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

156호 (2014년 7월 Issue 1)

 

루 거스너가 지난 1993년 위기에 처한 IBM의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많은 언론은 그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카드사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식품업체인 RJR나비스코를 경영하며 능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거스너는 기술 분야에서 전문성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인텔(반도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소프트웨어), 오라클(기업용 솔루션)처럼 한 분야만 파는 전문화가 IT 기업의 살 길로 여겨졌음에도 그는 전임자가 추진했던 분사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통합 IBM 모델을 고집했습니다. 언론과 전문가, 심지어 내부 직원들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거스너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IT 전 분야에 대한 역량을 갖고 있는 IBM의 사업 구조는 고객들의 모든 기술 관련 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그는 지역 위주로 돼 있던 조직을 사업부 위주로 바꾸고 인센티브 체계를 개편하는 등 조직을 변화시켰고 마케팅 활동도 통합 솔루션 제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후 IBM은 턴어라운드의 성공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언론은 거스너의 탁월한 경영능력이 성공을 가져왔다고 분석했습니다. 물론 그는 훌륭한 경영자입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지 못한 본질적인 성공 요인이 있습니다. 데브 팻나이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저서 <와이어드>에서 거스너의 결정적 성공 요인은 그의 이전 경력에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나 RJR나비스코 등은 모두 IBM 같은 기술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었습니다. 특히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전 세계에서 엄청난 규모로 이뤄지는 결제를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고도의 컴퓨팅 능력과 통신 장비가 필요했는데 이를 IBM에 의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거스너는 모든 기술 관련 문제를 한곳에서 처리해주는 서비스가 고객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때문에 주위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 IBM 전략을 밀고 나갔습니다.

 

또 고객으로서 IBM의 횡포도 경험했습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IBM 시스템이 다른 컴퓨터에서도 구현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타사 컴퓨터를 구입했는데 이에 반발한 IBM이 모든 프로그램 납품을 취소하는 등 엄청난 보복을 했다고 합니다. 갈등이 이어지다가 IBM은 결국 큰 고객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를 떠올리며 거스너는 고객을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또 사업 수주 과정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수주 후 서비스 질이 떨어진다는 점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고 신속한 고객 서비스를 위해 대규모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고객 입장이 돼봤던 과거 경험은 고객과의 공감을 이끌었고 이는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고객의 입장에 공감하면 이처럼 탁월한 전략 수립과 실행이 가능합니다. 물론 공감은 쉽지 않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지사지처럼 타인의 입장을 이성적으로 추론해보는 것은 공감의 가장 낮은 단계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머물면 안 됩니다. 이보다 더 높은 단계의 공감은 감정을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분노할 때 같이 분노하려면 이성적 사고를 넘어 감정까지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높은 공감의 단계는 거스너처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고객 입장으로 집어넣는 것입니다. 거스너는 그의 경력을 통해 운 좋게도 완벽하게 고객 입장이 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이런 상황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선을 다해 고객을 관찰하고 체험하면 됩니다. 휠체어를 만드는 회사라면 임직원들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보며 불편을 체험해야 합니다. 의료 서비스회사라면 환자가 돼서 입원치료를 받아봐야 합니다. 노인처럼 등을 굽혀주는 장치를 집어넣고 주름 분장을 해 거리를 다니는 노인용품 회사 직원도 있습니다. 직접 체험이 어렵다면 날카로운 눈으로 고객들의 삶을 끈질기게 관찰하며 통찰을 얻어내야 합니다.

 

공감의 시대입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라는 인간 본성을 언급하며 미래를 이끌 가장 큰 화두로공감(empathy)’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경영학계에서는 공감에 대한 탐구가 부족합니다. 실무에서 제기되는 공감에 대한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공감의 기술을 다뤘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공감에 대한 경영 전문가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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