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패튼의 코브라 작전: 불확실성에의 도전

142호 (2013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개 연합군이 악전고투 끝에 해변을 돌파하고 신나게 내륙으로 전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러나 사실 노르망디 전투의 진짜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뒤늦게 독일 정예사단들이 방어에 투입되면서 연합군은 독일군의 위력을 톡톡히 맛봤다. 그나마 독일군의 진짜 정예들이 러시아 전선에 다 투입돼 그곳에서 소진되고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들이 서부전선에 있었다면 무슨 악몽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독일군 병사들은 개별전술에 능했고, 오랜 전투경험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특히 실전에서 미묘한 차이를 가져오는 중요한 능력이 위장과 매복능력이었다. 독일군은 전차 흔적까지 깡그리 지웠다. 들꽃이 하늘거리는 지극히 평화로운 풀밭에서 갑자기 기관총이 작렬하고 탱크가 튀어나오면 연합군 병사들은 기겁을 했다.

 

상륙 후 한 달도 안 돼 연합군은 2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6월 말 영국 8군단과 독일 2친위기갑군단이 벌인 전투에서는 단 5일 만에 영국군 4000명이 전사했다. 연합군 병사들 사이에서 노르망디 상륙 당시의 기개는 사라지고 독일군에 대한 공포감이 번져갔다. 한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사들은 독일군 탱크는 모두가 타이거 탱크인 것처럼, 독일군의 포는 모두가 88㎜포1 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건 독일군만 보면 혼비백산한다는 말이었다.

 

 

패튼의 귀환

 

연합군 지휘부에도 불안감과 공포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독일까지 가기도 전에 연합군이 전멸할 판이었다. 1000만 명을 죽인 1차 대전의 참호전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걱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전선이 악몽으로 변하자 아이젠하워는 전황을 바꾸려면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선택한 카드는 조지 패튼 장군이었다.

 

패튼은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미군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제외됐다. 시칠리아에서 전쟁공포증에 걸린 병사를 보고 격분해서 구타했던 일이 언론에 과장 보도되면서 패튼은 거의 옷을 벗을 뻔했다. 이 사건은 여러 설이 있지만 손바닥으로 한 대 친 것에 불과했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그것도 구타라면 구타지만 1940년대라는 기준에서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다 패튼의 여러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전쟁의 방향을 바꿀 맹장이 전선에서 빠졌다.

 

아이젠하워의 배려로 뒤늦게 노르망디에 참여한 패튼은 노르망디에 발을 디디자마자 일장연설을 했다. “독일군의 내장을 뽑고 베를린으로 진군하자. 베를린에 가면 저 벽에 걸려 있는(히틀러의 사진을 말함) 재수 없고 뱀같이 교활한 녀석을 내가 총으로 쏴 죽이겠다.” 패튼의 등장에 병사들은 환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런 연설을 들을 때마다 더 시니컬해졌다.)

 연설을 마친 패튼은 한달음에 사령부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전황판을 보더니 혀를 찼다. “이런 나라면 3일이면 돌파할 수 있다.” 패튼의 큰소리는 허언이 아니었다. 노르망디에서 벌어진 악전고투의 근본적 원인은 연합군의 전술적 오류였다. 연합군은 남북으로 길게 일자형 전선을 펼쳤다. 이 전술의 모토는어깨를 맞대고 서서 측면을 노출하지 말라였다. 그러니 전투는 지지부진하고 전 전선에서 벌어지는 정면대결에서 노련한 독일군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은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다룬 군사서적에 따르면 미군은 전형적으로 전선을 유지하고 싸우는 전술에 강하다. 혹은 그런 경항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 초기에 미군이 고전한 이유에 대해서도 너무 급작스런 상황 전개에 미군들이 익숙한 전선, 혹은 전선형 전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 해석은 정당할까? 적어도 패튼 장군은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미군의 전술이라고? 아니 그것은 겁쟁이들의 싸움방법이지!”라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생쥐들의 싸움 vs. 사자의 싸움

 

전술과 싸움의 요체는 선택과 집중이다. 그건 상식이다. 그러나 시행은 어렵다. 전쟁에서 집중이란 압도적 화력과 병력을 한곳에 쏟아부어 상대를 궤멸시키는 게 아니다. 그렇게 쉬우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실제 전쟁에서 선택과 집중은 적의 후방으로 뚫고 전진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적진 깊숙하게 들어가면 들어가는 자도 양 측면이 노출된다. 상대가 적이 충분히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후방에서 좌우로 공격해서 끊으면 보급로가 잘리고 적진에서 고립되기까지 한다. 이른바 종심방어전술이다.

 

종심방어전술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공격하는 측은 적의 전선을 돌파하면 즉시 좌우로 병력을 증파한다. 증원병은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해 측면 엄호를 단단히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곧 전선형 전술이 돼 버린다. 조금만 머리를 들이밀면 측면을 걱정해서 좌우를 굳히고 그 사이에 전진은 정체된다.

 

패튼은 이런 보병전술을 경멸했고 생쥐들의 싸움법이라고 불렀다. 그럼 사자의 싸움법은? 기갑부대를 앞세워 적 후방으로 한 줄로 뚫고 들어간다. 쾌속으로 파고들어 보급로를 끊고 후방에서 돌아 포위하면 적은 무너진다. 그러다가 아군도 후방이 끊긴다고 말하면 패튼은 이렇게 말했다. “사자의 싸움을 생쥐가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코브라 작전

 

패튼의 제안에 따라 미군이 시도한 최초의 전격전이 브레타뉴 반도에서 시행된 코브라 작전이다. 브레타뉴 반도는 꼭 우리나라의 변산반도처럼 생겼는데 북쪽 끝에서 2개의 군단을 4방면으로 진군시켜 북쪽에서 남쪽까지 단숨에 4개의 화살을 박아 버리는 작전이었다. 화살 3개는 반도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고 나머지 화살은 반도와 대륙의 접합부를 도려내듯이 종단할 것이다. 독일군은 찢어지고 당황하다가 결국 반도 안에 고립될 것이다. 이 작전이 대담했던 것은 동쪽에 있는 독일 주력군에게 완전히 측면을 드러낸 채 남북으로 돌진하기 때문이었다.

 

코브라 작전을 구상한 미국 지상군 총사령관이었던 오마 브래들리 장군의 목적은 독일군을 브레타뉴 반도 안으로 몰아넣어 가두는 것이었다. 동시에 브래들리는 패튼도 이곳에 박아 버리려고 했다. 브래들리는 시칠리아에서 패튼의 부사령관이었다. 구타 사건으로 패튼이 곤경에 처하자 미군은 역진급을 시켜 브래들리를 패튼의 위로 승진시켰다. 그는 자신의 이전 상관이자 거북스럽고 골칫덩이인 패튼을 가능한 한 멀리 떼어두고 싶었다.

 

브레타뉴 반도는 대서양 쪽, 즉 연합군의 진격방향과는 반대편으로 튀어 나와 있다. 반도 안으로 몰린 독일군이 죽자고 저항하면 패튼은 반도 전역에 꼼짝없이 묶여 버릴 것이라는 게 브래들리의 계산이었다. 그는 패튼을 남겨둔 채 주력군을 이끌고 동쪽 파리를 지나 베를린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브래들리는 4개의 화살을 박아 넣는 대담한 작전을 구상하기는 했지만 4개의 화살이 서로 측면을 엄호하고 보조를 맞추며 조심스럽게 전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디든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진군을 정지시킬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패튼과 그의 휘하에서 단련된 기갑 사단장들은 반도 안에 틀어 박혀 있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작전이 시작되자 패튼은 브레타뉴 반도 맨 위쪽으로 진군하는 제6기갑사단에게 5일 만에 반도 끝까지 가라고 명령했다. 진군해야 할 거리는 무려 320㎞였다. 사단장이 방법을 묻자 패튼은 무조건 교전을 피하고 적이 있는 곳을 피해서 내달리라고 했다. , 적을 그대로 두고 아군은 한 줄의 가는 종대가 돼 사잇길을 통해 안으로 계속 들어가라는 소리였다.

 

보병의 시각에서 볼 때 패튼의 지시는 죽으러 가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패튼의 생각은 확고했다. 종심돌파는 빠르고 확고하게, 그리고 적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여야 한다. 적진 속으로 달려 들어갈수록 아군의 위험도 높아지지만 상대를 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싸움은 도면상에서만 전황을 보는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다. 도상으로 보면 아군과 적의 승리 확률이 늘 55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전으로 가면 결국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을 가지고 전황을 주도하는 쪽이 승리한다.그래서 사자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전황은 공포스러웠다. 선두 기갑사단이 너무 빨리 진격하는 바람에 좁은 프랑스의 시골길에서는 탱크와 보급트럭이 얽혀 대혼란이 일어났다. 8군단 사령관 미들턴은 심장이 멎을 뻔했다. 독일군이 우글거리는 지역에서 그의 군단과 보급트럭은 무방비 상태로 수백㎞를 늘어섰다. 이것을 독일군이 덮친다면 8군의 보급품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전투부대는 전멸할 수도 있다. 그는 진군을 멈추고 군을 정비하려고 했지만 패튼은 이렇게 말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자넨 역시 훌륭한 보병이야.” 기갑 출신이라고 다 강심장은 아니었다. 한 참모가 상황이 위험하다고 지적하자 패튼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렇게 말했다. “측면공격? 측면공격은 독일군에게 맡겨두고 우린 전진하자고.”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용기와 무모함의 차이

 

결과적으로 패튼의 결정은 대승리로 이어졌다. 기세가 오른 패튼은 군대를 동쪽으로 돌려 똑같은 방식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의 군대는 하루에 50∼80㎞를 전진했고 매스컴은 열광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전진에 대해 현재까지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난의 내용은이건 도박이다” “무모함이 용기는 아니다” “무모하게 공격을 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등이었다.

 

이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바로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용기와 무모함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패튼은 무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적의 반격지점, 예상행동을 철저히 준비하고 점검했다. 우회기동으로 적을 제압하기 위해 병사들도 무섭게 훈련을 시켰다. 다만 패튼은 준비를 했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연못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싸우지 않았을 뿐이다.

 

꼼꼼한 준비는 자신을 가두기 위한 준비가 아니다. 그 반대로 불확실성에 도전하기 위한 준비가 돼야 한다. 오늘날의 기업 환경, 세계 경제의 특징이 불확실성이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변화와 예측불가능성이 일상이 됐다. 매일같이 변화와 위기에 대한 강연과 세미나가 열린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변화를 정확히 예측해 그 예측을 기반으로 미래 상황을 제어하려고 한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진정한 처방은 불확실성 속에 뛰어들어 변화와 상황을 주도하는 용기와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 능력은 불확실성 속에 뛰어들어 보고 결단하는 경험을 통해서만 키워진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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