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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겸손•희생 혼돈의 시대, 이 세 가지가 나라를 살린다

한근태 | 160호 (201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변화가 빠르고 혼란스러운 시대다. 이런 시대에 생존해야 하는 현대인들이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늘을 품어라>의 저자 서진영 박사는 동양의 고전인 <논어> <주역>을 통해 현대인들이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3가지 주요 덕목을 소개했다. 먼저 예절에 힘써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면 훗날 그 화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 항상 예절로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한다. 예절의 출발은 효도다. 효도의 마음을 주변 사람까지 확대하는 게 바로 예절이다. 다음으로 겸손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자신을 낮춰야 한다. 20대에 병조판서에 오른 조선의 남이 장군은 겸손하지 못해 자신을 향하는 임금의 경계를 풀지 못했고 결국 역모를 꾀했다는 모함까지 받았다. 교만은 적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서 박사가 추천한 덕목은 바로 희생이다. 희생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김용환은 일제 강점기 때 노름으로 종택까지 날린 파락호다. 그런데 사실 그는 노름꾼이 아니었다. 자신을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하고 전 재산은 털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던 숨은 독립운동가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은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 번성하려면 현대인들은 예절과 겸손, 희생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참으로 혼란한 세상이다. 요즘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헷갈린다. 이렇게 살면서 미래에도 온전히 살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 대신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보지 말고 자신을 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오늘은 당신의 중심을 잡아줄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주역> 일부를 발췌해 통찰력 있는 내용을 담은 <하늘을 품어라>가 그것이다.

 

 

 

예절과 덕의 출발은 효도

인간이 혼자 살면 예의와 예절이고 필요 없다. 예절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더불어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예절은 교통법규와 같다. 빨간 신호등은 건너지 말라는 의미다. 만약 내가 급하다는 이유로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기적으로 해당 인사에게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주역에는 절() ()가 있다. ‘절이니 형()이라 고절(苦節)이면 불가정(不可貞)하니라는 내용이 있다. 법이나 예절을 편안하게 지키면형 하다는 뜻인데 여기서의 형은형통하다고 할 때의 형이다. ‘형 하다는 것은 아주 번성한다는 뜻이다. 예절을 지키면 편안하고 잘나갈 수 있다. 반대로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남에게 불쾌감을 준 사람은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자는 모든 예절과 덕의 출발은 효도라고 주장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마음을 주변으로 확대하는 게 바로 예절이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선생님, 친구, 동료 등으로 넓혀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예절이다. 예절은 감사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모두 행동으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행동으로 하자고 약속한 게 예절이다. 예절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공존의 지혜다.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빨리 탑승해서 빈자리에 앉고 싶지만 내리는 사람을 배려해서 그들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예절이다.

 

마음을 움직이는겸손의 힘

사람들은 인생에서 3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바로 초년에 일찍 출세하는 것과 중년에 상처하며 말년에 돈이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 초년 출세가 가장 위험하다. 별다른 고생 없이 출세하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한다. 잘난 체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어려움을 겪고 몰락한다. 조선시대 남이 장군이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로열패밀리였다.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딸 정선공주의 손자다. 남이 장군의 할아버지는 태종의 사위 의산군 남휘다. 게다가 약관의 나이에 무과에 장원 급제했다. 집안도 좋은데 머리까지 뛰어난 형국이다. 그는 1467년 함경도 이시애 난을 진압하러 나선다. 선봉으로 출정해 난을 평정하고 이후 여진족 정벌에서도 큰 공을 세운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스물여덟의 나이에 병조판서가 된다. 눈부신 출세의 길을 달린 것이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임금인 예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공신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평소 사람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겸손하지 못한 남이 장군이 표적이 된다. 남이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던 예종은 남이 장군을 겸사복으로 좌천시킨다. 문제는 좌천된 뒤에도 지나치게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몸을 낮추고 겸손의 자세로 군주의 경계를 풀어야 하는데 잘못된 행보를 한 것이다. 결국 남이의 최측근 유자광이 장군을 역모죄로 모함하고 남이는 목숨을 잃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주역에는 지산겸(地山謙)이란 겸괘(謙卦)가 있다. 땅 아래 산이 있는 형국이라는 뜻이다. 높은 산이 땅 아래 있으니 그게 바로 겸이다. 사람은 실력만으로 살 수 없다. 실력이 높아질수록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사면서 불행한 일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잘나가던 사람이 한 방에 거꾸러지는 이유는 대부분 교만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신이 뭐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은 비극을 부른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인 셈이다. 잘나갈수록 겸손해야 한다.

 

<논어>에서 맹지반의 고사는 겸손의 대표적인 사례다. 맹지반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다. 전투를 하다 후퇴해서 달아날 때 가장 위험한 곳은 무리의 맨 마지막이다. 마지막 부분의 사람들은 적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진격할 때와는 반대다. 맹지반이란 장수는 맨 뒤에서 적을 뿌리치면서 후퇴했다. 어려운 상황을 잘 막아낸 것이다. 그는 말에 채찍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늦게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말이 잘 달리지 못해 할 수 없이 뒤에 처진 것이다.” 그는 정말 겸손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성취하면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과를 거론하지 않으면 자신이 나서서 말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어떤 일을 잘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없는 법이다. 최고의 경지는 열심히 일하고 거기에 대해 노코멘트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이나 성과를 알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겸(勞謙)이다. 노겸은 힘쓸 노()에 겸손할 겸()이다. 부지런히 노력해 큰일을 성취했지만 겸손하다는 뜻이다. 만일 남이 장군이 노겸의 뜻을 알았다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퇴계 이황도 겸양의 미덕을 잘 실천한 사람이다. 퇴계의 묘와 퇴계의 맏며느리 묘소는 불과 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묘가 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일까? 사연이 있다. 퇴계는 1570 128일 숨을 거뒀고 며느리 봉화 금 씨는 이듬해 1571 2월 눈을 감았다. 퇴계 사후 두 달 만의 일이다. 며느리의 유언으로 묘를 이렇게 가까이 쓴 것이다. 당시는 퇴계 집안보다 금 씨 집안의 지체가 높았다. 퇴계가 문과에 급제해 예문관을 지냈지만 선대에서는 내세울 만한 벼슬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퇴계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금 씨 문중은 퇴계의 가문이 눈에 차지 않았다. 당연히 금 씨 문중에서는 퇴계를 푸대접했고 심지어 그가 앉았던 마룻바닥을 물로 말끔히 씻어내고 대패로 문지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퇴계의 집안사람들이 분개했다. 퇴계는 흥분한 집안 사람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사돈댁에서 무슨 말을 했든 우리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가문의 명예란 문중에서 떠든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헐뜯는다고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우리도 예를 갖추지 않으면 정말 형편없는 가문이 되는 것이다. 귀한 집안에서 며느리가 왔는데 며느리 얼굴을 봐서라도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퇴계는 사건을 불문에 부치고 며느리의 건강까지 직접 챙겼다. 몸이 약한 며느리를 위해 약을 짓고 세심하게 보살폈다. 수시로 편지를 써서 며느리의 건강을 묻기도 했다. 시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은 봉화 금 씨는 숨을 거두며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시아버님 살아 계실 적에 여러 가지로 부족해 극진히 모시지 못했다. 죽어서라도 다시 아버님을 정성껏 모시고 싶으니 내가 죽거든 반드시 아버님 묘소 가까이에 묻어주도록 하거라핵심은 이렇다. 퇴계는 가문의 지체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로 사돈에게 모욕을 당했으나 오히려 며느리를 감쌌다. 이에 감동한 며느리는 죽어서도 시아버님을 모시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게 겸손의 힘이다. 만약 퇴계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구박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희생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휴가철이면 엄청난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이런 풍요는 누구 때문일까? 우리가 잘나서 가능한 것일까?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들이 게을러 고통을 받는 것일까? 참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주제다.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현재의 풍요가 선배의 피와 땀이 이뤄낸 결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잘 살고 있다. 희생은 낯선 단어다. 하지만 희생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 희생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경북 안동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전해진다.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 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 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을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아배는 안 오시고,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보낸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느 노름판에 날리셨나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집안 어른 의논 끝에 농 살 돈은 못 구하고,

큰 어매 쓰던 헌 농, 신행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못하였구나

 

시집살이 삼 년 동안 시댁식구 우환 있고

손세 귀한 무남독녀 노심초사 하는 중에

삼 년 동안 태기 없자 끝내는

오동나무 헌 농에 귀신 붙어 왔다 하여

강변 모래 밭에 신행 농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타는 간장 말로서 어이하랴

 

노래는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애가 끓는 새색시의 사연이다. 주인공은 김용환이고 그는 유명한 학봉 김성일의 장손이다. 학봉 집안은 대대로 의병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김용환의 무남독녀 외동딸 김후웅 여사다. 학봉 김성일은 임진년 10월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선조실록>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김성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11대 후손이 김흥락인데 구한말 일본의 침탈에 항거했다. 사촌동생 김회락이 의병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896 612일 왜병들이 의병을 찾으러 학봉 종가로 쳐들어왔다. 이들은 다락에 숨어 있던 김회락을 찾아내고 종손 김홍락 등을 무릎을 꿇게 한다. 이때 그 광경을 생생하게 보고 있던 열 살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김용환이다. 존경받던 큰 어른이 왜병에게 무릎을 꿇는 기막힌 광경을 보고 그는우리 할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수없이 애걸한다. 김회락은내가 죽거든 자식들에게 원수를 갚으라 가르치라고 말하며 죽는다. 처절한 마감이다. 이 사건은 이 지역 유림과 학봉 문중 사람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치욕이자 한이 됐다. 손자 김용환에게도 기억에 남는 뼈저린 사건이다. 그런데 그가 파락호가 됐다. 학봉 종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답 13만 평과 종택 등 현재 시가로 280억 원이 넘는 돈을 노름판에서 날렸다. 그는 일제 강점기 내내 노름꾼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실은 노름판에서 돈을 날린 게 아니다. 가산을 탕진하는 것처럼 위장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만든 것이다. 그는 일제 감시를 벗어나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노름꾼으로 위장했다. 얼마나 완벽했는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1946년 죽을 때까지 이런 사실을 함구했다. 최측근 인사인 하중환이 죽기 전 아들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조언했지만 그는안 되네. 새삼 그럴 필요가 없네. 이제는 독립도 됐고 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선비의 후손으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일 것, 말하지 말게, 끝까지 비밀로 하게라고 말했다. 하중환은 삼년상을 끝내는 마지막 날 제문을 지어 그의 독립운동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 50주년이 되던 1995년 김용환 선생은 건국훈장을 추서 받는다. 그러자 딸은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란 제목의 시를 짓는다.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 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 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농 사오라 보낸 농 값

그것마저 바쳤구나

 

을유년 팔일오에 광복을 맞이하여

삼천리 금수강산 내 나라를 찾았어도

우리 아배 지난 이력 자랑 한 번 아니하매

영문을 알지 못해 팔십 평생 살다 보니

이런 영광 보는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집이 어떤 집인데

우리 선조 학봉 할배 의병대장 서산 할배

왜놈이면 원수인데

왜놈에게 나라 뺏겨 우리나라 되찾는데

천석인들 아까우랴 만석인들 아까우랴

높은 뜻 알고 나면 어느 누가 원망하랴

자랑스런 우리 아배 학봉 종손 참봉 나으리

 

대단한 반전이다. 평생 파락호라는 소리를 들었던 김용환이 애국지사로 바뀐 것이다. 평생 그를 원망하던 딸이 아버지를 찬양하는 시를 지은 것이다. 이게 바로 희생정신이다. 나라를 위해 개인의 인생을 온전히 바친 희생정신이다. 희생정신을 표상하는 괘가 바로 박괘(剝卦). 산지박(山地剝)이다. 산 아래 땅이 있다. 박괘는 벗겨내는 형국이다. 욕심을 채우면 불리하니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를 희생하고 버려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박괘다. 줄기와 잎은 자신을 희생해서 꽃을 피우고 꽃은 열매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부모들의 희생으로 자식을 키우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이 그렇다. 이 세상에 메시아는 없다. 어느 날 멋진 정치인이 나타나 썩어빠진 세상을 구해주는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반대다. 우리 자신이 모든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 또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자신밖에 없다. 잃어버린 예의를 되찾고 잘나갈수록 겸손하며 후대를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 한근태 한근태 | - (현)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 교수
    - 대우자동차 이사 IBS 컨설팅 그룹 상무
    -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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