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구상한 최종현의 시스템경영

111호 (2012년 8월 Issue 2)

 

“회사를 유기적으로 잘 운영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두 가지가 있으니 그 하나는 Cooperation(협동)이며 다른 하나는 Coordination(조정)이다.”

- ‘사보 선경’ 1975 2월호

 

SK그룹의 출발점인선경을 세우고 발전의 토대를 닦은 사람은 고 담연(湛然) 최종건 회장(1926∼1973)이다. 하지만 최종건 회장 타계 이후 선경을 SK그룹으로 키워낸 이는 그의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1929∼1998)이다.

 

SK그룹 사사(社史) 제목이 ‘SK 50년 패기와 지성의 여정인데 이는 도전적이었던 최종건 회장의 패기와 일찍 미국 유학을 다녀온 최종현 회장의 지성이 시너지 효과를 내 지금의 SK그룹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감안한 것이다. 국내 대기업 창업 1세대 중에는 최종건 회장과 같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느낌을 주는 경영자가 많지만 최종현 회장은 체계적인 경영을 한 경영자로 기억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로서는 낯선 경영용어인 ‘coordination’에 대한 강조다.

 

1962년 최종현 회장이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서 처음 일한 곳은 형이 세운 선경직물이었다. 1970년 선경직물 사장이 된 최 회장은 적자였던 회사를 살리기 위해 2300명의 직원을 1200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부터 단행했다. 이후 선경직물의 수원 공장은 생산성은 좋아졌지만 불량품이 여전히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최 회장은 생산1부장과 생산2부장을 불러 불량품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당시 선경직물의 생산공정은 생산1부의 제직 공정과 생산2부의 후처리 공정으로 이뤄져 있었다. 2개 부서를 거쳐서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구조였던 것이다. 생산1부장과 생산2부장은 모두 성실하고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두 부장이 각자가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일을 사전협의나 정보교환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오히려 대립과 반목이 심해 불량품이 생기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최 회장은 공장장과 협의를 한 뒤 고심 끝에 고참 부장인 생산2부장을 본사 이사로 보내고 그 자리에 생산 1부장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임명했다. 불량품의 발생은 부서 간조정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수원 공장의 불량품 발생률은 크게 떨어졌다.

 

최 회장은 나중에조직운영에 있어서 Coordination(조정)의 중요성이라는 글을 사보에 쓰며 이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coordination을 잘한다는 것은 눈에 잘 안 보이는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가 등한시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요소지만 회사의 실제 운영에는 상당히 크게 작용하며 절대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말로만 coordination을 잘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각 부서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coordination 규정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시로서는 창의적인 경영 기법이라 할 만한 탁월한 견해다.

 

씨티은행의 부사장이었던 린 쇼스탁(Lynn Shostack) 1982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발표한서비스 청사진(Service Blueprint)’을 보면 최 회장의 생각이 얼마나 앞선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서비스 청사진은 서비스가 고객에게 도달하는 전 과정을 2차원 평면에 그리는 것을 말한다. 주로 서비스 기업에 국한된 경영도구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업무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 조직 내 부서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보여주고 업무를 조정하거나 협업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최 회장의 협동과 조정에 대한 생각을 실제로 평가할 수 있게 보여주는 경영도구인 셈이다.

 

최 회장의 ‘coordination 이론은 현재 SK그룹의 경영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의 근간이 됐다. 그리고 체계적인 경영에 대한 최종현 회장의 의지는 SK그룹 성장의 바탕이 됐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필자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인문지리학을 전공하고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산업부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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