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지향의 경영자이거나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는 기업의 리더들은 늘 인내와 긴급의 줄타기를 한다. 좋은 성과를 위해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결과를 빨리 확인해서 자신의 상사나 주주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부하를 다그치곤 한다.
위기의 에이비스(AVIS)를 구제한 경영 사례로 유명한 로버트 타운센드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내의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유능한 리더라면 업무 목표에 합의한 후 일이 진전되지 않는다고 그 일을 도로 빼앗아 가진 않는다.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자신이 도와줄 것은 없는지 물어보고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만년 적자의 에이비스의 경영을 맡게 됐을 때 그가 흑자전환의 돌파구로 삼은 것은 바로 업계 2위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당당히 인정하는 것이었다. 흔히 단기적 실적 개선을 위해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지만 그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기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적개선 지표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대신에 직원들 마음속의 패배의식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했다. 광고대행사가 ‘우린 업계 2위에 지나지 않습니다’란 광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90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시간을 단축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믿고 기다렸다. 긴 시간 철저하게 회사 내·외부 경쟁력을 분석하고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내세운 2위 광고는 주효했고 성공적인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리더십은 언제나 긴급함의 망령 때문에 휘청거린다. 단기 성과에 대한 집착은 리더의 인내심을 공격한다. 차별화 포인트는 남들이 아직 찾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리더의 조급함은 확실하지 않은 길을 기웃거리지 못하게 막는다. 단기간의 결과 관리에 집중하다 보면 다음 단계를 대비하는 투자 결정력은 현격히 떨어진다. 그러므로 중요도와 긴급함을 기준으로 미래에 시선을 두되 오늘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인내할 줄 아는 긴급성’이 필요하다.
제임스 다이슨 “기준을 높게 잡아라”
혁신 구호 중에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점진적 개선으로는 혁신을 이루기 어렵지만 불가능해 보일 만큼 도전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매진하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지혜가 담긴 말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의 주목을 끄는 경영자 중에 제임스 다이슨이 있다. 일명 날개 없는 선풍기라는 획기적인 제품을 들고 나와 아이디어 혁신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선풍기가 발명된 후 이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127년간 사람들은 날개 없는 선풍기는 성립 불가능한 가설로 받아들였다. 이보다 앞서 진공청소기에서 먼지봉투를 없애겠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청소기에 먼지 봉투가 있는 게 뭐 어때서’라며 그의 도전을 무시했다. 그러나 이젠 강력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이 청소기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꼭 갖고 싶은 아이템이 돼버렸다.
세상이 놀랄 만한 아이디어나 제품으로 주목을 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대 수준이 높았다. 높은 기준에 부합할 때까지 반복되는 실패를 피하지 않았다. 창조적 리더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편집증에 가까운 집요함으로 기술 혁신을 지휘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제임스 다이슨은 ‘실패는 발견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계속 실패하라’고 주장했다. 그의 명성을 세상에 알려준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가 나올 때까지 무려 5126번의 실패가 있었다.
높은 기준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끈기의 미덕을 가졌다. 기대 충족에 대한 집요함으로, 어떤 상황에도 타협하지 않는 고집이 있다. 지휘하에 있는 부하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고집을 약점이라고 피드백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를 만들어내는 집요함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보호해줘야 할 특성이다. 리더십을 강조하다 보면 모든 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헛된 꿈을 갖게 만들 수 있다. 다만 기준을 높게 잡고 혁신을 지휘해나갈 때 원하는 결과와 성공의 기준을 이해시키는 노력은 필수다. 옆에서 아무리 수준 높은 외국어를 구사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겐 소음으로만 들리기 때문이다.
조선경 딜로이트컨설팅 리더십코칭센터장 sunkcho@deloitte.com
조선경 센터장은 국제 비즈니스코치와 마스터코치 자격을 갖고 있으며, 2002년 국내 최초로 임원코칭을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600명이 넘는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을 코칭했다. 현재 딜로이트컨설팅에서 리더십코칭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