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포터 vs. 샌델, 세기의 토론

포터: 자본주의는 기회의 시스템, 이젠 바른 잣대를 찾자 샌델: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공감과 이견 나누는 場을…

조진서 | 168호 (2015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전략경영의 거장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와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가 동아비즈니스포럼에서 만났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마이클 포터:자본주의는경쟁인센티브를 통해 사회의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는 데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점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세계화의 진행과 함께 기업과 지역사회가 서로 분리되고 있다. 기업의 이익추구가 사회에는 해가 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기업은 지역사회와의 CSV(공유가치 창출)를 추구해야 하며, 정부는 GDP뿐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사회의 건전성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마이클 샌델:비정규직의 확산, 빈부격차 확대,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갈등 등 여러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는 자본주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공 영역에서 좀 더 자주 만나고 토론하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확대돼야만 한다. 시민들이 좀 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며 그런 소양을 키울 수 있는 공공 교육이 중요하다.

 

 

조동성(사회):오늘 굉장히 중요하고도 흥미진진한 세기의 토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마이클 대() 마이클입니다.

 

2500여 년 전 공자는 덕을 갖춘 사람들(군자)은 서로 다르지만 조화를 추구하고 함께 합의를 찾는다고 얘기했습니다. 두 마이클 교수님께서 서로 다른 접근법을 갖고 계시지만 합의점을 찾고 어떻게 조화를 추구할 수 있을지 얘기해보겠습니다.

제가 가져온 첫 번째 질문은자본주의의 힘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17761 이후로 230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는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이 모두 있었지만 공산주의를 비롯한 다른 이념들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것은 그 안에 내재된 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이클 포터:제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는 거의 마법과 같은 시스템입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살펴봅시다. 우선 수요(needs)가 있습니다. 이는 제품 혹은 서비스에 대한 수요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수요를 충족할 방법을 발명해냅니다. 그는 매출은 늘리고 비용은 줄여서 수익이 발생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이의 수요를 만족시키면서 자신을 위한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더욱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사업을 확장시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고 수요를 확장시킬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자본주의에 내재된 경쟁은 개선을 가져옵니다.

 

정부기관을 봐도 그렇고, 다른 조직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효율성, 혁신, 개선을 위한 인센티브 등 자본주의는 다른 시스템이 갖지 못한, 다른 시스템이 따라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소유와 사회주의 모델이 더 낫다고 믿는 나라들이 많았지만 하나씩 자본주의에 길을 내줬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처럼 강력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자본주의는 혼재된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일정 수준에 이른 자본주의 경제이며 삶의 질은 30∼40년 동안 크게 나아졌습니다. 놀라운 성공을 이뤘습니다. 동시에 지금 많은 한국인들의 생활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잘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있습니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시민들의 많은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지만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2014년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왼쪽)와 마이클 샌델 교수(오른쪽)가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자본주의의 위기 원인과 해법에 대한세기의 토론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 박영대)

 

마이클 샌델:이 토론에 참여하게 돼 기쁩니다.

첫 번째 주신 질문에 대해 제 대답도그렇다입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인 부를 만들어내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인류가 경험한 것 중 가장 훌륭한 메커니즘입니다. 포터 교수가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에는 힘과마법이 있지만 자본주의 하나만으로는 정의로운 혹은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이 이룬 거의 기적과 같은 경제 성장을 봅시다. 만일 내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십시오. 한국은 놀라운 경제 성장과 GDP 성장을 이뤘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한국 국민들이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 발전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GDP가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과 웰빙도 비례해서 증가하는지 대한 질문입니다. 어느 정도 경제가 발전한 상태에서는 물질적인 부를 넘어서는 뭔가 다른 가치가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제공해줄 수 없는 중요한 가치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의 일부는 자본주의에서 오는 빈부격차의 확대입니다. 한국과 미국 등 세계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입니다. 불평등은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질문을 낳습니다.

 

자본주의는 또 다른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가족과 이웃과의 소속감, 사회적인 연대감 등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역사회를 연결시키는 연대감, 소속감을 훼손합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물론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이 아니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를 기준으로 서양에서는 자본주의가 이기고 공산주의가 졌다는 생각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어떤 하나의 모습을 가진 시스템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졌습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하나가 아닙니다. 나라와 문화, 배경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느냐가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와 호환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만으로는, 또 경제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시민들 사이에 민주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합니다.

 

:노벨경제학상2 초대 수상자인 네덜란드의 얀 틴베르헌은여러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해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두 마리 개가 필요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한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한 마리의 개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자본주의가 두 가지 다른 목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가입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자본주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결점을 다른 무언가가 채워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포터: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난 수십 년간 놀랄 만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처럼 누구나 사회적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미국 내 많은 공동체에서 진보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20년간자본주의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조화시키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는 데이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한 가지 원인은 세계화입니다. 과거에는 미국 기업은 미국 기업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만일 본사가 보스턴에 있는 회사라면 자연스럽게 보스턴이라는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도 회사의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곳에서 모두가 일하고, 살고, 또 우리 이웃들도 그 지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전역의 기업들이 이런 공동체의식(sense of localness)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나라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공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직원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화로 인해 기업과 지역사회 간에 디커플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자리는 줄어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좋은 일자리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만의 차지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잘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훌륭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컴퓨터 지식이 없고 전문성이 없는 노동자들은 충분한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습니다. 난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작동에 맥락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런 변화가 자본주의에 내재돼 있던 문제점을 증폭시켰습니다.

 

샌델 교수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감한 개입을 통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공정한 결과를 보장해 주고 소득을 재분배하자는 얘기입니다. 미국에는 요즘 최저임금 제한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또 기업들 중에는 본사를 다른 나라로 이전하기 위해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외국 회사의 매입을 법으로 금지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본사 이전을 막기 위해 미국 기업이 외국 기업을 사지 못하게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거꾸로 외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사들이게 될 거고, 그러면 미국에는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 제한을 올리면 일자리 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런 딜레마를 맞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일의 성격이 바뀌고, 숙련기술의 성격이 바뀌고, 경쟁의 지리적 환경이 바뀌고, 글로벌 노동시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미국 내에서는 미국 사람들끼리 일자리를 놓고 경쟁했습니다. 그래서 생산성과 급여 수준이 굉장히 밀접하게 연동됐습니다. 생산성이 높은 근로자들은 더 높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5년 정도 전부터 괴리가 생겨났습니다. 노동자의 생산성이 상승돼도 급여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 노동자의 임금이 다른 노동자와의 경쟁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같은 기술을 가진 전 세계 노동자들과의 경쟁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전문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수익 추구)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태도가 사실상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업은 수익성과 생산성, 효율성을 높여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궁극적으로 그것이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도전과제는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노동자의 생산성이 상승돼도 급여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 노동자의 임금이

다른 노동자와의 경쟁에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같은 기술을 가진 전 세계 노동자들과의 경쟁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들, 예를 들어사회의 정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샌델:사실 정의와 공정성을 논하지 않고도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내부가 아닌 시민사회에서도 가능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국,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마찬가지입니다. 상위 10%, 1%가 굉장히 많은 부와 소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상위 1%가 전체 부의 3분의 1을 갖고 있습니다. 하위 50%는 약 1%의 부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상 아무 것도 갖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은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비슷할 것입니다.

 

이게 왜 문제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교육을 생각해봅시다. 한국에선 사교육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열도 높고 대학진학률도 굉장히 높습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통과하려면 돈을 많이 들여 사교육 서비스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사교육을 받으면 많이 유리해집니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힘겹습니다.

 

포터 교수가 말한 청년 실업을 생각해봅시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매우 높습니다. 정규직 임금의 60∼70%를 받고 복지혜택도 못 받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아주 다른 임금과 다른 복지혜택을 받는 것이 과연 공평할까요? 정의의 차원을 넘어서, 기업은 이러한 비정규직과 일용직 직원의 교육에 어떤 투자를 하고 있나요?

 

300명 이상이 죽은 세월호 사고에서 선원 33명 중 19명이 비정규직이었다고 읽었습니다. 선장도 포함입니다. 과연 그 회사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비정규직에게 어떤 교육을 했을까요. 비정규직의 교육과 훈련은 공평함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공공의 이익(common good)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불평등의 다른 예는 은퇴한 노령자입니다. 어떤 기준에 따르면 한국 노령자들의 45%가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중소기업들은 경제 시스템 내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가 하는 공정함의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한국 경제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엔 공평함과 균형에 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한국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두 유력 후보가 모두 경제 민주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미국 사람에게는 양쪽 정당이 함께 경제 민주화를 얘기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만으로도 한국의 정치 시스템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한 세기 전 미국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미국에선 산업혁명의 결과로 철길이 깔리고 석유, 에너지 기업들이 미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1910년대와 1920년대, 많은 미국인들은 이러한 기업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공평함과 경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래서진보의 시대라 불리는 개혁의 파도가 불어왔습니다. 개혁의 파도는 훌륭한 결과들을 가져왔습니다. 근로 기준 강화, 최저임금제와 최대 근로시간제의 도입, 대기업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견제장치 등 경제의 민주화가 이뤄졌습니다.

 

다만 그때 우리 미국인들은 이런 일들을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포터 교수가 말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또 다른진보의 시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치유책을 마련할까요? 격차를 어떻게 좁힐까요?

 

포터:샌델 교수는 질문의 답을 찾는 한 가지 길을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제도, 규칙들을 가지고 자본주의와 사회적 정의, 공정한 부의 분배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독점법이 한 가지 예입니다. 이는 어떤 한 기업도 시장의 너무 큰 부분을 혼자 차지하지는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100여 년 전 미국인들은 시장에서 지나치게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들을 분리시켰습니다. 경쟁이 없으면 기업 경영자 마음대로 급여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경쟁자가 많이 있다면, 그리고 경쟁사가 당신보다 더 많은 임금을 준다면 당신은 경쟁사보다 더 많은 임금을 줘야 할 겁니다. 경쟁에 의해 급여 수준이 올라가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경쟁이 필요합니다. 경쟁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고장납니다. 또 노동시장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비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같은 노동에 대해서는 공평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규제를 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련의 규칙을 만드는 게 해답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비롯된 재난(금융위기)은 미국에서 금융시장의 규제에 대해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금융시장이 거의 미친 것처럼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많은 파생상품이 만들어졌고 상당수는 거의 사기에 가까웠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품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금융시장 규제에 대한 토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한 가지 해결책입니다.

 

 

또 다른 해결책은 기업 내부, 기업 자체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제가 깊이 믿고 있는 방법입니다. 기업인들, 혹은 기업에 가까이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점증적인 논리의 파도를 타고 조금씩 생산성을 개선해나가며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똑똑하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5, 10, 15년이 지나서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보면 전혀 똑똑하지 못한 일을 해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좋은 예가 훈련입니다. 예전의 미국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많은 훈련을 시켰습니다. 대부분이 정규직이었고 또 대부분이 한 회사에서 오래 일했으니까요. 그런데 아웃소싱이 보편화되고 파트타임 노동자가 늘어났습니다. 이들은 전일제 근로자와 다른 대접을 받습니다. 기업은 파트타임 근로자들에게는 교육과 훈련을 많이 시켜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점증적으로, 스마트하게 조금씩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일련의 행동을 취합니다. 이제는 기업이 필요한 수준의 기술을 갖춘 노동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미국 내 기술 인력의 부족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외국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금융 시장과 주주의 압력 등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생산적이고 수익성을 높이는 선택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나고 보니 실제로 효율성을 도모하지 못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숙련 노동자를 채용하거나 키우지 못했습니다.

 

샌델:제가 끼어들어도 될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교육과 훈련도 덜 받고 임금도 덜 받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이라 할 것입니다. 회사가 정규직들을 고용할 때는 거의 평생을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책임감이 요구됩니다. 노동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한 가지 해결책은 근로 조건에 대한 공개적 담론입니다.비정규직을 위해서 노동유연성을 일부 높이려면 정규직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 조건과 노동 관련 규제에 대해 토론해야 합니다. 기업, 정부, 노조 등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근로 조건을 새로 정립해야 합니다.

 

:하지만 노조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런 움직임을 막는 것 아닌가요.

샌델:노조도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특정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하는 건 아닙니다. 일자리에서의 정의에 대해서 모든 관계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공의 장이 필요합니다. 토론을 통해 충돌되는 의견이 표현돼야 합니다.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자신의 몫을 최대한 챙긴다는 측면이 아니라 좀 더 큰 맥락에서 정의에 대해 토론해야 합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슈는 공유가치 창출(CSV)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강연에서 포터 교수는 존슨앤존슨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 회사는 임직원들에게 투자해서 수익을 거뒀다고 했습니다. CSV의 방식을 비정규직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포터:샌델 교수가 아주 좋은 지적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등장한 이유는 정규직 계약 조건이 극단적으로 경직돼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자본주의를 실천하는지에 관련돼 있습니다.

 

우리는 공유가치를 간과해왔습니다. 근로자들에게 무엇이 더 좋은가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그 방안을 고민하면 생산성을 더 올릴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혜택,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 생계비 지원 등이 가능합니다. 요즘은 단순직 근로자의 임금이 너무 낮아서 직원의 회전율이 극단적으로 높습니다. 직원이 자꾸 바뀌면 일이 잘되지 않고 많은 비용이 발생합니다. 단순직 근로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임금을 준다면 오히려 효율성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공유가치라는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자본주의자로서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유가치가 던지는 하나의 질문은우리의 제품이 고객에게 실제로 좋은 것인가입니다. ‘고객의 삶을 발전시키는가’ ‘고객이 더 건강해지는가’ ‘고객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시다. 뻔하게 들리지만, 모든 자본주의자들이 이런 질문을 매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자본주의자들은 이런 질문 대신내가 얼마나 더 많이 팔 수 있는가라는 질문만을 던집니다.

 

식품회사를 봅시다. 어떻게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을까요. 소금, 설탕 등을 더 많이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고객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고객을 해롭게 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고객에게 이익을 주는 제품을 팔게 됩니다.

 

또 다른 질문은우리 회사가 직원들에게 좋은 회사인가입니다. 장기적으로 우리 직원이 성공하고, 더 생산적이 되고, 회사에 충성할 수 있을까’ ‘내 구매가 협력업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가는 어떨까요. 내 넉넉한 주문으로 인해 협력업체가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자본주의자들은 이런 질문 대신어떻게 하면 내가 협력업체에 더 많은 힘을 휘둘러서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게 효율적이라고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협력업체가 성장하지 못하면 내 회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공유가치는 전통적으로 우리 자본주의자들이 따라온 관행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번에 포터상을 받는 기업의 사례들을 보면 공유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협력사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사례, 직원 교육방식을 다시 만든 사례, 제품들을 재편해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저는 자본주의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좀 더 세련되게 실행한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적어도 해결책의 일부는 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공유가치는 소득의 재분배가 아닙니다. 기업의 부를 사회에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유가치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서 기업을 융성하게 하는 동시에 사회도 혜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기업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해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어떻게 공유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올리면서도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방식으로 대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많은 좋은 해답들이 나올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나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아주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공정한 규칙은 무엇인가, 일자리와 임금은 어떻게 결정돼야 하는가 등 샌델 교수가 했던 질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CSV는 자본주의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문제들을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는 기업 입장의 메커니즘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샌델: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 저는 포터 교수가 방금 제안한 얘기에 공감하며 또 존경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업이 본래 하는 일을 더 잘하면서 사회적인 비전을 갖는다는 공유가치식 접근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게 만드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업체를 옥죄거나 소비자에게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파는 것 같은 좁은 의미의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SV는 굉장히 중요하고 또 희망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아닙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동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이자 인간입니다. 물질적 번성과 풍요도 추구하지만 의미 있고 좋은 삶을 지향하기도 합니다. 개인뿐 아니라 단체로서도 그렇습니다. 민주적인 정치,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 교육, 시민 문화를 키워가는 것이 요구됩니다. 가족, 지역사회 간의 유대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단기적 자본주의는 이러한 유대감을 종종 훼손합니다.

 

근로자 얘기로 돌아가 봅시다. 근로자 고용 계약이 대부분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것들에 걸려 있기 때문에 대화가 힘듭니다. 임금, 건강보험, 연금 등입니다. 고용주와 근로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부담을 일정 부분 덜기 위해서는 국가 측면에서 복지를 늘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복지 국가가 실현되면 기업이 짊어지는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 재원을 어디에서 찾느냐가 다음 질문이 될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사회적 토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토론에 있어서 가장 큰 충돌이 생기는 부분은 사회가 공공재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하지만 동시에 평생 일해 온 은퇴자들이 존엄성을 지키면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목표 간에 종종 갈등이 생깁니다. 이를 풀기 위해서도 세대 간의 사회적 계약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화와 담론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은 교육을 필요로 하고, 나이 든 세대는 연금과 건강보험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경제, 기술, 관료주의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의 관계에 대한 도덕적 질문입니다. 앞으로 사회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미 사회에 기여를 해온 사람들 간 관계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세대 간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족의 유대감도 중요합니다.

 

:말씀하셨듯이 정부의 재정은 제한돼 있습니다.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에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절충할 수 있을까요?

 

샌델:쉬운 해답도, 공식도 없습니다. 당장의 정치적 갈등에서 한발 물러서야 할 것 같습니다.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다툼에서 벗어나고, 기술적인 정책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의 공공선에 대한 좀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최근 어려움이 심해진 이유 중 하나는 경제가 정치를 몰아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GDP와 경제 성장이 곧 삶의 질 향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실제로 이를 이루고 난 이후에 이것 외에 우리가 희망할 무언가는 없는가를 묻게 됐습니다. 경제와 GDP, 경제 효율 이상으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세대 간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가, 건강한 가족과 건강한 공동체란 무엇인가 등 고차원적인 문제가 다뤄져야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샌델:그래야 하지만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잘되고 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찾아오며 기업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동시에 민주주의 위기도 일어났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민들이 정치, 정치인, 정당을 보며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담론과 토론들이 알맹이가 빠져 있어 공허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정치가큰 문제들에 대해 다뤄주기를 원합니다. 가치관, 윤리, 정의, 공공성 등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토론이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토론하는 과정이 바로 시민 정신(civic spirit)을 키워주는 교육입니다. 나는 토론과 시민 정신이 없다면 우리가 말했던 문제들, 자본주의의 약점을 해결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사회에서 좀 더 많은 토론과 대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공공 영역의 대화 안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소비자로서가 아니라시민으로서 사회의 큰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조동성:CSV, 정부와 정치 시스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터:우선 많은 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봅시다. 한편에는 소외계층, 고통 받는 계층, 좋은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잘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일종의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저에겐 참 답답한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는 보통 민주당은 일반 시민들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생각하고 공화당은 기업과 부유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당이 일반 시민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들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버드대에서는 지금 미국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얘기했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계층 양극화, 정치적 담론 부족,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정치 등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미국은 보편적인 교육제도를 처음 시작한 국가입니다. 많은 대규모 대학들이 전국에 설립됐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혁신에 혁신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서 이뤄진 기본적인 사회적 투자의 결과입니다. 이런 투자의 결과 미국은 수십 년 동안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단기적, 대립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역사를 심각하게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 10년 정도를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우리의 정치 시스템이 샌델 교수가 말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공영역에서 더 많은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리더십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4∼5년간 저는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어느 곳에도 가지 못하는 길이다라는 얘기를 기업들에 해왔습니다. 내년 혹은 후년까진 괜찮을지 모르지만 이 길을 계속 가다보면 기업이 사회에 해줘야 할 기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재검토해야 합니다.

 

우리가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기업에 기부, 자선행위, 자원봉사를 호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그런 호소에 반응을 하고, 많은 돈을 기부하고, 좋은 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호소가 우리가 가는 길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CSV라는 주제에서 하고 싶은 말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훌륭한 자본가가 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기적, 점진적 방식으로 고용, 마케팅, 구매 프로세스 등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우리에게 좋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훼손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떻게 이를 성취하고 또 어떤 다른 메커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회적 토론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시민들은 정치가큰 문제들에 대해 다뤄주기를

원합니다. 가치관, 윤리, 정의, 공공성 등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토론이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토론하는 과정이 바로 시민 정신(civic spirit)

키워주는 교육입니다.

 

 

:지금까지 두 분이 공감한 4가지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첫째, ‘자본주의는 경제적 번영이란 측면에서는 아마도 가장 훌륭하고 마법과도 같은 메커니즘이다.’ 둘째, ‘대기업들의 부상은 세계 경제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문제점도 만들었다.’ 셋째, ‘CSV를 통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부분적인 문제 해결, 즉 기업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문제의 해결은 가능하다.’ 넷째, 아마도 가장 우울하고 비관적인 지적일 듯합니다. ‘정부가 나머지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입니다. 참 유감스러운 점입니다만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부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미국에서조차도 정부가 이런 일을 잘해주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샌델:기업, 정부 외에 또 다른 차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입니다. 가족과 이웃, 학교, 지역사회, 시민사회, 종교는 사적인 영역에만 속하는 게 아니라 공적인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시민 교육이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영역입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는 내용이 정부와 기업이 움직이는 모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보통 시민들이 원하는 바에 가장 늦게 응답하는 집단입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목적 있는 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놀란 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큰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들에겐 사회적 토론에 대한 열정과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그런 토론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법이나 규제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최고로 잘 돌아간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공동의 목적의식을 함양하는 것, 함께 이성적으로 토론하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것,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잘 듣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 이런 것들은 정부와 자본주의가 해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정치 시스템에 대해 좌절하는 이유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대화들이 두 가지뿐이기 때문입니다. 미시적이고 기술적이고 관료적인 문제만을 다루거나, 아니면 서로 고함치며 싸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긍정적으로 본 점은 큰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상호 존중하면서 대화에 임하려 하는 열정이었습니다. 교육기관, 사회운동단체, 종교단체, 가족과 지역주민단체가 바로 이런 시민으로서의 행동방식과 공동체 의식을 키워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공적 담론의 차원을 한층 높여주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줍니다. 우리는 물론 부유한 사회를 원하지만 그와 동시에 올바른 사회도 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훌륭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지 그 방법을 모두 함께 찾아가는 사회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동의합니다만 걱정도 됩니다. 시민사회 역사가 깊고 시민 교육수준이 높은 미국조차도 이른바분노한 사람들(angry people)’이 많은 상태입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시민과 단순히 분노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별할까요?

 

샌델:쉽지 않은 일입니다.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아까 우리가 자본주의의 마법에 대해 동의했지만 자본주의는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는 생산 활동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인류가 발명한 가장 훌륭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자꾸 우리는 자본주의와 경제가 우리의 최종 목적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공공영역에서의 토론에도 화를 내는 사람들, 자신의 도그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공공영역에서의 대화는 원래 지저분한 것입니다. 서로의 배경이 다르고 문화적, 국가적 배경이 다릅니다. 그런데 토론에는 아름답고 마법적인 점도 있습니다. 토론이 잘되면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해 협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최근 자본주의는 우리 공동체의 삶을 훼손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를 벌려놓고 있습니다. 소득 분배 정의 차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잘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분리되고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서 살고, 다른 곳에서 일하고, 다른 곳에서 쇼핑하며, 다른 학교로 애들을 보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상생활에서 서로를 만날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만나야 합니다. 시민으로 일상생활에서 서로를 마주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과 동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공통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시민사회의 토론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가장 효율적인 해법 중 하나는 클러스터를 이용해 CSV의 문제 해결 범위를 넓히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 아닐까요.

 

포터:기업은 공동체의 자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프라, 교육받은 인력, 숙련된 노동자, 좋은 물건을 공급해주는 협력업체 등입니다. 기업은 이런 공공의 인프라를 위해 공동으로 투자하려는 큰 인센티브를 갖고 있습니다. 모든 도시와 모든 공동체에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공의 자산이 있습니다. 과거의 미국 기업들은 공동자산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문화기관, 교육시설, 훈련시설 등입니다. 그런데 기업들이 점점 더 국제화하고 분산되면서 이런 공동체에 대한 공동 투자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모여서 함께 커뮤니티에 투자하면 모두의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모두가 비용과 혜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제가 하고 있는 연구가 있습니다. GDP가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GDP가 사회의 성공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GDP는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라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지표를 세계 제2차대전 직후 만들어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지표일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경제 생산량을 측정할 뿐이지 사회의 건강함을 측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경제적 번영이 곧 번영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인간개발지수(HDI) GDP가 측정하지 못하는 것들을 잡아내기 위한 지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건강과 교육도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한 사회가 정말로 성공하고 있는지를 더 잘 판단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이렇게 경제 이외의 것들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는 일에 관여해왔습니다. 사회적진보지수(Social Progress Index)라고 합니다. 아마도 내년에 이 포럼에서 더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의롭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기회입니다. 어느 시민이나 어떤 방법으로도, 어떤 결정으로도 자신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기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얘기해봐야 합니다. 아직은 여기에 대한 메커니즘이 없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양극단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거나 혹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미친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양극단의 집단이 가진 서로에 대한 나쁜 가정들이 우리가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보다 20분 정도 초과했습니다. 이런 세기의 토론은 1시간이 아니라 한 세기 내내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만일 이 자리에 있다면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훌륭한 군자 두 분이 조화와 중용을 이룬 것에 대단히 만족했을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자본주의는 정말 중요한 마법과 같은 도구이자 메커니즘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메커니즘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은 CSV를 통해서, 어떤 부분은 건강한 시민사회의 활동을 통해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남는 문제점은 아마도 교육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오늘 세기의 토론을 마감하겠습니다.

 

정리: 조진서기자 cjs@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