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실제로 이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사회적 제재(social sanction)를 받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연구는 다양한 기회 실현 여부가 조직정체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대형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전문화된 법무를 담당하는 로펌(law firm)이 관련성 및 전문성이 적은 가족법을 다룬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지만 개인 상해에 관한 소송 업무(plaintiff’s personal injury law)를 다루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이유는 로펌은 기업고객들의 대변자라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 상해에 관한 소송을 맡는 것은 기업고객에 대한 배신으로 인식된다.5 물론 사회적 제재를 회피하면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의 일환으로 실제로 하는 것과 보여지는 것을 다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1920년대 미국 레코드 회사들은 흑인 재즈 뮤지션들의 음반을 마치 백인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한 것처럼 이름만 바꿔 재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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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음반의 주요 판매방식이었던 카탈로그에 백인 뮤지션 숫자가 흑인 뮤지션 숫자보다 훨씬 많아 보이게 조작한 것이다.사업기회를 실현하면서도 사회적 정당성을 잃지 않기 위해 시장 구성원이 원하는 정체성을 유지한 것이다.

 

정체성을 속이는 행위는 1920년대의 일만은 아니다. <포천(Fortune)> 6년 연속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뽑았던 엔론(Enron)의 예처럼 실제와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돼 이에 따른 이익을 누리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7 그러나 기업의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현대사회에 이러한 방법은 도덕적이지 않다. 또 평판에 해를 끼칠 위험(reputation risk)이 크다. 실제로석유를 뛰어넘어(beyond petroleum)’ 녹색에너지 기업으로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했던 BP 2010년 멕시코만 사고로 인해 그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시장구성원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러한 방법 외에 좀 더 긍정적인 방법은 여전히 대중이 수긍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전형적인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한 연구8 는 조직의 정체성에 따라 시장은 같은 종류의 사건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내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시장은 같은 스타일의 헤지펀드들과 성격이 많이 다른 비전형적 헤지펀드에 비해 전형적인 헤지펀드에 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전형적인 펀드에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되고 있었다. 이는 사회적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을 때 사회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전 연구들과 맥락을 같이하는 발견이다. 그런데 전년도 성과에 대한 시장 반응에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났다. 비전형적인 헤지펀드가 성과가 좋았을 때 이에 대해 시장은 이전의 과소평가를 보상하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유입하는 방향으로 반응했을 뿐 아니라 성과가 나빴을 때도 전형적 헤지펀드에 비해 자금 유출의 강도가 적은, 즉 보다 긍정적인 시장 반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전형성을 정체성으로 갖고 있는 헤지펀드는 좋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당연한 반면 비전형성을 정체성으로 갖고 있는 헤지펀드는 단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데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자동차라는 산업 분류에

근거해서 자신의 니즈를 풀어가지 않는다.

탈 것이 제공된다면 자신의 기호에 맞게

가장 나은 옵션을 찾아갈 것이다.

 

 

 

산업 범주를 뛰어넘는 성공

이렇듯 사회적 정체성이 기업의 생존과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 범주로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 기업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 회사로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던 애플이 2007년 회사명을 Apple Inc.라는 이름으로 바꾸고도 여전히 성공한 것이 그 예다. 애플은 통합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이름으로 바꾸고 컴퓨터 또는 통신기기산업으로 분류될 수 없는 다양한 사업기회를 실현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경계가 확장된 기존 산업의 일원이나 새롭게 출현한 산업의 일원으로서 설명될 수 없는 기업이 시장구성원에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이제 우리는 애플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아마존이나 구글이 애플과 같은 종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라고 한정 지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치 한 무리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애플은 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다양한 산업을 시도할 수 있는 좀 더 유연한 기업이 됐다. 아마존이나 구글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애플은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보다 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돼 좋은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도 있다.9

 

 

최근에는 정당성을 아직 얻지 못한 기업 역시 기존 범주에 스스로를 한정하기보다 다면적인 정체성을 가짐으로써 긍정적인 성과를 얻는 예가 발견되고 있다. 미국 나노기술산업을 살펴본 최근 연구에서는 기업들이 특정 범주에 명확히 소속되는 것과 특정 범주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피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묘사함으로써 기술 전개 및 환경의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체성은 미래에 대한 위험을 헤징(hedging)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성향에 맞게 조직의 정체성을 해석할 수 있게 해 보다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10

 

또한 1990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시장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시장구성원들(market-takers,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에 해당한다)은 명확한 사회적 정체성을 갖는 기업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벤처캐피털리스트(venture capitalists, 이하 VC)처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는 시장구성원들(market-makers)은 유연성이 있어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체성을 갖는 기업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VC 중에서도 시장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한 기업에 소속된 VC들은 명확한 사회적 정체성을 갖는 기업을 선호한 반면 시장을 만들어 가는 성격이 강한 독립 VC들은 다면적 정체성을 갖는 기업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1 이러한 현상을 볼 때 미래의 혁신적인 기업은 어떤 산업의 일원으로서 갖는 사회적 정체성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보다 다른 차원의 정체성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내러티브 통한 정체성 형성

여기서 다른 차원의 정체성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기업이 다양한 사업기회를 사회적 정당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시장구성원들이 해당 기업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나 역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설득할 수 있다면 그 기업은 보다 자유롭게 새로운 시장의 기회를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설득을 잘하기 위해서 기업에 필요한 것은 바로 내러티브(narrative)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업은 스스로 경험한 많은 에피소드 또는 여러 속성들 중에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해 시장구성원들을 설득할 때 필요한 것들로만 내러티브를 구성해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따라서 사회적으로 형성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범주에 속함으로써 사회적 정당성을 얻는 것과는 달리 조직이 보다 적극적인 입장에서 시장구성원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협상해 가는 것이 특징이다. 조직은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제약에서 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소가 사용될 수 있는데, 특히 다른 기업들과의 제휴 및 협력은 보다 유연하고 통합적인 정체성을 갖는 데 중요한 요소로 사용될 수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최근 애플과 아이폰 프로세서칩인 A9의 공급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는가 하면 블랙베리와의 연대도 확대하고 있다. 또 여기에 TV 부문의 주요 경쟁자인 소니의 게임을 자사 TV에 탑재하는 등 다양한 협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제휴의 경험은 소비자들에게 삼성이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 보다 포용적이고 확장적인 정체성을 가진 기업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제품을 통해서도 기업은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노키아를 인수해 직접적인 경쟁자가 된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국내에서 출시된갤럭시 S6’갤럭시 S6 엣지부터 MS의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탑재하는 등 상호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는 문서작업을 많이 하는 직장인들을 우선 배려하는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제품을 통해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기업은 제품 및 제품 출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 내러티브를 구성함으로써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기업들이 내러티브 정체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형성할 수 있게 된 이유에는 환경의 변화와 소비자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최근 인터넷으로 인해 기업이 내러티브를 통해 시장구성원들과 정체성을 두고 소통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졌다. 이에 따라 기업은 필요한 방향으로 정체성을 바꾸어가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과거와 달리 소비자에게 기업 및 제품에 대한 많은 정보가 주어짐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게 됐다.

 

서두에서 언급한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자동차라는 산업 분류에 근거해서 자신의 니즈를 풀어가지 않는다. ‘탈 것이 제공된다면 자신의 기호에 맞게 가장 나은 옵션을 찾아갈 것이다. 최근 자전거 열풍, 중국 기업의 세그웨이 인수 등이 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무인차 기술의 발달로 미래의 자동차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하나로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전기, 클린디젤, 수소 등 연료에 따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경우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기업의 생존은 같은 산업 내 경쟁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기술과 그 기술을 기반으로 맺고 있는 기업 간 협력관계에서 비롯한 정체성이 어떻게 전달되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예컨대 테슬라와 LG화학은 전기차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정체성이 자동차산업 또는 화학산업의 일원으로서의 사회적 정체성보다 중요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선 기존 산업 분류에 따라 경쟁을 이해하는 것이 수월하지 않다. 여러 제품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소비자들에게 시의적절하게 이야기해주며, 유연하고도 포용력이 큰 정체성을 지향하는 기업들이 미래에 더 큰 환영을 받을 것이다.

 

김영규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youngkyu_kim@korea.ac.kr

필자는 현재 고려대 경영학과에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Carnegie Mellon 정보시스템경영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University of Chicago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근무한 바 있으며 하버드 로스쿨 법직역연구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한 후 현재 연구협력교수(affiliated faculty)로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소셜네트워크 및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에 관한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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