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for CEo -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강연

돈을 향해 뛰지마라 돈이 달아난다

110호 (2012년 8월 Issue 1)



편집자주 기업 경영에 인문학적 소양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컨베이어벨트로 상징되는 대량생산과 원가절감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돼 가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학계와 기업인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유교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DBR SK아트센터 나비와 CWPC서평(徐評)이 공동 주최한 최고경영자 교육 과정인문화와 경영프로그램(주임교수 서진영)을 지상 중계합니다. 1부 프로그램인논어(論語)와 경영과정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의 두 번째 강연 내용 일부를 요약합니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들을 따져서() 그중 내용이 비슷한 것끼리 모아 놓은 것이다. <논어>에 가장 처음 나오는 문장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맞게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배운다는 게 반드시 기쁜 일인가? 지겨운 일일 수도 있고 따분한 일일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때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는 지겨워 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렇다면 공자가 배우는 게 기쁘다고 했을 때 그 배운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격을 향상하기 위해서라는 진부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들을 모아 놓고 시험을 칠 때에는 감독관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대학생들을 모아 놓고 할 때에는 분명 문제가 생긴다. 공부를 해서 인격이 향상됐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하향된 셈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왜 했는가? 답은 경쟁이다. 경쟁에서 이겨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한 것이다. 좋은 대학은 왜 가야 하는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취직 안 하고 시집가겠다는 사람도 좋은 곳에 시집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결국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이 이런 경쟁에도 마지막은 있다.

 

사람들은 남은 시간이 많다는 착각에 빠져 이런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어하다가 50∼60년이 지나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간이 아직 많다고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일 불치의 병에 걸려 삶이 이제 한두 달 정도 남았음을 알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던 일을 계속하고 가던 회사를 계속 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지금까지 달려오던 일상을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방황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철학적 방황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도 부모가 1∼2년간은 호적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아이가 홍역을 앓고 나야 이제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호적에 올렸다. , 홍역을 치르기 전에는 태어난 아이가 사람이 될지 안 될지 불확실했다는 것이다. 철학적 방황 역시 인간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결정한다. 철학적 방황을 진지하게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은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훌륭한 사람은 항상 나의 마지막 순간이 코앞에 온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느낌이 오면 성공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어지고 왕이 되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게 된다. 잠깐 왕 자리에 앉았다가 곧 사라지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석가모니도, 예수도, 공자도 방황을 했다. 방황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한 자가진단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을 때 옆에 누군가 같이 방황하고 있다면 의지가 되고 쉽게 친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활짝 웃으면서 나타났다고 해보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저 워커힐 뒷산에 가서 무슨 나무 뿌리를 뜯어먹었더니 나았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덥석 붙잡고 물을 것이다. ‘무슨 나무냐. 어떻게 먹느냐라고 캐물을 것이다.

 

방황하는 인간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공자다. 만일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누군가 나타나나는 뒷산에 있는 나무 뿌리를 뜯어먹었더니 병이 나았다고 말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무슨 나무냐, 어떻게 먹느냐, 어디 가서 구할 수 있느냐고 캐물을 것이다. 그가 떠나려 해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논어>를 읽을 때 그런 사람, 공자를 만난다.

 

그런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배워서 알았다.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소학이라고 한다면 공자가 말하는은 대학이다.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게 된다. 그래서 <논어>의 첫 구절에 배움이 기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불교에서는고통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것도 <논어>와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배우니까 기쁘다고 말했고 이 얘기는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고통이라는 뜻이다.



 

행복한 마음 경영, 한마음 경영을 하라

‘주식으로 20억 버는 방법’ ‘부동산은 아름다운 꽃이다’ ‘20, 재테크에 미쳐라’. 요새 잘 팔리는 책들의 제목은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에 안 맞는 책, 돈 되는 이야기가 없는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논어>.

 

마음을 챙기겠다고 결심을 하고 <논어>를 펴면 세상에 그보다 좋은 책은 없다. 마음을 챙기는 방법은 첫째, 공부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을 방치해 뒀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손가락을 다쳤다고 해도 이것을 치료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 마음을 30, 50년 이렇게 방치했으니 이를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즐겁고 기쁨을 느끼게 된다. 부산이 멀더라도 그것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기차 안에서도 즐거울 것이다. <논어>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방법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인생에서 항상 경쟁을 해야 하니까, 또 경쟁에는 정보가 중요하니까 늘 우리의 촉각은 외부를 향해 있어야 했다. 향외(向外)라는 것인데 이제는 향내(向內), 즉 내 마음속을 향해서 관심을 가지는 방법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늘 면접을 한다. 입사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을 고를 때도, 옷가게를 고를 때도 사람들은 종업원의 얼굴을 보고 결정한다. , 모든 만남이 곧 면접이다. 여기서 면접점수는 얼굴의 점수인데 얼굴은얼의 꼴이라는 말이다. ‘은 마음이기 때문에얼꼴은 마음의 모습이다. 면접점수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나처럼 생각하면 누구를 만나도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상대도 부담 없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랑이 몸에서 퍼져 나오는 사람은한마음을 회복한 것이고 면접점수가 높아서 어딜 가서 무엇을 해도 잘되게 된다. 어떤 일을 해도 이상하게 잘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일을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이것은 노하우의 차이가 아니고 바로 이런 면접점수의 차이, 마음 모습의 차이다.

 

그 다음에는 일이 달라진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돈 때문에 일을 하고 일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 간다. 그런데 욕심이 없어지면 그 사람은 일을 돈 때문에 하지 않게 되고 마음이 일 그 자체로 한다. 그러면 일이 재미있게 되고 돈을 따지지 않게 된다.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에서 일하는 박효남 주방장이 150명의 요리사를 거느리는 총주방장, 상무가 됐다. 출근시간이 오전10시라면 그는 오전7시에 출근해서 설거지하고 재료를 다듬었다. 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열 시간 이상 일해도 시간가는 줄 몰랐기 때문에 요리 실력이 크게 늘었고 세계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그는 40대에 주방장이 되고 50대에 상무가 되는 등 성적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 마음이 일에 있으면 피곤하지도 않고 능력 발휘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이 다른 데에 가면 안 되니 월급을 올려주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향해서 뛰는 사람에게서는 돈이 달아나지만 내가 행복해서, 내가 즐거워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것을논어 경영학또는한마음 경영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과거의 경영학이 돈을 남들보다 어떻게 빨리 얻느냐 하는 연구를 했다면 앞으로의 경영학은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거우면 돈이 따라온다는 방식으로 변할 것이다. 욕심이 없어져야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연습의 중요성

이렇듯 진리는한마음을 얻는 것이다. 늘 여유롭게, 건강하게, 느긋하게, 심지어 몸이 늙어가는데도 그걸 늙는다 생각하지 않고 자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해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이런 인생이 되는 것이 한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 이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것은 마치 수영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몸이 물에 뜬다는 것을 알아도 깊은 물에 들어가라 하면 겁이 나서 들어가지 못한다. 머리로 아는 것은 부족하고 물 먹어가면서 몸이 알 때까지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뜬다. 그때 비로소! 뜬다!’는 기쁨이 오고 그 다음부터는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해도 들어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때에 늦지 않게 늘 양심과 욕심의 갈등에서 욕심을 버리고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해야 한다. 행복은 느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행복하다생각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뜻이다.

 

창의력은 느낌이다

오늘날 경영학에서 창의력이 큰 화두다. 어떻게 하면 창의력 있는 사람을 찾을까, 또는 직원을 어떻게 창의력 있게 만들까 하는 것에 온 관심이 쏠려 있다. 하지만 창의력이 무엇인가 하는 데에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중소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강연에서 강사가창조경영 하십시오. 그냥 경영해서 됩니까? 스팀청소기 만들고, 김치냉장고 만들고, 그런 것을 해야지 평범하게 경영해서 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창의력이 무엇인지는 알기 힘들다. 기업 하시는 분 중에 독특한 상품 만들기 싫은 사람은 없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창의력은 천심(天心), 즉 하늘의 명령이고 지시다. 하늘은 부모의 마음과 같다. 부모가 우리에게 가지는 희망, 원하는 것은 무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은살아라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라’ ‘행복하게 살아라’ ‘성공하면서 살아라하는 말들의 공통점은살아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가장 큰 불효는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다. 하늘도 이와 똑같다. 우리한테 쉬지 않고살아라는 지시를 한다. 식사시간이 지났는데 밥을 안 먹고 있었다 그러면 하늘이 살라는 명령을 하고, 이것은 배고픈 느낌으로 전달이 된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창의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난 이걸 만들어야 돼, 나는 이걸 만드는 사람이야, 잘 만들어야 돼라고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창의력이 샘솟는다. 그게 창의력이다.

 

경영(經營)의 어원 - 문왕(文王)의 이야기

이번에는 경영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아보자. 다음은 유교의 경전인 시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王在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 魚躍

文王以民力 爲臺爲沼 而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謂其沼曰靈沼 樂其有麋鹿魚鼈 古之人 與民偕樂 故能樂也

湯誓曰時日害喪 予及女偕亡 民欲與之偕亡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

 

우선 첫 구절을 보자.

 

經始靈臺(경시영대)

經之營之(경지영지)

庶民攻之(서민공지)

不日成之(불일성지)

 

經始靈臺(경시영대)에서 자는 실이란 뜻이다. 베틀에서 베를 짤 때 세로로 놓는 실을 경이라 하고 가로로 놓는 실은 위()라 한다. 베를 짤 때 세로실은 가만히 있고 가로줄은 북이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은 변함없는 것, 변함없는 말을 의미한다. 베를 짜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자가 경영이라는 말에 쓰인다. 경시, 즉 경영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을 계획한다는 뜻이다. ‘영대라는 것은 문왕(文王)의 관망대를 말한다. 관망대를 만드는 것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 다음 經之營之(경지영지)는 바로경영이다. ‘은 일을 꾸미고 또 자를 가지고 가서 재기도 하는 것이고은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일을 꾸미고 설계하고 하는 것, 여기서 경영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왕이 영대를 만들려고 계획을 해서 자로 재고, 설계를 하고, 경영을 한다. 庶民攻之(서민공지)에서은 공격한다는 뜻이다. 전쟁터에서 공격을 할 때는 잡념이 없다. 오로지 집중해서 전쟁하는 생각만 한다. 그래서 집중해서 오로지 무언가를 하는 것을이라고 한다. ‘전공이 뭐냐할 때 공자가 바로 이 글자이다. 그래서 서민공지라는 건 서민들이 집중해서 그 일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문왕이 벌이는 별장 공사에 주변에 사는 서민들이 와서 자기 일처럼 집중해서 그 일을 했다. 不日成之(불일성지)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완성이 됐다는 뜻이다.

 

經始勿亟(경시물극)

庶民子來(서민자래)

王在靈囿(왕재영유)

麀鹿攸伏(우록유복)

 

經始勿亟(경시물극)에서은 급할 극이다. ‘은 하지 말라는 뜻이니 영대를 꾸미는 일을 급하게 하지 말라고 문왕이 얘기한 것이다. 庶民子來(서민자래)는 서민들이 아들처럼 와서 도왔고 그래서 금방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王在靈囿(왕재영유)에서는 동산이다. 왕이 신령스러운 별장동산에 있다는 뜻이다. 麀鹿攸伏(우록유복)이로다. ‘는 사슴의 다른 종류들이다. ‘ ‘∼하는 바라는 뜻이다. 사슴들이 와서 왕 앞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麀鹿濯濯(우록탁탁)

白鳥鶴鶴(백조학학)

王在靈沼(왕재영소)

魚躍(오인어약)

 

麀鹿濯濯 白鳥鶴鶴(우록탁탁 백조학학)은 사슴들이 살이 쪄서 반질반질하고, 백조들이 하얗고 깨끗하다는 말이다. 그 하얀 백조들과 살찐 사슴들이 문왕 앞에 있다. 王在靈沼(왕제연소), 그 왕이 연못가에 있으니 魚躍(오인어약), (여기서 감탄사로 쓰여가 아닌로 발음한다), 즉 연못에 가득한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뛴다는 말이다. 연못에 있던 물고기들이 기뻐서 뛰어오르고 사슴들도 좋아서 그 앞에 와서 엎드린다. 바로 천국의 설명이다. 천국이 돼 사람들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들까지 서로 한마음이 돼 기뻐하고 있다.

 

文王以民力 (문왕이민력)

爲臺爲沼 (위대위소)

而民歡樂之 (이민환락지)

謂其臺曰靈臺 (위기대왈영대)

 

이 문왕이 백성들의 힘을 가지고(文王以民力) 전망대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었다(爲臺爲沼). 그러면 백성들은 왕을 원망해야 할 법도 한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했다(而民歡樂之). 백성들이 그 전망대를 일컬어서 백성들이 영대, 즉 신령스러운 전망대라 이름 붙였다(謂其臺曰靈臺).

 

謂其沼曰靈沼(위기소왈영소)

樂其有麋鹿魚鼈(락기유위록어별)

古之人(고지인)

與民偕樂(여민해락)

故能樂也(고능락야)

 

또 백성들은 그 연못을 일컬어서 신령스러운 못이라 이름지었다(謂其沼曰靈沼). 그리고 사슴들, 물고기들, 자라들이 놀고 있는 것에 행복해했다(樂其有麋鹿魚鼈). 임금이 별장을 짓는다니 이것이 곧 자기들의 별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완성된 별장동산에 온 나라 사람들이 다 같이 놀며 내 것 네 것 개념 없이 다 같이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한마음으로 일을 하니까 모든 백성들이 자기 일처럼 와서 돕고 행복해하더라는 논리다. 이렇게 옛사람(古之人)이 모든 백성과 함께 즐거워했다(與民偕樂).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故能樂也).

 

湯誓曰時日害喪(탕서왈시일갈상)

予及女偕亡(여급여해망)

民欲與之偕亡(민욕여지해망)

雖有臺池鳥獸(수유대지조수)

豈能獨樂哉(기능독락재)

 

그 다음 문장은 반대의 예다. <탕서>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이런 태양이 언제 없어질까(湯誓曰時日害喪).’ 여기서 태양은 왕을 의미한다. 왕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본인의 안위만을 위해 독재를 해서 백성들이 함께 죽으려고 한다면(予及女偕亡),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음을 먹는다면(民欲與之偕亡)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이면 전망대나 연못, 새나 짐승이 있어도(雖有臺池鳥獸) 어찌 왕이 능히 혼자 행복할 수 있겠는가(豈能獨樂哉). 이것이 맹자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 경영의 기본은 한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행복경영이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경영이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

 

중학교밖에 안 나온 구두수선공이 성공을 해서 제화회사를 차렸다. 안토니제화라는 회사다. 안토니의 김원길 사장은나는 돈을 벌려고 구두를 만들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이 구두를 신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런 마음을 갖고 구두를 만들면 신어서 편한 구두가 나오게 돼 있다. 구두가 잘 팔리기 시작하면서 회사도 커졌다. 김 사장님은 본인은 전셋집에 살면서 회사에는 벤츠를 한 대 사놓았다. 미혼남녀인 사원들이 데이트하러 갈 때 마음대로 타라고 샀다는 것이다. 말도 몇 마리 사고 보트도 사서 주말에 말 타고 싶은 사원들, 호수에서 쉬고 싶은 사원들에게 쓰도록 했다. 그러니 사원들은 신이 나고 행복해진다. 이것이 바로 문왕의 경영인 것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한다. 이런 분들도 일단 성공을 하고 나면 지금까지 해온 경영을 잊고 달라져 버리기가 쉽다. 내가 왜 성공했는지, 어떻게 해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회사가 성장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경영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성공한 경영자들도 한마음 경영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야 하는 이유다.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이 강연의 정리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영호(KAIST 경영학과 4학년) 씨와 성진원(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필자는 일본 쓰쿠바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만 국립정치대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수학했다. 2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7년 사서삼경을 최초로 완역하는 등 유학(儒學)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