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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Scenario

사물인터넷 선진국 한국 … 도로엔 스마트 카, 집에선 냉장고가 말을 건다

편석준 | 159호 (2014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혁신

2024년의 어느 흐린 여름날. 스마트가구를 생산하는 회사의 해외마케팅 담당자인 민호는 스웨덴 이케아와의 협상을 마치고 귀국한다. 한국은 사물인터넷 선진국이다. SNS 기능은 주변에 우산을 함께 쓸 사람을 찾아 줄 정도로 발전했으며 침대, 책상 등의 가구와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도 서로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다만 규제와 인프라 미비 등으로 인해 자동차만이 완전한 무인 주행을 하지 못할 뿐이다. 이불과 잠옷, 변기에도 센서가 달려 있다. 모든 사물인터넷 제품들이 동시에 동일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호간 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발전한 것이 뒤처진 것들을 하나씩 붙잡고 끌어온다.

 

편집자주

SF 작가들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기술과 소비/사회 현상을 과학자나 사회학자보다도 먼저 예측하는 능력을 보여주곤 합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서는 단편소설의 형태를 빌려 사물인터넷 기술이 활발하게 사용될 2024년 서울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SF의 통찰력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사물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날수록 업무의 효율성과 인간 일상의 최적화는 증대한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은 기술적 정의와 함께 비즈니스적 정의도 함께 필요하다. 가트너는 CIO들에게 향후 10년 내 IT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벤더(vendor)가 누가 될지 물었다. 32% 1위를 차지한 벤더는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벤더였다. 2위가 28%를 차지한 구글, 3위가 20%인 애플, 4위가 15%인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이코노미스트>지가 2013년에사물인터넷에 대한 현장의 인식이란 제목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향후 3년간 사물인터넷을 활용할 것이라 대답한 기업은 96%에 달했지만 실제 투자한 기업은 30%가량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아직 사물인터넷 개발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업들은 사물인터넷의 비즈니스적 관점을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아래의 단편소설이 관점 전환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입국

착륙할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손목에 찬 밴드의 디스플레이에스킨 이어. 신발이란 글자가 떴다. 민호는 벗어놓은 양복 앞주머니에서 귓볼에 피부 형태로 부착하는 스킨 이어(skin ear)를 꺼냈다. 민호는 서서히 지혜를 갖추기 시작하는 사물들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 스웨덴에서 비행기를 탈 때부터 녀석들을 모두 벗어놓은 상태였다. 다만 너무 피곤해서 밴드를 벗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제, 어차피 일을 시작해야 했다. 스킨 이어를 붙이니 신발이 다급하게 말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요. 제 몸이 다 젖을 것 같아요. 내일 일어나시면 바로 저를 맡겨주세요. 제가 세탁소에 연락해놓을게요.”

 

비행기 안에 사람들이 많아 민호는 미미를 꺼내 문자메시지로 신발에게 답했다. 미미는 민호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이름이다. 들고 다닐 수 있으면서 쉽게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는 용도로 쓰기엔 아직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 2020년부터 음성인식 기술은 대중화됐지만 혼자 있거나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만 주로 쓰였다. 아직 남들 앞에서 컴퓨터 운영체계와 대화하는 것을 사람들은 어색해했다.

 

‘아니, 세탁소에 연락하지마. 그리고 내가 이런 사소한 일은 미미에게 말하라고 했잖아.’

 

신발은 미미에게 슬픈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텍스트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제게 너무 소홀하다고요. 아직 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잖아요.’

 

사물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도 표현은 인간에게 대화하는 것과 같다. 사물들 간의 대화도 결국 인간이 보게 되기 때문이다. 민호는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를 나오며 일부러 쿵쿵 걸었다. 신발에게 나름의 화풀이를 한 것이지만 오히려 녀석은 민호의 운동량이 늘었다고 축하 메시지를 건넬 터였다.

 

회사 후배가 기다리고 있는 공항 주차장까지 걸어가야 했으나 소나기처럼 문득 시작된 비는 장마처럼 길어질 낌새였다. 택시를 타고 갈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민호는 미미를 꺼내 공유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켰다. 아직 공항 청사 실내였지만 실내 GPS 기술로 민호의 위치가 정확하게 확인됐다. 민호는검색, 우산이라고 말했다. 이런 보편적인 단어는 남들에게 들리도록 말해도 겸연쩍지 않았다.

 

미미의 얼굴에 ‘5m/큰 우산/30대 남성/주차장까지 이동/공짜라고 떴다. 그 밑에도 우산 공유가 가능하다는 여러 다른 조건의 메시지가 떴지만 민호는 그 조건에공유 요청버튼을 눌렀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주차장 입구까지 걸어갔다. 턱수염이 부드럽게 난 남자는 최근에 사물인터넷 면도기를 새로 구입했는데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의 상처까지 알려줘서 매우 좋다고 말했다.

 

민호는 친절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는 우산을 씌워줌으로써선행 포인트를 쌓았을 것이고 이는 절세와 금융상품 할인에 작으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SNS에서도 그의 훌륭한 성품은 당연히 알려질 것이다. 그의 SNS에서 선행 포인트가 자동 업데이트되게 해놓았을 테니까.

 

 

 

민호가 주차장 입구에서 후배와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찰관이 거칠어 보이는 한 사내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경찰관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건익셉셔널 판옵티콘(Exceptional Panopticon)’이라 불리는 감시용 글라스였다. 이는 자동으로 주변의 강력 전과자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줬다. 성범죄나 특수강도죄를 저지른 사람에겐 e-skin이란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강제로 부착됐다. 복호화(암호를 푸는 과정)를 하지 않고 임의로 e-skin을 떼어내면 e-skin의 보안물질이 녹으며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렇게 되면 센서가 몸에 내장돼 평생 추적을 받아야 했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정부의 시민에 대한 정보통제는 계속 이슈가 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범죄나 사고 발생률이 확실히 줄긴 했다.

 

경찰관이 남자를 검거하는 모습을 지켜본 민호와 후배는 자동차에 올랐다. 민호는 조수석에 앉았다. 민호는 다시 미미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우산을 씌워준 친절한 턱수염 사내에 대한 평가로대만족에 터치했다. 후배가 게이트까지 우산을 가져왔다면 그들의 출발은 지금보다 10분은 늦었을 것이다.

 

자동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와 공항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창 밖으로 인천대교와 멀리 송도 신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을 보는 민호는 곧 우울해졌다. 일 년 전,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서 효정을 처음 만났다. 출국장 옆에 서 있던 그녀는 민호가 우산을 찾는 것을 보고 먼저 그에게같이 써요라고 말했다.

 

회의

서울에 들어서기 전까지 후배의 스마트카는 반자동으로 움직였다. 서울시내에는 아직 VTI(Vehicle to Infra)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필요한 인프라를 설치할 예산이 부족했고 시민들의 스마트카 구매율도 아직 30%대에 머물러 있었다. 정부에서는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위에서만 VTI 시스템을 시범운영하고 있었다. 대외 홍보라는 목적도 있었다. 정책적으로 이 도로를 달리는 공항버스와 공항택시들은 모두 스마트카로 만들었다. 운전자는 길 위의 측정 카메라와 길가의 센서들이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단거리와 최적의 속도, 차선 바꿈을 안내 받았다. 사고율 0%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공항고속도로에서 올림픽대로로 빠져나가는 램프가 나왔다. 스마트카는 저절로 오른쪽 방향 지시등을 켰다. 하지만 자동 주행 상태에 놓였을 때처럼 스스로 오른쪽으로 차선 바꿈까지 하지는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후배가 스티어링 휠을 돌려 램프로 빠져나갔다. 한국에서 아직 자동 운행 설정은 불법이었으므로 자동차 제조사에서 출고할 때부터 자동 세팅은 못하게 막혀 있었다.

 

무인자동차를 구매한 소수를 위해서 도로교통 관련 법제를 완전히 개편할 수도 없었고 아직은 사람이 운전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아이가 있는 부모들에게 이런 경향이 강했다. 또 민호의 후배처럼 드라이빙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인 자동 운행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인자동차가 편리하다 해도 모두가 강력한 구매 욕구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무인 자동차 운행을 위한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무인자동차 세상이 되기 위해선 스마트카와 스마트카끼리, 스마트카와 교통 인프라끼리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했다. 또 통신보안 기술은 지구에서 그 누구도 풀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암호화돼야 했다. 해킹으로 남의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끔찍한 사고가 날 것이 명백했다. 정부와 지자체로서는 그만큼 큰돈이 들어갈 사업이었다. 2010년대부터도 무인자동차가 있긴 했지만 인프라 부족으로 자동차 위에 온갖 장비와 센서를 부착해야 했기 때문에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래도 스마트카를 만드는 IT 회사들은 순식간에 변화될 그날을 대비해 무인화 설정이 불가한 스마트카지만 보편화에 힘쓰고 있었다. 여름에 꽃들과 나무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듯이 무인자동차 시대 역시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그 방향으로 전환될 거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전면 자동 주행이 가능할 본격적 무인자동차 시대는 무인자동차 보급률이 80%를 넘을 2040년쯤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민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자동차는 어느덧 구로디지털단지 인근에 있는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후배가 민호를 공항까지 태우러 온 이유는 잠시 뒤 9시부터 열릴 회의 때문이었다. 민호는 가구를 만드는 IT 회사에서 해외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었다. 수출 계약 건 때문에 스웨덴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회사는 30년 전 창립될 때만 해도 인터넷 커머스 서비스를 하는 일반적인 중견 IT 회사였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사물인터넷 비즈니스에 집중 투자하며 근원적인 변신을 꾀했다. 가구라는 아이템에도 그때부터 투자하게 됐다.

 

민호가 회사에 막 입사했던 10여 년 전, 회사는 모바일 메시지(mobile messaging) 사업을 하는 대형 IT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현재 수준 안에서 변신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온라인 커머스는 결국 광고사업이었다. 민호의 회사보다 빅데이터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한 다른 검색 광고기업에 밀려 버리고 말았다. 민호의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했던 모바일 메시지 업체도 금융업과 보험업에 진출하는 등 변신을 꾀했지만 산업 자체의 변화 때문에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사물인터넷의 확산으로 금융업에는 생체 인식을 활용한 결제 기술이 보편화됐다. 보험사에서는 데이터 과학자와 보험계리사들의 역할만 중요해졌을 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및 영업채널이 굳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회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였다.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데려온 엔지니어 출신 CEO는 민호가 신입직원으로 막 입사한 회사를 뿌리부터 아예 바꾸어놓았다. 그는 가구 산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10년 안에 IT 회사가 되지 못한 가구회사는 모두 멸종할 것이라는 믿기지 않은 예언까지 했다. 새로운 CEO는 회사의 본질이었던 커머스와 포털 서비스를 모두 지우고 콘텐츠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가구라는 디바이스에 맞는 모바일 및 사물인터넷 콘텐츠와 유저 인터페이스(UI) 기술이었다.

 

CEO가 꼽은 3대 핵심 가구는 의자, 침대, 소파였다. 일단 그는 브랜드는 유명하지 않지만 가구 제작에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 두 곳을 인수했다. 그 다음 행보는 각각 1000개씩의 가구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가로 소비자들로부터 1년 동안 가구 활용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물론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카메라와 녹음기는 부착할 수 없었지만 각종 센서를 이용했다. 가령 이용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대별 데이터와 침대에서의 움직임, 침대에서의 활동내역을 수집할 수 있는 센서들을 내장했다.

 

가구업계에 진출한 첫 5년 동안은 성과가 거의 없었지만 CEO가 고집스럽게 스마트 가구 비즈니스에 투자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동안 콘텐츠 제작 분야가 캐시카우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5년 뒤부터는 가구사업에서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집된 빅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기능과 형태를 갖춘 가구를 출시했다. 일부 업체들처럼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택하진 않았다. 또 고객들이 직접 온라인이나 애플리케이션에서 조립 설계와 디자인을 하게끔 하는 형태도 아니었다. 고객은 늘 게으르다는 걸 CEO는 알고 있었다. 고객도 모르는 고객의 니즈에 맞는 대중형스마트 가구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제품군별 모델 수를 10개 정도로 한정했다. 이제가구는 과학이 아니라가구는 데이터 과학이 됐다. 민호의 회사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의류업계나 주방용품을 만드는 회사들도 서둘러 IT 회사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민호는 사물인터넷의 핵심이 ‘어디에 센서를 설치할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좋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에 비하면 데이터를 수집한 뒤 어떤 모델로 분석할 것인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민호의 이번 스웨덴 출장 건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스웨덴에 있는 세계적인 가구회사 이케아가 민호 회사의 가구 인터페이스 솔루션을 구매하고 싶다는 공식 메일을 보낸 것은 3개월 전이었다. 전통적인 생산기획과 유통체계를 고집하던 그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점점 줄어가고 있었고 민호의 회사가 만드는 스마트 가구가 아시아 시장을 석권해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케아 역시 경쟁사들보다 반보 빠른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 있었다. 아직은 민호의 회사가 만드는 것과 같은 스마트 가구가 북미나 유럽권 시장에서 보편화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케아에서 막상 소비자 테스트를 해보니 스웨덴 사람들의 가구 이용 행태와 생활습관이 아시아인들과는 너무도 달라 같은 제품을 팔 수 없을 정도였다. 기술적인 표준화 문제가 아니라 수집 분석해야 할 데이터 타깃 설정이 잘못된 것이다.

 

이는 모바일 헬스케어 비즈니스가 5년 전에 부딪힌 표준화의 난관과 똑같았다. 복지 예산 절감 문제 때문에 정부의 주도로 이뤄진 만성질환용 헬스케어도 국가별로, 지역별로 문제가 되는 만성질환의 종류가 달랐다. 데이터 수집 방법부터 달라져야 했다. 민호는 사물인터넷의 핵심이어디에 센서를 설치할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좋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에 비하면 데이터를 수집한 뒤 어떤 모델로 분석할 것인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분석이 완벽히 끝나는 것과 시장이 환영하는 서비스를 내놓은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나라마다 다른 문화와 생활 행태에 맞게 의미 있는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회의는 우울하게 끝났다. 이미 스웨덴을 떠나기 전 계약 체결 불발을 포함한 전체적인 보고서는 상부에 전달해 놓았다. 회의에선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지만 누구도 쉽게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다. 서둘러 공항에서 달려와 참석한 회의는 별다른 진전 없이 끝났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후배가 민호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선배, 그래도 고생하셨어요. 회장님이 반 년 전에 그 변기만 사지 않았어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농담이라 생각했겠지만 후배는 진지하게 한 얘기였다. CEO는 반 년 전쯤 미국으로 돌아갔다. 변기가 당뇨병이나 신장 질환을 분석해주는 사물인터넷 기기가 된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었다. CEO는 뒤늦게 그런 제품을 구입한 축에 속했다. 그런데 구입한 바로 다음날 이 스마트 변기는 그가 신장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미 병세가 심각하게 진행된 상황이었다. 그는 선두적인 사물인터넷 기업의 수장이었고 가구 사업 다음에는 나노로봇 시장에 뛰어들 준비까지 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건강은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 후 세 달간 CEO 자리는 공석이었다. 적당한 후보자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직업의 양극화를 불러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과 소수의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동시에 늘어났다. 지식과 기술을 어느 정도 학습하면 할 수 있는 중간관리자급의 일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의사결정을 전문으로 하는 CEO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해졌다. 대부분의 기술 기업들은 이제 CEO CTO(최고기술관리자)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물론 다른 임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CEO/CTO의 보조자 역할이었다.

 

기업 조직의 형태가 불과 십 년 만에 많이 달라진 것이다. 사업이 많아질수록 부서가 늘어나고 중간관리자가 늘어나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CEO의 의사결정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소수의 임원과 그들의 의사결정을 돕는 데이터 과학자, 산업심리학자, 마케터들의 중요성은 커졌다. 또 지난 10년간 중간관리자층은 얇아졌지만 오히려 고객센터 직원의 수는 늘었다. 사회와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계속 일을 해야 했다. 기술이 발전하면 직업은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일자리까지 사라진다면 사회가 존속할 수 없었다.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와 규제를 통해 기업이 많은 일자리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중간관리자가 필요 없어진 기업으로서는 저임금 노동이 필요한 고객센터에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을 고용했다.

 

카페

민호는 일찍 퇴근했다. 긴 비행으로 피곤했지만 술 한 잔이 생각났다. 주머니에서 미미를 꺼내 잠깐 들여다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민호의 기분까지는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표정과 제스처를 인지해 반응하는 기술은 오래 전 지능형 CCTV 때부터 연구돼오던 기술이다. 지능형 CCTV 기술의 첫 번째 단계는 특정인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있는 사람들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카메라에 비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포착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표정과 제스처를 인지한다 해도 아직 인간의 감정까지 분석하는 일은 요원했다. 흐느낀다거나 분노하는 것처럼 누가 봐도 확실한 감정적 이벤트가 있다면 소프트웨어가 반응할 수 있겠지만 슬픔이나 연민, 자학, 동정, 호감 같은 인간의 미묘한 감정은 외양적인 데이터 수집 정도로는 아직 분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물론 인간의 심박 수 변화(혈류 속도 변화), 체온 변화, 눈 깜빡임, 얼굴 찡그림 등을 통한 인간 감정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알고리즘 문제로 반응 속도가 느리거나 정확한 분석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 3년 내에 호르몬 분비의 변화 분석을 통해 사전적으로 리액션하는 소프트웨어가 출시된다는 소문도 있지만 나와봐야 알 일이었다. 거대 IT 기업들이 피트니스 정보를 넘어 진단 정보와 생체 데이터까지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아직 실제 진단과 치료에 쓰이지 못하고 있었다.

 

기계가 인간의 감정 자체를 감지하지는 못한다 해도 간접적인 정보를 통해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예를 들어 오늘 민호의 스케줄이 효정과 만나기로 돼 있었다가 취소됐다면 미미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을 것이다. 민호가 자주 만나던 친구들의 SNS를 검색해 가까이 있거나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 한가한 친구를 검색해 알려주거나 위로가 될 만한 좋은 술집을 찾아줬을 것이다.

 

민호는 술 대신 달콤한 케이크와 쌉싸름한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졌다. 2호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 인근 집에 다 왔을 무렵 효정과 자주 가던 카페가 보였다. 아직 이른 오후 시간이라 카페 안은 한적했다. 카페 테이블은 직접 메뉴를 고를 수 있는 터치식 디스플레이였다. 하지만 옆에는 전통 방식 그대로의 종이 메뉴판도 놓여 있었다. 민호는 터치스크린 닫음 버튼을 누르고 종이 메뉴판을 펼쳤다. 굳이 바뀔 필요가 없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현재 터치스크린을 이용한주문/지불(order & payment)’ 기술은 100평짜리 매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3분의 2 정도로 줄일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그 니즈는 크지 않았다. 요식업은 서비스 업종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사람으로부터 서비스 받는 것을 여전히 좋아했다. 민호는 종업원을 불러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다. 하지만 케이크에는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카페 의자는 민호의 회사가 제작하는 스마트 의자였다. 민호가 혼자 왔다는 것, 또 천천히 움직인다는 것을 감지한 의자는 저절로 편안하게 기댈 수 있도록 등받이를 조금 뒤로 젖히고 팔걸이를 올려주었다. 그런 상태로 커피 한 모금을 마시자 곧 효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 년 전 어느 비 내리는 날, 공항에서 우산을 같이 쓰며 알게 된 효정은 의대를 졸업한 뒤 의류회사에 들어갔다. 웨어러블 인터넷 기술이 적용되는 스마트 의류 시장은 몇 개의 도전적인 기업이 일찍부터 투자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었고 이들은 침구류 쪽에도 눈을 돌리고 있었다. 효정은 베개와 이불을 만드는 일을 했다. 침대에 누우면 현재 시점에 산출된 생체정보와 과거의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베개는 강도와 높이를 조절하고 이불은 온도를 조절했다.

 

효정이 만드는 이불은 음성도 인식했다. 인간은 자기 전에 누웠을 때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마트 이불은 감탄사 정도의 말만 해도 성문 분석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했다. 천장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적절한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베개에서 직접 음악이 나오거나 근처의 스피커에 지시를 할 수도 있었다. 민호의 집에는 효정이 선물한 스마트 베개와 이불의 샘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곁에 그녀는 없었다.

 

민호는 한 시간가량 카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막 일어나려고 할 때 고향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에게 스웨던 출장 사실을 알린 적도, 스케줄을 공유한 적도 없지만 어머니는 민호가 스웨덴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호가 찍은 사진은 어머니가 다시 클라우드를 통해 내려 받을 필요도 없이 어머니의 스마트폰에서 바로 볼 수 있었다. 민호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해외에 있을 때는나우 셰어기능을 설정해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민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에 효정이는 안 만나니?”

 

결혼 적령기를 지난 민호가 걱정되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효정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효정은 가족끼리 묶은 헬스 SNS 그룹에서 탈퇴했다. 어머니도 그걸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민호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가급적이면 피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지금은 피우고 싶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손목에 찬 밴드가경고를 띄우고 미미가 급하기 울리기 시작했다. 민호가 이번에 담배를 피우면서 각종 질병 발병률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그로 인해서 노후 예상 건강 비용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다시 그로 인해 지금부터 얼만큼의 일을 더 해야 하고 그 때문에 휴식과 취미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한눈에 들어오는 인포그래픽으로 보여줬다.

 

민호는 이를 애써 무시하며 불을 붙였다. 열 센서가 부착된 담배였다. 센서가 부착된 담배는 오히려 값이 쌌다. 대량 생산으로 인해 담배에 들어가는 열 센서의 가격은 사탕 한 알의 가격보다 낮기도 했지만, 또 담배에 센서를 담는 건 정부의 정책이기도 했다. 민호는 혀가 꺼끌꺼끌해졌음을 느꼈다. 민호는 혀를 내밀고 미미의 눈으로 촬영했다. 그리고병원 전송이라고 말했다. 내일쯤 다섯 줄 이내의 소견서가 도착할 것이다. 물론 의료진이 직접 촬영하지 않은 사진은 진단용으로 쓰일 수는 없었지만 환자가 증상을 말하며 의료진에게 참고용으로 제출할 수는 있었다.

 

민호는 테이블의 지문 센서를 통해 결제를 마치고 일어났다. 지문 결제 방식은 순식간에 보편화됐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화폐는 신용카드가 도입된 때부터 이미 컴퓨터 전산상에서만 떠도는 숫자였다. 지문 취득은 이제 센서가 대신했다. 인식이 불가능한 지문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지문 인식이 잘 안 되는 사람은 간단한 시술을 통해 결제를 위한 인공 지문을 생성할 수 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모든 결제에 지문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병원이나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생체 결제 이외의 방법, 즉 전통적인 화폐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생체 데이터와 결제 데이터가 하나의 키 값으로 제공되면 보안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귀가

일주일 만에 돌아온 집이다. 현관문이 닫히자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조용히 읊조리는 노랫말은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가수 김창완의 <너의 의미>였다. 뜻밖의 흡연, 분명하게 느껴지는 말 떨림, 긴 침묵의 시간 등의 명백한 감정 이벤트가 있으면 미미는 이에 맞게 집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민호는 거울을 바라봤다. 일주일의 출장 동안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연인이 떠난 슬픔이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민호의 볼에 눈물이 흘렀을 때, 거울은 찰칵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런 모습의 당신, 처음입니다. 예쁜 효정에게 바로 보낼까요?”

 

효정은 민호의 다른 모습이 궁금하다며 스마트 거울에 필터 촬영과 전송 기능을 설정해뒀다. 미미와는 달리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하는 거울의 목소리가 더욱 서글프게 들렸다. 스마트 거울 제품들은 표정 인식 정도는 갖고 있었지만 다른 사물들과의 체계적인 협력 기능이나 감정 인지 기능은 아직 한참 부족했다. 모든 사물인터넷들이 동시에 동일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발전한 것이 뒤처진 것들을 하나씩 붙잡고 끌어올 것이다.

 

음성인식 기술은 집에 혼자 있을 때 빛을 발했다. 민호가산소라고 말하자 스마트 화분은 비축해놓았던 산소를 더 뿜어냈고무지개라고 말하자 화분 옆의 사물인터넷 분무기가 물을 뿜고 형광등은 가리개를 조절하며 적당한 빛을 보내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실내 에코 테크놀로지는 대부분의 현대인이 앓고 있는 정서와 스트레스 장애 치유에 큰 도움이 되기에 인기가 많은 서비스였다.

 

어느덧 날은 어두워졌다. 민호는 효정과 뉴욕 여행 중에 찍었던 야경 실사 사진을 창문에 띄우고 냉장고로 갔다. 냉장고 디스플레이는 민호가 다가오자 저절로 켜졌다. 냉장고는 얼음을 얼린 지 일주일째가 돼 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고, 싹이 돋은 감자는 이미 음식쓰레기통에 버렸음을 보고했다. 바닥 아래의 관을 통해 냉장고는 쓰레기통으로 연결돼 있었다. 그리고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문해야 할 상품 목록과 할인가격을 띄어줬다. 민호는 그런 자질구레한 것은 다음에 결정하고 싶었다. 와인을 꺼내고 찬장에서 잔을 꺼내려고 했을 때 찬장 이마에 붙은 디스플레이는 머뭇거리며 말을 건네왔다.

 

“사기 그릇에 조금 금이 갔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원래 그 그릇은 약해져 있었다고요. 당신이 전에 김을 담으려다 살짝 떨어뜨린 다음부터요.”

 

민호는 무시하고 뒤돌아 섰다. 그는 어서 뜨거운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와인 한 잔을 하고 싶었다. 뒤에서 콧방귀 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호는 조금 고약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주에 너에게 에너지 공급을 안 해줄 거야.”

“제발… 제가 잘못했어요.”

 

냉장고가 에너지가 끊기면 제 생명이 최소한 일시정지된다는 것을 인공지능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냉장고에 에너지에 관한 문장과 문맥, 어감이 사전에 입력돼 자동 반응할 뿐이었다.

 

욕조는 다양한 색깔의 타일이 깔린 것처럼 여러 색깔로 반짝이기 시작하다가 끝내 보라색으로 제 몸의 색깔을 통일시켰다. 욕조에서 하루의 일과를 끝내는 민호는 센서들에게 자신의 기분을 색깔로 맞혀보라고 매일 퀴즈를 냈다. 그저 재미였다. 민호는 욕조 속에 있던 한 시간 동안 계속 온도를 바꿔 말하며 자신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고 했다. 욕실 디스플레이로는 최근에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를 검색시킨 다음, 영상은 끄고 오디오로 바꿔 듣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목욕하는 동안만이라도 눈을 쉬고 싶었다.

 

목욕을 마친 민호는 귀에 스킨 이어를 다시 붙였다. 그리고 그걸 문지르며댄스라고 말했다. 그는 삼십 분 동안 미친 듯 춤췄다. 그 사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안경을 밟아 안경다리가 부러졌지만 이제는 어지간한 동네에 한두 개씩 있는 3D프린팅 제작소에 맡기면 될 터였다. 층간 소음 문제는 스펀지 기술로 사라졌다. 심지어 실내에서 뛰어다니면 바닥의 소형 압력 발전기를 통해 에너지가 생산됐고 그 에너지는 형광등으로 전달돼 빛을 이용한 통신, 라이-파이를 가능하게 했다. 운동도 하고 무료 데이터 사용량도 확보할 수 있었다.

 

 

격렬한 춤으로 몸에서 힘을 다 뺀 민호는 그제야 침실로 들어갔다. 사이드 테이블의 맨 아래 서랍은 조금 열려 있었는데 그곳에 효정이가 선물해준 센서가 부착된 잠옷이 있었다. 그것을 입고 자면 효정은 멀리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도 침대에 누운 민호의 자세나 체온을 그대로 반영하는 플렉서블 인형을 껴안고 잘 수 있었다.

 

하지만 효정은 더 이상 민호와 함께하지 않았다. 민호와 효정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권태기가 왔다. SNS가 문제였다. 지난 10년 동안 SNS도 사물인터넷 때문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최초의 SNS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직접 발췌해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지만 SNS상에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공개하는 것을 불안해 했고 싫어했다. 동시에 SNS 기업들도 유수의 인터넷 기업들과 광고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이용자들의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열을 올렸다. 그럴수록 SNS의 세계는 가상현실이나 다름없어졌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광고시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계적으로 일상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보다 반쯤만 진짜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글로벌 SNS 기업들이 우세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케팅이란 현재적인 니즈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없는 니즈를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제는 자동으로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까지 달아주는 사물인터넷 SNS가 더욱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상현실의 공간으로, 절반쯤의 우연도 사라진 것이다.

 

문제는 SNS의 자동화가 최근의 데이터에 기반한다는 것이었다. 권태기에 접어든 민호의 SNS에는 이별에 관한 내용이 많이 업데이트됐다. 민호가 최근에 그런 글이나 영상을 보고 상담까지 받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효정은 민호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오해까지 하게 됐다. 민호 옆의 후배가 살짝 팔짱을 끼는 것이 SNS에 올라간 것이다. 단언컨대 민호는 그 여자 후배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민호는 효정을 만나지 못할수록 사랑과 그리움은 예전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다.

 

‘이미 그 플렉서블 인형은 버려졌을 거야라고 민호는 생각했다. 그는 미미를 효정이로 전환시켜 대화할까, 잠시 고민했다. 스마트폰 미미는 그동안 효정이와 나눈 텍스트 대화들과 특별히 저장시켜둔 음성대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대화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민호가 조금 열려 있던 맨 아래 서랍을 닫으려 할 때 옷의 가슴 근처에 있는 센서가 깜빡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타이머를 보니 지난 7일간 효정이 가진 인형은 민호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민호는 침대에서 뛰쳐나와 스마트 잠옷을 입었다. 침대에 다시 누웠을 때너의 의미가 베개에서 흘러나왔다. 효정이 지금 듣고 있는 노래였다. 민호는오랜만이야. 사랑해라고 말했고 그녀로부터보고 싶었어란 음성 답장이 왔다. 그들은 같은 노래를 몇 번 반복해서 듣고 난 뒤에야 둘 모두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한가운데는 사람이 있었다.

 

 

2024년 시나리오에 등장한 기술

음성인식 기술 음성인식 기술은 모바일 시대의 IT 강자들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분야이다.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자사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종속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비서란 타이틀을 들고나온 구글의 구글나우, 애플의 시리, MS의 코타나가 이에 속하며 최근 해외 언론에서 삼성의 뉘앙스 인수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음성인식 기술의 목표는 화자에게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적응해 사전적으로 화자가 원하는 것을 먼저 제시하거나 지금 명령한 것에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Her’에서 보듯 감정인지 서비스에도 쓰일 수 있다.

 

실내 GPS 시장조사기관 ABI리서치는 실내 지도(Indoor LBS)의 시장규모가 2018년에는 4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글, 애플, 노키아, 이베이, 페이팔 모두 이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애플은 iOS7에서는 실내 지도화가 가능한 BLE(저전력 블루투스) 기술을 적용한 아이비콘을 선보였고, 또한 2013 3월에는 실내 GPS 개발사인 와이파이슬램(WiFiSLAM) 2000만 달러에 인수했고, 7월에는 웨이즈처럼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로케이셔너리(Locationary)도 인수했다. 실내 지도는 쿠폰 제공이나 페이팔 의도처럼 결제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실내 지도 산업은 쇼핑센터와 박물관, 자동차 등의 제작 산업,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의료와 군사, 화재 등의 응급상황 등실내와 관련된 곳이라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위치 기반 기술 및 솔루션 관련 시장조사기관인 인도어LBS에 의하면 현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70여 개 이상의 업체가 시장에 진출해 있다.

 

공유경제 공유경제란 말은 2008년 하버드대 법대 교수 로렌스 레식이 처음 사용했다. 한 번 생산된 제품을 두 명 이상이 공유해 소비하는 경제 방식을 말한다. 현재 공유경제 기반의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기존의 거대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택시 파업을 일으키고 위법 판정마저 받고 있는 택시 서비스 우버(Uber)는 전 세계 택시 시장을 위협 중이다. 또 여행객을 위한 빈방 공유 서비스로 시작한 에어비엔비(Airbnb)는 이제 세계적인 호텔 체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판옵티콘 판옵티콘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재조명한 감옥의 형태 중 하나다. 판옵티콘은 1791년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덤이 창안한 개념으로 노동자들의 공장, 학생들의 학교, 죄수들의 감옥 등에서 한 사람이 탑에서 그 아래 모든 방과 통로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미시적 권력이란 개념을 제시하며 우리의 모든 일상이 감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물인터넷의 구성 요소 중 하나는 센싱으로 결국, 우리의 일상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센서를 부착하는 것이다. 사물인터넷의 발전에 대해 논의할 때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보안과 권력화 차단에 대한 논의도 반드시 필요하다.

 

e-skin 2014 4월에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연구진은 머리카락보다 얇아 거의 피부 같은 e-skin 또는 e-tatoo라 불러야 할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구글은 2014 1월에스마트 콘택트렌즈시제품을 공개했다.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당뇨병 환자의 눈물을 분석해 체내 혈당 수치를 분석해주는 디바이스다. 향후 구글은 스마트 콘텍트렌즈에 통신장치, 센서, 카메라 등의 기능도 탑재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웨어러블 장식품인 목걸이와 반지도 사물인터넷화될 것이다. 다만 그 작은 크기에 들어갈 만한 전원 공급 장치, 데이터 무선 전송 장치의 소형화와 저전력과 무선충전 기술이 아직 난관으로 남아 있다.

 

VTI 자동차도 이제는 기계장치가 아니라 전자장치이며 자동차 자체가 센서화돼가고 있다. 또한 자동차와 교통신호 등과 같은 인프라도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 차량 간 통신(V2V, Vehicle-to-Vehicle communication)과 차량-인프라 통신(V2I, Vehicle-to-Infrastructure communication) 기술이다. 자동차와 인프리끼리 무선통신을 이용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운전자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차 간 주행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며 실시간 교통상황을 전송받아 목적지까지 최단경로를 안내받을 수 있다. 무인자동차는 말 그대로 사람이 없이도 자동차가 스스로 자동차 운행이 가능한 기술로 자기운전 자동차(Self-Driving Car)라고 불리기도 한다. 카메라로 도로를 읽고, GPS로 위치를 파악하고, 자동차 스스로 핸들, 가속페달, 브레이크를 조절해가며 달린다. 무인자동차에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은 구글이다. 구글은 10여 대의 무인자동차를 운영 중인데 2014 4월까지 총 100만㎞ 이상을 운행했다. 구글은 2017년 이전에 무인자동차를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미국 자동차공학회(SAE)에서는 2040년이 되면 자동차의 75%가 무인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헬스케어/만성질환 모바일 헬스케어는 만성질환 케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성질환은 상시적인 관리와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예산 중 보건복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 7.1%에서 2012 10%까지 증가해 2012년에 222000억 원에까지 이르렀다. 보건복지 예산의 증가는 고령화 사회의 진입으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이른 것은 2000년으로 일본에 비해서는 무려 210년이나 늦지만 고령화 사회(2000)에서 고령 사회(201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기간은 불과 18년으로 프랑스의 도달 기간보다 97년이나 빠르다. 다만 국가와 민족별로 집중 케어해야 할 만성질환의 종류는 다르다. 자연풍토와 식습관, 질병 이력과 발생 패턴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뇨와 비만 등의 신진대사 모니터링이 필요한 비중이 미국은 39%, 일본과 중국은 각각 12%. 또한 고혈압, 관상동맥, 심부전증 등의 질환에 모니터링이 필요한 비중이 미국은 47%, 중국은 79%.

 

중간관리자/파킨슨의 법칙 파킨슨의 법칙(관료제 팽창 이론)에 따르면 사무직 노동자의 숫자는 노동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의 양에 비례해 증가한다. 하지만 사물이 커뮤니케이션에 개입하면 할수록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해왔던 인간의 필요성은 줄어든다. 한국의 경우도 취업자 중 관리자 비중은 연평균 3.1%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대신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비중이 연평균 4.1%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향후에 부흥할 서비스업종으로 꼽은 것은 헬스케어 관련 직종과 간병인, 보안 전문가, 미용사, 체형관리사, 상담 전문가, 경호원, 사회복지사 등이다. 모두 기계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최소한의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직업들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 대부분 서비스업종에 속하는 일들은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모라베크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고 한다. 모라베크의 역설은육체적 노동이나 감정적 인지가 필요한 일이 정보처리 업무보다 자동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문센서 기존의 지문 취득 과정은 지문 잉크가 해왔지만 이제는 하드웨어인 센서가 대체한다. 센서 방식에는 크게 실리콘 칩을 이용한 반도체방식(capacitive array), 광학방식(optical array), 열방식(thermal array)이 있다. 지문인식 알고리즘은 획득한 지문 이미지에서 특징량을 정의하는 추출 과정, 정의된 특징량으로 두 지문 이미지를 비교해 유사도를 판단하는 정합과정으로 나눠진다. 특징점(Minutiae)이란 단점(융선의 흐름이 끊기는 지점)과 분기점(하나의 융선이 두 개로 갈라지는 지점)을 말한다.

 

라이파이(LiFi: Light Fidelity) 라이파이 기술은 2011년 영국 에든버러대 물리공학부 교수 해럴드 하스 교수팀이 처음 제시한 기술로 빛을 이용한 통신기술이다. 사실 이 기술은 처음엔 LED 전구의 조도를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개발됐다가 LED 자체가 반도체 소자이기 때문에 통신기술로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LED(light emitting diode)는 갈륨, , 비소의 화합물에 전류를 흘러 빛을 발산케 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전구에 D-Light란 모듈을 탑재해 전구가 발산하는 빛 주파수를 변형시켜 데이터를 저장하고 송수신할 수 있게 한다. 모바일 데이터 사용의 급증으로 통신 주파수 대역은 더 많이 필요해질 것으로 전망된지만 주파수는 유한한 자원이다. 이론적으로 빛의 대역은 통신주파수 대역보다 1만 배나 넓다. 최근 해럴드 하스 교수가 참여한 영국 옥스퍼드 및 케임브리지 등의 대학이 설립한 조인트벤처에서 10Gbps 속도를 내는 라이파이 기술 시현에 성공했다.

 

편석준 착한텔레콤 이사 connecting.lab.mobile@gmail.com

필자는 ㈜착한텔레콤 서비스담당 이사이며 IT, 경제, 문화를 주제로 글을 쓴다. 저서로 IT 경영서인 <사물인터넷> <모바일트렌드 2014> 신세계>와 소설집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완벽한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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