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말(言)을 먹지(食) 마라!

103호 (2012년 4월 Issue 2)


밥을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만 말()을 먹어서 살이 찌는 경우도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보면 말()을 많이 먹어서() 살이 쪘다는 은유적 기사가 실려 있다. ()나라 왕 애공(哀公)은 자신을 헐뜯고 다니는 신하들을 만난 자리에서당신들이 살이 찐 이유는 자신이 직접 한 말을 먹어 버리는(食言) 거짓말을 해서 그런 것이오라고 하며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비난했다. 여기서식언(食言)’은 자신이 한 말을 먹어서 진실을 감춘다는 뜻으로 요즘거짓말이라는 뜻과 같다. 방금 한 말을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식언(食言)의 최초 기록은 정치학 저서 <서경(書經)>에 나타난다. 당시 하()나라 정권 말기 폭군 걸()왕의 실정(失政)은 극에 달했다. 민심은 이반됐고 주변 신하들의 마음도 이미 떠나버렸다. 이제 하() 정권에 대한 심판만이 남았고 천명(天命)이란 명분으로 혁명(革命)의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이때 탕()왕은 민심을 등에 업고 정권심판의 주창자로 나서게 된다. ()은 박()이라는 곳에서 백성들에게 연설했는데 이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버금갈 만큼 유명하다. 링컨의 연설은 비록 3분밖에 안 됐지만 새로운 정부의 탄생을 예고하고 그 정부는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왕의 박()땅의 연설 내용은 이렇다.

 

“하()나라 정권은 너무 죄를 많이 졌습니다(夏氏有罪). 저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합니다(予畏上帝). 그래서 과감하게 일어나 하나라를 정벌할 수밖에 없습니다(不敢不正). 모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하나라 해(정권)가 언제 없어질 것이냐고(是日曷喪). 나도 함께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予及汝皆亡).’ 이제 저는 하나라를 심판하러 갈 것입니다(今朕必往). 여러분들은 저를 보고 도와주십시오(爾尙輔予一人). 그리하여 하늘의 벌을 함께 수행합시다(致天之罰). 저는 여러분들을 믿습니다(予其大賚汝). 여러분들도 저를 믿으십시오(爾無不信). 저는 식언(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朕不食言)!”

 

탕왕이 폭군 걸왕과 하나라 정권을 심판하러 가면서 백성들에게 함께해 줄 것을 유세하는 내용에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짐불식언(朕不食言)’이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다. 비록 4000년 전 연설이지만 세상을 바꾸고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각오를 담고 있는 내용은 요즘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나를 믿고 도와주면 반드시 보답하겠다며 탕왕은 자신의 약속을 먹지 않겠다는 식언(食言)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요즘 자신이 한 말을 먹어 치우는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가 한둘이 아니다. 선거 전에는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당선만 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자신이 한 말을 먹어 버리는 식언을 하는 정치인들은 이미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 지도층 인사가 자신의 말을 먹어 버리고 기업이 고객과 한 약속을 먹어 버린다면 과체중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신이 직접 한 약속을 먹어 버린 무게로 몸무게를 달아 사람을 평가한다면 함부로 식언(食言)을 일삼지 못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약속을 했는지,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 이제 꼼꼼히 계산해식언지수(食言指數)’를 만들어 그 사람과 정당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식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현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로 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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