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Insight from Biology

오차를 허용하는 완전체, 생명

176호 (2015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생물의 유전 정보 집합체인 게놈(유전체) 속에는 유전자 목록과 함께 유전자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순서정보가 들어 있다. 게놈 정보는 흔히 비유하는설계도정보가 아니라 종이접기(오리가미)와 같은순서도정보다. 이러한 정보 전달에 있어서 이 같은 순서도 방식은 1) 쉽게 실행 가능하고 2) 후대(後代)로 전파하기 쉬우며 3) 진화에 용이할 뿐 아니라 4) 오차를 허용하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다. 

 

편집자주

흔히 기업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합니다. 이는 곧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경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30여 년 동안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일하 교수가 생명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생물학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기업 경영에 유익한 지혜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생명체는 완벽한 곡선과 직선,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를 갖춘 완전체다. 개인에 따라 아름답다고 여기는 생물들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어린 시절 왕잠자리의 위엄 있는 비행이나 돌고래의 매끈한 유선형 몸매를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한편 생명체는 우주의 기본 원소들이 고도로 정교하게 조직된 화학원소들의 배열이다. 더구나 이 원소들의 배열은 우리 몸에 잠시 머물렀다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흐름으로서의 생명과 형태적 완전성, 혹은 기능적 완전성은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어떻게 화학원소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 생명체가 그토록 완전한 형태를 만들 수 있을까?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는 없는지 한번 살펴보자.

 

흐름으로서의 생명

생명체가 하나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시킨 과학자는 미국 컬럼비아대의 루돌프 쇤하이머 교수다. 쇤하이머 교수는 1930년대 후반우리가 먹는 음식이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매우 재미있는 주제를 탐구한 과학자다. 쇤하이머 교수는 쥐가 먹는 음식에 방사성 동위원소로 표지가 된 아미노산을 섞어주고, 이 동위원소가 어디로 가는지 실험적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동위원소는 쥐의 몸 구석구석에 녹아 들어가 근육에서도 발견이 되고, 심장, , 뇌 등 거의 모든 조직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이후 동위원소는 체내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말하자면 우리가 먹은 음식은 우리 몸으로 들어왔다 잠시 머문 뒤 스르르 빠져나간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는 방식이 물질대사 회로다. 우리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물질대사 회로는 생물학을 배우는 생물학도들에게도 간단치 않은 매우 복잡한 회로다. 그렇지만 한 생명체의 물질대사 회로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기껏해야 2500여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2500여 가지의 물질들이 고도로 정교하게, 또 유일하게 배열돼 각각의 생명체를 만든다. 배열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종내 개체 간의 차이를 불러온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생명체가 가진 유전자의 차이로 귀결된다. 고등 동식물의 경우 무려 2∼4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2500여 가지의 물질들을 정교하게 조립해 유일한 배열을 만들기에 족한 수다. 또한 흐름 속에서 물질의 일정한 배열을 계속 유지시켜 아름다움을 흩트리지 않게 하는 데 족한 수이기도 하다.

 

각각의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배열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실 40억 년의 긴 진화적 역사가 필요했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 우연히 출현하면 그 특성은 다음 세대로 전달됐다. 이러한 전달을 매개하는 것은 물질대사 회로 속의 대사물질 중 DNA라는 정보 저장 물질이었다. DNA에 새겨지지 않은 생물학적 특성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했으니 결국 진화의 끌에 의해 갈고 다듬어진 것은 사실상 DNA의 배열이라 할 수 있다. 그 배열이 서서히 바뀌어 가면서 생물체의 진화 경로를 추동했고, 그 와중에 무수히 많은 배열들이 명멸됐을 것이다. 내가 가진 대사물질의 유일한 배열은 화학원소들이 무작위로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우연히 만들어진 배열이 아니고 아니고 40억 년의 장구한 시간 자연선택이라는 무자비한 칼날 아래 살아남은 배열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40억 년 진화 역사의 최종 승리자인 셈이다.

 

생명체 속의 게놈 정보

게놈(genome)1 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말로 생물의 유전 정보를 뜻한다. 모든 생물의 세포에는 핵이 있는데 그 안에 염색체가 있다. 인간의 경우 총 23쌍의 염색체(22쌍의 상()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가 들어 있는데, 이 염색체 안에 DNA가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 게놈은 22개의 상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남자는 XY, 여자는 XX 염색체)를 합한 총 24개 염색체에 들어 있는 유전정보의 집합체를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생명체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명령하는 게놈이디지털정보라는 사실이다. 0 1로 이뤄진 이진법 체계의 디지털 정보만으로도 그 복잡한 슈퍼컴퓨터를 가동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진법 체계를 이용해 대학 도서관의 모든 서적들을 디지털 정보로 전환하기도 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화성탐사선메이븐을 화성궤도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생명체가 가진 게놈 정보는 이보다 더 복잡한 4진법 체계를 이용한다. , ATGC(Adenine, Guanine, Thymine, Cytosine,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라는 네 개의 염기를 이용해 DNA 이중 나선 구조로 다양한 명령어를 저장하며 실행하게 한다. 4진법 체계의 게놈 정보는 생명체를 자유롭게 활보하게 하거나 아름답게 비행하게 하며, 심지어 심해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며 생존하게 한다.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DNA 연구에서 인간 게놈 전체를 해독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우리가 알게 된 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 목록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이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1990년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10만 개 이상의 유전자가 우리 게놈 안에 있을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2000년 초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2100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이 사실을 놀랍게 받아들였고 필자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한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게놈 속에 들어 있는 정보는 단지 유전자 목록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놈 속에는 21000개의 유전자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하라는 유전자 발현순서의 정보가 함께 들어 있다. 마치 조립식 로봇을 구입하면 그 속에 로봇의 부품뿐만 아니라 이 부품들을 어떻게 연결시켜 조립하는지 조립 순서도가 들어 있는 것처럼 우리 생명체의 게놈 속에는 유전자 목록과 함께 유전자 발현순서에 대한 정보가 함께 들어 있다.이 비유에서 차이가 있다면 조립형 로봇에서는 플라스틱 부품과 종이 위에 인쇄된 조립 순서가 서로 다른 매질(媒質)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게놈 속 유전자의 목록과 유전자 발현 순서는 똑같은 AGTC라는 염기서열의 매질을 이용한다. 게놈 속 정보의 또 다른 뚜렷한 특성은 유전자의 목록은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유전자 발현 순서에 대한 정보는 매우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전체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분석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전자 발현순서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얻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언제 다 알게 될지 기약도 할 수 없다.

 

오차를 허용하는 오리가미 정보

한때 일반인들에게 게놈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게놈 정보를 건물을 지을 때의 청사진, 혹은 설계도 정보라 비유하곤 했다. 발생학(發生學, 생물의 개체발생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과)을 공부한 필자와 같은 생물학자들은 이렇게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방식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와주는 데 효과적이긴 하지만 혹여 잘못된 개념을 심어줄까 우려했다. 아름다운 생명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멋진 설계도가 우연의 산물, 혹은 진화의 결과일 리 없다는지적 설계론(知的設計論·intelligent design)’2 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놈을 설명할 때 설계도 정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건 이론적으로도 옳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도 생명을 만들어내는 적절한 방법이 못 된다. 아주 단순한 예 하나만 들어봐도 설계도 개념의 오류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에 종이학 만드는 법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종이학의 높이와 폭, 길이 등이 세세하게 기술돼 있는설계도가 아니라 종이 접는순서를 배운다. 설계도란 어떤 건축물을 만들 때 그 건축물의 구조나 형상, 치수 등을 일정한 규약에 따라 그린 도면이다. 이 설계도 안에는 건축물의 높이, 넓이, 폭 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을 뿐 아니라 문틀의 형태, 위치, 가로세로의 길이 등이 정확히 기술돼 있다. 심지어 콘센트의 정확한 위치까지 세세하게 명시돼 있다. 종이학을 만들기 위해 다섯 살 난 어린 아이에게 설계도를 내놓고 가르친다고 상상해보라. 아이는 종이학을 만들기는커녕 종이학을 접을 엄두도 못 낼 것이며, 필시종이학은 기적의 산물이라 오해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생명체가 가진 게놈 정보는 설계도 정보가 아니라 종이접기 순서의 정보, 즉 유전자 활용 순서의 정보다. 종이접기 순서(오리가미)3 정보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왜 생명체가 오랜 진화과정에서 오리가미 정보를 활용하게 됐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앞에서 설명한 대로 순서 정보는 매우 쉽게 가르칠 수 있고, 실행하기도 쉽다. 게놈 속의 유전정보는 어느 유전자를 언제 실행시킬 것인지 순서에 대한 정보만 제시하면 된다. 각 세포가 팔을 만들고 있는지, 심장을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필요 없이 현재 자신이 수행해야 할 순서, 즉 발현시켜야 할 유전자만 발현시키면 되는 것이다. 생명체의 배() 발생이라는 복잡한 과정이 진행될 때 각 세포가 수행해야 할 지시는 매우 간단명료하다. 어떤 유전자를 켜고(발현시키고) 어떤 유전자를 끄는지에 대한/오프(ON/OFF)’ 명령이다.

 

오리가미 정보는 또한 조상이 먼 후손에게 전달하기 용이한 정보다. 형태나 구조에 대한 정보를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실제 생긴 모양을 3차원으로 그려서 보여줘야 할까, 아니면 3차 구조를 미니어처(miniature)로 만들어서 압축을 해뒀다가 펼쳐줘야 할까? 어떤 방법도 쉽지 않다. 반면 오리가미의 순서도 방식은 쉽게 디지털 정보로 전환할 수 있어 먼 조상이 자신과 같은 형태의 자손을 만들도록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를 매우 쉽게 개량해 만들어낼 수 있어 진화에 용이하다는 것도 오리가미 방식의 장점이다. 조금 복잡한 고난도의 오리가미를 해보면 초기에는 간단한 구조물이었다가 종이접기의 순서가 진행되면서 점차 더 복잡한 구조물로 바뀌어가는 것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진화가 실제로 진행되는 방식도 이처럼 순서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며 이뤄진다. 더욱이 오리가미 방식은 오차를 허용한다. 종이접기를 해보면 아무리 대충 접어도 순서만 따르면 내가 만들고자 했던 구조물이 만들어진다. 유전자 발현 순서를 제공하는 게놈 정보 또한 이와 유사해서 순서만 따르면 큰 실수 없이 원래 계획한 생명체가 만들어지게 한다. 실제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계적으로 정밀하게 분자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분자는 필요 양보다 더 만들어지고, 어떤 분자는 필요보다 적게 만들어진다. 그런 오차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배아(胚芽)의 형태는 완벽하다. 순서만 정확하게 따르면 약간의 오차가 있어도 큰 문제없이, 실은 매우 아름답게 배() 발생이 이뤄지게끔 하는 것이 게놈 정보다.

 

종이접기를

해보면 아무리 대충 접어도

순서만 따르면 내가 만들고자 했던

구조물이 만들어진다. 유전자 발현

순서를 제공하는 게놈 정보 또한

이와 유사해서 순서만 따르면

큰 실수 없이 원래 계획한 생명체가

만들어지게 한다.

 

 

순서의 다양한 조합, 끊임없는 진화와 혁신의 원동력

생명체의 흐름을 유지하고 지속하게 하는 정보는 게놈 속에 들어 있다. 이 순서 정보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가장 최적의 방식으로 진화가 가능해진다. 더욱이 일정 오차를 허용해 준다는 것은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불확실성이 날로 더해가는 21세기 기업 환경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량 생산이 중시됐던 20세기 경영환경에선 가능한 사업 계획을 미리 계획해 놓고 사전에 정해진 틀에 따라 그대로 실행하는 역량이 중요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일상화되고 있는 21세기 경영환경에선 변화하는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민첩성(agility)과 유연성(flexibility)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훨씬 중요하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디자인된 설계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염기서열 배열을 통해 순서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게놈 정보의 특성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며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곰곰이 생각해볼 부분이 아닐까.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ilhalee@snu.ac.kr

필자는 서울대 식물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여 년간 꽃을 공부해 온 과학자로 1993년 개화유전자 루미니디펜던스를 찾아내는 등 개화 유도 분야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굳혀오고 있다. 저서로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