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콜라보레이션, 융합과 창조로 진화하다

104호 (2012년 5월 Issue 1)




전 세계 생존 작가 중 작품값이 가장 비싼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본디 광부들의 작업복용으로 탄생해 오늘날 청바지의 대명사가 된 리바이스(Levi’s)를 위해 한정판 티셔츠와 진을 디자인했다. 명품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루이비통은 고유의 모노그램 패턴에 일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밝은 컬러와 통통 튀는 캐릭터를 삽입, 고지식한 이미지를 탈피했다. 패션계는 물론 럭셔리 세단, 하이테크 제품, 심지어 지갑 속 신용카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진화하고 있는 마케팅 키워드는 바로 이름만 들어도 매력적인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다.

 

콜라보레이션, 그 의미와 다양성

콜라보레이션은 브랜드 간의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뜻한다. 기업에 도입된 초기의 콜라보레이션은 단순히 마케팅 활동을 협력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점차 체계화돼 기업과 기업이 자원의 확보, 정보의 공유, 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전략적 제휴, 합작투자 등의 형태로 협력 마케팅을 실행하게 됐다. 참여 기업들은 기존의 단순한 브랜드 공유 활동 수준에서 이제 개발 및 생산,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보다 깊이 관여해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마케팅 관점에서 콜라보레이션은 콜라보레이션의 목적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그림 1>처럼 유형화할 수 있다. 우선 소비자 제공 혜택 관점에서 모든 콜라보레이션 현상을 관통하는 패턴은감성적 혜택과기능적 혜택 간 조합이다. 제품이나 브랜드를 소유하거나 소유하는 상상만으로도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게 되는 일종의 정서적 편익을 감성적 혜택이라고 한다면 보다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편익을 기능적 혜택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콜라보레이션은 1) 이질적인 감성적 혜택 간 결합 2) 감성적 혜택과 기능적 혜택의 결합 3) 서로 다른 기능적 혜택 간 결합 등 크게 3개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콜라보레이션의 발현 초기엔 감성과 기능 측면에서 구현되는 소비자 혜택의 3가지 조합이 주로 상호 보완 목적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상호 보완 목적을 넘어 화학적 융합을 이뤄냄으로써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의도로 콜라보레이션이 일어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콜라보레이션은 그 목적에 따라 1) 두 브랜드 간의 상호보완 차원과 2)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융합창조 차원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상호보완 목적의 콜라보레이션

먼저 이질적인 감성적 혜택이 만나 상호보완하며 시너지를 창출한 사례를 살펴보자. 스웨덴의 대표적인 SPA브랜드인 H&M은 트렌드를 빠르게 접목해 제품을 생산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과 호흡하는 디자인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고급스러움은 다소 떨어진다. 반면 마르니(MARNI)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로 최고급 이미지를 지녔지만 대중적인 친숙함은 부족하다. 사뭇 다른 감성의 두 브랜드는 콜라보레이션(MARNI for H&M)을 통해 서로 가지지 못한 점들을 보완하는 효과를 얻어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감성과 기능적 혜택이 상호 보완해 성공을 일궈낸 사례도 있다. 독특한 패턴과 자연적 색감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 디자이너인 올라 카일리(Orla Kiely)는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시트로엥(Citroen)과 손잡고 그들의 해치백 모델인 DS3 스페셜 에디션을 제작했다. 올라 카일리의 자연친화적 감성이 편리함과 실용성을 기반으로 하는 시트로엥의 루프, 사이드 미러, 내부의 시트와 매트 등에 덧입혀져 그동안 시크한 면만 부각됐던 시트로엥이 보다 따뜻한 감성으로 거듭나게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렉서스(Lexus)는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과 손잡고 최상의 오디오 시스템을 전 모델에 구현했다. 오디오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하이엔드급 브랜드인 마크 레빈슨은 차량에 장착된 오디오 시스템이 최적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도록 앰프와 스피커를 새롭게 개발했다. 마크 레빈슨이 고안한 렉서스 전용 시스템은 안락함과 정숙함을 표방하는 렉서스의 기술적 가치와 만나면서 마치 집 안 거실에서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풍부한 음질을 재현해내는 데 성공, 전문가들로부터카오디오의 진화’ ‘새로운 오디오의 기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생산적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화

앞서 우리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양자 간 부족한 감성적 혹은 기능적 혜택을 결합하거나 조합해 상호 보완의 시너지를 창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살펴봤다. 하지만 콜라보레이션 현상들은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양자 간 상호 보완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융합하고 창조해내는 생산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발전하고 있다.

 

진 브랜드의 대명사인 리바이스는 영국의 현대 미술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술가 데미언 허스트와 제휴, ‘데미언 허스트 X 리바이스라인을 선보였다. 데미언 허스트는 원심력 원리를 이용한스핀 페인팅(spin painting)’ 기법을 도입해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스핀 진을 출시함으로써입을 수 있는 예술을 보여줬다. 특히 그의 대표적 이미지인 해골문양이 재해석된 티셔츠는 한정판으로 희소성과 소장가치까지 더했다. 아티스트와 청바지 브랜드의 단순한 감성적 혜택의 조합이 아닌 일상적으로 입는 옷도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감성과 기능의 혜택이 만나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기도 한다. 영국의 컬트 감성을 지닌 브랜드 캉골(Kangol)과 헤드폰 브랜드 에리얼7(Aerial7)의 콜라보레이션이 바로 그 예다. 에리얼7은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는 고성능 사운드 디스크를 캉골 이어랩의 귀마개 부분에 삽입했다. 이 고성능 사운드 디스크는 아이폰이나 블랙베리 같은 모바일 기기와도 호환이 가능한 스피커가 내장돼 있어 따로 이어폰을 꽂는 불편함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기존의 헤드폰 시장에서는 볼 수 없던헤드웨어라는 새로운 개념을 두 가치의 융합이 만들어낸 것이다.

 

나이키(Nike)와 아이팟 나노(iPod Nano)의 콜라보레이션은 각각의 기능적인 장점들이 결합한 케이스다. 나이키 운동화 라인 중 플러스(+) 시리즈를 신고 아이팟 나노를 사용하면 송신기와 수신기를 장착할 수 있어 운동한 시간이나 달린 거리, 칼로리 소모량 등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운동이 끝나면 운동 데이터가 웹사이트에 저장돼 일정기간 동안 얼마나 운동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로써 단순한 운동 보조 기구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소비자의 러닝 라이프(running life)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개인 트레이너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냈다.

 




콜라보레이션 실행의 유의점

콜라보레이션은 비교 우위의 가치를 서로 공유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상호보완의 목적에서 자신과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극대화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융합창조의 목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은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도 고객에게 새로운 감성적, 기능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기에 브랜드 제고를 위한 전략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협업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건 결코 아니다.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협력을 꾀하는 각각의 제품 혹은 서비스가 기본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 자체로 경쟁력이 없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무조건 결합해서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충분히 얻어내기 힘들다. 콜라보레이션 자체가 제품의 경쟁력을 본질적으로 강화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협업으로 일시적인 품질과 디자인의 우위를 선점한 것일 뿐 기업이나 브랜드의 역량이 발전해 가치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지속적 성장을 위해 중요한 것은충성 고객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매출이 상승했다고 해도 특정 브랜드나 유명인과의 협업에 이끌려 구매하는철새 고객들은 장기적으로 큰 가치를 주지 못한다. 프라다폰 성공 이후 출시된 프라다폰2가 전작에 비해 부진했던 까닭이 그렇다.

 

둘째, 종전과 똑같은 패턴으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콜라보레이션은 금물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소비자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협업을 위한 협업만 일삼다가는 차별화 전략이었던 콜라보레이션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흔하고 식상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함정을 피한 대표적인 사례로 럭셔리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루이비통을 들 수 있다. 루이비통은 일본의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뿐만 아니라 힙합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카니예 웨스트,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스티븐 스프라우스 등과 협업하는 등 매 시즌 새로운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끊임없는 콜라보레이션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협업 제품들을 루이비통은 철저하게 한정판으로 생산해 희소성을 추구하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콜라보레이션은 기업이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희석하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해야 한다. 브랜드의 이미지는 소비자와의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콜라보레이션을 무분별하게 남용한다면 소비자들은 어떠한 특정 브랜드, 혹은 유명인과 협업한 제품으로만 그 브랜드를 인지하게 돼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유니클로(UNIQLO)는 질 샌더, 캐스 키드슨, 다카하시 준과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과 콜라보레이션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모던하고 클래식한 기본 아이템에 충실한다는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가볍고 따뜻한 히트텍(Heat Tech),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유브이 컷(UV-Cut) 등 획기적인 소재 개발과 기술력이 결합된 제품을 꾸준히 내놓으며 유니클로만의 고유한 브랜드 핵심 가치를 지켜내고 있다.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콜라보레이션은 마법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감성적 혜택과 기능적 혜택의 조합은 상호보완과 융합창조를 통해 소비자들의 욕구를 채워줄 창조물들을 쉽게 생성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콜라보레이션은 더욱 정교화되고 역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구입할 수 있고 새로운 가치의 혁신적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묘미가 있기에 소비자들은 더욱 분화되고 진화하는 콜라보레이션을 기대할 것이다.

 

 

 

심수민 비즈트렌드 연구회 연구원 shimsoomin@hotmail.com

필자는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BIT컨설팅에서 소비재 관련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했다. 연구 관심 분야는 소비자 트렌드 분석 및 브랜드 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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