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siting Machiavelli-12

‘몰락한’ 천재, 부활을 꿈꾸며 <군주론> 썼다

114호 (2012년 10월 Issue 1)

 

 

 

편집자주많은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 "더 이상 당하지 마라"고 조언했던 인물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연재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연재합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주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마키아벨리의 몰락

1512 117,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해임됐다. 그로부터 3일 후, 권력을 잡은 메디치가문은 전() 정권의 심복이었던 마키아벨리를 가택연금에 처했다. 그가 소데리니 총독의 핵심 참모였으니 메디치가문의 조치도 이해할 만하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새 정권에 불만을 가진 일부 유력인사들이 메디치가문의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계획이 적발됐는데 그 20여 명의 반()메디치 인사 명단에 마키아벨리의 이름이 올라 있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반란 혐의로 즉각 체포됐고 바르젤로 감옥에 투옥됐다.

 

‘스트라파도(Strappado)’라는 혹독한날개꺾기고문이 감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밧줄로 죄수의 두 팔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았다가 대리석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형벌이다. 어깨가 탈골되는 것은 예사고 잘못 떨어지면 뇌진탕으로 목숨을 잃는 무서운 고문이다. 신심(信心)이 투철했던 사보나롤라 수도사도 단 한번의 날개꺾기에 자신의 죄목을 술술 불 정도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6번이나 날개꺾기를 당했지만 매번 비틀거리며 일어나 자신의 무죄를 주장함으로써 고문관들을 놀라게 했다. 얼굴에 피멍이 든 채 비틀거리며 일어난 마키아벨리는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 남음이 있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마키아벨리의 이 외침은 단순히 억울한 감정의 토로가 아니다. 그는 투옥과 고문의 고통 속에서도 고전(古典)을 인용하는 기이하고 경이로운 태도를 보였다. 마키아벨리가 고문을 받으면서 내뱉었던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면서 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의 무지를 일깨우는 등의 역할을 했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거짓말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혼란에 빠트린다는 비난을 받았던 소크라테스는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 남음이 있다고 외쳤다.1 마키아벨리는 고문의 고통 속에서 플라톤의 고전 <소크라테스의 변론>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에게는 고문보다 고전이 더 위대했다. 마키아벨리는 감옥에서 모진 고통의 순간을 견디면서도 메디치가문에 해학적인 시를 지어 바치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이었다.2

 

운명의 여신은 마키아벨리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다. 반역 혐의로 감옥에 갇혀 목숨이 위태로웠던 마키아벨리에게 운명의 여신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목숨을 걷어가고 메디치가문의 첫 번째 교황을 탄생시키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1513 221, 율리우스 2세가 서거하고 같은 해 311, 조반니 데 메디치(Giovanni de Medici, 1475-1521)가 새 교황 레오 10(Leo X)로 취임하게 된다. 피렌체 출신의 첫 교황이자 메디치가문의 수장이기도 했던 레오 10세는 대대적인 사면을 발표했고 바르젤로 감옥에 갇혀 있던 마키아벨리도 이때 특사로 풀려났다. 시에나로 망명했던 소데리니까지 사면할 정도였으니 교황권을 얻은 메디치가문의 감격과 자부심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22일간 쇠사슬에 묶여 모진 고문을 받았던 마키아벨리는 겨우 감옥에서 풀려나 산탄드레아의 허름한 시골집에 칩거한다. 이렇게 1513년부터 시작된 마키아벨리의 은둔생활은 1527, 임종할 때까지 계속됐다. 무려 14년 동안 그는 실업자로 살았던 것이다. 그의 재능을 아끼던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시시껄렁한 일자리를 주기도 했고 나중에 마음을 바꾼 메디치가문이 <피렌체의 역사>를 집필할 수 있는 기회도 줬지만 모두 정식 직업은 아니었다. 말이 14년이지엉덩이를 잠시 책상에 붙일 틈도 없이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황제와 교황, 시대의 영웅들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하의 마키아벨리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절망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군주론>의 탄생

이 낙심과 좌절의 시간을 견디며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집필했다.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돼 망명객으로 외국을 떠돌던 시인 단테(Dante, 1265-1321) <신곡>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붕괴돼가던 19세기 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절망 속에서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나왔듯이 <군주론>도 이런 좌절 속에서 탄생했다. 마키아벨리에게 닥친 혹독한 가난과 철저했던 고독은 오히려 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역사의 이면을 들추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주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에게 밀어닥친 이 불운을 신이 부여한 기회로 여겼다.

 

“이런 까닭으로 인간이 비참한 지경에 떨어져 있든, 아니면 영화의 절정에 서 있든, 그것을 폄하하거나 칭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수없이 보아왔듯이 패잔의 몸이 되든지 영달의 절정에 있든지, 그것은 모두 신들이 인간에게 부여한 커다란 기회에 의해 그러한 위치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3

 

마키아벨리는 신이 주는 기회에 모든 것을 맡기는 숙명론자가 아니었다.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시련을 견디다 보면 새로운 희망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희망의 각오는 처절하기만 하다. 절대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역사적 사실을 비춰 단언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운명의 파도를 타기는 쉽지만 거역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즉 밑그림대로 일을 도모할 수는 있지만 그 밑그림을 찢어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속뜻은 전혀 알 수 없고 아무도 모르게 샛길로 빠져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어떤 것이든 닥쳐오는 재난에 이리저리 시달리더라도 결코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4

 

마키아벨리는 이런 절망과 희망의 가느다란 경계선 위에서 <군주론>을 썼다.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해직당한 자신을 메디치가문이 다시 불러주는 것이다. 유럽 각국의 통치자들과 이탈리아의 영웅들,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교황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가문의 부름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뼈아픈 좌절과 가느다란 희망 속에서 탄생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어떤 책일까?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처럼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독재자가 읽어야 하는 악의 교과서인가?

 

 

 

<군주론>의 진정한 의미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에 대한 오해는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한 권모술수의 책으로, 혹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서로 읽을 때 발생한다. <군주론>에 대한 오독은 정치공학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됐는데 그들의 눈에는

<군주론> 3장의 내용이 흥미로울 것이다.

 

“어쨌든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대중이란 머리를 쓰다듬거나 없애 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소한 모욕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하지만 너무나 엄청난 모욕에 대해서는 감히 보복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해를 가할 때는 보복의 우려가 없도록 해야 한다.”5

 

약자에 대한 강자의 무자비한 통치가 정당화되고 있다. 대중이란 단어를 지금의 용어인시민이나직원으로 바꾼다면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비정한 권력의 비밀과 비즈니스의 지침을 속삭이며 시민과 직원의 목을 조르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군주론>을 자기계발서의 하나로 읽고악의 교사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마키아벨리를 대면하는 사람은 3장에 등장하는 이 냉혹한 글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무지한 대중을 탄압하는 불한당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군주론> 3장의 주장은언어, 풍습, 제도가 다른 지역의 영토를 지배하게 될 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르게 마련인데 그것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과 함께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논지를 펼치면서 한 말이다. 특별한 통치의 현실에 직면한 군주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제한적인 조치란 것이다.6 사회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군주론>을 잘못 이해했다. 이 책은 통치에 대한 기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즉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친 마키아벨리의 처절한 자기고백이며 키케로로 상징되는 기독교적, 중세적 가치에 대한 의도적인 뒤집기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군주론>의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혹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했던 산탄드레아 시골집 앞길에 서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멀리 피렌체의 도심이 어렴풋이 보이고 브루넬레스키가 건축했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거대한 돔(Dome)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집필하는 동안 가끔씩 집 앞 큰길에 서서 피렌체를 바라봤을 것이다. 흐릿하지만 자신이 제2 서기장으로 일했던 시뇨리아 정청의 모습도 보였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다시 서재로 돌아와 펜을 들고 <군주론>을 계속 써내려가면서 이렇게 다짐했을 것이다. “, 언젠가는 저 곳으로 돌아가고 말겠어!” 마키아벨리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피렌체의 시인 단테를 떠올렸을 것이다. 단테도 자신처럼 피렌체에서 추방돼 망명객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단테도 늘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는 <신곡>의 천국 편 25장에서나는 다른 목소리와 다른 머리털을 지닌 시인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며 내가 영세를 받았던 그 우물에서 월계관을 쓰게 될 것이다며 귀향의 각오를 다졌다.7  <신곡>의 애독자였던 마키아벨리도 틀림없이 단테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피렌체의 시뇨리아 정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애절했던 마키아벨리는 정치 이론서나 처세술에 대한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취직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쓴 것이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문의 눈에 들기 위해 쓴 포트폴리오다. 실업자로 전락한 마키아벨리가 다시 직업을 갖기 위해 쓴 피눈물 나는 이력서인 것이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인생의 밑바닥에서 쓴 글이다. 실업자였던 마키아벨리는 시대가 자신의 능력을 외면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자신이 공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메디치가문이 자신을 불러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군주론>의 여러 곳에서 메디치가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으며 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노력하는수사(修辭)적 장치를 마련한다. 여기서수사적 장치라 하면 글을 쓰는 사람이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문학적 장치를 말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수사적 장치를 사용하는 데 명수였다. 예를 들면 <군주론> 4장에 이런 짧은 구절이 나온다. “새로 차지한 영토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할 때….”

 

무슨 말일까? <군주론> 1차 독자인 메디치가문의 군주가 바로 이런 어려움에 당면해 있다는 말이다. 메디치가문은 1494년에 피렌체에서 축출된 이래 1512년까지 망명객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교황 율리우스 2세와 프랑스의 알력을 이용해 다시 피렌체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새로 차지한 영토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권을 운영해 봤던 노련한 정치가가 필요하고 외국의 통치자들과 능수능란하게 협상을 펼칠 수 있는 경험 많은 외교관이 필요하다. 아마도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메디치가문의 새 통치자들이여! 이 직책을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을 곁에 두고 있습니까? 그들이 나만큼 실무 능력이 있고, 저보다 외교 경험이 풍부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발 저를 다시 불러 주십시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3장에서 통치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도 신생 군주의 통치능력을 배양하는 것보다정복지 사정의 차이를 아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4년간 시뇨리아 정청에서 피렌체의 정치, 외교, 군사 문제를 주물렀던 자신을 등용해야정복지 사정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목부터가 메디치가문이 접수한 피렌체 정부의 예상되는 난관을 설명하고 있다. ‘점령되기 전에 자치적이었던 도시나 군주국을 다스리는 방법이란 제목은 메디치가문이 1512년 피렌체를 다시 접수했지만 그 도시국가는자치적이었던 도시였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마키아벨리는 이전의 통치자나 귀족이 아닌 자신과 같은 평범한시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해온 도시를 다스리는 데에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시민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8 피렌체를 접수한 메디치가문이 효과적으로 통치하기를 원한다면 일반 시민 계급 출신인 자신이 적임자란 사실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메디치가문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는 배짱을 부리기까지 한다. 메디치가문도 지난 18년의 망명기간 동안한낱 시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에통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한 개인의 신분으로 다만 운수가 좋아 군주가 된 자는 군주의 지위에 쉽게 올라갔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대단히 어려운 시련을 겪게 된다그들이 훌륭한 재능이나 능력이 있는 인물도 아닌데다가 지금까지 한낱 시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지도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명작은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이다. 명작은 스캔들이 아니라 작가가 신음 소리를 낼 때 탄생한다. 죽음의 한계와 인생의 유한함에 절망했던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려내고 지속적인 가난과 정신병 발작 때문에 동생에 대한 절대적인 부담감을 느꼈던 빈센트 반 고흐가 <까마귀가 날고 있는 밀밭>이라는 명작을 남겼듯이 마키아벨리는 절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군주론>을 썼다. <군주론>은 처세술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절규이자 신음 소리였다. 마키아벨리에게는 승리나 성공, 혹은 권력의 획득이나 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이 처절한 절망감으로부터 해방돼 다시 피렌체로 돌아가 이 나라를 바로 세울 것인가?9

 

 

 

키케로에 대한 반론, 혹은 대세의 흐름에 대한 반대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고대와 중세의 정치철학의 입장과 명백한 단절의 선을 그은 책이 아니다.10  15세기 말부터 피렌체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졌던 플라톤의 <국가>에서도조국의 수호자가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제시돼 있다. 군주의 덕목에 대한 책은 플라톤 이래 수없이 많이 집필됐고, 특별히 르네상스 초기에도 다른 학자들이 <군주론>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독창성은 장르의 창발성이나 고대와의 단절이 아니라 뒤집어 읽기의 통찰력에 있다. 무엇보다 <군주론>의 핵심 내용은 키케로의 <의무론>에 대한 뒤집어 읽기로 고전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감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법률가, 사상가였던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 <의무론>은 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성서>를 인쇄한 다음(1456) 두 번째로 상업적 목적으로 인쇄한 책이다. 필사본으로 만들어진 키케로의 <의무론>이 중세 시대의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서둘러 대량으로 인쇄한 것이다. <의무론>은 아테네로 유학 간 아들에게 쓴 키케로의 편지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키케로의 아들이 아테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심취하자 아버지는 플라톤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도덕적 선(호네스툼•Honestum)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키케로는 아들에게 도덕적으로 선한 삶이 유용한 삶이고 그것이 진정한인간의 의무라고 가르친다. ‘도덕적으로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또한 유익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의무론>을 썼던 것이다.11

 

마키아벨리는 당대 최고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던 키케로의 선() 개념을 뒤집어 읽었다.12 키케로는 <의무론> 1 14 42절에서부터 18 59절까지 긴 지면을 할애하면서군주의 관대함에 대해 분석했다. <의무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남에게 불을 붙여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불빛이 덜 빛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인용구가 나오는 부분이다. 즉 리더는 남의 등잔에 불을 붙여 줄만큼 늘 관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이 몰락의 조짐을 보인 이유도 당대의 리더들이국민의 아낌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 즉 경애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되기를 더 원했기 때문이다.13 키케로는 군주가 자애로운 인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자신이 남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이 공포로 몰아넣은 자들을 두려워하여 벌벌 떨게 될 것이다는 경고를 주저하지 않았다.14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키케로의 <의무론>을 뒤집는다. 군주는 관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했던 군주의 덕목은 키케로의 <의무론> 2 52절부터 제시되고 있는호의와 관대함에 대한 반대 의견이다. 마키아벨리는 당대 최고의 학문적,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던 키케로의 견해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는 고도의 수사적 장치를 마련한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고전(古典)에 도전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수사적 장치다.

 

키케로는 군주의 관대한 행동을 주문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이런 관대한 행동은 결국 군주의 과다한 지출을 유발할 것이며 무거운 세금의 부과를 통해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주의 관대함은 백성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나은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문제 역시 키케로가 <의무론>에서 이미 제기한 것이다. 키케로에 따르면 두려움을 주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군주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만이 권력을 지속가능하게 해준다.15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달랐다. 사랑의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지만 두려움의 마음은 두려움을 유발하는 사람에 의해 그 정도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군주는 권력의 확실한 장악을 위해 늘 두려움의 존재가 돼야 한다. 군주는 두려움의 대상이 돼 백성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키케로 뒤집어 읽기는 유명한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혜논의로 이어진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은 이것 역시 키케로의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키케로의

<의무론> 1권은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의와 반대되는 개념은 당연히불의(不義)’.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이불의를 설명하면서 사자와 여우를 구체적인 동물적 사례로 들었다.

 

“불의가 행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폭력과 기만이다. 기만은 마치 여우의 교활함처럼 보이고 폭력은 마치 사자의 사나움처럼 보인다. 폭력과 기만은 인간과는 거리가 가장 거리가 먼 것이지만 기만이 더 큰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모든 불의 중에서도 남을 가장 많이 기만하면서도 자신은 마치 선인처럼 보이도록 위장하면서 속이는 자들의 불의가 가장 위험하다.”16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다시 완전히 키케로를 뒤집는다. 피렌체를 통치해야 하는 메디치가문의 군주는 사자처럼 사나워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여우처럼 교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케로가 여우처럼 남을 기만하면서 마치 자신은 선인처럼 보이도록 위장하는 것을 가장 큰 불의로 봤지만 마키아벨리는 반대로 봤다. 군주는 여우처럼능숙하게 분장할 줄 알아야 하며, 감쪽같이 위장도 해야 하고, 때로는 뻔뻔스러워져야만 한다.” 왜냐하면여우의 기질을 잘 구사한 군주가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17

 

 

살아남기 위해 쓴 애절한 책,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사회과학서로 쓴 것이 아니다. 권력을 잡은 정치가들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치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한숨을 몰아쉬며 애절한 마음으로 <군주론>을 썼다. <군주론>은 실직을 당한 전직 관료가 재취업을 바라면서 권력자에게 일자리를 호소하며 쓴 글이다. 그래서 위대한 책이 됐다. 살아남기 위해 쓴 책보다 더 위대한 책은 없기 때문이다.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글이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쥐어주는 인세(印稅)에 눈이 멀어 알량한 글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잡스러운 글이나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의 마음을 떠보는 정치가들의 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기만의 방책이나 권모술수의 비법이 아니라 눈물을 쏟으며 <군주론>을 써내려갔던 마키아벨리의 애절함이다. 마키아벨리의 애절한 마음은 메디치가문에게 바친 <군주론>의 헌정사 말미에 이렇게 표현돼 있다.

 

“하오니 전하(로렌초 데 메디치)께서는 부디 선물을 보내는 본인의 심정을 헤아리시어 보잘 것 없는 이 선물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전하께서 만일 이 책을 소중히 받아주시고 읽어 주신다면 운명과 전하의 여러 자질에 의해 전하께 약속돼 있는 위대한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이며, 또한 그것만이 더 바랄 수 없는 저의 소망이라는 것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전하께서 그 높은 곳에 계시면서 때로는 이러한 음지에도 눈을 돌려주신다면 본인이 얼마나 부당한 학대를 견디고 있는지도 헤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skk@yonsei.ac.kr

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및 에모리대에서 석사 학위를,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신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SK케미칼 고문도 맡고 있다. <르네상스 창조 경영>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15권의 책을 냈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영감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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