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역사학자와 만나 무슬림에서 돼지고기가 금기시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코란의 율법에 따른 종교적 이유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사학자의 설명은 이런 통념과 다른 매우 인상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유목민으로 살아야 하는 무슬림에게 돼지는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유목민은 긴 거리를 자주 이동해야 하는데 돼지는 다리가 짧아 이동이 어렵습니다. 또 낙타나 양 같은 동물을 키우면 고기는 물론이고 젖과 가죽이나 털 등 유용한 부산물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반면 돼지는 고기 이외에는 도움이 되는 게 없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양이나 낙타는 공짜로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는 풀을 먹고 자라는 데 반해 돼지는 사람과 똑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만약 과거 유목민이 돼지를 먹는 습관을 가졌다면 공동체가 치명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돼지는 피부가 약해 진흙바닥을 뒹굴며 수분을 보호하는 습성이 있는데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서는 진흙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아마도 분뇨 위에서 뒹굴었을 것이라는 설명에 이르자 돼지고기를 금기시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졌던 무슬림 문화가 한순간에 친밀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문화와 관습을 만들어왔던 것처럼 유목민의 문화와 관습도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영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응축된 지혜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유목민들은 정착민에 비해 훨씬 가혹한 환경과 불확실한 상황에 자주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형성된 문화들을 정착민 입장에서 보면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무슬림의 문화를 평가하기보다는 고유의 문화가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를 고찰해보면서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슬림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선 무슬림 인구는 총 16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다산과 1부 다처제 등의 문화적 영향으로 2025년에는 세계 인구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소비에 관대한 문화여서 다양한 분야의 시장 개척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무슬림 시장을 개척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까다롭긴 하지만 ‘할랄 인증(이슬람 율법에 따라 식품 등이 만들어졌음을 인증하는 제도)’을 받아 이슬람 시장에 식품이나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한국 기업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기업들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무슬림 시장에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장 잠재력이나 시장 규모에 비해 한국 기업들의 무슬림 시장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무슬림 시장의 특성과 공략 방법을 다뤘습니다. 중국(58호)과 인도(104호) 시장 공략 방법에 이은 세 번째 지역 공략 리포트입니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면 외국인 비용(liabilities of foreignness) 때문에 리스크가 높아집니다. 문화적 거리가 먼 무슬림 시장에서 이런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들의 대부분은 철저하게 다원적 사고를 하며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 상대와 감정적 유대가 형성되기까지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무슬림 시장에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선전하기를 기대합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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