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Article at a Glance –인문학
1380년 전라도 지리산 부근에서 벌어진 황산대첩은 왜구 토벌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전투였다. 백병력이 떨어졌던 조선군과 달리 왜구는 동북아 최고의 전투력을 지녔다. 당시 일본군의 돌격을 이겨내려면 병력에서 확고한 우위를 지니거나 ‘뭉쳐’ 있는 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군대를 반으로 나눴다. 예상되는 왜구 특공대의 공격에 맞서 작지만 확실한 승리부터 보여줘야 실제 주력부대와의 싸움에서 단결해 승리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판단은 적중했다. 특공대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경험한 후 고려군은 하나로 똘똘 뭉쳐 맹렬하게 싸웠다. 학습의 결과, 고려군은 왜구와의 싸움에서 필연적으로 따를 충격과 공포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단결력을 바탕으로 전투력을 신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 |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1380년 남원에서 지리산 운봉으로 들어가는 고갯길로 군대가 행진하고 있었다. 이 군대는 3개의 다른 집단으로 구성돼 있었다. 고려의 정규군, 여진족 부대, 고려민과 여진족의 혼성 혹은 혼혈이 섞여 있는 이성계의 친군이었다. 병사들은 꽤나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이성계의 군대는 산전수전 다 겪은 군대였고 베테랑 병사들도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고참병들에겐 언제나 예감이라는 게 있다. 왜구는 늘 부담스런 상대였지만 이번 전투는 특별히 어려울 것 같았다. 실제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황산전투는 이성계의 평생에 가장 위험한 전투였다. 이성계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최고의 영예와 무용담을 안겨준 전투가 됐다.
병가의 상식을 깨다
고개를 넘자 평평한 고원 산지가 나왔다. 운봉에서 인월까지는 지리산 중턱이라는 위치가 믿기지 않는 나지막한 구릉이 놓여 있는 아담한 평원이다. 인월로 전진하는 데에는 2개의 길이 있는데 하나는 험하고 하나는 평이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성계는 병가의 상식을 깨고 군대를 둘로 나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아군이 왜구보다 더 적었다고 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건 더 끔찍한 행동이다. 이 기사는 분명히 과장, 아니 축소 보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성계의 친군 병력만 따지면 왜구보다 적었을 수 있고, 혹은 어느 전투에서 막 조우했을 그 순간에 이성계의 병력이 더 적었을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을 전체인 것처럼 묘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좌우간 이성계는 강적 앞에서 병력을 둘로 나누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한다. 하지만 명장은 상식을 따르지 않는 법이다. 상식을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명장이다. 상식이란 측량에 사용하는 측량 막대와 같다. 상식이라는 잣대를 이용해서 상황을 판단하고 전술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나 상식을 이렇게 이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극히 드물다.
차분히 따져보자. 병력을 나누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적 앞에서 힘을 분산해 아군의 전력을 약화시키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다음의 경우라면 어떨까? 1번, 병력을 모아 놓으면 전투력이 더 떨어진다. 2번, 적은 반격 의지가 전혀 없고 병력을 분산시켜 협공하면 더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 3번, 힘을 모아도 아군의 전투력은 적보다 절대 열세다. 이 세 가지 경우라면 병력을 분산시키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이성계의 경우는 1번이었다.
당시 고려군의 전투력은 이성계의 친군에 비해 확연히 열세에 있었다. 이때도 고려군 지휘관들은 싸우지 말고 장기 포위로 적을 고사시키자고 주장했는데 이성계가 우겨서 적을 찾아 사지로 들어온 것이었다.
사실 이곳은 사지였다. 이곳에 주둔한 왜구는 진포해전에서 격멸당한 왜구의 육상 공격부대였다. 이들은 왜구의 고려 침공 사상 최대 규모의 군대로 500척(혹은 300척이라고 함)의 대선단을 이끌고 고려로 침공했다. 그러나 육상부대가 약탈하러 내려간 사이에 최무선이 만든 화포로 무장한 고려 함대가 몰려와 왜구 선단을 불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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